2025년 6월 사이언스 북 리뷰


안녕하세요. 저는 게스트 에디터 정지영이라고 합니다.

동아일보, 카카오벤처스, 대통령비서실을 거치고 현재는 KAIST에서 과학저널리즘 수업을 듣고 있습니다. 종이책을 사랑하고, SNS는 해본 적이 없습니다(SNS 도전할 예정!).

문과사람도 이해하고 즐기는 재미있는 과학 콘텐츠를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시작합니다.

#뇌과학
(데이비드 이글먼. 김승욱 옮김. RHK, 2022)
 
내가, 나의 세계가 달라질 수 있다고 희망을 주는 과학책. 쉽고 재미있다.


일단, 제목이 너무 멋지지 않나요?

저는 사람들마다 각자의 세계 속에서 살아간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은 서로가 다른 세계를 살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언어가 다른 외국인과의 소통이 어려운 것처럼요. 대한민국에만 5000만 이상의 세계가 옹기종기 모여있으니 그 안에서 많은 싸움과 타협, 전쟁, 이야기가 펼쳐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런데! 관념적인 무엇에 가까웠던 저의 이런 생각이 과학적으로도 맞다는 것 아니겠어요? 세계적인 뇌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 스탠퍼드대 신경과학과 교수가 영어 원제<LIVEWIRED>에서 이 내용을 정말 재미있고 멋지게 풀어냈습니다. (사실 과학자가 쓴 교양과학책은 아무래도 따분하고 어려운게 많았는데 이 분은 정말로 글을 잘 쓰시더라고요. 알고보니 학부 때 문학을 전공하다 신경과학으로 전향했다고…!)

영어 제목은 LIVEWIRED(생후배선 生後配線). 이 단어는 데이비드 이글먼이 만든 말입니다. 뇌를 HARDWIRED로 보는 개념을 거부하고 살아있는 회로라고 설명합니다. 즉 인간은 주변환경과 경험에 따라 끊임없이 배선이 재구성되는 유기적인 존재라는 것이죠. 우리 위대한 어머니 자연이 태초에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난 운명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감각을 수집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 구조를 재조립해 나가는 존재로요.

인간에게 처음부터 완벽하게 기능하는 설계도 따윈 없습니다. 마구 울어대기만 하던 아기는 결국 울음을 그치고 주위를 둘러보며 세상을 흡수합니다. 주변 환경에 자신을 적응시키며 결코 아무도 미리 계획한 적 없는 어떤 것들을 만들어 냅니다. 여기에는 한 아이가 흡수한 모든 것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반쯤 만들다 만 뇌를 갖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우리에게는 승리 전략이었습니다. 인간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뒤로 제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절반만 설계하고 나머지는 알아서 배우도록 하는 시스템은 로봇공학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불가사리 로봇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모델을 따르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차츰 터득해 나갑니다. 일반적인 프로그래밍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 로봇의 다리 하나를 떼어내도 로봇은 자신의 달라진 형태를 다시 파악해서 기능합니다. 이런 방식은 현재 최첨단 AI 기술 방식에도 기본적으로 적용되는 핵심 기술입니다.

이런 개념을 기반으로 신체기능 보완을 넘어 확장까지 시도하는 연구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아예 인간에게 없었던 감각을 부여하려는 실험으로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거대한 팔을 만들거나, 꼬리를 달거나, 8개의 다리를 가진 바닷가재의 몸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연구해 보는 실험 등입니다. 중요한 건 이런 낯설고 어색한 신체에도 뇌가 스스로 적응한다는 사실입니다. 신체가 변형되면 우리의 정신도 바뀔지 모릅니다. 우리의 사람됨은 뇌의 신경회로에 달려있는데, 뇌 신경회로의 연결을 바꾸면 사람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겁니다.

회로 재편은 평생동안 이뤄집니다. 물론 나이가 들수록 유연성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슬퍼만 할 일은 아닙니다. 대신 우리는 더 정교한 인프라, 더 깊은 세계를 구축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유연성을 잃어가지만 동시에 전문성과 깊이를 쌓아가고 있습니다. 아이처럼 매일 다시 세계를 허물고 만들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나만의 기억, 가치, 감정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세계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세상’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와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모든 것, 즉 주변 환경 / 경험 / 친구 / 적 / 문화 / 신념 / 시대 등으로부터 나옵니다. 우리 인간은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에워싼 모든 것과 우리 자신을 분리할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LIVEWIRED한 존재입니다. 끊임없이 회로를 새롭게 하며 살아가는, 살아있는 회로 그 자체. 우리 각자는 그렇게 하나뿐인 세계입니다. 그리고 또 내일 더 새롭게 다른 모습일 수 있는 세계요.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7
(넷플릭스, 2025)

블랙미러는 기술이 인간성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풍자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입니다. 시즌1의 에피소드1을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좋아서가 아니라 불쾌하고 싫어서요.

그런데 다른 에피소드들을 주욱 보면서 시즌1 에피소드1을 다시 봤는데 이전에는 못 보던 것들도 보이더라고요. 블랙미러의 팬이 되었습니다 하하. 올해 4월에 나온 시즌7은 이전 시즌보다 주목도나 화제성이 떨어진 것 같지만 그래도 전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베트 누아르'와 '장난감'을 추천합니다.


[ep2] 베트 누아르(Bête Noire) 

우주의 지배자가 되었는데도 여전히 학창시절 트라우마에 갇혀 있는 주인공. 그 모든 힘(정말로 우주의 모든 힘)을 가졌음에도 고단한 현생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것. 베트 누아르는 ‘혐오하거나 두려워하는 대상’, 영어의 nemesis(적)과 비슷한 의미라고 합니다.

이 에피소드에서는 양자 컴파일러(quantum compiler)’라는 기술이 등장합니다. 양자 컴파일러는 양자컴퓨터에서 작동하는 양자 알고리즘을 물리적인 양자 게이트로 변환해주는 소프트웨어 도구입니다. 베트 누아르에서는 주인공이 마음대로 현실을 조작합니다. 현재 양자컴퓨팅 기술을 고려하면, 아직 이 기술까지는 멀고도 멀고도 멀었다 수준입니다.


[ep4] 장난감(Plaything)


사회성이 부족한 주인공이 스롱렛(Thronglets)라는 게임에 감정이입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평화롭고 착하기만한 게임 속 캐릭터 스롱렛들. 힘든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너무나 소중해져 버립니다. 그런데 역시나 인간이 문제. 한 인간이 재미를 위해 게임 속 스롱렛들을 죽이고 터전을 파괴해 버립니다. 주인공은 인간이 아닌 스롱렛 편에 섭니다.


평화와 온순함이 콘셉트인 디지털 생명체들이 인간으로부터 파괴를 접하고 난 뒤에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디지털 생명체가 어떻게 인간에게 복수하죠? 실제로 이런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섬뜩한 에피소드. 결말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데 어떻게 생각하실지 독자분들의 의견도 궁금합니다. 

넷플릭스 게임 개발팀에서 이 에피소드와 동시에 'Thronglets'라는 게임도 내놨습니다. 게임을 설치해봤는데 드라마와 연결성 있게 만들어 놨네요. 처음 게임에 접속하면 넷플릭스에 나오는 게임의 스토리가 나옵니다. 이용자가 작품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 들게끔 하려고 한 것 같아요. 사람들보다 더 사랑스러운 비유기적 생명체가 등장할 날도 멀지 않았겠죠 



스롱렛 게임 안드로이드 다운로드
스롱렛 게임 iOS 다운로드



#추천곡
요네즈 켄시 米津玄師 - 감전 感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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