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노인 워런 버핏의 마지막 편지

2025-11-11

주식의 달인, 버크셔 해서웨이 CEO 워런 버핏이 어제 공식적으로 주주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냈습니다. 한줄 요약: '늙어도 시간은 많습니다. 롤모델을 잘 고르고, 그 영웅의 삶을 카피하세요.'


오마하 옛 기차역



버핏의 은퇴는 이미 지난 주주총회에서 발표된 바 있고 수 년 째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기에 놀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언제나 투자자들에게 현명한 조언을 해줬던 버핏이기에, 그의 마지막 편지엔 어떤 메시지가 담겨있을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편지 전문을 아래 번역합니다. 쭉 읽어보세요.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회사
보도자료
즉시 배포용 — 2025년 11월 10일

오마하, 네브래스카 (BRK.A; BRK.B) –

오늘 워런 E. 버핏은 A주 1800주를 B주 270만주로 전환했습니다. 이 B주들은 네 곳의 가족 재단에 기부하기 위한 것입니다. 수잔 톰슨 버핏 재단에 150만주, 셔우드 재단·하워드 G. 버핏 재단·노보 재단에 각각 40만주씩 증여했습니다. 이 기부는 오늘 모두 완료되었습니다.

버핏 씨가 주주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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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주주 여러분께,

저는 더 이상 버크셔의 연례보고서를 작성하거나 주주총회에서 끝없이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을 것입니다. 영국식 표현으로 하자면, 저는 이제 “조용히 물러나려 합니다(going quiet).”

물론, 완전히는 아닙니다.

올해 말부터 그렉 아벨이 경영을 맡게 됩니다. 그는 훌륭한 관리자이자, 지치지 않는 근면한 일꾼이며, 정직한 소통자입니다. 그의 오랜 재임을 함께 기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앞으로도 매년 추수감사절 메시지를 통해 여러분과 제 자녀들에게 버크셔에 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버크셔의 개인 주주들은 특별한 분들입니다. 그들은 남다른 관대함으로 자신이 얻은 이익을 덜 가진 사람들과 나누는 분들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계속 연락을 이어갈 수 있는 이 기회를 매우 즐겁게 생각합니다. 올해는 제게 잠시 회상을 허락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 후 제 버크셔 주식의 배분 계획을 말씀드리고, 마지막으로 몇 가지 사업적·개인적 견해를 덧붙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며, 저는 95세의 나이로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와 놀라움을 느낍니다. 젊었을 때만 해도 이런 결말은 썩 유력한 내기가 아니었습니다. 사실 어린 시절, 저는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때는 1938년이었고, 당시 오마하 시민들은 병원을 가톨릭계와 개신교계로 나누어 인식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자연스러운 구분처럼 여겨졌습니다.

우리 집 주치의 하를리 호츠는 검은 가방을 들고 왕진을 다니는 다정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그는 저를 “스키퍼”라고 불렀고, 진료비를 많이 받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1938년 어느 날, 제가 심한 복통을 호소하자 호츠 박사가 집에 들렀습니다. 그는 배를 잠시 눌러보더니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호츠 박사는 그날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고 잠시 브리지를 즐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 증상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답니다. 결국 그날 밤 늦게 저를 세인트 캐서린 병원으로 급히 보내 맹장염 수술을 받게 했습니다. 이후 3주 동안 저는 마치 수녀원에 들어간 듯한 병원 생활을 했고, 새로운 ‘연단' 위에 올라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이미 그때부터 저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지요. 수녀님들은 그런 저를 따뜻하게 받아주셨습니다.

회복기의 하이라이트는 제 사랑하는 이모 에디가 가져온 선물이었습니다. 아주 ‘전문적인’ 지문 채취 세트였죠. 저는 즉시 병동의 모든 수녀님들의 지문을 채취했습니다. (아마 저는 세인트 캐서린 병원에서 수녀님들이 본 첫 개신교 아이였을 겁니다. 그분들도 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겠지요.)

저는 완전히 엉뚱한, 하지만 나름 논리적이라고 믿은 이론을 세웠습니다. 언젠가 어떤 수녀가 나쁜 길로 빠질 수도 있고, 그때 FBI가 수녀들의 지문을 등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라고요. 1930년대의 미국에서 FBI와 그 수장 에드거 후버는 존경의 대상이었기에, 저는 후버 본인이 오마하로 와서 제 ‘귀중한’ 지문 컬렉션을 직접 확인할 거라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문제의 수녀를 신속히 찾아내 체포하는 장면도 그려봤습니다. 그렇게 저는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되리라 믿었습니다.

물론, 그 상상은 현실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몇 년 후, 후버 자신이 권력을 남용한 일로 불명예를 입었을 때, ‘차라리 내가 그의 지문을 채취했어야 했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게 바로 1930년대 오마하의 풍경이었습니다. 그 시절 제가 가장 탐냈던 것은 썰매, 자전거, 야구 글러브, 그리고 전기기차였습니다. 이제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지만 오랫동안 존재조차 몰랐던, 그 시절 근처에 살았던 다른 아이들 몇 명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 첫 번째는 제 오랜 친구이자 64년을 함께한 찰리 멍거입니다. 1930년대의 찰리는 지금 제가 1958년부터 살고 있는 집에서 단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살았습니다.

저는 그와 친구가 될 기회를 아주 근소하게 놓쳤습니다. 찰리는 저보다 6년 반쯤 많았고, 1940년 여름에는 제 할아버지의 식료품점에서 하루 10시간 일하고 2달러를 받았습니다. (절약은 버핏 집안의 전통입니다.) 그 다음 해에는 제가 같은 가게에서 비슷한 일을 했지만, 찰리를 직접 만난 것은 1959년, 그가 35세이고 제가 28세였을 때였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찰리는 하버드 법대를 졸업하고 캘리포니아에 정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마하에서의 어린 시절을 인생의 형성기로 회상했습니다. 지난 60년 넘게 찰리는 제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더할 나위 없는 스승이자 보호자 같은 ‘형님’이었습니다. 우리는 생각이 다를 때도 있었지만, 한 번도 언쟁을 벌인 적은 없습니다. “내가 그랬잖아”라는 말은 그의 어휘에 없었습니다.

1958년, 저는 생애 첫 집이자 유일한 집을 샀습니다. 물론 오마하였습니다. 제가 자란 곳(정확히 정의하긴 어렵지만)에서 약 2마일 떨어져 있고, 장인·장모 댁에서는 두 블록이 채 안 되는 거리, 할아버지의 식료품점에서는 여섯 블록 정도, 그리고 제가 64년째 일하고 있는 사무실에서는 차로 6~7분 거리입니다.

오마하 버핏의 집 (편집자 촬영)


이제 또 다른 오마하 사람, 스탠 립시의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스탠은 1968년 오마하의 주간신문사인 오마하 썬 뉴스페이퍼를 버크셔에 매각했고, 10년 후 제 요청으로 버펄로로 이주했습니다. 당시 버크셔 계열사가 소유한 버펄로 이브닝 뉴스는 유일한 일요판을 내던 조간신문 경쟁사와 사활을 건 신문 전쟁을 벌이고 있었는데, 우리는 그 싸움에서 지고 있었습니다.

스탠은 버펄로 이브닝 뉴스에서 새로운 일요일판을 만들어냈고, 그렇게 해서 한동안 적자를 내던 우리 신문은 3300만 달러의 투자금 대비 세전 기준 연간 100%가 넘는 수익을 올렸습니다. 1980년대 초의 버크셔에게 이는 매우 중요한 자금이었습니다.

스탠은 제 집에서 약 다섯 블록 떨어진 곳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이웃 중에는 월터 스콧 주니어가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겠지만, 월터는 1999년에 미드아메리칸 에너지(MidAmerican Energy)를 버크셔에 인수시킨 인물이자 2021년 별세할 때까지 버크셔의 소중한 이사이자 제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그는 수십 년간 네브래스카의 대표적 자선가로서, 오마하와 주(州) 전역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월터는 제가 다닐 예정이던 벤슨 고등학교 출신입니다. 그러나 1942년, 제 아버지가 네 번 연임한 현직 하원의원을 꺾고 뜻밖의 승리를 거두면서 계획은 바뀌었습니다. 인생은 놀라움의 연속이지요.


그리고 아직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1959년, 돈 키오와 그의 어린 가족은 제 집 바로 맞은편, 찰리 멍거 가족이 살던 곳에서 약 100야드 떨어진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돈은 커피 영업사원이었지만, 훗날 코카콜라의 사장이자 버크셔의 헌신적인 이사가 될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돈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연봉 1만2000달러를 벌며 다섯 자녀를 키우고 있었고, 아이들은 모두 등록금이 드는 가톨릭 학교에 다닐 예정이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곧 친밀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돈은 아이오와 북서부의 농장에서 자라 오마하의 크레이튼 대학교를 졸업했고, 일찍이 오마하 출신의 미키와 결혼했습니다. 코카콜라에 입사한 뒤 그는 세계적으로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1985년, 돈이 코카콜라 사장으로 있던 시절, 회사는 불운한 뉴 코크를 출시했습니다. 그 후 그는 대중에게 사과하며 ‘오리지널 코크’를 부활시킨 유명한 연설을 했습니다. 그때 돈은 “최고의 바보(Supreme Idiot)” 앞으로 온 항의 편지가 모두 자신의 책상으로 배달된다고 농담했습니다. 그의 ‘철회’ 연설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 명연설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코카콜라의 진정한 주인은 회사가 아니라 소비자임을 기꺼이 인정했고, 그 직후 매출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CharlieRose.com에서도 돈의 멋진 인터뷰를 볼 수 있습니다. (톰 머피와 케이 그레이엄의 인터뷰도 추천합니다.) 찰리 멍거처럼, 돈 역시 평생 ‘미드웨스턴 소년’으로 남았습니다. 열정적이고, 친근하며, 미국적인 인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도에서 태어나 자란 아짓 자인과, 캐나다 출신으로 이제 곧 CEO가 될 그렉 아벨 역시 20세기 후반 몇 년 동안 오마하에서 살았습니다. 실제로 1990년대에 그렉은 제가 사는 곳에서 몇 블록 떨어진 퍼넘가에 살았지만, 우리는 그때 서로 알지 못했습니다.

오마하의 물에 어떤 특별한 성분이 들어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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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청소년기의 몇 해를 워싱턴 D.C.에서 보냈습니다. 아버지가 하원의원으로 재직 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54년, 저는 맨해튼에서 평생 일할 생각으로 첫 직장을 얻었습니다. 그곳에서 벤 그레이엄과 제리 뉴먼의 훌륭한 대우를 받았고, 평생의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습니다. 뉴욕은 그때도, 지금도 독특한 장점을 지닌 도시입니다. 하지만 1년 반이 조금 지난 1956년, 저는 오마하로 돌아왔고 다시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 제 세 자녀와 여러 손주들이 모두 오마하에서 자랐습니다. 제 자녀들은 모두 공립학교를 다녔고, 그 학교는 제 아버지(1921년 졸업), 제 첫 아내 수지(1950년 졸업), 찰리 멍거, 스탠 립시, 네브래스카 퍼니처 마트를 키운 어빙과 론 블럼킨 형제, 그리고 1923년 졸업생으로 내셔널 인뎀니티(National Indemnity)를 설립해 1967년 버크셔에 매각한 잭 링월트가 다녔던 바로 그 학교였습니다. 이 회사가 훗날 버크셔의 거대한 손해보험 사업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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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위대한 기업, 훌륭한 학교, 수준 높은 의료기관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 나름의 장점과 재능 있는 사람들을 품고 있지요. 하지만 저는 평생 함께할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두 아내를 만날 수 있었으며, 공립학교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또 어린 시절 오마하의 어른들에게서 따뜻한 관심을 받았고, 네브래스카 주방위대에서도 다양한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한마디로, 네브래스카는 제 삶의 ‘고향’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버크셔도 저도 오마하에 기반을 두었기에 더 잘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중심부는 태어나고, 가정을 꾸리고, 사업을 일구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습니다. 저는 태어날 때 정말 터무니없이 긴 제비를 뽑은 셈이지요. 순전히 운 덕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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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 나이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제 유전자는 장수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안의 최고 장수 기록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92세였으니까요. (물론 세대를 거슬러 올라갈수록 기록은 불분명해집니다.) 하지만 저는 평생 현명하고 다정하며 헌신적인 오마하의 의사들을 만났습니다. 그 시작은 하를리 호츠 박사였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 생명이 적어도 세 번은 구해졌는데, 그 모든 의사들이 제 집에서 몇 마일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다만 이제는 간호사들의 지문을 채취하는 일은 그만두었습니다. 95세에는 괴짜 짓을 좀 해도 괜찮지만, 한계는 있는 법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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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사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행운이 필요합니다. 매일 바나나 껍질을 피하고, 자연재해나 술 취한 운전자, 부주의한 운전, 벼락 등 온갖 위험을 모면해야 하니까요. 

그러나 ‘행운의 여신’은 변덕스럽고, 솔직히 말해 매우 불공평합니다. 세상의 지도자나 부유한 사람들은 종종 자신이 받은 행운의 몫이 지나치게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경제적 독립’을 얻은 상속인들도 있지만, 어떤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지옥 같은 환경에서 자라거나,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인해 제가 당연히 누려온 것들을 빼앗긴 채 살아갑니다. 세계 곳곳에 있는, 인구가 밀집된 지역에 태어났다면, 제 인생은 아마 끔찍했을 것이고, 제 자매들은 저보다 더 끔찍한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저는 1930년에 건강하고, 지적 수준이 무난하며, 백인이자 남성으로,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행운입니까. 감사합니다, 행운의 여신이여. 제 자매들은 저와 똑같은 지능과 더 나은 성격을 지녔지만, 전혀 다른 인생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행운의 여신은 제 인생 내내 종종 찾아왔지만, 이제 90대에 들어서니 그녀도 다른 일로 바쁜 듯합니다. 행운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반대로, 이제 시간이라는 신은 제가 늙어갈수록 저를 더 흥미롭게 여기는 듯합니다. 그러나 그는 패배를 모르는 존재입니다. 그의 기록부에서 모든 사람은 결국 ‘(그의)승리’로 끝납니다. 균형 감각, 시력, 청력, 기억력이 모두 완만하게 하락세를 타기 시작하면, 세월의 아버지가 근처에 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늙는 데 꽤 늦은 편이었습니다. 노화의 시점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지요. 하지만 일단 그것이 찾아오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됩니다.

놀랍게도 저는 대체로 건강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비록 움직임은 느려지고, 책 읽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주 5일 사무실에 나가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일합니다. 가끔은 유용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고, 버크셔가 아니면 받지 못했을 제안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버크셔의 규모가 크고 시장 수준이 높은 탓에 그런 아이디어는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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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제게 찾아온 예상치 못한 장수(longevity)는 가족과 자선적 목표의 달성에 있어 피할 수 없는 중대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제 그 문제를 살펴보려 합니다.


앞으로의 일들


제 자녀들은 모두 일반적인 은퇴 연령을 훌쩍 넘겼습니다. 각각 72세, 70세, 67세입니다. 세 자녀 모두 여러 면에서 인생의 정점에 서 있지만, 저처럼 늦게까지 건강과 활력을 유지하는 ‘예외적인 행운’을 누릴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은 무모한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죽기 전까지 저의 전 재산을 좋은 곳에 다 쓰도록 돕기 위해, 그들이 운영하는 세 자선재단에게 좀 더 빠르게 증여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의 자녀들은 경험과 지혜 면에서 최고의 시기에 있지만, 아직 노년기에 들어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허니문’ 시기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 이런 방향 수정은 실행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요소가 있습니다. 저는 버크셔의 주주들이 그렉 아벨에 대해 찰리와 제가 오랜 세월 누려온 것과 같은 신뢰감을 가질 때까지, 상당한 양의 A주를 계속 보유하고 싶습니다. 그 수준의 신뢰가 자리 잡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제 자녀들은 이미 100퍼센트 그렉을 지지하고 있으며, 버크셔의 이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 자녀 모두 이제는 막대한 자산을 관리하고 분배할 만한 성숙함, 지성, 에너지, 직관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저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을 것이므로, 필요하다면 연방 세제나 자선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환경 변화에 미리 대비하거나 대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무덤 속에서 세상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좋은 결과를 낸 적이 거의 없으며, 저 역시 그런 욕망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다행히도 세 자녀는 어머니에게서 훨씬 더 많은 유전적 자질을 물려받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저 역시 그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좀 더 나은 본보기가 되었지만, 아내만큼은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의 사태, 즉 조기 사망이나 장애에 대비해, 자녀들에게는 세 명의 대체 수탁인이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서열이 매겨져 있거나 특정 자녀와 연결된 사람들은 아닙니다. 세 사람 모두 세상에 대한 통찰이 깊고, 인간적으로도 탁월하며, 이해관계의 충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자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적을 일으키려 애쓸 필요도, 실패나 실망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고요. 그런 일들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저 역시 그 몫을 충분히 겪었습니다. 그저 정부의 활동이나 민간 자선이 일반적으로 이루는 수준보다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면 됩니다. 물론 부의 재분배를 위한 그 두 가지 방법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 역시 거대한 자선 계획들을 여러 가지로 구상했습니다. 고집도 세었지요. 그러나 그런 계획들은 현실적으로 실행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저는 정치적 기회주의자들, 세습적 특권층, 그리고 무능하거나 별난 자선가들에 의해 잘못된 부의 이전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수도 없이 지켜봤습니다.

그래서 제 자녀들이 단지 ‘괜찮은 수준’의 일을 해내기만 해도, 그들의 어머니와 저는 기뻐할 것입니다. 그들의 본능은 건강하고, 소액의 자금을 관리하며 조금씩 늘려온 오랜 경험이 있습니다. 현재 그들의 재단은 연간 5억 달러 이상을 집행하고 있습니다.

세 자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남을 돕기 위해 기꺼이 오랜 시간을 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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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전 재산을 자녀들의 재단으로 더 빠르게 이전하기로 한 결정은 버크셔의 미래 전망에 대한 제 신념이 바뀌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렉 아벨은 제가 그를 차기 CEO로 떠올렸을 때 품었던 높은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켰습니다. 그는 지금의 저보다 버크셔의 여러 사업과 사람들을 훨씬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CEO들이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안들에 대해서도 빠르게 배웁니다. 제 돈과 여러분의 돈을 맡길 사람으로 그렉보다 더 적합한 인물은, CEO든 경영 컨설턴트든 학자든 정부 관계자든,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렉은 예를 들어, 버크셔의 손해보험(P/C) 사업의 잠재력과 위험성 모두를 다년간 업계에 몸담은 대부분의 경영진보다 훨씬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 바람은 그가 앞으로도 수십 년간 건강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약간의 행운이 따른다면, 버크셔는 앞으로 100년 동안 다섯, 여섯 명의 CEO만 거치면 충분할 것입니다. 특히 ‘65세 은퇴’를 목표로 삼거나, ‘나를 봐라’식 부자가 되려 하거나, 가문을 세우려는 인물은 피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는 불편한 진실도 있습니다. 때때로 훌륭하고 충성스러운 CEO가 치매나 알츠하이머, 혹은 장기적인 쇠약성 질환에 걸리기도 합니다. 찰리와 저는 이런 문제를 몇 차례 마주했지만, 제때 조치를 취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큰 실수가 될 수 있습니다. 이사회는 CEO의 상태를 예의주시해야 하며, CEO는 각 자회사에서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저는 대기업들에서 실제로 그런 사례가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사들에게 제가 드릴 수 있는 조언은 단 하나입니다.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필요할 때는 목소리를 내라.”

제 평생 동안 개혁가들은 CEO의 보수가 일반 직원의 평균 급여와 비교될 수 있도록 의무 공개를 요구하며 경영자들에게 도덕적 압박을 가하려 했습니다. 그 결과, 과거 20쪽 이내였던 위임장(Proxy) 보고서가 100쪽이 넘는 문서로 불어났습니다.

그러나 그 ‘좋은 의도’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냈습니다. 제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회사 A의 CEO는 경쟁사인 회사 B의 CEO를 보며 이사회에 은근히 자신이 더 높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암시했습니다. 물론 그와 동시에 이사들의 보수도 올리고, 보상위원회 구성원도 자신에게 우호적인 사람으로 채웠습니다. 새 규정은 절제심이 아니라 ‘질투심’을 불러왔습니다.

그 ‘보상 경쟁’은 점점 자체 동력을 얻어 폭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부유한 CEO들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보다 다른 CEO가 더 부자가 되어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들도 결국 인간이니까요. 질투와 탐욕은 늘 나란히 걷습니다. 그리고 어느 컨설턴트가 CEO의 보수나 이사회 보수를 진지하게 삭감하라고 조언한 적이 있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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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의 전체 사업을 보면, 평균보다 약간 더 나은 성장 전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서로 연관성이 낮으면서도 규모가 큰 몇몇 ‘보석 같은’ 사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면 버크셔보다 더 좋은 성과를 거둔 기업들이 많이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의 덩치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제가 아는 한 어떤 기업보다도 버크셔는 치명적인 재앙에 직면할 가능성이 낮습니다. 그리고 버크셔는 제가 접해온 수많은 회사 중 가장 주주 의식이 투철한 경영진과 이사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버크셔는 언제나 미국의 자산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운영될 것이며, 국가나 정부의 ‘시혜’를 구하는 위치에 놓이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버크셔의 경영진들도 부유해질 것입니다. 그들은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 누구도 재벌가문이 되거나 ‘나를 봐라’ 하는 식의 부를 좇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주가는 변덕스럽게 움직일 것입니다. 지금의 경영진 아래서 지난 60년 동안 세 차례나 주가가 50퍼센트 가까이 하락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마십시오. 미국은 다시 일어설 것이고, 버크셔의 주가도 다시 오를 것입니다.


마지막 생각 몇 개


아마도 다소 자기합리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인생의 후반부가 전반부보다 더 나았다고 말할 수 있어 기쁩니다. 제 조언은 이렇습니다. 과거의 실수로 자신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거기서 조금이라도 배우고 나아가면 됩니다. 개선하기에 너무 늦은 때란 없습니다. 올바른 ‘영웅’들을 선택하고 그들을 따라하십시오. 톰 머피부터 시작해보세요. 그는 최고의 본보기였습니다.

노벨상으로 유명한 알프레드 노벨은, 친형이 세상을 떠났을 때 신문이 착각으로 자신의 부고를 실은 것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지를 깨닫고 삶의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 ‘신문의 실수’를 기대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부고에 어떤 문장이 실리길 바라는지 스스로 정하고, 그 문장에 어울리는 삶을 사십시오.

위대함은 막대한 돈을 모으거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거나, 권력을 손에 넣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수천 가지 방식 중 어느 한 가지로라도 누군가를 도울 때, 그건 세상을 돕는 일입니다. 친절은 돈이 들지 않지만, 그 가치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당신이 종교인이든 아니든, 삶의 지침으로 황금률('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하라')보다 나은 것은 드뭅니다.

저는 무수히 경솔했던 사람이고,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훌륭한 친구들에게서 더 나은 삶의 태도를 배우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물론 아직 완벽과는 거리가 멉니다. 늘 기억하십시오. 청소부도 회장만큼이나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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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행복한 추수감사절을 기원합니다. 그렇습니다, 심지어 꼴통들에게도요. 변하기엔 결코 늦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이 여러분에게 가장 많은 기회를 준 나라라는 점을 잊지 말고 감사하십시오. 다만 그 보상을 분배하는 방식은 언제나,. 불가피하게도, 변덕스럽고 때로는 탐욕스럽다는 것도요.

영웅들을 정말 신중하게 고르시고, 그들을 본받으십시오. 언제까지도 완벽해질 수는 없지만, 언제든 더 나아질 수는 있습니다.



버크셔에 대하여
버크셔 해서웨이와 그 자회사들은 보험 및 재보험, 유틸리티와 에너지, 화물 철도 운송, 제조, 서비스와 소매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보통주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어 있으며, 종목 기호는 BRK.A와 BRK.B입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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