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권 주요 신문들이 보통 그렇듯, 파이낸셜타임스 역시 전체적으로 트럼프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여왔습니다. FT가 자랑하는 경제분석가 마틴 울프(Martin Wolf), 그리고 정치 칼럼니스트 기디온 라흐만(Gideon Rachman)은 강렬한 트럼프 안티입니다. 신문의 공식 입장이라 할 수 있는 사설도 트럼프가 아닌 민주당 편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 기자 모두가 트럼프를 다짜고짜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 미국 담당 에디터 질리언 테트(Gillian Tett)
- 칼럼니스트 제마이마 켈리(Jemima Kelly)
- 칼럼니스트 패티 월드미어(Patti Waldmeir)
이렇게 세 명은 비교적 중립적으로 트럼프에 대해 묘사해왔고, 특히 리버럴 미디어의 반 트럼프 편견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의 글도 여러 번 써왔습니다. 세 명 모두 여성입니다.
오늘 제마이마 켈리는 트럼프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을 담은, 재미있는 칼럼을 썼습니다. 아래 이 글을 소개합니다.
그 여자는 나를 잠시 옆으로 불러내더니, “사실 저는 그 남자를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2024. 11. 24.
Jemima Kelly - The Financial Times
지난 여름 한 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인 사람들 대다수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자리였다. 그런데 한 여성이 나를 옆으로 살짝 끌어당기며 따로 할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약간 걱정스러운 마음에 무슨 일 때문인지 물었다. “트럼프요.” 그녀가 말했다. 맙소사, 내가 썼던 신문 칼럼에 불쾌감을 느꼈나?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저는 그를 사랑해요.(The fact is, I love him.)”
아직도 내 귓가에선 이 여섯 단어가 맴돌고 있다. 본인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확고하게 '왼쪽'이라고 말하는 이 여성은 자기가 왜 도널드 트럼프를 좋아하는지를 계속 얘기해줬다. “펑크”(그녀의 표현) 아웃사이더라는 점, 유쾌한 성격, 속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반전, 반기득권 입장 등등...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내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좌파와 우파에 속한 여러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 중엔 이런 내용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이 대화들 모두의 공통점은 트럼프에 대한 논의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이미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린 신조어를 사용하자면, 2020년 이후 "바이브의 변화(vibe shift)'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개인적 경험만으로 정치 환경을 판단하는 것은 지적으로 게으르고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개인적 경험을 통해 아무리 많은 여론조사 데이터나 정치 분석 보고서가 제공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보여주는 일화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2016년 3월이었다. 2주간의 미국 방문 첫날 아침, 나는 브루클린의 한 도넛 가게에 앉아 뉴욕 억양이 짙은 세 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선거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 물었다. 그들 중 누구도 트럼프에 대해 좋은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 모두 힐러리 클린턴이 너무 경멸스럽기 때문에 트럼프에게 투표하거나 아예 투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2024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에 대해서도 비슷한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 빨리 물러나지 않은 조 바이든의 잘못이라는 분석
- 바이든의 노쇠함을 덮어주었던 언론의 잘못이라는 분석
- 평범한 사람들과 소통하지 않은 민주당의 잘못이라는 분석
- 러닝메이트로 조쉬 샤피로가 아닌 팀 월즈를 선택한 카말라 해리스의 잘못이라는 분석
- 현직자를 낙선시키는 세계적인 추세의 일부라는 분석
- 에그플레이션(식료품 인플레이션) 때문이라는 분석
등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훌륭하고 타당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실제로 나도 이런 주장을 많이 해왔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더라도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불쾌하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2024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가 승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2016년 선거의 경우, 두 후보는 역대급으로 비호감이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비호감도는 61%로 역사상 최악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의 비호감도는 52%로 역대 2번째였다. 2020년 선거에서는 트럼프 비호감도 57%, 바이든 비호감도가 50%였다. 이번 2024년 선거에서는 트럼프의 비호감도가 48%, 해리스의 비호감도가 50%였다. 트럼프를 호의적으로 본다는 응답은 2016년 36%에서 이번에는 50%로 상승했다.
대선을 2주 앞두고 실시된 YouGov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유권자의 76%는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그저 “만족” 정도가 아니라 “열광”을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그에 비해 민주당 유권자는 66%만이 해리스 당선에 대해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라 말했다. 이는 2016년에는 공화당 유권자의 45%, 2020년에는 67%만이 트럼프에 대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것과 비교된다.(당시 바이든 당선에 대한 열광적 응답은 61%에 불과했다)
2016년과 2020년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각각 힐러리 클린턴과 트럼프를 막으려는 동기가 있었다. 민주당은 이번 2024년 선거에도 그런 네거티브 전략을 통해 승리하려고 했고, 캠페인의 대부분을 트럼프 비방에 집중했지만 이는 결국 비효율적인 전략으로 끝나버렸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코를 막고 투표소에 들어가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투표소에 들어갔다. 이번 선거는 트럼프에 대한 긍정적인 지지를 확인시켜줬다. 그저 '둘 중에 덜 나쁜 후보를 골랐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지난 주 만난 한 민주당원은 고민에 빠져 이렇게 내게 말했다.
“지난 2016년 트럼프가 승리했을 때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와우, 사람들이 실제로 이걸 원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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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주요 신문들이 보통 그렇듯, 파이낸셜타임스 역시 전체적으로 트럼프에 비판적인 논조를 보여왔습니다. FT가 자랑하는 경제분석가 마틴 울프(Martin Wolf), 그리고 정치 칼럼니스트 기디온 라흐만(Gideon Rachman)은 강렬한 트럼프 안티입니다. 신문의 공식 입장이라 할 수 있는 사설도 트럼프가 아닌 민주당 편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스 기자 모두가 트럼프를 다짜고짜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세 명은 비교적 중립적으로 트럼프에 대해 묘사해왔고, 특히 리버럴 미디어의 반 트럼프 편견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의 글도 여러 번 써왔습니다. 세 명 모두 여성입니다.
오늘 제마이마 켈리는 트럼프에 대해 비교적 중립적인 입장을 담은, 재미있는 칼럼을 썼습니다. 아래 이 글을 소개합니다.
그 여자는 나를 잠시 옆으로 불러내더니, “사실 저는 그 남자를 사랑해요”라고 말했다.
2024. 11. 24.
Jemima Kelly - The Financial Times
지난 여름 한 행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인 사람들 대다수가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진보적인 성향이 강한 자리였다. 그런데 한 여성이 나를 옆으로 살짝 끌어당기며 따로 할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약간 걱정스러운 마음에 무슨 일 때문인지 물었다. “트럼프요.” 그녀가 말했다. 맙소사, 내가 썼던 신문 칼럼에 불쾌감을 느꼈나?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저는 그를 사랑해요.(The fact is, I love him.)”
아직도 내 귓가에선 이 여섯 단어가 맴돌고 있다. 본인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확고하게 '왼쪽'이라고 말하는 이 여성은 자기가 왜 도널드 트럼프를 좋아하는지를 계속 얘기해줬다. “펑크”(그녀의 표현) 아웃사이더라는 점, 유쾌한 성격, 속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반전, 반기득권 입장 등등...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면서 내가 미국과 유럽, 그리고 좌파와 우파에 속한 여러 사람들과 나눈 대화들 중엔 이런 내용이 적지 않았다. 그리고 이 대화들 모두의 공통점은 트럼프에 대한 논의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었다. 이미 진부한 표현이 되어버린 신조어를 사용하자면, 2020년 이후 "바이브의 변화(vibe shift)'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개인적 경험만으로 정치 환경을 판단하는 것은 지적으로 게으르고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런 개인적 경험을 통해 아무리 많은 여론조사 데이터나 정치 분석 보고서가 제공하지 못하는 일반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트럼프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보여주는 일화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2016년 3월이었다. 2주간의 미국 방문 첫날 아침, 나는 브루클린의 한 도넛 가게에 앉아 뉴욕 억양이 짙은 세 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선거에 대해 이야기했고 나는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 물었다. 그들 중 누구도 트럼프에 대해 좋은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들 모두 힐러리 클린턴이 너무 경멸스럽기 때문에 트럼프에게 투표하거나 아예 투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민주당이 2024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에 대해서도 비슷한 분석들이 쏟아지고 있다.
등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훌륭하고 타당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실제로 나도 이런 주장을 많이 해왔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더라도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불쾌하고 불편할 수도 있지만, 2024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가 승리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2016년 선거의 경우, 두 후보는 역대급으로 비호감이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비호감도는 61%로 역사상 최악이었다. 힐러리 클린턴의 비호감도는 52%로 역대 2번째였다. 2020년 선거에서는 트럼프 비호감도 57%, 바이든 비호감도가 50%였다. 이번 2024년 선거에서는 트럼프의 비호감도가 48%, 해리스의 비호감도가 50%였다. 트럼프를 호의적으로 본다는 응답은 2016년 36%에서 이번에는 50%로 상승했다.
대선을 2주 앞두고 실시된 YouGov 설문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유권자의 76%는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그저 “만족” 정도가 아니라 “열광”을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그에 비해 민주당 유권자는 66%만이 해리스 당선에 대해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라 말했다. 이는 2016년에는 공화당 유권자의 45%, 2020년에는 67%만이 트럼프에 대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인 것과 비교된다.(당시 바이든 당선에 대한 열광적 응답은 61%에 불과했다)
2016년과 2020년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각각 힐러리 클린턴과 트럼프를 막으려는 동기가 있었다. 민주당은 이번 2024년 선거에도 그런 네거티브 전략을 통해 승리하려고 했고, 캠페인의 대부분을 트럼프 비방에 집중했지만 이는 결국 비효율적인 전략으로 끝나버렸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코를 막고 투표소에 들어가지 않았다. 눈을 크게 뜨고 투표소에 들어갔다. 이번 선거는 트럼프에 대한 긍정적인 지지를 확인시켜줬다. 그저 '둘 중에 덜 나쁜 후보를 골랐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지난 주 만난 한 민주당원은 고민에 빠져 이렇게 내게 말했다.
“지난 2016년 트럼프가 승리했을 때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와우, 사람들이 실제로 이걸 원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F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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