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란드 사람들은 왜 덴마크를 싫어할까

2025-01-20


과거 덴마크의 식민지 정책과 미군기지의 건설로 인해 많은 그린란드인들이 강제 이주당했었다.





2025년 1월 19일

Polina Ivanova - The Financial Times


버려진 철로가 깊은 눈을 가로지르고, 차가운 바람이 빈 창틀을 흔든다. 그린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피오르드 가장자리에 위치한 버려진 마을, 쿠르노크Qoornoq에 있는 버려진 수산물 가공공장의 모습이다.

쿠르노크는 번성했던 전통 어촌 마을이었다. 1950-70년대에 덴마크의 식민 통치자들이 현대화 정책이라며 이 마을 주민들을 도시의 아파트 단지로 강제 이주시켰다. 이런 일들이 전통적인 이누이트 정착지 수십 곳에서 벌어졌다.

이런 유령마을들은 그린란드 사람들에게 식민지배의 쓰라린 경험과 독립이라는 목표를 상기시키는 상징이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고통스러운 과거이며, 아마도 우리에게 덴마크에 대한 강한 반감이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라고 전직 그린란드 자치정부의 장관 비투스 쿠자우키초크가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그린란드 최북단 마을 우만나크Uummannarq에서 강제 이주당힌 사람이다.

1953년, 쿠자우키초크의 아버지와 가족이 고향 마을 우만나크로부터 강제 이주된 것은 당시 그 지역에 대규모 미군 공군기지가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집을 잃은 것에 대해 덴마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데 수 년을 썼다.

그린란드인들은 "정부의 오만함과 그들이 이곳 사람들을 다룬 방식 때문에" 여전히 덴마크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고 쿠자우키초크는 말했다. 이제 그린란드는 식민지 과거를 떨쳐내고 독자적인 길을 가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정서는 차기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북극 영토에 대한 관심과 이번 달 그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의 그린란드 방문으로 인해 다시 부각됐다. 트럼프 주니어가 그린란드인들이 겪는 "인종차별"에 대해 언급했을 때, 쿠자우키초크는 그 말이 자신의 공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단, 그린란드인들이 압도적으로 독립을 지지하긴 하지만, 독립이 가져올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단순히 덴마크를 미국으로 대체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린란드는 예산의 상당 부분을 덴마크 정보의 보조금 형태로 받고 있으며 자체 방위력이 없다.)

"그게 항상 이중적인 질문이죠. 우리가 덴마크의 소유가 아니라면, 누구의 소유가 되는 거죠?" 날레라크Naleraq 당의 수장인 펠레 브로베리가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볼 문제가 아닙니다."

그린란드의 소수 야당인 날레라크 당은 독립에 대해 가장 강경한 입장을 취한다. 주요 정당들과 달리 이들은 그린란드가 독립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믿으며 선거에서 이길 경우 즉시 분리 협상을 시작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날레라크당의 그린란드 독립 계획에 따르면 덴마크 정부가 주는 보조금 손실을 감당하기 위해 그린란드 정부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해야할 수도 있다. 또 미국이 큰 역할을 맡아줘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제가 이번 선거에서 다른 정당들에게 바라는 것이 있어요. 이들이 미국에 가서 '보세요, 우리가 독립하는 순간 (미국과의) 방위 협정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브로베리의 말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그린란드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관심은 이곳 사람들의 마음에 흔적을 남겨왔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그린란드 매입 의사를 언급한 건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1950년대, 수만 명의 미군이 그린란드 북서부에 도착했다. 피투피크 우주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이 기지는 일 년 중 8개월을 얼음에 갇혀 있어야 하는 곳이지만, 미군의 최북단 군사시설로서 미사일 경보 시스템과 우주 감시에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미국의 안보에 있어 그린란드가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지이다. (예전 이름은 툴레Thule 공군기지였으나 2023년 원주민 지명인 피투피크Pituffik로 변경했다)

당시 피투피크 우주기지의 건설은 300명 정도가 살던 외딴 마을 우만나크에 충격을 주었다. 주민들은 150km 북쪽의 더욱 가혹한 환경으로 강제 이주되었고 마을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다. 쿠자우키초크는 이런 선조들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는 나중에 그린란드 정부에서 일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동안 그린란드 전역에 설치된 약 30곳의 미군 시설의 환경적 피해 복구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그린란드의 정치인들은 그 비용을 덴마크가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쿠자우키초크의 가족들도 미국이 아닌 덴마크가 강제 이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고 여긴다.

브로베리 역시 "그건 덴마크가 한 일이었죠"라고 말한다. “우리 당의 설립자도 어린 시절 이주 프로그램으로 인해 가족들이 분리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이는 덴마크가 돈을 절약하기 위해 한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제 그린란드인들이 미군 주둔지의 확대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한다.

"만일 미국이 그린란드 동해안에 30개의 새로운 기지를 짓고 싶다면, 그렇게 하시라고 해야죠 (Be my guest)."

그린란드 자치정부의 재무장관과 외무장관을 역임한 쿠자우키초크 역시 이렇게 말한다. "미국이 지난 83년 동안 우리를 보호해왔고 현재도 그렇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니 반미 감정을 가질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법무·젠더 장관이자 광물자원 장관인 나자 나타니엘센에 따르면, 덴마크의 지배에 대한 불만 때문에 그린란드인들은 강한 독립 욕구를 갖고 있다. 그 역시 트럼프 주니어가 그린란드를 방문해 인종차별을 언급했을 때 그 게 상당부분 진실이라 느꼈다.

"이는 먼 과거의 역사가 아닙니다. 당연히 많은 사람이 분노를 갖고 있습니다."



덴마크 식민 지배의 상처


그린란드 인구는 5만7000명이다. 대부분 작고 외딴 공동체에 살고 있는 그린란드인들은 모두 덴마크의 식민지 정책의 영향을 직접 경험했거나 그런 경험을 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나타니엘센의 아버지 역시 어린 시절 덴마크 본토에 있는 기숙학교로 보내졌었다.

18세기부터 덴마크는 그린란드를 식민지로 통치했다. 그러다가 1979년과 2009년에 점진적으로 자치권을 부여했다. 덴마크 정부는 과거에 있었던 몇몇 사건들에 대해서는 사과를 했다. 예를 들어 덴마크 정부는 1950년대에 24명의 그린란드 이누이트 아이들을 덴마크로 데려와 가족들과 단절시킴으로써 그들의 정체성을 바꾸려는 "사회 실험"을 한 바 있었다.

또 다른 그린란드 주민은 친척이 임신을 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알게 됐을 때 가족들이 받은 충격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녀가 젊었을 때 본인의 이해나 동의 없이 피임 장치를 삽입당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약 150명의 그린란드 여성들이 이런 일을 당했던 것에 대해 덴마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1960년대 덴마크의 의사들이 그린란드의 인구를 제한하기 위해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약 4500명의 여성들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적 잘못의 많은 부분이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다고 나타니엘센은 말했다. 덴마크 사람들이 스스로를 식민 지배자로 보고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역사는 그들이 갖고 있는 일종의 셀프 이미지를 망쳐놓는 거죠"라고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린란드 사람들에게 슬퍼할 수 있고, 분노할 수 있고, 이 모든 분노를 일으킨 자들이 잘못을 인정하게 만드는 계기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상처를 극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의 가장자리에는 우울한 콘크리트 아파트 단지들이 있다. 그 일부는 래브라도 해를 내려다보는 민둥산 바위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덴마크 정부는 일자리와 공장이 있는 지역에 인구를 집중시키고 편의시설을 제공한다는 현대화 운동의 일환으로 많은 이누이트족 어부 가족들을 이런 도시형 주거단지로 이주시켰다.

최근 그린란드가 더 많은 자치권을 얻은 후, 쿠르노크 마을의 예전 주민들과 그들의 후손 일부가 여름 별장을 설치하기 위해 쿠르노크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일 년 중 따뜻한 몇 달 동안에는 이 버려진 마을에도 약간의 생기가 돈다.

하지만 쿠자우키초크의 가족과 같은 많은 이들은 결국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다. 쿠자우키초크는 말했다.

"그분들의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땅과 사냥터에 대한 접근을 거부당한 것이요."



사진: Pixabay,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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