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MP - 트럼프코인 폭등과 튤립 버블의 교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취임을 이틀 앞둔 지난 금요일 밤 (한국시간 토요일 오전), 본인의 트위터 계정과 트루스소셜 계정에서 가상화폐 런칭을 발표했습니다.

게시물에 걸린 링크 www.gettrumpmemes.com 을 따라가보면 여러 정보가 있습니다. 우선 이 코인은 작년 7월 13일 트럼프가 선거유세 도중 총알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살아남은 것을 기념하는 밈(meme) 코인이라 합니다. 이 코인을 삼으로써 역사의 한 조각을 가질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종의 기념품이라는 것입니다. 트럼프의 절친이 된 일론 머스크도 "Who wants some $TRUMP coin?"이라며 덩달아 홍보를 해줬습니다.

그런데 시장은 이 코인을 단순한 밈이나 기념품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적극적 자산 증식의 기회이자 한탕의 기회로 보았습니다. 출시 직후부터 가격이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초기 구매자들은 200배 이상의 수익을 거뒀습니다. 단 하루만에요.

한국시간 토요일 오전 11시44분에 트럼프가 코인 런칭을 발표했을 때 거래가격은 1트럼프코인 당 $0.2 미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시간 일요일 오후 4시 현재, 트럼프코인은 $41.6달러에 거래되고 있습니다. 약 230배 상승한 것입니다. 

한 투자자는 런칭 직후 $0.18 가격으로 무려 100만 달러 어치(=597만 트럼프코인)를 구매했습니다. 이것이 현재 2억3000만 달러(3500억 원)로 불었을 것입니다.

코인 런칭 시간이 미국시간으로 금요일 밤(동부 기준 밤 10시)이었다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보통 일찍 잡니다. 금요일엔 파티를 하기도 하죠. 금요일 밤에 잠도 안 자고, 파티를 하지도 않으며 트위터나 하고 있던 집순이 집돌이들에게 혜택을 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 중에서도 재빠르게 트럼프코인을 구매해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된 사람이 있을까요? 쉬워보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구매 방식 때문입니다. 

트럼프코인은 (1) 신용카드 (2) 페이팔 (3) 솔라나 코인 등 크게 3가지 방법으로 구매하도록 되어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신용카드와 페이팔 구매가 막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솔라나(Solana) 코인으로만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구매방법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일단 트럼프코인 웹사이트에 들어가 '문샷(Moonshot)'이라는 프로그램을 깔고 계좌를 만듭니다. (현재는 한국에서 가입할 수 없게 막혔지만 VPN으로 우회할 순 있겠죠) 그런 다음 업비트, 코인원 등 한국의 가상화폐거래소에서 솔라나를 구매해 그것을 문샷의 자기 계정으로 송금합니다. 그런 다음 그 솔라나를 가지고 트럼프코인을 사면 됩니다.

문제는, 업비트, 코인원 등 한국의 가상화폐거래소에서 해외 계좌로 솔라나를 송금할 때 한 번에 100만원까지만 가능한 것으로 액수 제한이 걸려있다는 것입니다. 또 송금하는데도 5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합니다. 또 100만원 이하라고 하더라도 반복적으로 송금할 경우 '이상거래'로 간주되어 계정이 정지될 수 있습니다.

결국 한국 투자자들은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100만원 이하 소액으로만 트럼프코인을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해외 거래소에 계정이 있었다면 모를까요. 물론 99만원 어치만 샀다 하더라도 213배가 올랐으니 2억원 이상이 되었겠지만 말이죠.

이번 사건은 여러 시사점을 줍니다.

1. 거품 아닌가?

당연히 거품입니다. 

2. 미국 대통령이 이런 짓을 해도 되나?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명성을 이용해 가상화폐 장사를 하는 데에는 도덕적 문제가 분명 있습니다. 법적 문제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트럼프코인은 첫날 2억 개가 발행됐고 향후 3년에 걸쳐 10억 개까지 늘어나도록 설계됐습니다. 그런데 이 중 8억 개는 "Creators & CIC Digital"로 소유자가 지정되어 있습니다. Creators는 발행하는 사람들을 의미하고, CIC Digital은 트럼프의 가족회사 Trump Organization의 자회사입니다. 그러니까 이 코인의 80%는 트럼프 일가와 그 부하들의 것입니다.

게다가 첫날 발행한 20% 중에서도 상당 지분은 트럼프 주변인들이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발행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 거래가 시작되자마자 상당수를 사들였을 것입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에 그렇게 했겠죠.

현재 트럼프코인의 가치는 40달러 X 2억개 = 80억 달러 이상입니다. 한국 돈으로 12조 원입니다. 트럼프 주변인들이 하루만에 얼마나 많은 이익을 봤을까요. 아마 트럼프가 평생 사업으로 번 돈보다 훨씬 더 많이 벌었을 겁니다.

트럼프는 이 가상화폐가 '밈(상징)'이고, 자신의 암살기도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발행이라고 말했습니다. 일종의 기념품이지, 투자하라고 만든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기념 우표 수집하듯이 이 밈 코인을 사라고 한 것입니다. 

홈페이지 맨 아래에는 정말 깨알 같은 글씨로 이렇게 주의사항이 적혀있습니다. 돋보기로 봐야할 정도입니다.

이렇게 적어놓았다고 해서 가격 버블에 대해 트럼프의 책임이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의 주변인물들이 이로 인해 큰 돈을 벌 것이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이런 결과를 예측하고 한 일이라면 범죄이고, 예측하지 못하고 한 일이라면 무능입니다.

3. 왜 솔라나로 구매하게 했나?

트럼프코인은 신용카드, 페이팔, 솔라나로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가상화폐 중에 왜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아닌 솔라나로 구매하게 했을까요? 솔라나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에 비해 덜 유명한 가상화폐입니다.

이유는 한 트위터 유저가 설명했습니다. 솔라나는 미국 기반의 코인이고, 일반 대중이 신용카드로 접근하기 수월하다 합니다. 특히 솔라나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가상화폐라서 구조적으로 수많은 거래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은 거래 속도가 상당히 느려서 수십, 수백만 사용자들이 한 번에 몰리면 거래가 지연되는데 솔라나는 그런 걱정이 적다는 것이죠.

이 사건으로 인해 솔라나의 기능적 우수성과 상징성이 주목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솔라나 가격도 10%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승자는 솔라나 투자자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가상화폐 시장 전체적으로 보면 이런 트럼프의 행동이 장기적으로 업계 전체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트럼프 1기 정부에서 홍보담당 디렉터로 일했던 (현재는 비판적이 된) 안토니 스카라무치는 이번 트럼프코인 발행이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 급의 부패'라 지칭했습니다. 

튤립 버블과 어떻게 다른가

투자 거품의 사례로 흔히 거론되는 것이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버블 입니다. 1636년 말 네덜란드에서 튤립 구근의 값이 수천 배 올라 나중에는 튤립 한 뿌리가 집 한 채 가격보다 비싸졌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음 해 초 가격이 급락해 한두 달 만에 원상태로 돌아왔습니다. 비싸게 샀던 사람은 큰 손해를 봤습니다. 이 사건은 금융 버블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사례입니다.

그런데 여기엔 잘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가 있습니다. 당시 튤립 구근 거래는 현대의 주식거래처럼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튤립이라는 상품을 유통하는 특정 상인들이 참여하는 시장이었습니다. 인터넷도, 전화도, 버스도 지하철도 없던 시절입니다. 시장에 나가서 얼굴을 마주보며 거래해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노량진 수산시장의 새벽 도매시장 풍경 비슷했다고 보면 됩니다. 참여자는 수십, 수백 명에 불과했습니다. 거래는 대부분 선물 혹은 옵션 거래의 형태로 이뤄졌습니다. 실물 튤립 구근과 현금을 주고받으며 거래한 것도 아닙니다. 상인들간에 메모를 주고받으며 거래를 기록하고 나중에 한꺼번에 정산하는 형태였습니다.

튤립은 이렇게 시장 참여자의 수가 제한적이고, 서로가 서로를 잘 아는 사람들이며, 앞으로도 계속 서로 거래를 하며 먹고살아야 하는 시장이었습니다. 그래서 가격 폭락 사태가 벌어지자 이들은 냉정하게 계약을 다 이행하는 게 아니라 네덜란드 법원에 달려가 중재를 부탁했습니다. 법원에서는 매수자와 매도자간에 계약 금액의 일정액을 페널티로 물리고 계약을 무효화하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가격의 정점에서 구근을 구매하는 선물 계약을 맺었다가 1억 원의 손해를 보게 생겼다고 한다면, 그 10%인 1천만 원만 주고 계약을 무효화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상인 대부분은 이런 법원의 결정에 수긍했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요. 시장이 붕괴하면 상인들 모두에게 손해입니다. 적당히 넘어가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었습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시장은 이렇게 법원의 중재를 통해 금방 정상을 되찾았습니다.

그런데 이번 트럼프코인의 경우, 이런 식의 해결은 어렵습니다. 우선 누가 얼마나 이 코인을 구매했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전 세계에 트럼프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전파가 됐으니까요. 수백만 명이 참여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제 이 코인의 가격이 폭락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과연 미국 법원의 구제를 받을 수 있을까요? 어렵습니다. 이익을 본 사람들을 찾아내어 합의를 요구한다는 게 불가능하니까요.

결론

이번 트럼프코인 발행은 트럼프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주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일 트럼프 주니어가 개인적으로 큰 이익을 챙겼다면, 그리고 이 거품이 붕괴해서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다면, 그에게 책임이 돌아갈 것 같습니다. 그가 이 뒷수습을 어떻게 할지 걱정이 됩니다. 깨알 같은 글씨로 주의사항을 적어놨다고 해서 책임을 다 면할 수는 없습니다.

가상화폐는 아직 법과 규제가 완성되지 않은 무법지대입니다. 이 사건은 트럼프 임기 중 가장 큰 이슈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 투자자의 수가 많지 않을 때 끝낼 수 있으면 불행 중 다행이며, 여기서 거품이 더 커진다면 정말 큰 문제가 될 것 같습니다. 트럼프는 가상화폐 업계에게 구세주가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참고서적: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 (로데베이크 페트람 저, 조진서 역, 이콘, 2016)

p.s. 이틀간 트럼프 코인의 그래프를 옆으로 뉘어놓으면 트럼프 얼굴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