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왜 그린란드, 파나마, 캐나다를 갖겠다고 하는 걸까? (채널A 대담)

2025-01-07


미국이 정말 그린란드나 파나마 운하를 살 수 있을까요?  오호츠크 편집자가 채널A TV의 '이야기 더'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나눴습니다. 


1월 7일자 방송입니다.



생방송이고 세 명의 패널이 돌아가면서 빠르게 말을 하느라 시간관계상 미처 다 하지 못한 얘기들이 있습니다. 간략하게 적어봅니다. 영상을 보고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미국이 캐나다를 통합할 수 있나? 

캐나다는 영연방 국가입니다. 미국과 친하지만 미국과 전쟁을 한 적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이 영국을 싫어했으니까요.

1812년의 일입니다. 미국은 캐나다군(=영국군)을 쫓아내고 북미 대륙을 통일하겠다면서 북으로 진격했습니다. 그러나 영국군의 반격에 당해 오히려 워싱턴 DC까지 점령당하고 백악관이 불타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결국 미 영 양국은 없었던 일로 하고 전쟁 전의 국경선으로 원상복귀했습니다. 이런 과거도 있어서 캐나다가 미국과 통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더욱 어려워 보입니다. 미국, 영국, 캐나다가 지금은 모두 끈끈한 동맹국이기는 하지만 '굳이...' 한 나라로 합쳐야 하는 필요성은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트루도 총리 사퇴 이후 선거를 통해 캐나다에 보수 정부가 들어서고 미국과의 관계가 강화되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까 합니다.


- 미국이 그린란드를 살 수 있나?

그린란드는 에스키모들이 사는 땅입니다. 지리적으로는 유럽보다 미대륙에 가깝습니다. 그린란드 주민들은 아메리칸 원주민(인디언)들과 친척 뻘이 됩니다. 이곳을 19세기 초 덴마크가 식민지화 했습니다. 20세기 중반 유럽 제국의 식민지들이 하나둘씩 독립을 쟁취했지만 그린란드는 독립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1953년 덴마크가 본국 영토로 병합해버립니다. 이후 자치권을 부여해서 지금은 상당부분 자치가 이뤄지고 있긴 합니다.

그린란드 영토는 한국의 20배 이상 됩니다. 당연히 많은 자원이 묻혀있으나 거의 얼음에 덮여있어 현재로서 경제적 가치는 크지 않습니다. 당장 채굴이 어렵습니다. 트럼프를 비롯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돈 욕심에 그린란드를 원했던 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덴마크 역시 돈 때문에 그린란드를 미국에 팔 의향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린란드는 미국+유럽 즉 나토를 북쪽의 위협으로부터 방어하는데 아주 중요한 땅입니다. 중국에서 미국 동부로 미사일을 쏘면 바로 그린란드 위를 지나갑니다. 북극해로 중국과 러시아 군함, 잠수함도 많이 다닙니다. 미국과 나토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입니다.

그런데 현재 그린란드를 지배하고 있는 덴마크는 작은 나라입니다. 덴마크 인구도 600만 밖에 안 됩니다. 거리도 멉니다. 덴마크에서 이 넓은 그린란드를 제대로 방어하기는 어렵습니다. 나토 vs. 중러의 갈등이 심해지고 군사적 충돌이 가시화된다면 그린란드를 덴마크보다 훨씬 강한 미국이 관리하는 편이 낫겠다고 나토 수뇌부가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지리적으로도 그린란드의 수도인 누크(Nuuk) 시는 코펜하겐까지 3500km, 워싱턴DC까지 3250km 떨어져있어서 오히려 덴마크보다 미국이 그린란드에 더 가깝습니다. 트럼프는 이런 논리로 나토 동맹국들을 설득할 것입니다.

방법은 있습니다. 그린란드 주민들이 먼저 덴마크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미국에 보호를 요청하면 미국의 속령이 될 수 있습니다. 비슷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린란드는 예전에 미국의 보호를 받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이 덴마크 본국을 점령했을 때, 그린란드는 재빨리 독립을 선언하며 덴마크와의 관계를 끊고 미국에 보호를 요청했었습니다. 미국은 함대를 보내 그린란드를 보호하고 항구와 활주로와 군기지를 건설했습니다. 그렇게 5년 간 그린란드는 미국의 관리를 받았고 주민들(대부분 에스키모)과 미국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고 합니다. 당시 그린란드 인구가 약 2만 인데 미군 1만 명 이상이 주둔했었다고 하네요.

1945년 덴마크가 나치 독일로부터 해방되자 미국이 그린란드의 지배권을 덴마크에게 돌려주긴 했으나, 이후에도 그린란드에 공군기지와 우주기지를 건설하는 등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채널A 영상에도 나오지만 트럼프 이전에도 미국 정부는 그린란드 인수를 여러 방향으로 추진해왔었습니다.

미국은 현재 여러 보호령과 속령을 두고 있습니다. 팔라우, 미크로네시아 등 남태평양 섬나라 여러 곳이 독립국이면서 미 연방의 보호령인 상태에 있습니다. 카리브해에 있는 푸에르토리코의 경우는 아예 미국령이지만 대통령 선거권은 없이 자치를 하고 있습니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미국 시민권이 있고 다른 주로 이사를 가면 당연히 대통령과 의회 선거에서 투표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그린란드 주민들이 덴마크를 버리고 미국을 택해야 할 이유는 별로 없습니다. 덴마크인들에 대한 인식이 나쁜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애초에 덴마크가 그린란드를 계속 지배해야할 당위성도 없는 게 사실입니다. 덴마크인들이 21세기에도 그린란드를 계속 지배해야 한다는 권리같은 건 없습니다. 인종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지리적으로도 멀리 떨어져있는 나라입니다.

그린란드의 독립은 당위성도 있고, 미국이 도와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북극해를 두고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이 더 강해진다면 미국이 그린란드를 보호령으로 택할 수 있습니다. 나토 차원에서 '그린란드는 미국이 관리하는 게 좋겠다'라고 판단한다면, 그리고 트럼프가 그린란드 주민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한다면 덴마크 정부도 수긍해야 할 것입니다. 


그린란드 총리가 1월 7일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린란드어, 덴마크어, 영어 등 3개 국어로 올린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린란드는 그린란드인의 것이다. 독립은 우리가 알아서 할 일이다. 덴마크든 미국이든 하고픈 말을 할 자유는 있지만 우리는 그에 압박 받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앞으로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살 수 있나?

인구 5만의 그린란드와 달리, 파나마는 인구가 500만이나 되는 큰 나라입니다. 국가적 정체성도 강한데다가 운하에서 들어오는 재정 수입이 많아서 이걸 미국에게 그냥 넘길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대 폭동이 나겠죠. 또 파나마는 언어도 스페인어를 쓰고 문화적으로도 라틴 문화권입니다.

그러나 파나마 역시 안보라는 관점에서 미국이 그냥 내버려둘 수만은 없는 중요한 지점입니다. 지금 중국이 파나마 운하 항만 시설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데, 만일 나토 vs. 중러의 갈등이 강해진다면 미국이 운하를 중국 업체들의 손에 그냥 놓아둘 수가 없습니다. 파나마 운하가 막히면 미국은 동부와 서부의 물류가 끊기게 됩니다. 군함들의 이동도 막히게 됩니다. 

만일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나고 미국이 참전한다면 중국은 파나마 운하 등 미국의 약점을 노릴 것입니다. 그러면 중국이 운하를 셧다운하기 전에 먼저 미국이 군대를 보내 운하를 확보하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 미국은 파나마에게 중국 세력을 쫓아내라고 계속 경고할 것입니다.


결론

캐나다와 그린란드와 파나마 운하 모두 현재로서는 미국 연방(USA)에 들어갈 가능성이 극히 낮습니다. 그러나, 만일 세계 제 3차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나토 vs. 중러의 갈등이 심각해진다면 나토는 이 세 지역에서 미국이 세력을 확장하도록 용인할 것입니다. 세 지역 중에서도 특히 그린란드는 주민들이 덴마크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열의가 있습니다. 미국이 그린란드의 독립을 도와준다는 조건으로 미국의 안보 우산 안에 들어오라 하면 귀가 솔깃할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트럼프가 지금 자신의 임기 4년 안에 이 세 지역을 미국에 통합시키겠다는 생각은 물론 안 하겠지만 일단 밑밥이라도 깔아놓자고 말을 던진 것 같습니다. 농담처럼 던진 트럼프의 발언들을 통해서 나토 동맹 국가들이 이 세 지역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국제관계에 영원히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국경선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 조진서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