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T의 정치전문 기자가 2025년부터 예상할 수 있는 국제관계 5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시나리오 1. 3대 강대국간의 새로운 협정
시나리오 2. 우연한 전쟁
시나리오 3. 리더십 공백 속의 무질서한 세계
시나리오 4. 미국만 빼고 세계화 강화
시나리오 5. 미국 우선주의의 성공
2024년 12월 27일
Gideon Rachman - The Financial Times
도널드 트럼프의 두 번째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2025년 1월 20일에 열린다. 이 날은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이 개막하는 날이기도 하다.
매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다보스 포럼은 전 세계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만나는 자리다. 이 모임은 냉전 종식 이후 '엘리트 주도의 세계화'를 상징해왔다. 특히 지난 30년 동안 세계 주요 강대국들은 대체로 다보스적인 세계관을 받아들였다. 이 시기에는 여러 나라들이 서로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관계가 정치적 갈등보다 더 중요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모두 과거에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연설한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세계관을 '글로벌리즘'이라 부르며 아주 싫어한다. 다보스 포럼 참석자들은 자유무역을 장려하지만, 트럼프는 '관세(tariff)'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라고 말한다. 세계경제포럼은 수많은 국제협력 포럼을 주최하지만,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국가주의를 믿는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세계 3대 강대국은 이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금의 세계 질서를 크게 바꾸려 하고 있다.
- 2022년 러시아의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했을 때, 그는 '위대한 러시아'라는 꿈을 위해 서방과의 경제 협력 관계를 포기했다.
- 시진핑의 중국은 더욱 국수주의적이 됐다. 대만을 향한 위협적인 행동도 늘렸다.
- 미국의 트럼프는 국제 무역 체제와 미국의 동맹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려 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세계 질서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러시아는 잃어버린 영향력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옛 강대국이다. 중국은 자국의 야망을 세계가 받아들이길 바라는 새로운 강대국이다. 따라서 이 세 나라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임팩트가 클 것은 미국의 변화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이자 가장 큰 경제 대국이다. 달러는 세계의 기준 화폐이고, 미국의 동맹 체제는 유럽, 아시아, 미주 지역의 안보를 떠받치고 있다. 미국이 국제적 규칙을 완전히 다시 쓰려고 한다면 전 세계가 이에 맞춰 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관계 이론의 대표적 학자인 프린스턴대 존 아이켄베리는 이렇게 말한다. "자유로운 국제 질서에 도전하는 나라가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다. 자유세계의 중심인 백악관의 트럼프다." 아이켄베리가 보기에 트럼프는 "무역, 동맹, 이주, 여러 나라와의 협력, 민주주의 국가들 간의 단결, 인권 등 자유로운 국제 질서의 거의 모든 요소에 도전할 태세"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현재의 국제 질서를 지탱하는 대신 이를 가장 크게 흔드는 나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의 이보 달더도 이렇게 말한다. "내가 했던 모든 세계 정세 위험에 관한 강연은 중국과 러시아로 시작했엇지만 가장 큰 위험은 우리다. 바로 미국."
미국의 오랜 동맹국들은 미국이 힘을 행사하는 방식이 바뀌는 것에 가장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영국, 일본, 캐나다, 한국, 독일과 EU 같은 중간 규모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미국 시장이 세계로 활짝 열려있고 미국이 위협적인 독재 국가들로부터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세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렇게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에게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외쳤다. 미국의 안보 보장 필요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여기에는 나토의 공동 방위 협정도 포함된다. 트럼프는 국방비 지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다른 나토 회원국에 대해 "러시아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두겠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트럼프의 관세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하는 문제는 서방 세계 전체의 외교관들을 고민스럽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의 진짜 의도가 여전히 불분명하기 때문에 답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자 차기 대통령인 트럼프를 그저 '거래하기 좋아하는 사업가'로 봐야 할까? 아니면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혁명가'로 봐야 할까?
- 먼저 EU는 트럼프의 관세 위협이 단순한 협상 전략이며, 전면적인 무역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적절한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관세 위협을 실제로 실행한다면 EU는 맞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 영국 정부는 미국이 영국과 무역에서 작은 흑자를 보고 있기 때문에 관세를 면제해주길 바랄 것이다. 영국이 타격을 입더라도 영미간의 깊은 안보 협력관계 때문에 영국 정부는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 뛰어들기 전에 보다 신중하게 생각할 것이다.
- 일본의 경우는 미국과 큰 무역 흑자를 보고 있어 트럼프의 관세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훨씬 높다. 하지만 일본이 트럼프에 맞대응할 가능성은 낮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안보 보장 이슈를 거론하도록 부추길 만한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동맹국들이 무역과 국가안보 중 우선순위를 저울질해야 하는 이유는, 세계 경제 질서뿐 아니라 군사적 힘의 균형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가장 위험한 '수정주의(revisionist)' 국가들이다. 이 두 나라는 세계지도의 국경선을 바꾸고 세계와 지역의 안보 질서를 새로 짜자고 요구하고 있다.
푸틴과 시진핑은 현재의 세계 정세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보고 있다. 최근 러시아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연설에서 시진핑은 "흔들림과 변화(turbulence and transformation)"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세계 시대가 왔다며 반겼다. 푸틴도 트럼프 당선 이틀 후인 11월 7일 러시아 소치에서 한 연설에서 "우리 눈앞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 질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하며 비슷한 생각을 보였다.
때로 푸틴과 트럼프는 공통점도 있다. 둘이 함께 반(反) woke 운동을 펼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소치 연설에서 푸틴은 "자유주의적이고 세계주의적인 메시아주의(liberal and globalist messianism)"가 자신의 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도 쉽게 공감할 만한 생각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 다른 점도 있다. 트럼프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미국의 부와 힘을 키워야 한다고 믿는 반면, 푸틴의 핵심 목표는 미국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푸틴은 소치 청중들에게 "소련이 무너진 뒤 떠올랐던 서방의 독점적 지위가 이제 위태로워졌다"고 말했다.
중국의 시진핑도 서방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새로운 세계 질서의 중요하고 바람직한 특징으로 본다. 시진핑은 "동방이 올라가고 서방이 내려가고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또 러시아와 중국 모두 브릭스(BRICS)를 서방이 주도하는 G7에 맞서는 견제 세력으로 키우려고 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러시아는 현재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일부 영토를 그대로 가지려할 뿐 아니라 사실상 독립국가로서의 우크라이나를 끝장내기를 원한다. 우크라이나의 대외 및 안보 정책에 대한 거부권을 얻고 그 나라에 친러 정부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서방 관리들은 또 푸틴이 전쟁 전에 우크라이나 영토를 훨씬 넘어선 요구들도 했었다고 지적한다. 2021년 12월 크렘린이 발표한 최후통첩에는 '1991년 소련이 무너진 뒤 나토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에서 나토군을 모두 철수하라'는 요구가 들어있었다.
나토 내부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입은 큰 손실 때문에 푸틴이 더욱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됐을 것이라고 본다. 한 고위 유럽 관리는 "러시아가 이미 우리와 전쟁 중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한 관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이기면 나토에 "매우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면 전 세계에, 특히 중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즉, 시진핑이 아시아에서 자신의 야망을 추구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 런던대 SOAS의 스티브 창 교수는 시진핑이 '대만 장악'을 자신이 말하는 "중국몽(中國夢)"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시진핑에게 잇어 대만에서의 승리는 인도-태평양 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중국이 가장 강한 나라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다.
중국 정부의 입장은 대만이 국제적으로 중국의 일부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만섬은 자치를 하고 있으며 사실상 독립한 상태다. 중국의 강한 압박이나 군사적 침공은 이런 독립 상태를 끝낼 수 있다. 중국은 대만의 정치 지도부를 '위험한 분리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시진핑이 2027년까지 이 섬을 정복할 준비를 하라고 군부에 지시했다는 추측이 많다. 시진핑이 공개적으로 말한 목표 기한은 2050년이다. 하지만 그는 벌써 71세다. 2050년보다는 더 일찍 자신의 업적을 남기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다.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대만을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여러 번 말했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트럼프의 참모들이 중국을 매우 경계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트럼프 자신은 스스로를 평화를 추구하는 후보로 내세웠고, 시진핑과 푸틴 모두를 자주 칭찬해왔다.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수정주의적 세계관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지에 대해 예측하기란 어렵다. 현재 국제정세가 미국 혼자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진공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러시아와 중국 지도자들의 행동과 반응에도 대응해야 한다.
관련된 모든 요소를 고려하면 2025년 새로운 세계 질서가 어떻게 발전할지 확실히 알 수는 없고, 여러 가능성만 생각해볼 수 있다. 다음은 다섯 가지 시나리오다.
트럼프 2기 국제관계 5대 시나리오
시나리오 1. 3대 강대국간의 새로운 협정
트럼프는 거래를 좋아하고, 전쟁을 피하려 하며, 민주주의 동맹국들을 무시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러시아, 중국과 새로운 큰 거래를 맺을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암묵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자기들의 영역에서 영향력을 갖는 것을 인정한다. 미국은 자기 지역에서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한다. 멕시코와 캐나다를 압박하고, 파나마 운하를 되찾고, 그린란드를 차지하려 한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안전 보장 없는 평화 협정을 강요한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풀리고 푸틴은 트럼프의 자택인 마라라고의 추수감사절 만찬에 초대된다. 중국과의 거래에는 미국이 기술 제한과 관세를 풀어주는 대신 중국이 미국 물건을 사주고 테슬라 같은 미국 기업들에게 우호적인 사업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트럼프는 또 대만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을 비칠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있는 미국 동맹국들은 이런 새로운 불안정성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시나리오 2. 우연한 전쟁
이 시나리오에서는 서방 동맹국들끼리 무역 전쟁을 벌인다. 트럼프와 푸틴을 지지하는 파퓰리즘 세력이 늘어나고 유럽에서 정치적 불안이 커진다. 우크라이나에서 휴전이 이뤄지지만 러시아가 언젠가 다시 전쟁을 시작할 것이란 두려움이 유럽에 퍼진다. 트럼프는 동맹국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계속 의심스럽게 만든다. 중국, 러시아, 북한 또는 이 세 나라의 조합이 서방의 혼란을 이용해 아시아와 유럽에서 군사 행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 판단한다. 아시아와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들에 맞서 싸우고, 결국 미국도 전쟁에 뛰어든다. 20세기에 두 번 그랬던 것처럼.
시나리오 3. 리더십 공백 속 무질서한 세계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EU는 직접적인 싸움을 피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무역, 안보, 국제기구에 대한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이 리더십의 공백을 만든다. 트럼프의 무역 전쟁으로 전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된다. 수단과 미얀마 같은 나라들의 내전이 더 심해진다. UN은 강대국들이 서로 다투느라 힘을 잃어 이런 나라들의 내전에 개입하지 못한다. 대신 이익과 자연자원을 노리는 지역 강국들이 분쟁을 부추긴다. 아이티처럼 더 많은 나라들이 폭력적인 무질서 상태에 빠진다. 난민들이 서방으로 더 많이 몰려든다. 자유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파퓰리즘 정당들이 사회적, 경제적 불안 속에서 세력을 키운다.
시나리오 4. 미국만 빼고 세계화 강화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관세의 벽 뒤로 물러나고 세계무역기구를 떠난다. 미국에서는 물가가 오르고 상품의 질은 떨어진다. 나머지 세계는 미국의 폐쇄에 맞서 서로 간의 경제 협력을 강화한다. EU는 남미와 새로운 무역 협정을 맺고 인도, 중국과도 새로운 협정을 맺는다. 유럽은 또 중국이 EU 전역에 공장을 세우고 러시아가 유럽을 공격하지 않게 하는 대가로 중국의 전기차와 환경 기술에 시장을 연다. 남반구 국가들과 중국의 경제 통합이 더 깊어지고 브릭스 연합은 새 회원국들과 더 많은 영향력을 얻는다. 세계 공용 화폐로서의 달러 사용이 줄어든다.
시나리오 5. 미국 우선주의의 성공
이 시나리오에서는 미국의 힘을 막을 수 없다는 트럼프의 믿음이 옳았던 것으로 드러난다. 전 세계의 투자가 미국으로 몰려들어 기술과 금융에서 미국이 더 앞서게 된다. 유럽과 일본이 자체 국방비를 크게 늘리고 이것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공격을 막기에 충분해진다. 미국의 관세 때문에 중국의 성장율이 크게 줄어 중국 정치체제가 위기에 빠진다. 이란 정권은 군사적, 경제적 문제와 내부 국민들의 압박이 겹쳐 마침내 무너진다. 트럼프의 명성이 국내외에서 치솟는다. 미국의 진보파들은 입을 다물게 되고 트럼프의 적들 중 일부는 감옥에 간다. 미국 주가는 새로운 최고치를 기록한다.
앞으로 4년의 현실은 위의 5가지 시나리오와 그밖에 예상치 못한 여러 사건들이 이상하게 섞인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높다. 192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남긴 말을 되새겨보자. "낡은 것은 가고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런 중간 시기에는 온갖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난다.(The old is dying and the new cannot be born; in this interregnum a great variety of morbid symptoms appear.)"
사진: pixabay,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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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의 정치전문 기자가 2025년부터 예상할 수 있는 국제관계 5대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시나리오 1. 3대 강대국간의 새로운 협정
시나리오 2. 우연한 전쟁
시나리오 3. 리더십 공백 속의 무질서한 세계
시나리오 4. 미국만 빼고 세계화 강화
시나리오 5. 미국 우선주의의 성공
2024년 12월 27일
Gideon Rachman - The Financial Times
도널드 트럼프의 두 번째 미국 대통령 취임식은 2025년 1월 20일에 열린다. 이 날은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이 개막하는 날이기도 하다.
매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다보스 포럼은 전 세계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만나는 자리다. 이 모임은 냉전 종식 이후 '엘리트 주도의 세계화'를 상징해왔다. 특히 지난 30년 동안 세계 주요 강대국들은 대체로 다보스적인 세계관을 받아들였다. 이 시기에는 여러 나라들이 서로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관계가 정치적 갈등보다 더 중요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모두 과거에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 참석해 연설한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세계관을 '글로벌리즘'이라 부르며 아주 싫어한다. 다보스 포럼 참석자들은 자유무역을 장려하지만, 트럼프는 '관세(tariff)'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라고 말한다. 세계경제포럼은 수많은 국제협력 포럼을 주최하지만, 트럼프는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국가주의를 믿는다.
미국, 러시아, 중국 등 세계 3대 강대국은 이제 각자 다른 방식으로 지금의 세계 질서를 크게 바꾸려 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세계 질서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러시아는 잃어버린 영향력을 되찾으려 노력하는 옛 강대국이다. 중국은 자국의 야망을 세계가 받아들이길 바라는 새로운 강대국이다. 따라서 이 세 나라 중에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임팩트가 클 것은 미국의 변화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이자 가장 큰 경제 대국이다. 달러는 세계의 기준 화폐이고, 미국의 동맹 체제는 유럽, 아시아, 미주 지역의 안보를 떠받치고 있다. 미국이 국제적 규칙을 완전히 다시 쓰려고 한다면 전 세계가 이에 맞춰 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관계 이론의 대표적 학자인 프린스턴대 존 아이켄베리는 이렇게 말한다. "자유로운 국제 질서에 도전하는 나라가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다. 자유세계의 중심인 백악관의 트럼프다." 아이켄베리가 보기에 트럼프는 "무역, 동맹, 이주, 여러 나라와의 협력, 민주주의 국가들 간의 단결, 인권 등 자유로운 국제 질서의 거의 모든 요소에 도전할 태세"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현재의 국제 질서를 지탱하는 대신 이를 가장 크게 흔드는 나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카고 국제문제협의회의 이보 달더도 이렇게 말한다. "내가 했던 모든 세계 정세 위험에 관한 강연은 중국과 러시아로 시작했엇지만 가장 큰 위험은 우리다. 바로 미국."
미국의 오랜 동맹국들은 미국이 힘을 행사하는 방식이 바뀌는 것에 가장 큰 위협을 느끼고 있다. 영국, 일본, 캐나다, 한국, 독일과 EU 같은 중간 규모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미국 시장이 세계로 활짝 열려있고 미국이 위협적인 독재 국가들로부터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세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렇게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에게 높은 관세를 매기겠다고 외쳤다. 미국의 안보 보장 필요성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여기에는 나토의 공동 방위 협정도 포함된다. 트럼프는 국방비 지출 약속을 지키지 않는 다른 나토 회원국에 대해 "러시아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놔두겠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트럼프의 관세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하는 문제는 서방 세계 전체의 외교관들을 고민스럽게 만들고 있다. 트럼프의 진짜 의도가 여전히 불분명하기 때문에 답을 찾기는 더욱 어렵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자 차기 대통령인 트럼프를 그저 '거래하기 좋아하는 사업가'로 봐야 할까? 아니면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혁명가'로 봐야 할까?
미국의 동맹국들이 무역과 국가안보 중 우선순위를 저울질해야 하는 이유는, 세계 경제 질서뿐 아니라 군사적 힘의 균형도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가장 위험한 '수정주의(revisionist)' 국가들이다. 이 두 나라는 세계지도의 국경선을 바꾸고 세계와 지역의 안보 질서를 새로 짜자고 요구하고 있다.
푸틴과 시진핑은 현재의 세계 정세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보고 있다. 최근 러시아에서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 연설에서 시진핑은 "흔들림과 변화(turbulence and transformation)"로 특징지어지는 새로운 세계 시대가 왔다며 반겼다. 푸틴도 트럼프 당선 이틀 후인 11월 7일 러시아 소치에서 한 연설에서 "우리 눈앞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계 질서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하며 비슷한 생각을 보였다.
때로 푸틴과 트럼프는 공통점도 있다. 둘이 함께 반(反) woke 운동을 펼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소치 연설에서 푸틴은 "자유주의적이고 세계주의적인 메시아주의(liberal and globalist messianism)"가 자신의 적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도 쉽게 공감할 만한 생각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 다른 점도 있다. 트럼프는 새로운 세계 질서가 미국의 부와 힘을 키워야 한다고 믿는 반면, 푸틴의 핵심 목표는 미국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푸틴은 소치 청중들에게 "소련이 무너진 뒤 떠올랐던 서방의 독점적 지위가 이제 위태로워졌다"고 말했다.
중국의 시진핑도 서방 세력이 약해지는 것을 새로운 세계 질서의 중요하고 바람직한 특징으로 본다. 시진핑은 "동방이 올라가고 서방이 내려가고 있다"는 말을 자주 한다. 또 러시아와 중국 모두 브릭스(BRICS)를 서방이 주도하는 G7에 맞서는 견제 세력으로 키우려고 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러시아는 현재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일부 영토를 그대로 가지려할 뿐 아니라 사실상 독립국가로서의 우크라이나를 끝장내기를 원한다. 우크라이나의 대외 및 안보 정책에 대한 거부권을 얻고 그 나라에 친러 정부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서방 관리들은 또 푸틴이 전쟁 전에 우크라이나 영토를 훨씬 넘어선 요구들도 했었다고 지적한다. 2021년 12월 크렘린이 발표한 최후통첩에는 '1991년 소련이 무너진 뒤 나토에 가입한 동유럽 국가들에서 나토군을 모두 철수하라'는 요구가 들어있었다.
나토 내부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입은 큰 손실 때문에 푸틴이 더욱 극단적인 생각을 갖게 됐을 것이라고 본다. 한 고위 유럽 관리는 "러시아가 이미 우리와 전쟁 중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한 관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이기면 나토에 "매우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면 전 세계에, 특히 중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즉, 시진핑이 아시아에서 자신의 야망을 추구하도록 부추길 수 있다. 런던대 SOAS의 스티브 창 교수는 시진핑이 '대만 장악'을 자신이 말하는 "중국몽(中國夢)"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다. 시진핑에게 잇어 대만에서의 승리는 인도-태평양 지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중국이 가장 강한 나라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것이다.
중국 정부의 입장은 대만이 국제적으로 중국의 일부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만섬은 자치를 하고 있으며 사실상 독립한 상태다. 중국의 강한 압박이나 군사적 침공은 이런 독립 상태를 끝낼 수 있다. 중국은 대만의 정치 지도부를 '위험한 분리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미국에서는 시진핑이 2027년까지 이 섬을 정복할 준비를 하라고 군부에 지시했다는 추측이 많다. 시진핑이 공개적으로 말한 목표 기한은 2050년이다. 하지만 그는 벌써 71세다. 2050년보다는 더 일찍 자신의 업적을 남기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 있다.
바이든 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이 대만을 지키기 위해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여러 번 말했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없다. 트럼프의 참모들이 중국을 매우 경계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트럼프 자신은 스스로를 평화를 추구하는 후보로 내세웠고, 시진핑과 푸틴 모두를 자주 칭찬해왔다.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수정주의적 세계관을 어떻게 행동으로 옮길지에 대해 예측하기란 어렵다. 현재 국제정세가 미국 혼자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진공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러시아와 중국 지도자들의 행동과 반응에도 대응해야 한다.
관련된 모든 요소를 고려하면 2025년 새로운 세계 질서가 어떻게 발전할지 확실히 알 수는 없고, 여러 가능성만 생각해볼 수 있다. 다음은 다섯 가지 시나리오다.
트럼프 2기 국제관계 5대 시나리오
시나리오 1. 3대 강대국간의 새로운 협정
트럼프는 거래를 좋아하고, 전쟁을 피하려 하며, 민주주의 동맹국들을 무시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러시아, 중국과 새로운 큰 거래를 맺을 수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암묵적으로 러시아와 중국이 자기들의 영역에서 영향력을 갖는 것을 인정한다. 미국은 자기 지역에서 힘을 키우는 데 집중한다. 멕시코와 캐나다를 압박하고, 파나마 운하를 되찾고, 그린란드를 차지하려 한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안전 보장 없는 평화 협정을 강요한다.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풀리고 푸틴은 트럼프의 자택인 마라라고의 추수감사절 만찬에 초대된다. 중국과의 거래에는 미국이 기술 제한과 관세를 풀어주는 대신 중국이 미국 물건을 사주고 테슬라 같은 미국 기업들에게 우호적인 사업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트럼프는 또 대만을 지키기 위한 전쟁에는 관심이 없다는 뜻을 비칠 것이다. 유럽과 아시아 지역에 있는 미국 동맹국들은 이런 새로운 불안정성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시나리오 2. 우연한 전쟁
이 시나리오에서는 서방 동맹국들끼리 무역 전쟁을 벌인다. 트럼프와 푸틴을 지지하는 파퓰리즘 세력이 늘어나고 유럽에서 정치적 불안이 커진다. 우크라이나에서 휴전이 이뤄지지만 러시아가 언젠가 다시 전쟁을 시작할 것이란 두려움이 유럽에 퍼진다. 트럼프는 동맹국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계속 의심스럽게 만든다. 중국, 러시아, 북한 또는 이 세 나라의 조합이 서방의 혼란을 이용해 아시아와 유럽에서 군사 행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은 잘못 판단한다. 아시아와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이들에 맞서 싸우고, 결국 미국도 전쟁에 뛰어든다. 20세기에 두 번 그랬던 것처럼.
시나리오 3. 리더십 공백 속 무질서한 세계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EU는 직접적인 싸움을 피한다. 하지만 트럼프의 무역, 안보, 국제기구에 대한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이 리더십의 공백을 만든다. 트럼프의 무역 전쟁으로 전 세계 경제 성장이 둔화된다. 수단과 미얀마 같은 나라들의 내전이 더 심해진다. UN은 강대국들이 서로 다투느라 힘을 잃어 이런 나라들의 내전에 개입하지 못한다. 대신 이익과 자연자원을 노리는 지역 강국들이 분쟁을 부추긴다. 아이티처럼 더 많은 나라들이 폭력적인 무질서 상태에 빠진다. 난민들이 서방으로 더 많이 몰려든다. 자유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파퓰리즘 정당들이 사회적, 경제적 불안 속에서 세력을 키운다.
시나리오 4. 미국만 빼고 세계화 강화
이 시나리오에서 미국은 관세의 벽 뒤로 물러나고 세계무역기구를 떠난다. 미국에서는 물가가 오르고 상품의 질은 떨어진다. 나머지 세계는 미국의 폐쇄에 맞서 서로 간의 경제 협력을 강화한다. EU는 남미와 새로운 무역 협정을 맺고 인도, 중국과도 새로운 협정을 맺는다. 유럽은 또 중국이 EU 전역에 공장을 세우고 러시아가 유럽을 공격하지 않게 하는 대가로 중국의 전기차와 환경 기술에 시장을 연다. 남반구 국가들과 중국의 경제 통합이 더 깊어지고 브릭스 연합은 새 회원국들과 더 많은 영향력을 얻는다. 세계 공용 화폐로서의 달러 사용이 줄어든다.
시나리오 5. 미국 우선주의의 성공
이 시나리오에서는 미국의 힘을 막을 수 없다는 트럼프의 믿음이 옳았던 것으로 드러난다. 전 세계의 투자가 미국으로 몰려들어 기술과 금융에서 미국이 더 앞서게 된다. 유럽과 일본이 자체 국방비를 크게 늘리고 이것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공격을 막기에 충분해진다. 미국의 관세 때문에 중국의 성장율이 크게 줄어 중국 정치체제가 위기에 빠진다. 이란 정권은 군사적, 경제적 문제와 내부 국민들의 압박이 겹쳐 마침내 무너진다. 트럼프의 명성이 국내외에서 치솟는다. 미국의 진보파들은 입을 다물게 되고 트럼프의 적들 중 일부는 감옥에 간다. 미국 주가는 새로운 최고치를 기록한다.
앞으로 4년의 현실은 위의 5가지 시나리오와 그밖에 예상치 못한 여러 사건들이 이상하게 섞인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높다. 192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철학자 안토니오 그람시가 남긴 말을 되새겨보자. "낡은 것은 가고 새 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런 중간 시기에는 온갖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난다.(The old is dying and the new cannot be born; in this interregnum a great variety of morbid symptoms appear.)"
사진: pixabay,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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