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의 핑크빛 리브랜딩, 성공할까

2024-12-20


지난 11월 전통의 앰블렘을 없앤 핑크색 컨셉트카를 선보여 논란이 된 재규어 사. 그들이 추구하는 성공의 기준은 무엇일까.


2024년 12월 14일

카나 이나가키, 헨리 맨스


2005년, 영국 자동차 회사 재규어는 리브랜딩이 꼭 필요한 상황이었다. 당시 이 회사는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자동차 평론가 제레미 클락슨이 한때 농담으로 말했듯이, 재규어의 전통적인 고객은 아내와 함께 로맨틱한 호텔에 가서는 웨이트리스와 밤새 노닥거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런 유형의 남성들이었다. "왜냐하면 재~규아를 가졌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고객층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더 젊고 더 부유한 고객층이 필요했다.

그 고민의 결과로 내보낸 것이 '고저스(Gorgeous)'라는 브랜드 캠페인이었다. 90초 짜리 광고는 재규어 쿠페의 클로즈업 이미지와 귀족적인 방탕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이 교차 편집되어 보여진다. 광고의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윌렘 데포는 암묵적으로 차를 아름다운 여성에 비유했다. "고저스는 논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고저스는 속도를 사랑한다... 고저스는 어디든 들어간다... 고저스는 첫 5초 만에 본전을 뽑는다..."


2005년 'Gorgeous' 광고 캠페인


이 리브랜딩은 '워크(woke)'와는 거리가 멀었다. 무슨 향수 광고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모두가 좋아하지는 않았다. '디트로이트 뉴스'는 고저스 캠페인을 2005년 "가장 불쾌한" 자동차 광고로 평가했다. 웹 매거진 '슬레이트'는 "시대에 뒤떨어진 클리셰"라고 지적하며 "공룡(dinosaur) 같아서 D 등급"을 매겼다. 만약 2005년에 SNS가 있었다면 아마도 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더 나빴던 일은 그 차들이 잘 팔리지도 않았다는 점이었다. 모회사였던 미국 포드사는 곧 재규어와 랜드로버 등 두 개의 영국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를 묶어 인도의 타타 모터스에 매각했다.

거의 20년이 지났다. 재규어는 다시 한 번 자신을 럭셔리 상품으로 리브랜딩하려 하고 있다. 2024년 11월, 이 회사는 자동차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30초 짜리 광고를 공개했다. 자동차 대신 패션 모델들이 등장했고, 추상적인 문구들이 나왔다: '풍성함을 창조하라' '선명하게 살아라' '틀을 깨라' '아무것도 복제하지 마라...' 등. 그리고 광고는 새로운 브랜드 로고를 보여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2024년 'Copy Nothing' 광고 캠페인


SNS 민심은 폭발했다. 요즘의 시대정신은 'woke(깨어있음)' 분위기를 띄는 캠페인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추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재선 이후의 사회적 분위기는 이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들의 양성적인 미학과 잘 맞지 않았다. 미국의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는 재규어의 새 로고가 "동유럽 나이트클럽에서 볼 수 있는 럭셔리 콘돔 브랜드 같다"고 조롱했다. 일부 비평가들은 재규어가 영국의 골프장 회원들에게 어울리는 차로 남기 싫다면 아예 사라지는 게 낫다고 말하기도 했다. 영국의 국가주의 정치인 나이젤 패라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재규어가 망할 것이라고 봅니다. 사실 그렇잖아요? 거긴 망해도 싸요." 다른 이들은 더 실용적인 관점에서 궁금증을 보였다. 재규어가 내보내는 이 새로운 브랜드 메시지가 중국과 중동 지역의 소비자들을 겨냥한 것인지 말이다.




영국 코벤트리에 본사를 둔 재규어 사는 이 광고를 사내에서 제작했다. 한 전 임원이 냉소적으로 지적하듯이, 이 회사가 항상 문화적 시대정신을 잘 파악해왔던 것은 아니다. 창조적 아이디어가 런던에서부터 M40 고속도로를 타고 코벤트리까지 올라오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히들 말하듯이 어떤 면에서는 모든 홍보는 좋은 홍보다. 악플이 무플보다 낫다. "이 캠페인은 우리에게 사회적인 존재 가치를 부여하는 측면이 있습니다"라고 재규어의 매니징 디렉터 로든 글로버는 말한다. 테슬라의 사이버트럭처럼, 재규어는 이제 업계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 광고 에이전시 R/GA의 글로벌 최고성장책임자 알렉스 세나우이는 이렇게 말한다. "재규어는 말 그대로 요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유일한 자동차 브랜드입니다."

재규어의 브랜드 리포지셔닝 캠페인은 광고나 소셜미디어 차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자동차 산업과 영국 제조업,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1960년대 이래 재규어는 일종의 파라독스였다. 우선 자동차로서의 재규어는 부의 상징이다. 이 차의 소유자는 "오오~ 재규어다." 라는 말을 종종 듣기 마련이다. 그런데 자동차 회사로서의 재규어는 재무적 불가능성의 상징이다. "아아... 재규어......" 2008년 이후 타타 모터스는 재규어에 수십억 파운드를 헛되이 투자했다.  BMW, 아우디, 메르세데스와 경쟁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회사 관계자들에 따르면, 연간 거의 10억 파운드(약 1조 8000억 원)의 손실을 내기도 했다.


이번에 공개된 재규어 Type 00 콘셉트카. 위로 열리는 '버터플라이 윙' 문짝이 달려있고, '리퍼(leaper)'로 불리던 돌출 엠블럼과 '그로울러(growler)로 불리던 맹수 얼굴 엠블럼은 미니멀한 모노그램으로 바뀌었다. 


2026년부터 재규어는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 재탄생할 것이다. 대부분의 모델은 10만 파운드(약 1억8000만 원) 이상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일부는 비슷한 급의 예전 모델들보다 거의 3배 높은 가격이다. 어떤 면에서는 영국 정치인 패라지의 말이 맞다. 지난 90년 동안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여러 총리들, 그리고 제임스 본드 빌런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 브랜드가 앞으로도 계속 존속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타타그룹의 회장 라탄 타타는 재규어 브랜드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기에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절대 매각하지 않겠다고 보장했었지만, 그는 지난 10월에 사망했다. 한 임원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 라탄이 사라진 상황에서 타타그룹이 재규어에 얼마나 더 의욕을 가질 것인가가 진정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재규어는 늘 해외 판매에 의존해야 했다.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만약 재규어가 성공할 수 없다면 다른 영국 제조업 브랜드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재규어의 매니징 디렉터인 글로버는 회사의 미래가 전기차에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위대한 아이스하키 선수들은 퍽이 있는 곳이 아니라 퍽이 갈 곳을 향해 스케이트를 탄다(역주: 웨인 그레츠키의 어록)." 재규어를 사는 부유한 고객층은 400마일 이상 주행할 필요가 있을 경우 소유하고 있는 다른 비 전기차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BP를 포함한 다른 여러 회사들의 사례를 보면, 기업이 친환경 선언을 하는 건 쉽지만 실행으로 옮기기는 어렵다. 재규어가 뭐가 특별해서 그들과 다르겠는가.




재규어의 새 브랜드 캠페인에 대한 가장 신랄한 반응 중 하나는 일론 머스크로부터 나왔다.  그는 X에 이렇게 썼다. "Do you sell cars?(당신들도 자동차를 파나요?)" 머스크가 테슬라의 CEO로서 재규어 사의 직접적인 경쟁자라는 점은 일단 염두에 두지 말자. 혹은 테슬라가 오랫동안 전통적인 개념의 광고비를 쓰지 않았고 머스크 자신이 홍보 수단이라는 사실도 제쳐두자.

어쨌든 머스크의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아니오'다. 재규어는 사실 현재 영국에서 신차를 판매하지 않는다. 6년 전, 일부 임원들이 역사적인 사업 개편을 대대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이전 10년 동안 부진한 판매를 경험한 후 이들은 급진적으로 새로운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 재창조 프로젝트의 이름은 "프로젝트 로어(roar, 울부짖음)"로 지어졌다(그런데 도약하는 재규어 모습의 조각이 차의 앞부분에서 제거되면서 이 코드명은 아이러니를 띄게 됐다.). 이 프로젝트를 런칭한 CEO 티에리 볼로레는 겨우 2년 만에 회사를 떠났다. 후임자 에이드리언 마델은 5년간 180억 파운드(약 33조 원)를 프로젝트 로어에 투자하기로 약속했고, 영국 헤일우드 시에 있는 제조시설을 변경하는 데 5억 파운드를, 직원 재교육에 연간 2000만 파운드를 투자하기로 했다. 마델 CEO는 또 초고가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의 전환이 이뤄지는 동안 영국에서 재규어 신차 판매를 중단하고 대부분의 가솔린 모델도 생산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재규어 E-Type (1961) Pixabay

2024년 12월 2일 마이애미에서 공개된 Type 00 콘셉트카 


이 개편은 회사 역사상 가장 중요했던 변화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재규어의 뿌리는 19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블랙풀 출신의 젊은 자동차 판매원 윌리엄 라이온스(William Lyons)가 오토바이에 부착하는 사이드카를 제작하는 사업으로 공동 창업했다. '라이온스의 스왈로우 사이드카 컴퍼니'라 불리던 이 회사는 1928년 코벤트리 공장에서 첫 자동차를 출시했다. 6년 후, 회사는 재규어라는 이름과 전면의 '리퍼' 엠블럼을 단 첫 모델을 생산했다.

창업자 라이온스는 재규어 자동차의 이미지를 속도와 연관짓기 위해 자동차 레이싱에도 투자를 했다. 1950년대 재규어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다섯 번이나 우승했다. 1961년에는 E-Type을 출시했다. 이것은 레이싱에서 우승한 모델들 중 하나를 기반으로 만든 일반 소비자용 모델이었다. 이 2인승 차는 빠르고 날렵했다. 이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영구 컬렉션에 전시된 최초이자 유일한 영국산 자동차다.

당시 FT의 부고 기사에는 라이온스가 "독재적이고 냉담한" 사람이었다고 묘사되어 있다. 사업은 성장했지만 그는 적절한 후계자를 결국 찾지 못했다. 재규어는 브리티시 레일랜드 사에게 넘어갔고, 이후 영국 정부에 의해 국유화됐다. 나중에 마가렛 대처 총리에 의해 민영화되었지만 당시의 재규어 차들은 품질불량 문제를 겪었다. 미국의 소유주들은 재규어를 두 대 사야 한다고 농담하곤 했다: 하나는 운전용, 다른 하나는 부품용으로.

1930년대 재규어

사진 pixabay


그러다가 1989년 미국의 포드사가 재규어를 16억 파운드에 샀다. 당시 한 은행가의 말을 빌리면, "호두나무 대시보드와 구대륙의 매력"을 위해 지불한 것이었다. 이미 다른 영국 자동차 브랜드들인 벤틀리, 롤스로이스, 미니 역시 외국 기업들에게 팔린 다음이었다. 포드는 재규어가 60년대 초반 보여줬었던 위풍당당한 폼새를 되살리지 못했다. 그 다음 주인인 타타 모터스는 재규어와 함께 인수한 랜드로버를 영국의 수출 성공 사례로 부활시켰지만, 재규어는 부활시키지 못했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재규어 랜드로버의 CEO였던 랄프 스페스 하에서 재규어의 전략은 XE와 XF 세단, 그리고 최초의 재규어 SUV인 F-Pace 등 여러 모델을 출시해 프리미엄 독일 브랜드들과 경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인용 차량 시장에서는 회사의 규모가 중요하다. 규모는 마케팅 파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제조사가 고객들의 요구에 맞출 수 있게도 해준다. TV 드라마 '모스 경감'에서 모스 경감은 재규어를 몰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 전직 임원에 따르면 영국 경찰은 경찰용 차량을 발주할 때 수동 변속기와 자동 변속기 중 선택할 수 있기를 원했다. 재규어 사는 오직 자동 변속기 모델만 제공할 수 있었다. 그래도 뛰어난 디자인에 대한 회사의 집착은 계속됐다. 2013년에 출시된 로드스터 F-Type은 정지 상태에서는 고양이 갸르릉거리는 소리가 나고 가속할 때는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나도록 배기음이 설계됐다. 강력한 경쟁자 포르쉐 911와 한 판 붙을 수 있도록 이렇게 만들어졌지만, 잘 팔리지가 않았다.


드라마 '모스 경감' (1987)


재규어는 뒤늦게 전기차 경쟁에 뛰어들었다. 2018년에 출시돼 영국 시장 기준 6만1000파운드(약 1억1000만 원)에 판매된 전기 SUV I-Pace는 '세계 올해의 차' 상을 수상했다. 재규어는 구글의 자율주행 택시 서비스에 2만 대의 I-Pace를 공급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하지만 2018년 이후, 재규어와 랜드로버 모두 새로운 순수 전기차 모델을 전혀 출시하지 않았다.

2021년 당시 재규어가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서의 미래를 선언했던 것은 당시의 트렌드를 따르는 행동이었다. 그보다 불과 몇 주 전, 미국의 GM사 역시 2035년까지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혔던 상황이었다. 포드사도 2030년까지 유럽에서 판매하는 모든 신차가 전기차가 될 것이라고 말했었다. 요즘 나타나는 전기차 성장 둔화 경향은 아직 예상하기 어려웠던 시절이었다.

전기차 브랜드로 전환하는 과정은 복잡하다. 전통적으로 재규어의 판매 포인트는 차별성이었다. 작년에 재규어는 자동차 경주 대회의 전기차 버전인 포뮬러 E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또 재규어의 새로운 전기차 모델들은 최대 주행거리 478마일(약 760 킬로미터)이라는 인상적인 성능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전기차들은 가솔린 차종들에 비해 주행 성능 측면에서 차별화되기가 어렵다. 전기차를 사는 고객들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소프트웨어 성능, 그리고 아마도 디자인과 브랜드일 것이다.

재규어 D-Type 레이싱카(1954, 위 사진)와 전기 레이싱카 I-Type 7 (2024)


재규어와 럭셔리 패션 브랜드들 사이의 유사점을 가장 강하게 본 사람은 수석 크리에이티브 책임자인 제리 맥거번이었다. 맥거번은 형태가 기능을 압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일꾼 같은 이미지였던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모델을 스타일리시한 레인지로버 스포츠로 재탄생시켜 50% 더 비싸게 판매한 바 있었다. 그의 지휘 하에 재규어 랜드로버는 남성 구매자층을 넘어 브랜드를 확장시켰다. 가장 작은 레인지로버 모델인 레인지로버 이보크를 출시할 때는 걸그룹 스파이스걸스 출신의 빅토리아 베컴을 홍보에 쓰기도 했다.

맥거번은 예술, 건축, 그리고 미드센추리 가구에서 영감을 얻는다. 그와 함께 일했던 한 사람은 "그의 디자인에 대한 초점은 전통적인 자동차 디자인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라고 말한다.

이번에 논란이 된 재규어의 광고가 나온 지 며칠 후, 맥거번은 자동차 공개 행사로는 이례적인 장소인 마이애미 아트 위크 무대 위에 섰다. 새로운 컨셉카인 Type 00 두 대와 함께였다. "재규어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를 바라지 않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에르메스 검정 데님 재킷을 입은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이들은 지금 우리를 사랑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나중에 우리를 사랑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결코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바로 '두려움 없는 창의성'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Type 00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은 갈리지만,  어쨌든 뭔가 달라 보인다는 데에는 다들 대체로 동의한다. 긴 보닛. 낮은 지붕. 사라진 후면 창문. 자동차 유튜버 해리 메트칼프는 이렇게 말했다. "이는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전기차와도 다르다."

Type-E

재규어의 창의성이 보이는 것만큼 창의적이지는 아니었을 수도 있다. 타입 00는 앞뒤 길이가 5.1미터다. 이는 영국과 유럽대륙 대부분의 나라에서 판매하기에 너무 큰 사이즈다(역주: 현대 제네시스 G80은 4.995미터, 메르세데스 S320은 5.07미터). 이 회사 임원들은 차가 크다는 것도 대담한 변신의 일부라고 반박하지만, 중간 과정을 아는 사람들은 사실 재규어에게 많은 선택권이 없었다고 말한다. 향후 모델들은 전 CEO 볼로레가 폐기했던 두 모델, 순수 전기식 재규어 XJ 세단과 랜드로버 전기차 버전에서 파생된 플랫폼 위에 구축된다. "다르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었다고는 해도 그들이 실제로 백지 상태에서 시작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반드시 5.1미터여야만 하는 플랫폼에서 시작했습니다"라고 한 관계자가 덧붙였다.

회사 측은 이를 부인한다. "새로운 재규어의 기반이 되는 플랫폼은 새롭고, 유일하며, 맞춤형으로 마련된 전기차 아키텍처입니다... 다른 브랜드의 전기차 프로그램과는 전혀 시너지가 없습니다"라고 이들은 말했다.




대부분의 자동차 광고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광고가 얼마나 지루한가 하는 것이다. 광고에 나오는 차들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달리거나 텅 빈 도시를 통과한다. 대부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각도로 촬영되고, 바퀴와 후미등의 클로즈업 샷이 있다. 이런 광고들을 너무 많이 보면 차를 사고 싶어지기는커녕 다른 광고로 채널을 돌리고 싶어진다.  자동차 광고들이 진부한 이유는 제조사 임원들이 소비자 데이터의 더미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앨리시아 존슨은 말한다. 2005년 재규어 '고저스' 캠페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중 한 명이었던 사람이다. 게다가 광고를 위해 자동차를 운송하고 촬영하는 데에는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어떤 브랜드의 광고들은 임팩트가 있다. 논란이 됐던 재규어의 리브랜딩 런칭 직전에, 볼보는 영화 '오펜하이머'의 촬영감독이 만든 전기 SUV 모델 EX90의 광고를 공개했다. 이 광고에서는 한 젊은 커플이 곧 아기를 가지게 됨을 알게 된다. 예비 아버지는 자신의 희망과 두려움을 이야기한다(약간 기이하게도, 그는 이 이야기를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다). 광고 마지막에, 임신한 그의 파트너가 볼보 SUV 앞에서 길을 건너다가 치일뻔 하지만 볼보의 우수한 제동 시스템 덕분에 무사했음이 보여진다. 그리고 "역대 최고로 안전한 볼보차가 되기 위해 설계되었습니다"라는 내레이션이 나온다. 젊은 가족과 아기는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

일론 머스크가 운영하는 X에 있는 우파 계정들은 볼보의 광고를 재규어의 "woke"광고와 비교하여 "가족 친화적"이라고 칭찬했다. 확실히, 볼보가 안전하다는 이미지는 오랜 기간에 걸쳐 잘 확립되어 왔다. 볼보의 충성스러운 고객 중에는 나이젤 패라지도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재규어는 다른 시장에 있고 싶어한다. 볼보 EX90는 9만6255파운드(약 1억7000만 원)부터 시작한다. 재규어의 차들은 그보다 더 비싸게 책정될 것이다. 페라리나 롤스로이스 같은 울트라 프리미엄 브랜드들보다는 가격대가 낮지만, 포르쉐와 벤틀리 같은 브랜드들과 비슷한 가격대에서 경쟁하고자 할 것이다. 볼보 웹사이트에 가면 할부대출 프로그램과 할인 프로그램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벤틀리 웹사이트에 가면 가격 표시조차 찾을 수 없다. 그곳은 구매 능력이 당연시되는 시장의 끝단이다.

럭셔리 자동차들은 점점 더 TV 광고가 아닌 개인화된 메시징을 통해 판매되고 있다. 재규어는 2026년말 3개 모델을 출시할 때 북미, 중동, 아시아의 초고액 자산가들을 타깃으로 할 것이다. 세나우이에 따르면, 얼리 어댑터들이다. 첫 애플 워치, 첫 포르쉐 카이엔, 그리고 첫 테슬라 사이버트럭을 열심히 구매했던 사람들이다. 또한 재규어는 고객의 유일한 차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2023년 루마니아 부카레스트 카지노 호텔 앞에 세워진 재규어 차량

사진 pixabey

이 회사는 전통적인 자동차 쇼룸을 피할 것이다. 예술과 패션 거리에 팝업 스토어를 만들 것이다: 세나우이는 "아마도 초대로만 고객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개인화된 기능을 제공하는 것이 세일즈의 핵심이다. 초고액 자산가인 구매자들은 자신의 이웃들이 가지지 않은 것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원한다. 예를 들어 페라리와 벤틀리는 커스텀 가죽 인테리어나 탄소섬유 패널로 차량을 맞춤화해서 상당한 마진을 얻었다.

이론은 실천보다 쉽다. 중국은 최근 재규어 랜드로버 판매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나라다. 하지만 아우디, 벤틀리, 애스턴 마틴, 마세라티를 포함한 대부분의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중국에서 판매량이 떨어져왔다. 많은 업계 임원들은 중국시장이 과거처럼 수익성 좋고 유망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래서 재규어는 드라마틱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현재 10만 파운드(1억8000만 원) 이상의 전기차 시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한 전 직원은 말한다. 슈퍼카와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의 독립 분석가인 스콧 셔우드는 이렇게 말한다. "(재규어는) 기존의 모든 고객을 잃었고 새로운 고객을 찾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힘든 여정입니다. 거기다가 재규어는 다른 모든 회사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기차 기술을 가지고 라이프스타일로서 포장해 비싸게 판매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볼보를 포함한 다른 여러 자동차 제조사들은 소프트웨어 문제로 인해 예정했던 시기에 전기차를 출시하지 못한 바 있다. "재규어 랜드로버도 차를 정시에 출시한다고 알려진 회사는 아닙니다"라고 한 전 직원은 말한다.

이런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재규어는 어쩌면 그 이름에 걸맞게 살고있는 건지도 모른다. 맹수 재규어는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다. 하지만 서식지는 줄어들고 있다. 작년에 판매된 재규어 차량 수는 6만7000대에 약간 못미쳤는데, 이는 야생에 남아있는 동물 재규어의 수보다 약간 많은 정도다.

차량 가격을 더 높게 책정하면 더 적게 판매하더라도 수익을 낼 수 있다: 회사는 작년 판매량의 절반도 안 되는 연간 약 3만 대만 판매해도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필요한 것은 슈퍼리치들을 흥분시키는 것뿐이다. 재규어의 매니징 디렉터인 글로버는 이렇게 정리한다. "누구도 12만 파운드(2억 원)짜리 자동차가 꼭 필요해서 사는 건 아닙니다. 사고싶게 만들어야죠."


- FT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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