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초반 서구 사회를 장악했던 구조적 불평등 해소 운동, '워키즘'이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 이 운동은 부활할 수 있을까?
*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 내용을 시간 순으로 재배열했습니다.
2025년 2월 1일
Henry Mance, The Financial Times

워크 운동의 기원
"깨어있다(woke)"라는 말은 미국 흑인 공동체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흑인들이 겪는 부당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였고, 나중에는 좌파 전반에서 통용됐다.
이 말은 이제 여성, 유색인종, LGBT+, 장애인 등 소외된 집단이 겪는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이 운동은 또 우리가 기존의 불공정한 관습을 따름으로써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차별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지지자들에게 있어 워크 운동은 미국 흑인 시민권 운동과 같은 인권 캠페인의 연장선이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와 2012년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 살해 사건들은 미국 법이 여전히 흑인들에게는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음을 보여줬다. 오래된 불평등은 지속됐고, 새로운 불평등도 등장했다. 테크 기업들은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이 인종차별적 결과를 만들어낸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했다.
그러자 우파 비판자들은 워크라는 단어를 가져가 경멸적인 의미를 씌웠다. 마치 1990년대에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이란 말을 무기화했던 것처럼, 우파는 워크라는 말도 종종 부정적으로 사용했다.
워크 운동이 이렇게 저항에 부딪혔을 때, 지지자들은 '1960년대에도 흑인에게 시민권을 주는 걸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고 1990년대에도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농담을 계속 하려고 했던 이들이 있었다'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반박할 수 있었다.
2020년,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관들에 의해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시위대는 "백인의 침묵은 폭력이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나왔다. 이들은 굳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참여가 당연하다는 식으로 나섰다.
이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성과는 '다양성 관련 캠페인을 지지하는 게 당연하다'는 관념을 사회에 심은 것이었다. 플로이드가 살해된 지 몇 주 안에 약 2000만 명의 미국인이 행진에 참여했다. 전례 없는 규모였다. 이후 미국 정부는 정책 안에 암묵적 편견이 담겨있는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경영진들은 사무실을 둘러보며 왜 이렇게 백인이 많은지를 물었다. 다양성 워크숍이 조직됐고, 시민단체 기부금이 늘어났으며, 다양성을 배려한 고위직 임명이 이뤄졌다. 옛 인물들의 동상이 쓰러졌고,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에 기반했던 기업들의 로고가 교체됐다.
그 이전 몇 년 동안 다른 운동들도 비슷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미투' 운동은 남성의 성적 학대를 고발했다. LGBT+ 운동가들은 트랜스젠더가 직면한 어려움을 부각시켰다. 동성애자 권리가 크게 신장된 후,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고 싶어 했다. 온라인 프로필에 무지개 그림을 추가하고 이메일 서명에 they/them 같은 새로운 대명사를 넣는 사람이 늘어났다. 트랜스젠더 셀러브리티들은 인기 브랜드의 홍보대사가 됐다.
그것이 워크 운동의 전성기였다.

부작용
문제는 이런 워크 운동이 낙관적인 시각으로 평등과 인종 통합을 추구했던 과거의 흑인 시민권 운동을 거부하는 것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이다. 작가 야샤 뭉크Yascha Mounk가 책 '정체성의 함정The Identity Trap'에서 주장하듯 말이다. 그 토대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콜로니얼 연구, 그리고 비판적 인종이론(Critical Race Theory)에 있었다.
비판적 인종이론의 창시자 데릭 벨Derrick Bell은 1991년 미국의 흑인 인권이 노예제 시대 이후 사실상 진전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인종간 평등을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개념에서 시작된 워크 운동의 과잉 사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2020-21년, BLM 운동 활동가들은 수개월 동안 포틀랜드 시를 점거해 수백만 달러의 피해를 입혔다. 이들의 경찰 예산 삭감 요구는 미국의 많은 도시에서 법의 집행을 어렵게 만들었고, 결국 이런 운동이 의도치 않게 시민들의 삶을 더 위험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비판론이 등장하게 됐다.
- 일반인의 직관에 반하는 이론화 역시 이슈가 됐다. 인종 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 일부는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백인성'의 특징이라고 구분지으며 비난했다. 일부 트랜스젠더 인권 활동가들은 '라틴엑스(Latinx)'와 '생리인'이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던 라티노와 라티나, 그리고 여성이라는 개념을 대체하는 것이다. 정작 이 용어들이 지칭하는 사람들 본인들은 대부분 좋아하지 않을 것이지만 말이다.
- 워크 운동 이전에도 새로운 용어를 쓰자는 노력은 있어왔다. 1990년대의 PC 운동가들은 '체어맨chairman' 대신 '체어chair'를, '창부prostitute' 대신 '성노동자sex worker'를 쓰자고 제안했었다. 키 작은 사람을 '수직적으로 도전받은 사람vertically challenged'이라고 부르자는 조롱도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최근 워크 운동의 개념적, 언어적 변화는 아마도 훨씬 더 급진적이다. '백인 특권', '독성 남성성', '시스젠더'라는 새로운 어휘들이 만들어졌다.
이런 것들은 극단적인 사례라고 치더라도, 다른 문제가 있었다. 워크 운동은 자유주의 사회의 원칙과도 일부 충돌했다. 워크 운동은 사람들을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일부로 정의했다. 즉 사람들이 스스로를 '흑인' '퀴어' 등으로 정체화하도록 장려했다. 베스트셀러 '백인 취약성White Fragility'의 백인 저자 로빈 디안젤로Robin DiAngelo가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백인들이 본질적으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봤다.
이 모든 것은 평등에 초점을 맞추었던 흑인 시민권 운동 시대의 정신을 거스르고, 또 많은 시민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거스르는 것이었다. 이미 2015년에 베테랑 시민권 운동가 바바라 레이놀즈Barbara Reynolds는 BLM 운동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대신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슬로건을 택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교회에서 예배 보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던 1960년대 인권운동가들처럼 품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은 것도 실수라고 봤다.
기업계의 분위기
기업계 내에서는 워크 운동의 집단 인식이 처음에는 환영받았다. 여러 회사 사내에 흑인, 아시아인, LGBT+, 장애인 등을 위한 직원 네트워크가 생겨났다.
하지만 점점 기업 경영진들의 생각도 바뀌게 되었다. 영국 인사전문가협회의 대표 피터 치즈Peter Cheese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러한 모든 차이의 영역에 너무 많이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요? 근본적으로 사람들 간의 차이를 포용하고 존중하는 게 중요하지, 반드시 그런 차이를 부각시킬 필요는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사람들 간의 모든 차이를 논의할 수는 없잖아요."
기업들은 로빈 디안젤로의 강의를 포함한 '반편견' 교육을 직원들이 받게 하는데 투자했었다. 하지만 그런 활동이 거의 효과가 없다는 증거들이 있다. 인종과 성별에 초점을 맞추는 다양성 관련 프로그램들이 도입되는 동안, 계급에 대한 대화는 종종 부족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저지 경영대학원의 카말 무니르Kamal Munir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업에서 일하는 백인 직원들에게 다양성에 대해 물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백인의 특권을 받지 않았냐고요? 나는 노동자 계급 출신이고 여기까지 나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왔어요'. 제로섬 게임으로 여겨지는 거죠."
워크 운동의 사각지대는 계급만이 아니었다. '캐런Karen'이라는 호칭이 등장했다. 특권의식 강한 백인 여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가벼운 밈에서 노골적인 차별로 변질됐다. 2023년 5월, 우버에서는 "나를 캐런이라 부르지 마세요" 라는 주제의 교육이 이뤄졌는데, 직원들은 이 프로그램이 백인들의 고충에만 너무 초점을 맞췄다고 불평했고 이후 다양성 책임자가 사임했다.

사회적 압박과 그에 대한 반발
워크 운동가들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은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집단을 더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실제로 해방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2015년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20개의 연기상 후보가 모두 백인이어서 '#OscarsSoWhite'라는 말이 바이럴이 됐다. 이후 더 많은 비백인 배우들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분명 이런 식으로 소수자들은 좀 더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워크 운동은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 폭력을 다룬 넷플릭스 영화 '에밀리아 페레스Emilia Pérez'가 나왔을 때, 이 영화가 멕시코를 다루지만 대부분 출연진과 제작진이 비멕시코인이니 오스카상 후보 지명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논란이 생겼다. 정말 안 되는 것일까? 감독이 자신을 변호하며 지적했듯이, 셰익스피어도 베로나에 가본 적이 없다.
2021년에는 수상 경력이 있는 네덜란드의 논바이너리 소설가가 흑인 미국 시인 아만다 고먼Amanda Gorman의 작품을 번역하기로 했다가, 이 작품은 흑인 번역가가 맡아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사임하는 일이 있었다.
결국 '누가' 말하는지가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됐다. 어떤 의견이 백인 남성에게서 나왔을 때 그걸 비판하는 목소리는 힘있게, 재치있게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토론을 할 수가 없다. 모든 발언자들이 자신의 정체성부터 먼저 밝히는 것을 듣다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심지어 워크 활동가들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거나 연관 지을 수 있는지도 바꾸려 했다.
- 베스트셀러 '반인종차별주의자가 되는 법'의 저자 이브람 X. 켄디Ibram X. Kendi는 미친(crazy), 멍청한(stupid), 바보(dumb) 같은 말이 "장애인 차별적"이라고 주장했다.
- 앞서 언급한 작가 로빈 디안젤로는 백인들이 말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나열했는데, 여기에는 "나는 아무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어"라는 말도 포함됐다.
- 2020년, 미국의 축구팀 LA 갤럭시는 한 선수의 아내가 인스타그램에 인종차별적 문구를 올린 후 그 선수와 계약을 해지했다. 그가 그 문구에 반대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는 이후 세르비아 슈퍼리그의 득점왕이 됐다.
- 영국의 한 아동 도서 작가는 '해리포터'의 작가 JK 롤링의 트랜스젠더 관련 견해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출판사와 계약이 해지됐다. 그녀는 트럭 운전사가 됐다.
이렇게 엄격한 기준은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않았다. 2018년과 2021년 조사에서 미국인의 과반수는 정치적 올바름이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는 유권자들이 "계란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을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가 맞았다. 미국인들은 이제 "삶이란 원래 지저분하다"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열성적인 워크 운동가들은 관용과 토론이 아닌 처벌과 재교육을 제시했다. 이는 지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인종 차별이 존재하고, 조지 플로이드의 피살 사건이 끔찍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워크 활동가들이 차별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한 미국 조사에 따르면 '인종차별이 미국 사회에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흑인이나 히스패닉보다 백인 진보주의자 그룹에서 더 높았다. 반면 백인 진보주의자가 '열심히 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할 가능성은 흑인이나 히스패닉보다 더 낮았다.

급진적인 사회 변화에는 사회적 토론이 필요했다. 이는 트랜스젠더 문제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아이들에게 사춘기 차단제를 주는 것이 사전 동의와 장기적 건강 위험에 대한 문제를 가져오진 않는가? 예전엔 이런 질문을 하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2024년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가 성정체성 관련 의료 서비스를 검토한 후 사춘기 차단제의 사용이 "약한 증거"에 기반한다고 결론 내릴 때까지.
물론, LGBT+ 운동가들이 이런 토론을 싫어한 이유는 있었다. 숀 페이Shon Faye가 자신의 책에서 주장했듯이, 이들에게는 미디어의 프레임 자체가 억압적일 수 있었다. 트랜스젠더들은 자신들의 존재가 조롱당한다고 느꼈고, 의료계를 불신했다. 트랜스젠더 운동가들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트랜스젠더를 덜 안전하게 만든다는 견해도 있었다. 심리적으로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의료 서비스가 더욱 제한되는 정책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태도의 결과는 운동가들 스스로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트랜스젠더 운동가들은 종종 비판자들을 "트랜스포비아"로 낙인찍었다. 일반 대중은 화려한 LGBT+ 프라이드 무지개 축제에 동참한다 생각하며 트랜스젠더들을 지지했었지만, 이제는 소셜 미디어 상에서 종종 지독한 말싸움을 보게 됐다. (물론 비판자들도 그 난장판이 벌어진데 큰 책임이 있다.) 대의에 온건하게 지지적이었던 많은 사람들도 이런 걸 보고 이제 트랜스젠더 이슈를 그냥 피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결국 법도 표현의 자유의 손을 들어줬다. 2021년 영국 고용재판소는 마야 포스테이터Maya Forstater라는 여성이 젠더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가졌다는 것 때문에 계약이 갱신되지 않았을 때 불법적인 차별을 당했다고 판결했다.
마찬가지로 기업계 내에서도 인종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기업의 기본적인 고용 규칙과 충돌했다. 이전에 고용주들은 두 채용 후보자가 동등할 경우 더 다양성 기준에 맞는 후보를 채용하자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는 항상 의심스러운 판단이었다. 두 후보자가 완전히 동등한 경우는 없으며, 저울을 한쪽으로 기울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무렵, 일부 기업에서는 다양성에 맞는 후보자 채용을 더 빨리 진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여성이라거나 유대인이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일부 사례에서는 백인들이 명백히 차별 당했다. 2022년 영국 템스밸리 경찰서는 경쟁 과정 없이 아시아계 경찰관을 승진시켰다. 승진 지원 기회를 받지 못한 세 명의 백인 경찰관들은 나중에 차별 관련 소송에서 승소했다. 내부에서 변화를 추진하려던 관리자들과 외부의 워크 활동가들은 자유주의 사회와 일반 대중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혁명은 반발에 부딪힌다
2020년대 초반 이렇게 워크 운동이 강렬했던 건 사람들이 느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코로나19로 인한 정서적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열기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2024년 4월이 되자, 52%의 미국인들은 미국이 흑인들에 대한 과거의 차별을 보상하기 위해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회적 담론은 이제 경제와 이민자라는 주제로 옮겨갔다.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워크 정신 바이러스(woke mind virus)"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 2023년 미국 대법원은 대학 입시에서 소수자를 우대하는 정책이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우파 활동가들은 다양성 정책을 내세운 기업들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2025년 1월 트럼프는 다시 대통령이 된 후 미국 연방정부의 다양성 관련 정책들을 종료하라고 명령했다. 그 중엔 19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 시대부터 이어진 것도 있다. 이제 트랜스젠더는 미군에서 퇴출될 수 있다.
- 월마트와 아마존 같은 기업들도 자체적인 다양성 관련 프로그램들을 폐지했다.
-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한때 페이스북이 #미투 운동과 #BlackLivesMatter 운동에 기여한 것을 자랑스러워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회사에 더 많은 '남성적 에너지'가 필요하다며 여성과 소수자 채용 목표를 종료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아마도 더 의미심장한 것은 워크 혁명의 지지자들마저 신념을 상실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카말라 해리스 전 부통령은 워크 사상을 더 이상 옹호하지 않는다.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도 트랜스젠더 권리에 대한 입장을 바꿨다.
- 2021년부터 2024년 사이, '트랜스젠더를 위한 평등한 기회 보장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 영국인의 비율은 32%에서 22%로 떨어졌다.
- 워크 운동의 비판자들 중에는 스스로를 좌파라고 정의하는 철학자 샘 해리스Sam Harris와 수잔 나이만Susan Neiman 같은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워크 운동의 부상과 몰락을 미국 정치 상황과 분리하기는 어렵다. 이번 달, 저커버그가 메타의 다양성 목표를 철회하고 사용자들이 "게이들은 괴물이다"와 같은 글도 올릴 수 있도록 콘텐츠 관리 정책을 변경했을 때, 메타는 이렇게 설명했다: "TV나 의회 연단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을 우리 플랫폼에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비겁한 말이지만, 어쨌든 변화하는 정치적 상황은 워크 활동가들과 다양성 관리자들의 요구에 맞서기 위한 유용한 구실이 됐다.
워크 운동의 미래는
만약 진보주의자들이 보편적 아이디어와 자유로운 토론에 대해 그렇게 회의적이지 않았다면 워크 혁명은 더 오래 지속됐을 수 있었다. 모든 유권자들이 워크 운동을 맹렬히 싫어하는 건 아니다. 사실 트랜스젠더 이슈는 영국 유권자들의 중요 고려사항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영국인의 과반수는 파르테논 부조를 그리스로 반환하는 것과 같은 워크 아이디어는 지지한다. 미국인의 3분의 2도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프로그램을 지지한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한때 지지했던 이런 운동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만약 워크 활동가들이 그들의 가장 냉소적인 반대자들만큼 잘 조직되어 있었다면 이런 위기는 더 잘 관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BLM 운동은 좋은 지도자가 부족하고 조직이 부실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워크 활동가들이 기부금을 부정하게 사용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가장 영향력 있는 소셜 네트워크였던 트위터도 잃었다. 트위터 공간은 어뷰저들로 인해 악화됐고, 일론 머스크에 의해 점령됐다.
만약 CRT 이론의 창시자 데릭 벨이 살아있었다면, 그는 이러한 사회적 반발이 '인종차별은 항상 자신을 재확립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워크 혁명은 진보를 믿는 사람들에게 많은 승리를 가져오기도 했다. 워크 운동은 정치적 올바름으로의 전환보다 더 높은 목표를 가졌고, 인종·성별·성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켰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무니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기업 내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다양한 인재 풀을 활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진보는 결코 선형적이지 않죠."
워크와 다양성 캠페인의 운명은 기후 정책의 운명과도 같다. 기후 행동이 정치적으로 덜 유행하게 됐다고 해서 덜 시급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말이나 트랜스젠더 권리가 더 이상 시대정신이 아니라고 해서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해소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침묵은 폭력이다"라고 주장했던 진보 활동가들의 생각은 틀렸다. 하지만 침묵이 최선의 전략인 것도 아니다.
오늘날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목소리를 내야할 필요가 적어졌다고 느낀다. 이들의 침묵이 다시 시작됐다. 이러한 운동들이 다시 일어서려면, 반대자들의 비판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한계도 극복해야 할 것이다.
© The Financial Times Limited 2024. All Rights Reserved. Not to be redistributed, copied or modified in any way. Okhotsk is solely responsible for providing this translation and the Financial Times Limited does not accept any liability for the accuracy or quality of the translation. 파이낸셜타임스와 라이센스 계약 하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번역에 대한 책임은 오호츠크에게 있습니다.
사진: pixabay

2020년대 초반 서구 사회를 장악했던 구조적 불평등 해소 운동, '워키즘'이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 이 운동은 부활할 수 있을까?
* 한국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문 내용을 시간 순으로 재배열했습니다.
2025년 2월 1일
Henry Mance, The Financial Times
워크 운동의 기원
"깨어있다(woke)"라는 말은 미국 흑인 공동체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흑인들이 겪는 부당함을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였고, 나중에는 좌파 전반에서 통용됐다.
이 말은 이제 여성, 유색인종, LGBT+, 장애인 등 소외된 집단이 겪는 구조적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이 운동은 또 우리가 기존의 불공정한 관습을 따름으로써 무의식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차별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지지자들에게 있어 워크 운동은 미국 흑인 시민권 운동과 같은 인권 캠페인의 연장선이었다. 2020년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와 2012년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 살해 사건들은 미국 법이 여전히 흑인들에게는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음을 보여줬다. 오래된 불평등은 지속됐고, 새로운 불평등도 등장했다. 테크 기업들은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이 인종차별적 결과를 만들어낸 것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도 했다.
그러자 우파 비판자들은 워크라는 단어를 가져가 경멸적인 의미를 씌웠다. 마치 1990년대에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이란 말을 무기화했던 것처럼, 우파는 워크라는 말도 종종 부정적으로 사용했다.
워크 운동이 이렇게 저항에 부딪혔을 때, 지지자들은 '1960년대에도 흑인에게 시민권을 주는 걸 반대한 사람들이 있었고 1990년대에도 성차별적이고 인종차별적인 농담을 계속 하려고 했던 이들이 있었다'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반박할 수 있었다.
2020년,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경찰관들에 의해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되는 일이 벌어졌을 때 시위대는 "백인의 침묵은 폭력이다"라고 쓴 피켓을 들고 나왔다. 이들은 굳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 하지 않았다. 참여가 당연하다는 식으로 나섰다.
이 BLM(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성과는 '다양성 관련 캠페인을 지지하는 게 당연하다'는 관념을 사회에 심은 것이었다. 플로이드가 살해된 지 몇 주 안에 약 2000만 명의 미국인이 행진에 참여했다. 전례 없는 규모였다. 이후 미국 정부는 정책 안에 암묵적 편견이 담겨있는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기업의 경영진들은 사무실을 둘러보며 왜 이렇게 백인이 많은지를 물었다. 다양성 워크숍이 조직됐고, 시민단체 기부금이 늘어났으며, 다양성을 배려한 고위직 임명이 이뤄졌다. 옛 인물들의 동상이 쓰러졌고, 흑인에 대한 고정관념에 기반했던 기업들의 로고가 교체됐다.
그 이전 몇 년 동안 다른 운동들도 비슷한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미투' 운동은 남성의 성적 학대를 고발했다. LGBT+ 운동가들은 트랜스젠더가 직면한 어려움을 부각시켰다. 동성애자 권리가 크게 신장된 후,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고 싶어 했다. 온라인 프로필에 무지개 그림을 추가하고 이메일 서명에 they/them 같은 새로운 대명사를 넣는 사람이 늘어났다. 트랜스젠더 셀러브리티들은 인기 브랜드의 홍보대사가 됐다.
그것이 워크 운동의 전성기였다.
부작용
문제는 이런 워크 운동이 낙관적인 시각으로 평등과 인종 통합을 추구했던 과거의 흑인 시민권 운동을 거부하는 것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이다. 작가 야샤 뭉크Yascha Mounk가 책 '정체성의 함정The Identity Trap'에서 주장하듯 말이다. 그 토대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콜로니얼 연구, 그리고 비판적 인종이론(Critical Race Theory)에 있었다.
비판적 인종이론의 창시자 데릭 벨Derrick Bell은 1991년 미국의 흑인 인권이 노예제 시대 이후 사실상 진전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인종간 평등을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개념에서 시작된 워크 운동의 과잉 사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은 극단적인 사례라고 치더라도, 다른 문제가 있었다. 워크 운동은 자유주의 사회의 원칙과도 일부 충돌했다. 워크 운동은 사람들을 개인이 아닌 집단의 일부로 정의했다. 즉 사람들이 스스로를 '흑인' '퀴어' 등으로 정체화하도록 장려했다. 베스트셀러 '백인 취약성White Fragility'의 백인 저자 로빈 디안젤로Robin DiAngelo가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백인들이 본질적으로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봤다.
이 모든 것은 평등에 초점을 맞추었던 흑인 시민권 운동 시대의 정신을 거스르고, 또 많은 시민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에 거스르는 것이었다. 이미 2015년에 베테랑 시민권 운동가 바바라 레이놀즈Barbara Reynolds는 BLM 운동이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 대신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슬로건을 택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교회에서 예배 보는 듯한 분위기를 풍겼던 1960년대 인권운동가들처럼 품위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은 것도 실수라고 봤다.
기업계의 분위기
기업계 내에서는 워크 운동의 집단 인식이 처음에는 환영받았다. 여러 회사 사내에 흑인, 아시아인, LGBT+, 장애인 등을 위한 직원 네트워크가 생겨났다.
하지만 점점 기업 경영진들의 생각도 바뀌게 되었다. 영국 인사전문가협회의 대표 피터 치즈Peter Cheese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러한 모든 차이의 영역에 너무 많이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요? 근본적으로 사람들 간의 차이를 포용하고 존중하는 게 중요하지, 반드시 그런 차이를 부각시킬 필요는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직장에서 사람들 간의 모든 차이를 논의할 수는 없잖아요."
기업들은 로빈 디안젤로의 강의를 포함한 '반편견' 교육을 직원들이 받게 하는데 투자했었다. 하지만 그런 활동이 거의 효과가 없다는 증거들이 있다. 인종과 성별에 초점을 맞추는 다양성 관련 프로그램들이 도입되는 동안, 계급에 대한 대화는 종종 부족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 저지 경영대학원의 카말 무니르Kamal Munir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업에서 일하는 백인 직원들에게 다양성에 대해 물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백인의 특권을 받지 않았냐고요? 나는 노동자 계급 출신이고 여기까지 나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왔어요'. 제로섬 게임으로 여겨지는 거죠."
워크 운동의 사각지대는 계급만이 아니었다. '캐런Karen'이라는 호칭이 등장했다. 특권의식 강한 백인 여성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는 가벼운 밈에서 노골적인 차별로 변질됐다. 2023년 5월, 우버에서는 "나를 캐런이라 부르지 마세요" 라는 주제의 교육이 이뤄졌는데, 직원들은 이 프로그램이 백인들의 고충에만 너무 초점을 맞췄다고 불평했고 이후 다양성 책임자가 사임했다.
사회적 압박과 그에 대한 반발
워크 운동가들의 핵심적인 요구 사항은 사회에서 소외되었던 집단을 더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실제로 해방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2015년 오스카상 시상식에서 20개의 연기상 후보가 모두 백인이어서 '#OscarsSoWhite'라는 말이 바이럴이 됐다. 이후 더 많은 비백인 배우들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분명 이런 식으로 소수자들은 좀 더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워크 운동은 그 정도에서 멈추지 않았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 폭력을 다룬 넷플릭스 영화 '에밀리아 페레스Emilia Pérez'가 나왔을 때, 이 영화가 멕시코를 다루지만 대부분 출연진과 제작진이 비멕시코인이니 오스카상 후보 지명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논란이 생겼다. 정말 안 되는 것일까? 감독이 자신을 변호하며 지적했듯이, 셰익스피어도 베로나에 가본 적이 없다.
2021년에는 수상 경력이 있는 네덜란드의 논바이너리 소설가가 흑인 미국 시인 아만다 고먼Amanda Gorman의 작품을 번역하기로 했다가, 이 작품은 흑인 번역가가 맡아야 한다는 비판을 받고 사임하는 일이 있었다.
결국 '누가' 말하는지가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됐다. 어떤 의견이 백인 남성에게서 나왔을 때 그걸 비판하는 목소리는 힘있게, 재치있게 들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면 토론을 할 수가 없다. 모든 발언자들이 자신의 정체성부터 먼저 밝히는 것을 듣다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심지어 워크 활동가들은 우리가 무엇을 말하거나 연관 지을 수 있는지도 바꾸려 했다.
이렇게 엄격한 기준은 정치적으로 현명하지 않았다. 2018년과 2021년 조사에서 미국인의 과반수는 정치적 올바름이 더 이상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는 유권자들이 "계란 위를 걷는 것 같은" 느낌을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그가 맞았다. 미국인들은 이제 "삶이란 원래 지저분하다"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열성적인 워크 운동가들은 관용과 토론이 아닌 처벌과 재교육을 제시했다. 이는 지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인종 차별이 존재하고, 조지 플로이드의 피살 사건이 끔찍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워크 활동가들이 차별성을 너무 강조하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한 미국 조사에 따르면 '인종차별이 미국 사회에 내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흑인이나 히스패닉보다 백인 진보주의자 그룹에서 더 높았다. 반면 백인 진보주의자가 '열심히 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할 가능성은 흑인이나 히스패닉보다 더 낮았다.
급진적인 사회 변화에는 사회적 토론이 필요했다. 이는 트랜스젠더 문제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아이들에게 사춘기 차단제를 주는 것이 사전 동의와 장기적 건강 위험에 대한 문제를 가져오진 않는가? 예전엔 이런 질문을 하는 것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2024년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가 성정체성 관련 의료 서비스를 검토한 후 사춘기 차단제의 사용이 "약한 증거"에 기반한다고 결론 내릴 때까지.
물론, LGBT+ 운동가들이 이런 토론을 싫어한 이유는 있었다. 숀 페이Shon Faye가 자신의 책에서 주장했듯이, 이들에게는 미디어의 프레임 자체가 억압적일 수 있었다. 트랜스젠더들은 자신들의 존재가 조롱당한다고 느꼈고, 의료계를 불신했다. 트랜스젠더 운동가들의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트랜스젠더를 덜 안전하게 만든다는 견해도 있었다. 심리적으로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의료 서비스가 더욱 제한되는 정책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태도의 결과는 운동가들 스스로에게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트랜스젠더 운동가들은 종종 비판자들을 "트랜스포비아"로 낙인찍었다. 일반 대중은 화려한 LGBT+ 프라이드 무지개 축제에 동참한다 생각하며 트랜스젠더들을 지지했었지만, 이제는 소셜 미디어 상에서 종종 지독한 말싸움을 보게 됐다. (물론 비판자들도 그 난장판이 벌어진데 큰 책임이 있다.) 대의에 온건하게 지지적이었던 많은 사람들도 이런 걸 보고 이제 트랜스젠더 이슈를 그냥 피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결국 법도 표현의 자유의 손을 들어줬다. 2021년 영국 고용재판소는 마야 포스테이터Maya Forstater라는 여성이 젠더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가졌다는 것 때문에 계약이 갱신되지 않았을 때 불법적인 차별을 당했다고 판결했다.
마찬가지로 기업계 내에서도 인종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기업의 기본적인 고용 규칙과 충돌했다. 이전에 고용주들은 두 채용 후보자가 동등할 경우 더 다양성 기준에 맞는 후보를 채용하자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는 항상 의심스러운 판단이었다. 두 후보자가 완전히 동등한 경우는 없으며, 저울을 한쪽으로 기울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20년 무렵, 일부 기업에서는 다양성에 맞는 후보자 채용을 더 빨리 진행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여성이라거나 유대인이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일부 사례에서는 백인들이 명백히 차별 당했다. 2022년 영국 템스밸리 경찰서는 경쟁 과정 없이 아시아계 경찰관을 승진시켰다. 승진 지원 기회를 받지 못한 세 명의 백인 경찰관들은 나중에 차별 관련 소송에서 승소했다. 내부에서 변화를 추진하려던 관리자들과 외부의 워크 활동가들은 자유주의 사회와 일반 대중이 감당할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혁명은 반발에 부딪힌다
2020년대 초반 이렇게 워크 운동이 강렬했던 건 사람들이 느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코로나19로 인한 정서적 스트레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열기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2024년 4월이 되자, 52%의 미국인들은 미국이 흑인들에 대한 과거의 차별을 보상하기 위해 할만큼 했다고 생각하게 됐다. 사회적 담론은 이제 경제와 이민자라는 주제로 옮겨갔다.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워크 정신 바이러스(woke mind virus)"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실제로 워크 운동의 부상과 몰락을 미국 정치 상황과 분리하기는 어렵다. 이번 달, 저커버그가 메타의 다양성 목표를 철회하고 사용자들이 "게이들은 괴물이다"와 같은 글도 올릴 수 있도록 콘텐츠 관리 정책을 변경했을 때, 메타는 이렇게 설명했다: "TV나 의회 연단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을 우리 플랫폼에서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비겁한 말이지만, 어쨌든 변화하는 정치적 상황은 워크 활동가들과 다양성 관리자들의 요구에 맞서기 위한 유용한 구실이 됐다.
워크 운동의 미래는
만약 진보주의자들이 보편적 아이디어와 자유로운 토론에 대해 그렇게 회의적이지 않았다면 워크 혁명은 더 오래 지속됐을 수 있었다. 모든 유권자들이 워크 운동을 맹렬히 싫어하는 건 아니다. 사실 트랜스젠더 이슈는 영국 유권자들의 중요 고려사항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영국인의 과반수는 파르테논 부조를 그리스로 반환하는 것과 같은 워크 아이디어는 지지한다. 미국인의 3분의 2도 DEI(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프로그램을 지지한다. 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한때 지지했던 이런 운동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만약 워크 활동가들이 그들의 가장 냉소적인 반대자들만큼 잘 조직되어 있었다면 이런 위기는 더 잘 관리될 수 있었을 것이다. BLM 운동은 좋은 지도자가 부족하고 조직이 부실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워크 활동가들이 기부금을 부정하게 사용한 혐의로 구속된 바 있다.) 진보주의자들은 가장 영향력 있는 소셜 네트워크였던 트위터도 잃었다. 트위터 공간은 어뷰저들로 인해 악화됐고, 일론 머스크에 의해 점령됐다.
만약 CRT 이론의 창시자 데릭 벨이 살아있었다면, 그는 이러한 사회적 반발이 '인종차별은 항상 자신을 재확립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워크 혁명은 진보를 믿는 사람들에게 많은 승리를 가져오기도 했다. 워크 운동은 정치적 올바름으로의 전환보다 더 높은 목표를 가졌고, 인종·성별·성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발전시켰다. 케임브리지 대학의 무니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기업 내에서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다양한 인재 풀을 활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진보는 결코 선형적이지 않죠."
워크와 다양성 캠페인의 운명은 기후 정책의 운명과도 같다. 기후 행동이 정치적으로 덜 유행하게 됐다고 해서 덜 시급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말이나 트랜스젠더 권리가 더 이상 시대정신이 아니라고 해서 경제적, 사회적 격차가 해소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침묵은 폭력이다"라고 주장했던 진보 활동가들의 생각은 틀렸다. 하지만 침묵이 최선의 전략인 것도 아니다.
오늘날 많은 진보주의자들은 목소리를 내야할 필요가 적어졌다고 느낀다. 이들의 침묵이 다시 시작됐다. 이러한 운동들이 다시 일어서려면, 반대자들의 비판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한계도 극복해야 할 것이다.
© The Financial Times Limited 2024. All Rights Reserved. Not to be redistributed, copied or modified in any way. Okhotsk is solely responsible for providing this translation and the Financial Times Limited does not accept any liability for the accuracy or quality of the translation. 파이낸셜타임스와 라이센스 계약 하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번역에 대한 책임은 오호츠크에게 있습니다.
사진: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