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이 운전하는 차는 싫어요" 6회 그랜드슬램 챔피언이자 파산 면책을 받지 못한 남자가 호텔 발렛에게 팁을 주고 그의 포르쉐 운전석으로 향하며 말했다. 선수 시절 때도 베커는 경기장을 오갈 때 직접 차를 운전했다. "조코비치나 페더러가 그렇게 하는 걸 상상할 수 있어요?"
나는 이해한다고 말했다. 당신은 남을 통제하고 싶어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아니라고. 그저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겨지는 게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할 뿐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뮌헨을 차로 다녔다. 보리스 베커와 내가. 한 달 전 그 도시는 눈으로 덮여 있었고 그는 감옥에 있었다. 이제 둘 다 거의 맑아졌다.
우리는 유로스포츠 TV의 평범한 스튜디오 밖에 주차했다. 55세인 그는 천천히 계단을 오르며 난간을 꽉 잡았다. 수 년 간의 강한 서브로 닳은 그의 왼쪽 무릎은 이제 금속이다. 양쪽 엉덩이와 오른쪽 발목도. 공항 스캐너 통과는 "시끄러운 소음”을 의미한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10년 전엔 몸이 더 나빴다.
베커는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회색 소파에 앉았다. 머리카락은 짧게 자르고 다리는 느슨하게 벌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가 떠난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데 동의한다. 적어도 독일 위성 TV의 이 구석에서는, 보리스 베커가 돌아왔다.
때때로 그는 자신이 "어디 가 있었다"고 말한다. 한 번은 그의 "휴가"에 대해 농담을 했다. 하지만 이제 베커는 돌려 말하기엔 너무 늙었다. 그는 안에, 즉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2022년 4월, 그는 2년 반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350만 유로의 대출을 상환할 수 없어서다. 배심원단은 그가 파산 규정을 4번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사는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신고하지 않았고 사업자 계좌의 42만7000유로를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점을.
그건 유명인의 몰락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일 중 하나였다. 베커는 남자 부문 최연소 윔블던 우승자였다. 상금으로만 2500만달러를 벌었다. 그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운동선수였고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일인이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는 윔블던에서 서브(serve)를 넣다가 감옥에서 복역(serve)하는 신세가 됐다. 수감자 A2923EV로, 처음에는 런던 원즈워스 감옥에서. 그는 전에도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독일에서의 세무 과태료 사건, 아내가 임신해서 병원에 있던 동안 임신시킨 아이, 그 아내와의 이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외교관이 되려는 우스꽝스러운 시도. 존 맥켄로가 한때 말했듯 베커는 명성 때문에 너무 많은 걸 감당해야 했다. 베커만큼 많은 걸 감당해야 하던 선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집행유예가 왔다. 2022년 말 영국 교도소들이 가득 차면서 베커는 추방과 조기 석방 대상이 되었다. 그는 친구의 개인 제트기를 타고 독일로 돌아갔다.
그러나 수수께끼는 남아있었다. 누가 그렇게 지저분한 판에 들어간 건가? 베커는 BBC 윔블던 중계의 친근한 얼굴이었다. 박식하고, 예의 바르고, 극적일 때도 신사적이었다. 그건 가면이었나?
그는 FT와의 인터뷰에 동의했다. 유죄 판결 이후 첫 번째 영어 인터뷰다. 그는 감옥에서 동료 수감자의 신문 사본을 빌려 보곤 했다. 그는 법정에 쓰고 나왔던 것과 같은 검은 볼캡을 썼다. 그는 뮌헨으로의 복귀를 해리 왕자에게 했던 경고에 빗댔다. "여러분이 어디서 왔는지 잊지 마세요. 거기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결혼이 항상 영원하지는 않아요, 제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는 그렇더군요.”
베커의 하루치 TV 출연이 끝나면 우리는 독일식 레스토랑으로 운전해 간다. 그는 그 식당이 자기 삶에서 가장 많이 찾은 레스토랑일 거라 말한다. 독일로 돌아온 느낌이 이상한가?
"아니요, 놀랍게도 매우 정상적으로 느껴져요. 저는 정말 [감옥에 대한] 플래시백이 별로 없어요.” 라고 그는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은 감옥 안에서 몇 년 보내면 정신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8개월 6일 있었으니까 너무 짧았다고 생각해요."
나는 과거를 묻기 시작했다. "주문부터 끝내는 게 어떨까요?" 그가 말한다. 우리는 노박 조코비치의 식단에 대해 농담을 하는데, 베커는 3년 동안 그의 코치였다. “걔는 종종 너무 극단적이었어요. 내가 ‘너 뭔가 먹어야 돼. 공기만 먹고는…못 산다고!” 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조코비치와 베커
베커는 참치를 선택하고 나는 비건 로스트를 택했다.
우리는 나무 패널로 만든 개인석을 받았다. "감옥이 여기보다 많이 넓지 않아요"라고 그는 말했다. 베커에게 형을 선고한 판사는 그가 "후회가 없고" "겸손이 없다"고 말했다. 이제 베커의 말투는 다르다. " 제가 두 번째 기회를 받았다는 걸 매우 잘 알고 있어요." 그는 유로스포츠, 푸마 그리고 다른 파트너들이 그와 함께 해준 것에 대해 "겸손함"을 느낀다.
안에서, 그는 과거를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 "만약 너무 많이 뒤돌아보고 낙심하고 판사나 배심원이나 하나님이나 다른 누구를 탓한다면 해결책을 얻지 못할 거예요... 테니스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더블 폴트나 놓친 기회들을 잊는 거에요.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걸 할 수 없어요. 오직 매우 좋은 선수들만 지난 일을 지워내고 정말 다음 기회를 기대해요. 제가 지금 그걸 하고 있어요."
그는 어떻게 그걸 배웠나? "원즈워스 감옥은 쉽게 말해서 똥통 같은 곳이에요. 위험해요. 첫 주 후에 저는 여기서의 생활이 생존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만약 제가 옛날만 뒤돌아보며 시간을 보낸다면, 나는 지는 거예요. 매일매일 살아남기 위해 내 모든 에너지가 필요해요. 그래서 내가 지금 정상인 거에요.
"간수들이 열쇠를 가지고 오는 순간 — 그 소리는 다 들려요. 절대 잊지 못할 소음이에요."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 안에서 말 그대로 시간을 죽이고 있어요. 내 경우에는 꽤 정신력이 강하죠. 상상력도 풍부하고, 기억력도 좋아요. 정말 머릿속에서 살아요.” 그는 어떻게 다르게 했어야 할지 생각하느라 스스로 계속 바빴다.
그의 자신감으로 그의 몰락도 설명할 수 있다. 베커는 선수에서 은퇴한 직후인 2001년 첫 번째 아내 바바라와 이혼했다. 그는 값비싼 이혼에 동의했고, 레스토랑 노부의 런던점에서 만든 딸 안나에 대한 양육비로 수백만을 추가로 지불했고, 독일에서의 세금 회피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650만 유로를 지불했다. 10년 후 지불이 밀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아내 릴리의 미용사에게 줄 돈이, 스페인 별장의 정원사들에게 줄 돈이, 자녀들에게 가는 양육비가.
그는 억만장자 존 코드웰로부터 긴급 대출을 받았지만 3개월 내에 상환하지 못했다. 이자율은 25퍼센트까지 치솟았다. 부동산으로 다시 담보를 잡았어야 했는데 그는 그만큼 재빠르지 못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재정 면에서는 정교하지 않다" 그의 변호사는 호소했다. 2017년 베커는 파산 선고를 받았다. 그의 부채는 총 5000만 파운드였다.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죠. 당장은 아니지만 몇 년에 걸쳐서. 비판하는 사람들보다 칭찬하는 사람들 말을 더 듣고 싶고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 형사 유죄 판결을 받았던 건은 "어리석음이었고 순진함이었고 나쁜 조언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요... 나는 침대 밑에 돈을 숨기지 않았어요, 그쵸. 외국 은행 계좌에 돈을 숨기지 않았었어요. 하지만 그 경험에서 배운 것도 있습니다. 내 똥은 내가 치워야 한다는 걸요.”
그는 공정하게 대우받았나? 그는 한숨을 쉰다. "만약 내 이름이 피터 스미스였다면, 윔블던을 17세에 우승하지 않았다면 나는 검찰에게 29개 혐의로 쫓기지 않았을 거에요 [그는 대부분의 혐의에서 무죄를 받았고, 그 중에는 그가 윔블던 트로피를 숨겼다는 혐의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만약 내가 몇몇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그들도 표적을 갖지 않았겠죠. 양쪽 다 문제인 거죠."
그가 감옥에서 특별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간수들과 차를 마셨다거나. "완전 헛소리예요." 그는 자신이 가볍게 넘어갔다고 말한 누군가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했다. "네, 내게는 좋은 미디어 전문 변호사들이 있어요. 그래요. 신문 하나를 고소했습니다, 아니 두 개쯤. (안 좋은 기사가)너무 잦고 너무 많아서!”
나는 에피타이저를 썬다: 사탕무우와 가지가 스테이크 타르타르로 깔끔하게 위장되었다. 베커는 샐러드를 찌른다.
원즈워스 교도소에서 그는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그 덕에 하루에 5시간 동안은 감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걸 원하죠. 감방 안에만 있으면 죽어가니까.” 2주 후 그는 외국인이라 내보내질 거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수감자들에게 물어보세요, 그게 무슨 뜻인지. 10명에게 물으면 10가지 다른 답이 옵니다”
2주 후 그는 옥스포드셔의 헌터콤 교도소로 이송되어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다.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2개월 동안 감방에서 하루 22시간을 보냈어요. 바깥이 시끄러워요. 소리치는 사람들, 문 두드리는 소리, 음악. 나는 살인자들, 마약 딜러들, 인신매매업자들에 둘러싸여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어요! 사기 죄목이라고 안전한 구역에 있는 건 아니더군요. 처음에는 무섭죠, 왜냐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두 사람을 손으로 죽였고 이미 복역 18년째니까요. 상상해봐요! 그 사람이 내 친구가 돼요. 독일 교도소에서는 다르다고 들었지만." 몇 개월 동안 그는 독일에 있는 자녀들에게 전화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스포츠 과학과 철학, 특히 스토아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됐다.
그는 교도소가 사람들을 재활시킨다고 믿을까? "한 마디로, 아니요."
베커에 대한 동정을 보내는 사람들이 넘쳤다. 리버풀 감독 위르겐 클롭이 그를 보러 오고 싶어했지만 교도소는 그의 안전을 우려했다. 조코비치는 베커의 파트너 릴리안 몬테이루와 아이들에게 자신의 경기 무료 티켓을 주었다. 베커의 오랜 독일 라이벌 미하엘 슈티히가 써준 3장 분량의 편지를 포함해 수십 통의 손 편지가 왔다. "진심어리고 감정적이고 친절했어요. 저는 그걸 울면서 읽었습니다. 내가 늘 미워했던 그 놈이 감옥에서 저에게 가장 좋은 편지를 써준 거예요!" 편지들은 그에게 이런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래, 나는 실수를 몇 개 했지만 좋은 일도 몇 개 했을 거야!"
베커는 상투메 프린시페 전 국방장관의 딸인 릴리안에게, 그녀가 자신을 떠나도 이해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어요. 너는 나보다 훨씬 젊으니까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팀이고 함께 해낼 거라고...정말 누가 나를 사랑하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 알게 됐어요."
그는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밝히길 거부한다. "나는 이전 사생활에서 너무 개방적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녀에게 맹세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아무도 모를 거라고요. 이미 몇 년 전에요. 그녀는 공인이 아니거든요. 석사 학위가 몇 개 있고요. 똑똑한 여자에요. 그녀가 나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그녀가 날 사랑하는 건 확실해요." 그는 여전히 릴리와 법적으로 결혼한 상태지만 32세인 릴리안이 "평생의 파트너"라고 말한다.
종교도 베커를 도왔다. "안에서 저는 훨씬 더 종교적이 되었고 그게 나를 정말 붙잡아 줍니다. 감옥 안에서는 범죄자가 되기 정말 쉬워서요.” 금요일 오후 성경 공부가 "하이라이트"였다. 그건 "매우 종교적이었지만 이상한 방식은 아니었어요."
선수 시절 고급 호텔에서 베커는 수면제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감옥에서는 "매트리스가 제 인생에서 가장 작았지만... 저는 아주 잘 잤어요. 잠이 필요했나봐요."
이제 그는 참치 스테이크를 먹고 있고 나는 셀러리악으로 야채 육즙을 닦아내고 있다.
(편집자주: 그가 출소할 때의) 개인 제트기에 관해 베커는 당국이 "저를 치우고 싶어했어요.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합법적인 것은 아니거든요. 헌터콤이나 원즈워스에 너무 많은 시선이 쏠리면 교도소에게 좋지 않아요"라고 주장한다. 그가 무엇을 언급하고 있는가? "말할 수 없어요. 말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어요."
내가 그의 아이들에 대해 묻자, 그는 처음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그의 눈이 빨개진다. 이제 29세인 맏아들 노아와 대화할 때, 그는 독일 언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영어로 말하곤 했다. 하지만 노아와 그의 형제인 엘리아스가 교도소를 방문했을 때는 보호 장치가 없었다. "아이들은 겁을 냈죠. 그리고 제가 겁내지 않는다는 걸 봤어요…어떤 면에서 나는 조금 더 믿음직해졌죠.”
가장 큰 변화는 딸 안나와의 관계다. 그녀는 지금 22세이고 모델이다. "나는 그 아이와 매주 대화하기 위해 감옥까지 가야 했어요.” 왜 전에는 이야기를 안 나눴나? "내가 너무 소심했거나, 그 아이가 너무 소심했거나, 내가 너무 죄책감을 느꼈거나, 그 아이가 불편했을 수 있죠. 모르겠어요." 그것(대화를 나누게 된 것)은 "영구적인 변화입니다." 안나는 TV 프로그램 ‘독일판 스트릭틀리 컴 댄싱’에 나오고 있다. "우리는 안나의 출연료에 대해 조금 이야기했습니다. 안나는 블러핑에 대한 내 조언을 신뢰했어요.”
하지만 그의 네 번째 아이이며 엄마인 릴리와 살고 있는 13세 아마데우스는 런던에 있다. 이제 런던은 그가 갈 수 없는 곳이다. "힘든 일이죠...우리는 이틀에 한 번씩 페이스타임으로 대화해요."
릴리는 최근 양육비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그를 "악마"라고 비난했다. 베커는 파산 제한 때문에 “지불 불가"라고 주장한다. 릴리의 행동은 "진짜 안 쿨해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아이들은 그를 어떻게 볼까? "아빠." 그의 테니스 경력은? "신경 안 쓰죠."
베커를 만나기 전 나는 1985년 윔블던 결승전 영상을 보았다. 다이빙 발리 등 모든 것을. 그가 우승한 후 코트사이드 인터뷰어가 얼굴 말고 다른 곳을 보여달라고 요청한다. "무릎 좀 보세요! 이런 무릎으로 우승한 남자를 본 적이 있나요?” (편집자주: 다이빙 발리를 하느라 무릎이 까져 있다) 독일의 작은 마을 라이멘 출신 소년이 그렇게 공공재가 되었다.
"여전히 소름이 돋죠. 하지만 이 윔블던 동화 속 신동(wunderkind) 이야기는 끝났어요. 그리고 나는 그에 대해 별로 속상하지도 않아요. 계속 그렇게 사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내가 하는 어떤 일도 17세에 윔블던 타이틀을 딴 것과 비교 불가능이에요. 나는 신동이 아니에요. 내가 인정하는 건 ‘이게 끝났다’는 거였어요. 나를 조금만 살게 해 줘요. 내가 최고는 아니지만 최악도 아니에요.”
윔블던 첫 우승 그는 다음 해 타이틀을 방어했다. "훨씬 더 큰 성취였지만 덜 인정받았어요!" 그는 이반 렌들을 밀어내고 세계 1위가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잊어요. 최고가 되려면 조금 미쳐야 해요. 보통에서 벗어난 일들을 해야 해요. 17세와 18세에 윔블던을 우승하려면, 정신이 이상해야 해요. 그걸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려면요. 맞아요. 그래서 나는 조금 미쳤고 조금 정신 나갔죠."
그는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을 우상화했고 지배적인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기를 갈망했다. 성공을 찾고 나서 여자들도 찾았고, 그리고 집중력을 잃었다. 만약 베커가 20세나 23세에 첫 번째 타이틀을 우승했다면 그 다음 일들이 더 순조로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조코비치, 라파 나달, 로저 페더러의 끈질긴 추진력을 가진 적이 없었다. "제가 그랜드슬램을 22개 우승할 수 있었다 해도, 내가 그걸 왜 원해야 하죠?” 테니스는 건축가의 아들에게 충분하지 않았다. "때로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요. 그럴 가치가 없었으니까."
베커라면 조코비치, 페더러, 나달에게 어떻게 도전했을까? "저는 라커룸에서 맞섰겠죠. 걔네들 아내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하고." 맥켄로, 렌들, 패트 캐시 같은 그의 라이벌들은 "더 개인주의적"이었다. "우리를 떼어놔야 했어요. 아니면 주먹다짐이 있었을 테니까요." 오늘날의 선수들은 서로에게 너무 예의를 차린다고 그는 말한다. "경기하기도 전에 지는 거에요! 매치가 끝나면 모두 서로 껴안고요.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 알 수가 없어."
나는 화제를 돈으로 돌렸다. 돈은 어디로 갔을까? "저는 기사에 나온 만큼 많이 벌지 못했어요. 상금만 봐도 그래요.” 2500만 달러? "그거 세금과 비용 청구 전이에요!” 그의 변호사는 그의 선수 생활 수입이 5000만 달러라고 말했다.
"나는 부주의하지 않았어요. 자동차 딜러십이나 부동산처럼 좋은 투자들이 있었어요. 나는 현금 거지였고 자산 부자였어요. 이혼을 하고, 또 한 번 합니다. 그럼 (돈이)금방 사라져요! 내가 페라리나 골드 롤렉스에 돈을 쓴 게 아니에요. 내가 가난했던 것도 아니고요. 수입은 많았지만 지출도 많았습니다. 나는 세 가족을 부양했어요."
그는 나에게 억만장자가 되어 축구팀을 사는 게 자기 꿈이었다고 말해준다. 나이지리아의 석유에 투자해 1000만 파운드를 날렸다는 보도는 부인한다. 그는 마요르카에 있는 침실 12개짜리 집을 샀고 윔블던 집의 월세로는 2만2000파운드를 썼다. 선물을 줄 때는 “아마 지나치게 후했다.” 재판 중에 그가 해로즈(Harrods, 런던의 상징적인 고급 백화점)에 들어가는 게 목격되기도 했다. "그 사진은 진짜 잘못됐어요. 그때는 파파라치를 피하고 있었어요. 나는 해로즈에서 물건을 산 적 없어요.”
실형을 선고받은 무단 지출 건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 돈은 전 아내 양육비 지급, 당시 아내 부양, 집세, 의사에게 지불한 내 무릎 수술비, 그리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조언한 변호사의 수임료로 썼어요.”
"영국 사법제도는 잔혹해요. 모든 사람에게! 나를 포함해서요. 저는 350만 유로 대출을 상환하는 데 실패했다고 1600만 유로쯤을 갚았어요. 그에 대한 내 의견은 묻지 마세요. 다시 체포될 수도 있으니까... 나는 독일의 집, 런던의 아파트, 마요르카의 집을 날렸어요."
어린 베커와 누나
교훈을 얻었을까? "무슨 교훈을 배워야 하죠? 돈 관리 조심하기. 그래요. 더 나은 조언자가 있었어야 했을까? 그래요…내가 테니스에서 최고조에 있었을 때, 그 경기 중에 누구 말을 듣죠? 나 자신의 말을 듣죠. 이제는 내 자신의 상식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거에요. 수십 명의 조언자나 변호사들 말 대신. 사실 나는 숫자를 꽤 잘 봐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나중에 혐의와 복역 기간에 대해 그가 말한 수치를 확인한 뒤 나는 그 숫자들이 틀렸음을 찾아냈다. 그는 29개가 아닌 24개의 혐의를 받았고 7개월 17일 동안 복역했다.
이제 릴리안이 베커를 책임지는가? 그는 성낸다. “내가 그렇게 허락한 거에요. 그녀가 옳았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에요. 내가 선수일 때 그녀가 있었다면 나는 더 많이 우승했을 거에요. 그녀가 나를 이끌어서 내가 굶주려야 할 때 굶주리게 만들어 주었을 테니까요.”
2022년 그의 변호사는 베커가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고" 경력에서 재기할 가능성도 없다고 호소했다. 시대가 변했다. 채권단과 합의한 지급액에서 약 40만 파운드쯤 덜 냈어도 그는 올해 파산에서 벗어날 예정이다. "제가 돈을 벌기 시작했냐고요? 그렇죠." 그의 새로운 조언자들은 "보리스 베커라는 브랜드가 아마 오랫동안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울 거라고" 본다.
감옥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일 수도 있다. 미국의 TV 구루 마사 스튜어트처럼. 그는 출소 이후 테니스 라켓을 잡지 않았다. "꼭 해야 할 때만 해요." 실수할까봐 여자 테니스 해설도 피한다. 하지만 그는 테니스를 사랑하고 TV를 사랑한다. "이미 토크쇼 시리즈 전체 진행을 논의중입니다. 보리스 베커가 아놀드 슈왈제네거나 마이크 타이슨, 마이클 조던을 만납니다." Apple TV+는 알렉스 기브니가 감독한 보리스 베커의 인생 다큐멘터리를 스트리밍할 예정이다.
그는 정치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딤 자하위의 세금 문제를 포함해 영국 의회 의원들의 실패에 대해 한 방 먹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더 책임을 져야 해요!"라고 그는 아이러니 없이 외친다. 베커의 자녀 4명은 혼혈이고, 그는 오랫동안 인종차별에 반대해 왔다. "저는 감옥에서 많은 인종차별주의자들, 진짜 나치들을 만났어요. 감옥에서 백인이 흑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의 생각이 왜 완전히 어리석은지 설명한 적도 많아요.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라는 모대륙에서 왔어요. 기술적으로 당신도 0.01퍼센트는 흑인이에요. 인종차별의 전체 요점이 무너지죠." (감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나쁜 놈들”에게 보호받았다. “그 놈들이 나를 좋아하니까.” 그 사실이 도움이 되었다). 베커의 어머니는 현재 체코 공화국인 오스트라바 출신 난민이었다.
"우리는 외국인들을 대할 때 조심해야 해요…우리 모두 조금씩은 외국인이잖아요? 그는 무엇을 말하든 심오하게 들리게 만드는 좋은 해설자의 재주를 가지고 있다.
지금 베커는 윔블던에서 해설할 수 없다. "돌아가고 싶죠... 그쪽 사람들과 연락하고 있고 거기서도 내가 돌아오길 원해요. 돌아갈 수 있는 때가 오면요. 올해는 안 될 거고…문이 닫히지는 않았어요.”
그는 영국 입국 허가를 신청할 수 있지만 다시 수감되는 게 걱정이라고 말한다. "제가 2024년 10월까지 가석방 상태이니까, 위험을 감수할까요?... 나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만약 운 나쁜 일이 생기면, 그게 펍에서든, 잘못된 친구를 만나서든, 아니면 전처가 광분하든. 개 같은 일이 생길 수 있어요. 다들 말해요. ‘보리스, 리스크를 감수하지 마.’ 나는 그의 진짜 두려움이 올 잉글랜드 클럽(편집자주: 윔블던 개최 단체)에게 외면당하는 건지 궁금하다. 그는 주장한다. "감옥 생활은 개 같은 생활이에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베커는 독일 세금 사건 이후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이번에는 왜 다른가? "한번 더, 그게 뭐였는지 확실히 해야죠…우리 모두 세금 문제로 고생해요. 그리고 돈이 많아질수록 일이 복잡해지고요.” 그는 2022년으로 돌아가는데, 이제는 덜 뉘우친다. "배심원들... 절반이 30세 미만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이 사건을 진짜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계산서를 지불하고 대화를 계속하려 하지만, 계산 실수 때문에 베커 스타일로 팁을 30퍼센트나 주게 되었다. 파산, 생각보다 쉽다.
나는 이제 베커와 간간이 8시간을 보냈다. 그는 내가 만났던 다른 유명인들보다 이야기 나누기 쉽다. 나에게 친절하고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종잡을 수 없기도 하다. 코트에서 그는 패배를 증오했다. 만약 최근의 실패 때문에 깊은 고통을 받았다면 그는 그 고통을 잘 숨기고 있다. “인정하자, 인정하자, 인정하자.”
유명인을 숭배하는 문화는 회개하는 스타들의 이야기도 키워낸다. 눈물어린 후회. 하지만 테니스가 베커에게 또 다른 선택지를 가르쳤다는 생각이 든다. 망각을 통한 구원이다. 당신은 발리를 위해 다이빙할 수 있고, 되든 안 되든, 관중은 응원해줄 것이다. 한 세트, 두 세트 뒤질 수 있다. 상대보다 더 잘 플레이하면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 베커는 고개를 끄덕인다. "저는 아직도 게임하고 있어요. 그냥 더 잘 하는 거에요. 더 잘 해야 하고요.”
자신감이 그의 장점이다. 자신감이 그의 약점이다. 17세에 세상을 정복하면 자신에게 한계가 있다는 걸 믿지 못한다. 우리는 그의 포르쉐로 다시 걸어가고 그는 또 다른 호텔 발렛에게 후한 팁을 준다. 나는 보리스 베커와의 드라이브를 즐겼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헨리 맨스는 FT의 피처 라이터다.
(편집자주: 마지막 문단 ‘나는 보리스 베커와의 드라이브를 즐겼다.’의 원문은 I enjoyed being taken for a ride by Boris Becker. ‘take for a ride’는 ‘태워준다’는 직역 외 ‘속다’ ‘이용당하다’라는 숙어로도 씀. 즉 이 문장은 ‘나는 그의 말에 즐겁게 속아주었다’라는 중의적 의미로 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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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ch with FT: 보리스 베커
Henry Mance
Feb 23 2023
레스토랑 캐퍼 Käfer
Prinzregentenstrasse 73, 81675 Munich
생수 2병 €23.80
양상추 샐러드, 벨퍼 크놀레 치즈와 함께 €21
참다랑어 €49
새싹 시금치 €9
겨울 채소 €9
가지, 사탕무, 시메지 버섯의 비건 타르타르 €21
포토벨로 버섯과 셀러리악의 일요일 로스트 €29
더블 에스프레소 2잔 €15.60
서비스료 포함 총액 €230
(편집자주: 이 금액대로라면 팁만 €52.6. ‘베커 스타일’ 팁)
"나는 남이 운전하는 차는 싫어요" 6회 그랜드슬램 챔피언이자 파산 면책을 받지 못한 남자가 호텔 발렛에게 팁을 주고 그의 포르쉐 운전석으로 향하며 말했다. 선수 시절 때도 베커는 경기장을 오갈 때 직접 차를 운전했다. "조코비치나 페더러가 그렇게 하는 걸 상상할 수 있어요?"
나는 이해한다고 말했다. 당신은 남을 통제하고 싶어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아니라고. 그저 다른 사람들의 손에 맡겨지는 게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할 뿐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뮌헨을 차로 다녔다. 보리스 베커와 내가. 한 달 전 그 도시는 눈으로 덮여 있었고 그는 감옥에 있었다. 이제 둘 다 거의 맑아졌다.
우리는 유로스포츠 TV의 평범한 스튜디오 밖에 주차했다. 55세인 그는 천천히 계단을 오르며 난간을 꽉 잡았다. 수 년 간의 강한 서브로 닳은 그의 왼쪽 무릎은 이제 금속이다. 양쪽 엉덩이와 오른쪽 발목도. 공항 스캐너 통과는 "시끄러운 소음”을 의미한다.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10년 전엔 몸이 더 나빴다.
베커는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회색 소파에 앉았다. 머리카락은 짧게 자르고 다리는 느슨하게 벌리고. 모든 사람들이 그가 떠난 적이 없는 것 같다는 데 동의한다. 적어도 독일 위성 TV의 이 구석에서는, 보리스 베커가 돌아왔다.
때때로 그는 자신이 "어디 가 있었다"고 말한다. 한 번은 그의 "휴가"에 대해 농담을 했다. 하지만 이제 베커는 돌려 말하기엔 너무 늙었다. 그는 안에, 즉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
2022년 4월, 그는 2년 반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350만 유로의 대출을 상환할 수 없어서다. 배심원단은 그가 파산 규정을 4번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특히 그의 어머니가 사는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신고하지 않았고 사업자 계좌의 42만7000유로를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는 점을.
그건 유명인의 몰락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일 중 하나였다. 베커는 남자 부문 최연소 윔블던 우승자였다. 상금으로만 2500만달러를 벌었다. 그는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운동선수였고 영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일인이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그는 윔블던에서 서브(serve)를 넣다가 감옥에서 복역(serve)하는 신세가 됐다. 수감자 A2923EV로, 처음에는 런던 원즈워스 감옥에서. 그는 전에도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독일에서의 세무 과태료 사건, 아내가 임신해서 병원에 있던 동안 임신시킨 아이, 그 아내와의 이혼,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외교관이 되려는 우스꽝스러운 시도. 존 맥켄로가 한때 말했듯 베커는 명성 때문에 너무 많은 걸 감당해야 했다. 베커만큼 많은 걸 감당해야 하던 선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집행유예가 왔다. 2022년 말 영국 교도소들이 가득 차면서 베커는 추방과 조기 석방 대상이 되었다. 그는 친구의 개인 제트기를 타고 독일로 돌아갔다.
그러나 수수께끼는 남아있었다. 누가 그렇게 지저분한 판에 들어간 건가? 베커는 BBC 윔블던 중계의 친근한 얼굴이었다. 박식하고, 예의 바르고, 극적일 때도 신사적이었다. 그건 가면이었나?
그는 FT와의 인터뷰에 동의했다. 유죄 판결 이후 첫 번째 영어 인터뷰다. 그는 감옥에서 동료 수감자의 신문 사본을 빌려 보곤 했다. 그는 법정에 쓰고 나왔던 것과 같은 검은 볼캡을 썼다. 그는 뮌헨으로의 복귀를 해리 왕자에게 했던 경고에 빗댔다. "여러분이 어디서 왔는지 잊지 마세요. 거기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결혼이 항상 영원하지는 않아요, 제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는 그렇더군요.”
베커의 하루치 TV 출연이 끝나면 우리는 독일식 레스토랑으로 운전해 간다. 그는 그 식당이 자기 삶에서 가장 많이 찾은 레스토랑일 거라 말한다. 독일로 돌아온 느낌이 이상한가?
"아니요, 놀랍게도 매우 정상적으로 느껴져요. 저는 정말 [감옥에 대한] 플래시백이 별로 없어요.” 라고 그는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은 감옥 안에서 몇 년 보내면 정신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8개월 6일 있었으니까 너무 짧았다고 생각해요."
나는 과거를 묻기 시작했다. "주문부터 끝내는 게 어떨까요?" 그가 말한다. 우리는 노박 조코비치의 식단에 대해 농담을 하는데, 베커는 3년 동안 그의 코치였다. “걔는 종종 너무 극단적이었어요. 내가 ‘너 뭔가 먹어야 돼. 공기만 먹고는…못 산다고!” 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조코비치와 베커
베커는 참치를 선택하고 나는 비건 로스트를 택했다.
우리는 나무 패널로 만든 개인석을 받았다. "감옥이 여기보다 많이 넓지 않아요"라고 그는 말했다. 베커에게 형을 선고한 판사는 그가 "후회가 없고" "겸손이 없다"고 말했다. 이제 베커의 말투는 다르다. " 제가 두 번째 기회를 받았다는 걸 매우 잘 알고 있어요." 그는 유로스포츠, 푸마 그리고 다른 파트너들이 그와 함께 해준 것에 대해 "겸손함"을 느낀다.
안에서, 그는 과거를 수용하는 법을 배웠다. "만약 너무 많이 뒤돌아보고 낙심하고 판사나 배심원이나 하나님이나 다른 누구를 탓한다면 해결책을 얻지 못할 거예요... 테니스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더블 폴트나 놓친 기회들을 잊는 거에요. 대부분의 선수들은 그걸 할 수 없어요. 오직 매우 좋은 선수들만 지난 일을 지워내고 정말 다음 기회를 기대해요. 제가 지금 그걸 하고 있어요."
그는 어떻게 그걸 배웠나? "원즈워스 감옥은 쉽게 말해서 똥통 같은 곳이에요. 위험해요. 첫 주 후에 저는 여기서의 생활이 생존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만약 제가 옛날만 뒤돌아보며 시간을 보낸다면, 나는 지는 거예요. 매일매일 살아남기 위해 내 모든 에너지가 필요해요. 그래서 내가 지금 정상인 거에요.
"간수들이 열쇠를 가지고 오는 순간 — 그 소리는 다 들려요. 절대 잊지 못할 소음이에요."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 안에서 말 그대로 시간을 죽이고 있어요. 내 경우에는 꽤 정신력이 강하죠. 상상력도 풍부하고, 기억력도 좋아요. 정말 머릿속에서 살아요.” 그는 어떻게 다르게 했어야 할지 생각하느라 스스로 계속 바빴다.
그의 자신감으로 그의 몰락도 설명할 수 있다. 베커는 선수에서 은퇴한 직후인 2001년 첫 번째 아내 바바라와 이혼했다. 그는 값비싼 이혼에 동의했고, 레스토랑 노부의 런던점에서 만든 딸 안나에 대한 양육비로 수백만을 추가로 지불했고, 독일에서의 세금 회피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650만 유로를 지불했다. 10년 후 지불이 밀리기 시작했다. 두 번째 아내 릴리의 미용사에게 줄 돈이, 스페인 별장의 정원사들에게 줄 돈이, 자녀들에게 가는 양육비가.
그는 억만장자 존 코드웰로부터 긴급 대출을 받았지만 3개월 내에 상환하지 못했다. 이자율은 25퍼센트까지 치솟았다. 부동산으로 다시 담보를 잡았어야 했는데 그는 그만큼 재빠르지 못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재정 면에서는 정교하지 않다" 그의 변호사는 호소했다. 2017년 베커는 파산 선고를 받았다. 그의 부채는 총 5000만 파운드였다.
"모든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되죠. 당장은 아니지만 몇 년에 걸쳐서. 비판하는 사람들보다 칭찬하는 사람들 말을 더 듣고 싶고요."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입장을 고수한다. 형사 유죄 판결을 받았던 건은 "어리석음이었고 순진함이었고 나쁜 조언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요... 나는 침대 밑에 돈을 숨기지 않았어요, 그쵸. 외국 은행 계좌에 돈을 숨기지 않았었어요. 하지만 그 경험에서 배운 것도 있습니다. 내 똥은 내가 치워야 한다는 걸요.”
그는 공정하게 대우받았나? 그는 한숨을 쉰다. "만약 내 이름이 피터 스미스였다면, 윔블던을 17세에 우승하지 않았다면 나는 검찰에게 29개 혐의로 쫓기지 않았을 거에요 [그는 대부분의 혐의에서 무죄를 받았고, 그 중에는 그가 윔블던 트로피를 숨겼다는 혐의도 있었다]. 나는 그들의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였어요. 하지만 만약 내가 몇몇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그들도 표적을 갖지 않았겠죠. 양쪽 다 문제인 거죠."
그가 감옥에서 특별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간수들과 차를 마셨다거나. "완전 헛소리예요." 그는 자신이 가볍게 넘어갔다고 말한 누군가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했다. "네, 내게는 좋은 미디어 전문 변호사들이 있어요. 그래요. 신문 하나를 고소했습니다, 아니 두 개쯤. (안 좋은 기사가)너무 잦고 너무 많아서!”
나는 에피타이저를 썬다: 사탕무우와 가지가 스테이크 타르타르로 깔끔하게 위장되었다. 베커는 샐러드를 찌른다.
원즈워스 교도소에서 그는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그 덕에 하루에 5시간 동안은 감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걸 원하죠. 감방 안에만 있으면 죽어가니까.” 2주 후 그는 외국인이라 내보내질 거라는 말을 들었다. "다른 수감자들에게 물어보세요, 그게 무슨 뜻인지. 10명에게 물으면 10가지 다른 답이 옵니다”
2주 후 그는 옥스포드셔의 헌터콤 교도소로 이송되어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다.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저는 2개월 동안 감방에서 하루 22시간을 보냈어요. 바깥이 시끄러워요. 소리치는 사람들, 문 두드리는 소리, 음악. 나는 살인자들, 마약 딜러들, 인신매매업자들에 둘러싸여 있었어요. 그런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어요! 사기 죄목이라고 안전한 구역에 있는 건 아니더군요. 처음에는 무섭죠, 왜냐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두 사람을 손으로 죽였고 이미 복역 18년째니까요. 상상해봐요! 그 사람이 내 친구가 돼요. 독일 교도소에서는 다르다고 들었지만." 몇 개월 동안 그는 독일에 있는 자녀들에게 전화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스포츠 과학과 철학, 특히 스토아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됐다.
그는 교도소가 사람들을 재활시킨다고 믿을까? "한 마디로, 아니요."
베커에 대한 동정을 보내는 사람들이 넘쳤다. 리버풀 감독 위르겐 클롭이 그를 보러 오고 싶어했지만 교도소는 그의 안전을 우려했다. 조코비치는 베커의 파트너 릴리안 몬테이루와 아이들에게 자신의 경기 무료 티켓을 주었다. 베커의 오랜 독일 라이벌 미하엘 슈티히가 써준 3장 분량의 편지를 포함해 수십 통의 손 편지가 왔다. "진심어리고 감정적이고 친절했어요. 저는 그걸 울면서 읽었습니다. 내가 늘 미워했던 그 놈이 감옥에서 저에게 가장 좋은 편지를 써준 거예요!" 편지들은 그에게 이런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그래, 나는 실수를 몇 개 했지만 좋은 일도 몇 개 했을 거야!"
베커는 상투메 프린시페 전 국방장관의 딸인 릴리안에게, 그녀가 자신을 떠나도 이해할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어요. 너는 나보다 훨씬 젊으니까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팀이고 함께 해낼 거라고...정말 누가 나를 사랑하고 누가 그렇지 않은지 알게 됐어요."
그는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밝히길 거부한다. "나는 이전 사생활에서 너무 개방적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녀에게 맹세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만났는지 아무도 모를 거라고요. 이미 몇 년 전에요. 그녀는 공인이 아니거든요. 석사 학위가 몇 개 있고요. 똑똑한 여자에요. 그녀가 나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는 몰라도 그녀가 날 사랑하는 건 확실해요." 그는 여전히 릴리와 법적으로 결혼한 상태지만 32세인 릴리안이 "평생의 파트너"라고 말한다.
종교도 베커를 도왔다. "안에서 저는 훨씬 더 종교적이 되었고 그게 나를 정말 붙잡아 줍니다. 감옥 안에서는 범죄자가 되기 정말 쉬워서요.” 금요일 오후 성경 공부가 "하이라이트"였다. 그건 "매우 종교적이었지만 이상한 방식은 아니었어요."
선수 시절 고급 호텔에서 베커는 수면제에 의존해야 했다. 하지만 감옥에서는 "매트리스가 제 인생에서 가장 작았지만... 저는 아주 잘 잤어요. 잠이 필요했나봐요."
이제 그는 참치 스테이크를 먹고 있고 나는 셀러리악으로 야채 육즙을 닦아내고 있다.
(편집자주: 그가 출소할 때의) 개인 제트기에 관해 베커는 당국이 "저를 치우고 싶어했어요. 교도소에서 일어나는 일이 모두 합법적인 것은 아니거든요. 헌터콤이나 원즈워스에 너무 많은 시선이 쏠리면 교도소에게 좋지 않아요"라고 주장한다. 그가 무엇을 언급하고 있는가? "말할 수 없어요. 말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어요."
내가 그의 아이들에 대해 묻자, 그는 처음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그의 눈이 빨개진다. 이제 29세인 맏아들 노아와 대화할 때, 그는 독일 언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영어로 말하곤 했다. 하지만 노아와 그의 형제인 엘리아스가 교도소를 방문했을 때는 보호 장치가 없었다. "아이들은 겁을 냈죠. 그리고 제가 겁내지 않는다는 걸 봤어요…어떤 면에서 나는 조금 더 믿음직해졌죠.”
가장 큰 변화는 딸 안나와의 관계다. 그녀는 지금 22세이고 모델이다. "나는 그 아이와 매주 대화하기 위해 감옥까지 가야 했어요.” 왜 전에는 이야기를 안 나눴나? "내가 너무 소심했거나, 그 아이가 너무 소심했거나, 내가 너무 죄책감을 느꼈거나, 그 아이가 불편했을 수 있죠. 모르겠어요." 그것(대화를 나누게 된 것)은 "영구적인 변화입니다." 안나는 TV 프로그램 ‘독일판 스트릭틀리 컴 댄싱’에 나오고 있다. "우리는 안나의 출연료에 대해 조금 이야기했습니다. 안나는 블러핑에 대한 내 조언을 신뢰했어요.”
하지만 그의 네 번째 아이이며 엄마인 릴리와 살고 있는 13세 아마데우스는 런던에 있다. 이제 런던은 그가 갈 수 없는 곳이다. "힘든 일이죠...우리는 이틀에 한 번씩 페이스타임으로 대화해요."
릴리는 최근 양육비를 지불하지 않는다고 그를 "악마"라고 비난했다. 베커는 파산 제한 때문에 “지불 불가"라고 주장한다. 릴리의 행동은 "진짜 안 쿨해요"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아이들은 그를 어떻게 볼까? "아빠." 그의 테니스 경력은? "신경 안 쓰죠."
베커를 만나기 전 나는 1985년 윔블던 결승전 영상을 보았다. 다이빙 발리 등 모든 것을. 그가 우승한 후 코트사이드 인터뷰어가 얼굴 말고 다른 곳을 보여달라고 요청한다. "무릎 좀 보세요! 이런 무릎으로 우승한 남자를 본 적이 있나요?” (편집자주: 다이빙 발리를 하느라 무릎이 까져 있다) 독일의 작은 마을 라이멘 출신 소년이 그렇게 공공재가 되었다.
"여전히 소름이 돋죠. 하지만 이 윔블던 동화 속 신동(wunderkind) 이야기는 끝났어요. 그리고 나는 그에 대해 별로 속상하지도 않아요. 계속 그렇게 사는 건 불가능하니까요. 내가 하는 어떤 일도 17세에 윔블던 타이틀을 딴 것과 비교 불가능이에요. 나는 신동이 아니에요. 내가 인정하는 건 ‘이게 끝났다’는 거였어요. 나를 조금만 살게 해 줘요. 내가 최고는 아니지만 최악도 아니에요.”
윔블던 첫 우승 그는 다음 해 타이틀을 방어했다. "훨씬 더 큰 성취였지만 덜 인정받았어요!" 그는 이반 렌들을 밀어내고 세계 1위가 되었다. "사람들은 종종 잊어요. 최고가 되려면 조금 미쳐야 해요. 보통에서 벗어난 일들을 해야 해요. 17세와 18세에 윔블던을 우승하려면, 정신이 이상해야 해요. 그걸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려면요. 맞아요. 그래서 나는 조금 미쳤고 조금 정신 나갔죠."
그는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을 우상화했고 지배적인 아버지로부터 도망치기를 갈망했다. 성공을 찾고 나서 여자들도 찾았고, 그리고 집중력을 잃었다. 만약 베커가 20세나 23세에 첫 번째 타이틀을 우승했다면 그 다음 일들이 더 순조로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조코비치, 라파 나달, 로저 페더러의 끈질긴 추진력을 가진 적이 없었다. "제가 그랜드슬램을 22개 우승할 수 있었다 해도, 내가 그걸 왜 원해야 하죠?” 테니스는 건축가의 아들에게 충분하지 않았다. "때로 나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요. 그럴 가치가 없었으니까."
베커라면 조코비치, 페더러, 나달에게 어떻게 도전했을까? "저는 라커룸에서 맞섰겠죠. 걔네들 아내에 대해서 한 마디씩 하고." 맥켄로, 렌들, 패트 캐시 같은 그의 라이벌들은 "더 개인주의적"이었다. "우리를 떼어놔야 했어요. 아니면 주먹다짐이 있었을 테니까요." 오늘날의 선수들은 서로에게 너무 예의를 차린다고 그는 말한다. "경기하기도 전에 지는 거에요! 매치가 끝나면 모두 서로 껴안고요.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 알 수가 없어."
나는 화제를 돈으로 돌렸다. 돈은 어디로 갔을까? "저는 기사에 나온 만큼 많이 벌지 못했어요. 상금만 봐도 그래요.” 2500만 달러? "그거 세금과 비용 청구 전이에요!” 그의 변호사는 그의 선수 생활 수입이 5000만 달러라고 말했다.
"나는 부주의하지 않았어요. 자동차 딜러십이나 부동산처럼 좋은 투자들이 있었어요. 나는 현금 거지였고 자산 부자였어요. 이혼을 하고, 또 한 번 합니다. 그럼 (돈이)금방 사라져요! 내가 페라리나 골드 롤렉스에 돈을 쓴 게 아니에요. 내가 가난했던 것도 아니고요. 수입은 많았지만 지출도 많았습니다. 나는 세 가족을 부양했어요."
그는 나에게 억만장자가 되어 축구팀을 사는 게 자기 꿈이었다고 말해준다. 나이지리아의 석유에 투자해 1000만 파운드를 날렸다는 보도는 부인한다. 그는 마요르카에 있는 침실 12개짜리 집을 샀고 윔블던 집의 월세로는 2만2000파운드를 썼다. 선물을 줄 때는 “아마 지나치게 후했다.” 재판 중에 그가 해로즈(Harrods, 런던의 상징적인 고급 백화점)에 들어가는 게 목격되기도 했다. "그 사진은 진짜 잘못됐어요. 그때는 파파라치를 피하고 있었어요. 나는 해로즈에서 물건을 산 적 없어요.”
실형을 선고받은 무단 지출 건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 돈은 전 아내 양육비 지급, 당시 아내 부양, 집세, 의사에게 지불한 내 무릎 수술비, 그리고 그렇게 해도 된다고 조언한 변호사의 수임료로 썼어요.”
"영국 사법제도는 잔혹해요. 모든 사람에게! 나를 포함해서요. 저는 350만 유로 대출을 상환하는 데 실패했다고 1600만 유로쯤을 갚았어요. 그에 대한 내 의견은 묻지 마세요. 다시 체포될 수도 있으니까... 나는 독일의 집, 런던의 아파트, 마요르카의 집을 날렸어요."
어린 베커와 누나
교훈을 얻었을까? "무슨 교훈을 배워야 하죠? 돈 관리 조심하기. 그래요. 더 나은 조언자가 있었어야 했을까? 그래요…내가 테니스에서 최고조에 있었을 때, 그 경기 중에 누구 말을 듣죠? 나 자신의 말을 듣죠. 이제는 내 자신의 상식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할 거에요. 수십 명의 조언자나 변호사들 말 대신. 사실 나는 숫자를 꽤 잘 봐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나중에 혐의와 복역 기간에 대해 그가 말한 수치를 확인한 뒤 나는 그 숫자들이 틀렸음을 찾아냈다. 그는 29개가 아닌 24개의 혐의를 받았고 7개월 17일 동안 복역했다.
이제 릴리안이 베커를 책임지는가? 그는 성낸다. “내가 그렇게 허락한 거에요. 그녀가 옳았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에요. 내가 선수일 때 그녀가 있었다면 나는 더 많이 우승했을 거에요. 그녀가 나를 이끌어서 내가 굶주려야 할 때 굶주리게 만들어 주었을 테니까요.”
2022년 그의 변호사는 베커가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없고" 경력에서 재기할 가능성도 없다고 호소했다. 시대가 변했다. 채권단과 합의한 지급액에서 약 40만 파운드쯤 덜 냈어도 그는 올해 파산에서 벗어날 예정이다. "제가 돈을 벌기 시작했냐고요? 그렇죠." 그의 새로운 조언자들은 "보리스 베커라는 브랜드가 아마 오랫동안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울 거라고" 본다.
감옥은 마침표가 아닌 쉼표일 수도 있다. 미국의 TV 구루 마사 스튜어트처럼. 그는 출소 이후 테니스 라켓을 잡지 않았다. "꼭 해야 할 때만 해요." 실수할까봐 여자 테니스 해설도 피한다. 하지만 그는 테니스를 사랑하고 TV를 사랑한다. "이미 토크쇼 시리즈 전체 진행을 논의중입니다. 보리스 베커가 아놀드 슈왈제네거나 마이크 타이슨, 마이클 조던을 만납니다." Apple TV+는 알렉스 기브니가 감독한 보리스 베커의 인생 다큐멘터리를 스트리밍할 예정이다.
그는 정치 이야기를 좋아한다. 나딤 자하위의 세금 문제를 포함해 영국 의회 의원들의 실패에 대해 한 방 먹인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더 책임을 져야 해요!"라고 그는 아이러니 없이 외친다. 베커의 자녀 4명은 혼혈이고, 그는 오랫동안 인종차별에 반대해 왔다. "저는 감옥에서 많은 인종차별주의자들, 진짜 나치들을 만났어요. 감옥에서 백인이 흑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의 생각이 왜 완전히 어리석은지 설명한 적도 많아요. 우리는 모두 아프리카라는 모대륙에서 왔어요. 기술적으로 당신도 0.01퍼센트는 흑인이에요. 인종차별의 전체 요점이 무너지죠." (감옥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나쁜 놈들”에게 보호받았다. “그 놈들이 나를 좋아하니까.” 그 사실이 도움이 되었다). 베커의 어머니는 현재 체코 공화국인 오스트라바 출신 난민이었다.
"우리는 외국인들을 대할 때 조심해야 해요…우리 모두 조금씩은 외국인이잖아요? 그는 무엇을 말하든 심오하게 들리게 만드는 좋은 해설자의 재주를 가지고 있다.
지금 베커는 윔블던에서 해설할 수 없다. "돌아가고 싶죠... 그쪽 사람들과 연락하고 있고 거기서도 내가 돌아오길 원해요. 돌아갈 수 있는 때가 오면요. 올해는 안 될 거고…문이 닫히지는 않았어요.”
그는 영국 입국 허가를 신청할 수 있지만 다시 수감되는 게 걱정이라고 말한다. "제가 2024년 10월까지 가석방 상태이니까, 위험을 감수할까요?... 나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만약 운 나쁜 일이 생기면, 그게 펍에서든, 잘못된 친구를 만나서든, 아니면 전처가 광분하든. 개 같은 일이 생길 수 있어요. 다들 말해요. ‘보리스, 리스크를 감수하지 마.’ 나는 그의 진짜 두려움이 올 잉글랜드 클럽(편집자주: 윔블던 개최 단체)에게 외면당하는 건지 궁금하다. 그는 주장한다. "감옥 생활은 개 같은 생활이에요.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베커는 독일 세금 사건 이후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이번에는 왜 다른가? "한번 더, 그게 뭐였는지 확실히 해야죠…우리 모두 세금 문제로 고생해요. 그리고 돈이 많아질수록 일이 복잡해지고요.” 그는 2022년으로 돌아가는데, 이제는 덜 뉘우친다. "배심원들... 절반이 30세 미만이었어요. 그 사람들이 이 사건을 진짜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계산서를 지불하고 대화를 계속하려 하지만, 계산 실수 때문에 베커 스타일로 팁을 30퍼센트나 주게 되었다. 파산, 생각보다 쉽다.
나는 이제 베커와 간간이 8시간을 보냈다. 그는 내가 만났던 다른 유명인들보다 이야기 나누기 쉽다. 나에게 친절하고 자신을 방어하지 않는 듯 보인다. 하지만 종잡을 수 없기도 하다. 코트에서 그는 패배를 증오했다. 만약 최근의 실패 때문에 깊은 고통을 받았다면 그는 그 고통을 잘 숨기고 있다. “인정하자, 인정하자, 인정하자.”
유명인을 숭배하는 문화는 회개하는 스타들의 이야기도 키워낸다. 눈물어린 후회. 하지만 테니스가 베커에게 또 다른 선택지를 가르쳤다는 생각이 든다. 망각을 통한 구원이다. 당신은 발리를 위해 다이빙할 수 있고, 되든 안 되든, 관중은 응원해줄 것이다. 한 세트, 두 세트 뒤질 수 있다. 상대보다 더 잘 플레이하면 언제든 뒤집을 수 있다. 베커는 고개를 끄덕인다. "저는 아직도 게임하고 있어요. 그냥 더 잘 하는 거에요. 더 잘 해야 하고요.”
자신감이 그의 장점이다. 자신감이 그의 약점이다. 17세에 세상을 정복하면 자신에게 한계가 있다는 걸 믿지 못한다. 우리는 그의 포르쉐로 다시 걸어가고 그는 또 다른 호텔 발렛에게 후한 팁을 준다. 나는 보리스 베커와의 드라이브를 즐겼다. 나는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헨리 맨스는 FT의 피처 라이터다.
(편집자주: 마지막 문단 ‘나는 보리스 베커와의 드라이브를 즐겼다.’의 원문은 I enjoyed being taken for a ride by Boris Becker. ‘take for a ride’는 ‘태워준다’는 직역 외 ‘속다’ ‘이용당하다’라는 숙어로도 씀. 즉 이 문장은 ‘나는 그의 말에 즐겁게 속아주었다’라는 중의적 의미로 볼 수도.)
번역/편집 박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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