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모짜렐라' 짐 레프리노의 생애

2025-07-20

* 이 기사는 인간 혼자 번역했습니다 *



Obituary - 제임스 레프리노, 억만장자 치즈 생산자

1937-2025


제임스 레프리노(오른쪽)가 나온 유일한 공개 사진


1950년대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이 도시의 '리틀 이탤리'(이탈리아 이민자 거리)에 있던 제임스 레프리노 가족의 식료품점이 장사에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레프리노는 방향을 전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인들이 핏짜라는 음식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니 음식점에서 치즈 수요가 몇 톤 씩 나올 거라고 본 것이다.

"나는 생각했죠. '이거 추진해볼만한 사업이 될 거야'. 그래서 추진했죠." 레프리노는 2017년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도박이 성공했고, 그의 작은 식료품점은 세계 최대의 모짜렐라 치즈 공급업체로 성장했다. 미국에서 핏짜가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저렴한 치즈의 공급이 핵심적이었다. 현재 미국 양대 핏짜 체인인 도미노피자와 피자헛이 모두 레프리노가 만든 치즈를 뿌린다.

레프리노 푸드 컴퍼니의 성공은 지난 달 87세로 죽은 레프리노를 '치즈계의 윌리 웡카'로 만들었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말이다.


간단히 '짐'으로 불리던 레프리노는 1937년 콜로라도에서 이탈리아 이민자 가정의 다섯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마이크는 이탈리아 남부 포텐짜 출신이며 1950년 덴버에 식료품점을 열었다.

레프리노는 가족의 가게 뒷편에서 리코타 치즈와 스카모르짜 치즈를 손으로 굴리면서 컸다. 당시 치즈는 가게에서 파는 많은 상품 중 하나에 불과했다. 가족이 직접 농장에서 키운 농작물을 파는 가게였다.

레프리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가게 운영에 참여했고, 2년 후인 1958년 아버지가 사망하며 소유권을 넘겨받았다. 장사에 전념하느라 대학 진학은 포기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핏짜라는 음식을 막 발견하던 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이탈리아에 파병됐다가 핏짜맛을 본 군인들이 미국에 돌아왔다. 이들의 입맛을 노리고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들이 전국적으로 핏쩨리아를 열기 시작햇다.

레프리노가 보기에 핏짜는 한 때의 유행으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사업을 완전히 치즈 중심으로 바꿨다. 레프리노 푸드 사는 특히 잘게 잘려진 냉동 모짜렐라를 대량생산하는데 특화했다. 핏짜 요리사들이 빵 위에 그걸 솔솔 뿌리기만 하면 되도록 말이다. 이런 조리법은 피자헛의 초기 지점들이 돈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해줬다.

이런 혁신 덕분에 그의 회사는 미국 핏짜 치즈 시장의 85%를 점유할 수 있게 됐다. 

레프리노는 혁신적인 생산기술과 첨가제의 개발에도 투자했다. 그래서 치즈 제조에 걸리는 시간을 기존의 4주에서 단 4시간으로 단축시켰다. 또 그의 치즈는 길게 늘어지는 특성이 있었고 이것이 미국 핏짜 치즈의 상징이 됐다. 회사는 치즈 관련 특허만 50개 이상을 받았다.



이렇게 해서 '모짜렐라 재벌'로 불리게 된 레프리노는 웨이(Whey)라는 식재료 역시 유행시켰다. 웨이는 치즈를 만들 때 나오는 부산물이다. 레프리노는 1970년대 웨이를 일본에 건강보조식품으로 수출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프로틴 파우더와 셰이크의 주 재료로 쓰인다. 이 시장의 규모만 해도 50억에서 100억 달러다.

이런 성공 덕분에 레프리노는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여섯 번째로 부유한 사람이 됐다. 그의 재산은 21억 달러로 평가된다.

"난 내가 다 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었어요" 그는 2022년 법정 소송에서 쓰일 증언으로 녹음한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레프리노는 유명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자선단체에는 익명으로 기부했으며 의학연구도 열정적으로 도왔다. 제대로 된 언론 인터뷰는 2017년 포브스와 한 것이 유일했다.

"제가 이 인터뷰에 동의했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네요. 전 정말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난 수십 년 간 외부에 공개된 레프리노의 사진은 1978년에 찍은 회사 공식 프로파일 사진 한 장이 유일했다. 그러다 2022년에 낸시와 메리라는 조카들이 소송을 걸어서 어쩔 수 없이 덴버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야 했다.

이 두 조카는 치즈메이커 삼촌이 자신들을 고의적으로 사업에서 밀어냈으며 레프리노 푸즈사의 25%의 달하는 지분도 뺏아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배심원들은 짐 레프리노의 손을 들었다.


짐 레프리노와 부인 돈나 사이엔 두 딸, 지나와 테리가 있다. 또 두 명의 증손녀와 한 명의 대손녀가 있다. 가족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들이다.

"저의 성공은 동화 속 이야기 같은 거죠." 레프리노는 2017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일에서 은퇴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었고, 죽는 날까지 이사회 의장으로 근무했다. 그의 아버지가 열었던 덴버 식료품점 바로 그 자리에 세운 사무실에서.



© The Financial Times Limited 2025. All Rights Reserved. Not to be redistributed, copied or modified in any way. Okhotsk Publishing is solely responsible for providing this translation and the Financial Times Limited does not accept any liability for the accuracy or quality of the translation.


8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