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 페더러: "정상에 혼자 있을 수는 없어요. 라이벌이 필요해요."

2025-07-20



박찬용 에디터가 꼽은 주옥같은 FT 기사를 하나씩 소개합니다.

Lunch with FT: 로저 페더러


Simon Kuper

Jun 28 2019


*40000피트 상공 전용기에서*

(브런치는 취리히 파크 하얏트 호텔 제공)

주스 — 모닝 에너지, 진저 선라이즈, 그린 부스터

썰어서 나오는 신선한 과일

비르허뮤즐리

베이컨과 야채 오믈렛

빵류와 머핀

총 98스위스 프랑 (78파운드)




25년간 운동선수들을 인터뷰하면서, 나는 그들이 절대 우리에게 되묻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로저 페더러는 예외다. 전용기로 향하는 밴 안에서 그는 나에게 질문을 퍼붓다시피 했다. 노란 조끼 시위대는 내가 사는 파리를 얼마나 심하게 파괴했는지? 내게 아이가 있는지? 그는 내게 쌍둥이가 있고(페더러는 쌍둥이가 둘이다. 여자 쌍둥이, 남자 쌍둥이), 그리고 그의 어머니처럼 내 어머니도 요하네스버그 북부 출신이라는 것을 알자, 그는 기뻐하며 웃었다. "우리는 형제 같을 수 있겠네요." 그는 거의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데, 그의 모국어인 스위스-독일어의 특유한 리듬이 섞여 있다.


오늘 아침 우리는 그의 넷젯츠(NetJets) 공유 전용기를 타고 있다. 취리히발 마드리드행. 마드리드에서 페더러가 토너먼트에 출전할 예정이다. 우리는 거의 수직으로 이륙했다. 전용기는 일반 여객기보다 높은 고도에서 비행한다. 4만피트 이상, 교통량이 거의 없는 얇은 공기 사이로 빠르게 날아간다.


페더러와 나는 부드러운 베이지색 가죽 안락의자에서 서로 마주 보고 앉는다. 승무원이 우리 사이에 식탁을 펼친다. 동승객인 페더러의 피트니스 코치 두 명과 넷젯츠 직원 한 명은 객실 뒤쪽 소파에 편안히 기대어 있다. 나는 일등석 생활에 대한 잡지 광고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다. 내 테이블 메이트인 페더러는 약간 튀어나온 코에도 불구하고 로마 시대의 조각상처럼 아름답다. 긴 다리를 서로 꼬고 앉아 있는 그는 자신의 몸 안에서 완벽하게 편안해 보인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맞추면 만나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는 데 익숙한 남자 특유의 자신감이 느껴진다. 많은 운동선수들과 달리, 그는 자신의 발언을 검열할 에이전트를 곁에 둘 필요가 없다.



사이먼 쿠퍼와 로저 페더러


37세의 페더러는 20년간 독특하게 아름다운 테니스를 선보이며 투어를 해왔다. 전문가들은 10년 전부터 그의 은퇴를 예측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2017년 윔블던에서 또 다시 우승했고, 작년에는 호주 오픈(그의 20번째 그랜드슬램 토너먼트)에서 승리했으며, 다음 주 윔블던에 노박 조코비치와 라파엘 나달에 이어 세계 3위로 복귀하여 토너먼트 주최측으로부터 2번 시드를 받았다. 그는 기록적인 9번째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언제 은퇴할지 진심으로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오늘 아침 비행기에서 그는 다 큰 남자가 낼 수 있는 최대치의 활기를 보인다.


페더러와 다른 선수들의 그랜드슬램 대회 누적 승리 횟수 비교 (나이에 따라)


나는 페더러가 자신의 인생과 경력을 돌아보게 하고 싶다. 하지만 먼저 승무원이 미니 크루아상과 과일 꼬치를 가져온다. 나는 페더러가 인간의 음식을 먹을지 궁금했다. 조코비치는 글루텐 프리와 생식을 좋아하는데, 그마저도 그가 먹고 싶어 할 때만 그렇다. 하지만 페더러는 크루아상에 마멀레이드를 발랐다.


승무원이 디톡스 주스를 제안한다. "모닝 에너지!"


페더러는 미소 짓는다. "한 번도 마신 적은 없지만, 한번 시도해보죠." 그녀가 그에게 세 가지 다른 주스를 준다. 나는 카페라떼를 주문하고, 그는 에스프레소를, 그리고 우리 둘 다 뮤즐리를 받는다. 내가 두려워했던 것보다는 덜 스파르타풍의 아침이다.


"정말," 내가 시작한다, "당신에겐 다양한 층위의 경력이 있었습니다. 상승기가 있었죠. 그 다음 도전 받지 않는 절대 우위 시기가 있고, 그리고 라이벌들이 등장했 —"


"저도 그렇게 보고 있어요," 그가 내 말 도중 끼어든다.


나는 이어간다. "이제 당신은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싸우고 있고요"


여기서 그는 반박한다. "지금이 정말 좋은 시기예요. 마치 투어를 하는 것 같고, 이런 순간들에 감사할 수 있어요. 끝이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 그 역시 어쩌면 좋은 일이죠." 그는 이제 모든 여행을 음미한다고 말한다. 이제는 그 여행이 그 도시의 마지막 방문일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페더러는 자기 자신의 경력을 어떻게 요약할까?


"너무 빨리 지나갔어요. 어제 주니어였던 것 같은 기분이에요."


바젤 출신의 부르주아 소년(그의 부모는 시바-가이기 제약회사에서 일했다)은 14세에 테니스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위해 집을 떠났다. "떨어져 있을 때 울었어요. 기차를 탈 때마다, 일요일 밤 6시에, 늘 무척 슬펐지만, 제 선택이었어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약간 포기하게 됐지만, 아마 다시 선택할 수 있어도 같은 걸 할 것 같아요."


15세에 그는 프랑스 레스토랑에 앉아 종이 식탁보에 사인 연습을 하고 있었다. "유명해질 경우에 대비해서요.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언젠가 토너먼트에서 이기고 톱 100에 들 수 있으면 좋겠다. 누가 알아, 어쩌면 TV에서 봤던 선수들과 경기할 수도 있잖아.' 18세에 톱 100에 진입했을 때는 이랬어요. '와, 정말 내가 투어에 있구나. 안드레 애거시, 피트 샘프라스와 같은 라커룸에. 세상에, 너무 멋있어.'"


십대 페더러의 가장 큰 도전은 코트 밖의 삶이었다: "레드카펫을 걷고, 중요한 사람들을 만나고, 여성들을 바라보고, 여성들과 이야기하고, 내가 가늠할 수 없는 사람들과 대화하는, 그런 일들은 어려웠어요. 저는 수줍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테니스가 도움이 되었고, 정말로 내 모습을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19세에 시드니 올림픽에서 그는 미래의 아내 미르카 바브리네츠를 만났는데, 그녀는 당시 스위스 국가대표 테니스 선수였다. 몇 달 후, 그는 마침내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 그는 젊은 날의 거침없는 테니스를 회상한다. "스무 살 때는 훌륭한 포인트가 있으면, '이번엔 너무 세게 쳐서 진짜 땅에 구멍을 낼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37세가 되면 '흠, 아마 먼저 저기에 칠 거고, 그 다음 상대를 움직이게 하고, 어떻게 어떻게 네트로 올라가서 좋은 발리로 마무리할 거야'라고 생각해요." 요즘에는 때때로 "미친 샷들"을 시도하도록 자신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너무 교활한 테니스 플레이와, 테니스라는 스포츠가 너무 전문화되는 걸 걱정한다.


그는 과일 빼고 모든 걸 먹어치웠다. 처음에는 아침식사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승무원이 다시 나타나 추가 주문을 받는다.


"에스프레소를 하나 더 마셔도 될까요?" 페더러가 묻고, 굉장한 영국식 "쏘리"를 덧붙인다.


승무원이 오믈렛을 제안한다.


"좋은데요?" 페더러가 말한다. 나도 따라 시키며 그의 식욕에 대해 언급한다.


"너무 진지해지고 싶지 않아요," 그가 말한다. "또한 저에게 상기시켜주기도 해요, 어쩌면 저는 단지 테니스 선수 이상이라는 걸요." 그가 정말 중요한 결승전 전에 킷캣을 먹었을까? "모든 경기 전에 커피를 마실 거고, 옆에 초콜릿이 있으면 그것도 먹을 거예요. 아니면 쿠키를요." 천재들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희생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페더러는 자신의 천재성을 통제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나는 그에게 다른 천재인 리오넬 메시와의 유사점을 인식하는지 묻는다. 축구 팬인 페더러의 눈이 빛난다. 그는 신난 듯 내가 메시를 만난 적이 있는지 묻는다(그는 만난 적이 없다). "재미있게도," 그가 말한다, "저는 메시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해본 적이 없어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메시의 재능은 그가 공을 받고 골 쪽으로 몸을 돌릴 수 있을 때인데, 그때 메시의 시야는 완전히 열려요. 그러면 패스하거나, 드리블하거나, 슛을 할 거예요. 메시에게는 언제나 세 가지 선택지가 있어요. 그는 그런 능력을 가진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에요."


나는 유사성을 짚는다. 페더러 역시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 테니스 작가 겸 코치 존 얀델은 한때 페더러가 포핸드 하나만으로 20가지 변형을 만드는 걸 세어 보기도 했다.


"맞아요," 페더러가 고개를 끄덕인다. "젊을 때의 문제는 무엇을 언제 쓸 지 알아내는 거에요. 그건 꽤 —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 복잡해요. 하루 종일 코트를 가로지르며 포핸드와 백핸드만 잘 치는 선수라면 더 쉽겠지만요."


"제게는 옵션이 많았어요. 우리에게는 (옵션 중의 하나를 고르는 게)더 도전적이죠. 앎의 기술을, 말하자면 '이 샷이나 패스를 위해 가방에서 어떤 클럽을 꺼내야 할까?'에 대한 걸 터득하면 그건 믿을 수 없을 만큼 짜릿해요. 이게 요즘 내가 테니스 게임을 굉장히 사랑하는 이유일 거에요. 기하학, 각도, 언제 어떤 샷을 칠지에 대한 문답, 서브 앤 발리를 해야 할까? 뒤에 머물러야 할까? 칩 앤 차지를 해야 할까? 세게 쳐야 할까?"


자신의 선택지들을 터득한 뒤 그는 2003년 윔블던에서 첫 번째 그랜드슬램 토너먼트 우승을 차지했다. 2004년 1월에는 호주 오픈을 추가했다. 그때 그는 말했다, "의식적인 결정을 내렸어요. 오랫동안 플레이하고 싶다고요." 그의 피트니스 코치는 출연료를 받는 행사에 모두 참가하기보다는 자주 휴식을 취하라고 권했다.


"그냥 밀어붙여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30세까지 플레이할 거야'라고 말할 수도 있었지만, 저는 항상 여러 세대에 걸쳐 플레이하는 게 정말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우리 세대는 10년, 15년이 아니거든요. 5년마다 누군가가 있어요. 제 세대, 그 다음 라파엘, 노박, 앤디[머리]. 이제 다음 세대가 있어요. 저는 다양한 세대와의 경기를 경험하고 싶었고, 또한 —바보처럼 들리겠지만 — 젊은 선수들에게 나처럼 늙은 선수와 경기할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2004년부터 2010년 1월까지 그는 남자 테니스를 지배했고(클레이 코트에서 나달을 상대할 때를 제외하고), 15개의 그랜드슬램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 2009년에는 쌍둥이 딸들이 태어났다. "저에게 2010년과 2011년은 흐릿해요, 아이들 때문에요. (그때)제가 기억하는 것은 가족과의 순간 뿐이지, 제 성적이 아니에요. 그걸로 행복해요."


하지만 페더러가 기저귀를 갈아주는 동안, 나달과 조코비치는 성숙해져 모든 면에서 그를 앞서기 시작했다. 15년간의 라이벌 관계 후 나달의 페더러 상대 전적은 24승 15패. 이달 프랑스 오픈 준결승에서 스트레이트 세트 승리 후 기록된 수치다. 페더러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어떤 그랜드슬램 토너먼트에서도 우승하지 못했다. 그의 나이를 고려할 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그의 기량이 쇠퇴한다고 간주했다. 그는 말한다, "그때는 제게 투쟁의 시간들이었어요. 저는 멋진 싸움을 보여줘야 했어요."


2009년 오스트레일리아 오픈. 나달이 이기고 페더러는 눈물을 보인다. 


페더러는 도전 받지 않는 절대 우위를 선호했을까? "물론이죠. 영원히 지배하고 싶었어요. 라파엘과 다른 선수들이 올라왔을 때, 저는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그는 나달에 대해 말한다. "어느 순간 (나달에게)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해요. 너 진짜 잘 하는구나. 그걸 깨닫고 기쁨을 느껴요. 정상에 혼자 있을 수는 없어요. 라이벌이 필요해요. 저는 저를 더 나은 선수로 만들어준 라이벌 친구들에게 감사해요."


페더러와 나달은 라커룸에서 친근한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1980년대의 지미 코너스와 존 매켄로는 종종 라이벌이나 젊은 선수들에게는 말도 안 걸었다. 페더러는 "80년대와 90년대에는 몇몇 선수들이 정말로 서로를 못 견뎠다"고 들었다고 말한다.


그가 투어를 시작할 때쯤 상황이 나아져 있었다. "이미 매우 친근한 라커룸이었어서, 제가 그냥 그 분위기를 유지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많이 신경 쓰는 건 이런 거에요. 젊은 선수들이 투어의 일원이 되며 깨닫는 거죠. '이거 재미있을 거야, 친구, 그리고 우리, 톱 플레이어들은 멋져'라고요."


그래서 십대 신인이 라커룸에 들어오면, 페더러가 가서 인사를 한다?


"네. 그 다음엔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연습하고 싶어?' 그리고 그 연습에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넌 어떻게 살았어? 형제자매가 있어? 네가 어릴 때 너의 테니스 영웅은 누구였어?”


내가 참견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들의 영웅이잖아요."


"늘 그렇지는 않아요. 때때로요. 그건 항상 어색해요, 특히 처음에는요."


2014년에 페더러의 아들들이 태어났다. 나는 체스 선수 가리 카스파로프가 40세였던 2003년 FT 런치에서 나에게 한 말을 인용한다. "그때는 게임에 엄청난 에너지를 쏟을 수 없다. 가족이나 아이들, 어쩌면 사업이 있고, 다른 문제들이 있으니까."


페더러가 열정적으로 끼어든다: "저는 항상 두 개의 시계를 차고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제 것이고 하나는 가족 것인데, 왜냐하면 저는 그들의 스케줄을 속속들이 알고 있거든요. 제가 테니스를 하고 있을 때 가족이 언제 자는지 알아요. 경기 45분 전은 가족이 잠자리에 들기 전이라 그때 페이스타임을 빠르게 할 수 있다는 걸 알고요.”


"경기나 토너먼트에서 이기거나 져서 집에 돌아오면, 아이들이 '아빠, 나와 레고 놀이 해줄래?'라고 해요. 저는 '그러자'고 하죠. 좋아요, 때때로 거기 앉아 있으면서도 제 경기가 머릿속을 맴돌지만, 저는 제 아들에게 완전한 관심을 기울이려고 노력해요. 어릴 때의 제 상상 속에서 윔블던에서 이긴 뒤 제 아이들과 놀러 가는 모습 같은 건 없어요. 그래서 이게 꽤 비현실적이에요."


평등주의적인 동료 스위스인들은 그가 평범한 아빠가 되는 걸 허락해 준다. "아이들과 놀이터에 갈 수 있어요. 그냥 다른 부모들과 대화하는 거예요, 당신이 하는 것처럼요."


셀카를 같이 찍자는 부모도 있지 않나요?


"네, 정상적인 일이에요. 아침에 나갈 때 결정해야죠. 그런 기분인가? 아니라면, 글쎄, 집에 머무는 걸 택할 수 있어요. 그리고 언제나 정중하게 말할 수 있어요, '지금 아이들과 함께 있어요. 숲에서 집을 짓거나 뭔가 하려고 하는데, 나중에 기꺼이 해드릴게요.'"


2016년 페더러의 무릎 수술 후 많은 사람들이 은퇴를 예측했다. 하지만 그는 그 이후로 3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더 추가했다. "저는 여전히 제 신체적 가능성의 절정에 있다고 믿어요," 그가 말한다. 요즘 더 많은 휴식을 취하지만, 나이 드는 뼈를 보호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력을 통틀어 모든 것을 통과하며 달려가면서, '나는 나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을 즐기지 못했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얼마 전에 그는 아내에게 자신의 토너먼트 승리를 음미할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다. 즉시 떠나는 대신, "어쩌면 다음 날 아침에 떠날 수 있을 거예요. 좋은 저녁 식사, 샴페인 한 잔, 긴장을 풀고요."


투어에서의 20년이 행복했을까? "굉장히."


로저 페더러의 첫 챔피언쉽 우승 소감. 2003년 윔블던. 


은퇴 후의 공허가 두려운가? "별로요. 재단, 네 명의 아이들, 제 현역 시절을 넘어설 스폰서들이 있어서, 괜찮을 것 같아요." 그리고 스트레스는 그립지 않을 거라고, 페더러가 덧붙인다.


"저는 다른 가족들을 그리워할 거예요. 선수들이요. 제 생각엔 그게 제일 힘들 것 같아요. 언젠가, 정말로 떠날 때, 문제는 누구와 계속 연락을 유지할 것인가예요. 그때 투어에서 누가 진짜 친구인지 깨닫게 될 거예요. 많지 않다는 것도 깨닫게 되겠죠.


그 선수는 누구일까? 그의 즉각적인 답변은 감동적이다: "라파엘과는 계속 연락할 것 같아요."


거의 2시간 동안 끊임없는 대화 후, 우리는 마드리드로 하강하고 있다. 페더러가 아래 메마른 들판을 가리킨다. "유럽은 정말 재미있어요. 보세요, 우리가 조금만 여행하고 있는데도, 풍경이 이미 태양 때문에 반쯤 붉게 탄 듯 보여요. 스위스에서는 모든 것이 그냥 초록색이에요. 유럽이 좋은 부분이에요." 그는 방문하는 도시들을 즐기려 한다. 그는 자신의 여행이 "호텔, 클럽, 공항, 안녕히 계세요"가 되는 것을 원한 적이 없다. "도심에 호텔을 잡아서 산책을 하거나 공원에 갈 수 있어요. 요즘에는 아이들과 동물원에 다니며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도시들을 봐요. 저는 밤의 레스토랑을 좋아해요. 아내와 친구들과 함께 긴장을 풀기 좋으니까요.”


페더러는 인터뷰를 즐긴다고 주장한다. 나는 우리 저널리스트들이 그에 대해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게 있는지 묻는다. 사석에서는 농담을 잘 하는 거라고, 페더러가 말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은 제가 와인 셀러를 갖고 있고, 친구들과 함께 와인 마시는 걸 좋아한다는 걸 모를 거에요.”


활주로에서 넷젯츠 직원이 우리 사진을 찍는다. 페더러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나는 그의 등에 손을 올린다. 내가 만져본 다른 모든 등은 하나의 정의되지 않은 덩어리 같았다. 페더러의 등에서는 모든 뼈와 근육을 느낄 수 있다. 점자로 해부학 교과서를 읽는 것 같다.


나는 집으로 가는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러 일반 터미널로 향한다.


번역, 편집 박찬용



© The Financial Times Limited 2025. All Rights Reserved. Not to be redistributed, copied or modified in any way. Okhotsk Publishing is solely responsible for providing this translation and the Financial Times Limited does not accept any liability for the accuracy or quality of the translation. 



1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