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정원: 워털루에 다시 나무를 심다

2025-07-10

1815년 나폴레옹의 몰락을 결정지은 워털루 전투에서 파괴된 벨기에 우구몽 장원. 10년에 걸친 복원 프로젝트를 거쳐 이제 다시 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정원은 비탄함과 꽃의 아름다움을 함께 품을 수 있을까.

 


04 July 2025

Robin Lane Fox


최근 나는 전쟁터를 정원으로 바꾸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시리아에서 카슈미르에 이르기까지, 요즘은 이런 기술이 점점 더 필요해지고 있다. 자연은 때로 인간의 손길 없이도  스스로 가장 푸르고 화려한 모습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플랑드르 지역에는 핏빛 양귀비가 이미 피어있었지만 전투가 끝난 1918년 이후 그 꽃들은 더 넓고 애달프게 번져 나갔다. 

하지만 애초에 잘 가꾸어져있던 정원에서 대규모 학살이 벌어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정원 중 하나가 워털루 전장의 중심에 있었다. 고고학 연구와 자료 조사에 따르면 1815년 6월 18일 아침까지만 해도 벨기에 중부지방에 있는 우구몽(위고몽, Hougoumont) 농장과 작은 성에는 훌륭한 정원이 하나 딸려있었다. 그 날은 영국군 웰링턴 장군의 군대 일부가 이 땅을 전방 우측 전진기지로 점거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전 11시 30분, 처절한 전투와 도륙이 시작됐다. 나폴레옹이 오후 7시까지 프랑스 병력을 파도처럼 연거푸 몰아넣었지만 농장을 지키던 영국 / 스코틀랜드 / 독일어권 병사들의 방어를 뚫지 못했다. 결국 우구몽 점령에 실패한 나폴레옹은 다른 전선에 투입할 병력까지 이곳에 끌어들여야 했다.

전투가 벌어진 다음 날, 동네사람들이 우구몽 농장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려고 찾아왔다. 한 목격자는 이렇게 적었다. “죽은 자들과 부상자들이 과수원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곳에서 쓰러진 병사만도 2000명이 넘었다.” 사람들은 쓰러진 나무로 장작더미를 만들어 시신을 태웠다. 물론 시신에서 값나가는 물건들은 다 집어가고 나서였다.


‘우구몽 성의 방어 (Defence of the Château de Hougoumont by the flank Company, Coldstream Guards)’ (1815), by Denis Dighton © National Army Museum

'일꾼들이 프랑스군을 태우는 우구몽 성' A view of the Château d'Hogoumont, workmen piling timber upon a pyre to burn the French dead by: C. C. Hamilton engraved by James Rouse 



나는 2015년 우구몽 농장의 건물과 안마당, 정원사의 오두막을 복원하려는 한 프로젝트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이 프로젝트에는 총 380만 유로의 예산이 필요했으며, 2013년 여름 당시 영국 재무장관이던 조지 오스본이 현장을 방문한 뒤 대규모 기부를 약속하면서 탄력이 붙었다. 영국이 긴축정책을 추진하던 그 시절에도 그는 150만 유로의 보조금을 마련해냈고, 이 자금은 영국 은행들에 부과한 특별부담금에서 충당되었다. 오스본은 이 기금을 의회에서 "자신의 국민을 파멸로 몰고 갔던 권력광 독재자에 맞서 승리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연합군에 대한 경의"라고 설명했다. 물론 나폴레옹 이후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독재자들이 다시 등장했지만, 그 누구도 웰링턴이 나폴레옹을 상대로 꾸렸던 연합군에 비견될 만한 동맹을 만들지는 못했다.

얼마전 나는 현장을 다시 찾았다. 그동안 우구몽 농장의 건물 대부분은 복원되었고, 다만 샤토의 폐허만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안마당에는 자갈이 깔리고, 중심부 경사면에는 흰색 플로리분다 장미 화단이 다소 기묘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복원의 다음 단계는 남쪽 문 바깥으로 이어지는, 원래는 훨씬 넓었던 정원 전체를 복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예산은 180만 유로이며, 이 가운데 150만 유로는 이미 워털루 전장과 그 주변 토지에 관심을 갖는 공공기관들이 담당하기로 약정된 상태다. 2027년에 본격적인 복원이 착수되기까지 아직 30만 유로가 더 필요하다.


현재 모습과 복원 계획


나는 한때 시신들이 불태워졌던 그 안마당에서 고상한 차림을 한 벨기에 방문객들과 함께 서 있었다. 2분간의 묵념이 끝나자 스코틀랜드 연대 소속 군악대의 드러머들과 백파이프 연주자들이 추모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선두가 전투복 차림으로 농장 북쪽 대문을 통과해 들어서며 백파이프를 불자 우리 모두의 목울대가 뜨겁게 차올랐다. 바로 이곳에서 오후 12시 30분쯤 영국 병사들이 프랑스군의 대문 돌파를 막기 위해 백병전을 벌였던 것이다. 프랑스군 40명이 마당 안으로 들어왔으나 대문이 그들 뒤로 닫히면서 전원 전사하고 유일한 생존자는 11세 소년 북잡이 한 명뿐이었다. 당시 영국군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했던 헨리 윈덤 중령의 후손, 에그레몬트 경은 영국에 있는 자신의 영지에서 장인들에게 그 대문을 새로 제작하게 하고 이를 우구몽에 가져와 복원하게 했다.



대문 오른편에는 전투의 또 다른 생존자들이 나를 놀라게 했다. 줄기가 뒤틀린 참나무들이었는데, 이 나무들은 1815년의 격전을 견딘 침묵의 증인이었다. 나는 이어 농장 벽면에 뚫린 틈으로 다가가 사람들이 ‘평화의 나무’를 심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 묘목은 훨씬 더 놀라운 생존자에게서 채취한 씨앗에서 자라난 것이었다. 바로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을 때 살아남은 여섯 그루의 은행나무 중 하나에서 비롯된 것이다. 허나, 나로선 이게 다소 엉뚱한 추모물처럼 느껴졌다. 이 나무는 토스카나에서 제작된 테라코타 화분에 담겨 우구몽 장원에 심어지고 있지만, 나폴레옹의 군대가 진흙투성이 전장을 가로질러 공격하던 당시 이 농장에는 은행나무도, 원자폭탄도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나는 정원 복원을 총괄하고 있는 조경가를 찾았다. 프랑수아 고피네는 이 작업에 가장 적임인 인물이었다. 그는 어릴 적 벨기에 부모님 댁 정원에서 식물을 가꾸며 원예에 대한 애정을 키웠다.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위슬리(Wisley)에서 가드닝 훈련을 받았고, 그곳에서 세계적인 조경가 러셀 페이지의 눈에 띄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페이지는 고피네를 자신의 걸작 설계를 이어받을 사람으로 택했다. 뉴욕주의 펄체이스에 위치한 펩시코 본사 주변 공원 조성도 그 중 하나다. 고피네는 그 기대에 충분히 부응해왔다.

고피네는 그 '평화의 은행나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잘못된 나무, 잘못된 장소입니다.” 2024년, 런던 벨그레이브 스퀘어 인근 벨기에 대사관에서 열린 정찬에서 고피네는 우구몽 정원의 마스터플랜을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큰 호평을 받았다. 그는 그때 발표에 첨부했던 도면들을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대형 파르테르(대칭 정원), 야생화 초원, 과수원, 그리고 장미·작약·붓꽃이 어우러진 화단이 묘사되어 있었다. 또 그는 과거 우구몽에 대한 기존 연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는 영국군과 영국 정보기관에 관련되어 있는 단체 ‘워털루 언커버드(Waterloo Uncovered)’에서 수행한 것이었다.



프랑수아 고피네의 우구몽 장원 복원 조감도


이 연구들을 바탕으로 정원 전문 고고학자들은 다양한 흔적들을 발견해냈다. 아치형 회랑, 48개의 구획으로 구성된 대칭형 파르테르 정원(12개씩 4묶음), 그리고 우구몽 남쪽 입구 한쪽에 질서 있게 조성된 과수원의 흔적이 그것이다. 전쟁으로 황폐해지기 전, 우구몽의 꽃 정원에는 섬세한 석재 난간도 있었다고 한다. 그 조각 일부를 최근 인근 나뮈르 시에서 열린 경매에서 찾아왔다.

농장의 남쪽 문 밖은 한때 숲이었다. 웰링턴 장군은 예비 병력을 숨기는 용도로 이 숲을 활용했었다. 숲은 이후 벌채되었지만, 고피네는 나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다시 복원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다만 원래 자생하던 너도밤나무는 기온 상승으로 인해 생장이 어려워졌다. 대신 참나무가 심어질 예정이다.

정원 내부에서는 샤토가 있었던 자리에 나무로 된 전망탑이 지어질 계획이다. 전망탑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정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작은 플랫폼이 있어 마치 샤토의 창문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줄 것이다. 나는 장미 중에서도 옛 이끼장미 품종인 분홍색 '샤포 드 나폴레옹(Chapeau de Napoléon)'도 포함될 예정인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마도 '조제핀 황후의 장미(Rose Empress Josephine)'도 함께 심어질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과수원에 심어질 나무는 1815년이라는 시대에 어울리는 품종들로 벨기에 헴블루 농업대학의 전문가들이 선정해서 공급하게 된다. 나는 2015년에 추천받았던 두 품종, 브라반트 벨플뢰르(Brabant Bellefleur)와 벨피유 노르망드(Belle-Fille Normande)가 포함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 품종들은 1815년 당시 사과 타르트에 사용되었던 재료라고 한다.

조지 오스본 재무장관은 우구몽을 두 번째 방문했을 때 복원 사업의 후원자 중 한 명인 마틴 드루리 전 내셔널 트러스트 사무총장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장소가 지닌 낭만을 어떻게 보존하실 계획인가요?” 그러나 웰링턴 장군은 다르게 보았었다. "나를 믿으시오." 워털루 전투와 그 학살을  겪은 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전투에서 패배하는 것을 제외하면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만큼이나 비통한 일이 없습니다.” 우구몽 정원은 방문객들에게 교육적 경험이 될 수 있도록 기획되고 있다. 조경가 고피네는 비통함과 꽃의 매력을 동시에 담아내야만 한다.




우구몽 복원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는 여기.

필자 로빈 레인 폭스는 옥스퍼드대 역사학 교수이며 이 학교 뉴칼리지와 엑스터칼리지의 가든 마스터이다. 매 주 FT에 가드닝 칼럼을 쓰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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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윗 사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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