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해 보이는 터치스크린이 실제 운전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를 수 있다. 중국과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터치스크린 대신 물리 버튼을 다시 도입하고 있다.
9 July 2025
June Yoon
당신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터널을 지나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차량이 급정거한다. 비상등을 켜기 위해 손을 뻗지만, 버튼이 예상하던 자리에 없다. 버튼 대신, 비상등은 자동차 터치스크린 속 메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터치스크린을 누르지만 멈춰버린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2010년대 중반 이후,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은 스마트폰과 테슬라의 미니멀한 디자인에 영감을 받아 버튼이 없는 미래를 꿈꿔왔다. 비상등, 와이퍼, 성에 제거기 같은 안전 기능조차 전부 디지털 터치스크린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매끈하고 미래적인 조종석이라는 비전은 점차 인간의 한계와 충돌하고 있다. 특히 순간 판단이 중요한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터치스크린만 남기고 조작버튼들을 다 없앤 테슬라 차량
그렇다면 제조사들은 왜 물리버튼과 스위치들을 없애고 터치스크린에 모든 걸 때려박으려 했을까? 미니멀한 디자인의 미학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재무적인 이유가 컸다. 버튼을 없애면 필요한 부품의 수와 제조공정의 복잡도가 줄어든다.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가능해지니 내비게이션, 음성 명령, 열선 시트 같은 기능을 딜러 방문 없이도 구독 형태로 유료화할 수 있다. 스마트폰 업계처럼, “하드웨어를 팔고, 소프트웨어로 수익을 낸다”는 모델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로 회귀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한때 퇴출을 선언했던 물리 버튼들을 다시 도입하고 있다. 이 변화는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터치스크린 중심 인테리어 도입을 주도했던 아시아가 이제 가장 먼저 방향을 틀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업체 샤오미, BYD, 덴자 등이 이 흐름의 선두에 서 있다.
- 샤오미 SU7은 중앙 터치스크린 아래에 자석으로 부착할 수 있는 물리 버튼 막대 한 줄을 옵션으로 제공한다.
- BYD의 Sealion 05는 센터 콘솔에 버튼을 다시 배치했다.
- BYD의 서브 브랜드 덴자는 D9 모델에서 터치패널을 스위치로 교체했다.
- 일본의 스바루 역시 터치스크린 중심 레이아웃을 잠깐 시도했다가, 2026년형 아웃백 모델부터 물리적 조작 버튼과 스위치를 다시 도입하며 전략을 선회했다.

샤오미 SU7의 터치스크린에 결합되는 물리 버튼들

90년대 차량을 연상시키는 2026형 스바루 아웃백의 조작 패널
대시보드 디자인의 회귀를 가속화하는 가장 강력한 움직임은 유럽에서 보이고 있다. 유럽 자동차안전기구(Euro NCAP)는 2026년부터 방향지시등과 비상등 같은 필수 기능은 물리 버튼으로 조작 가능해야만 최고 안전 등급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스웨덴 도로 전문 매체 Vi Bilägare의 실험에 따르면, 전통적인 버튼이 달린 2005년형 볼보 차량은 기본적인 조작을 10초 안에 마칠 수 있었다. 반면 최신 터치스크린 장착 차량에선 같은 작업에 최대 44.6초가 걸렸다. 영국 교통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자동차 터치스크린 조작은 운전자의 반응 시간을 음주 상태나 대마초 흡입보다 더 크게 늦춘다고 한다.
물론 비용 측면에서는 물리적 제어 장치의 부활이 기술의 퇴보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물리 버튼 설치를 위해 부품, 배선, 조립 비용이 차량 한 대 당 약 100달러 추가된다고 가정하면, 연간 1천만 대를 생산하는 글로벌 제조사는 10억 달러의 추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평균 중형차 가격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터치스크린에만 의존할 때 생길 수 있는 잠재적 재무 리스크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치다. 예를 들어 Euro NCAP 등급이 떨어지면 소비자 신뢰가 낮아지고, 보험료가 오르며, 법인차량 판매가 감소할 수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신규 등록 차량의 절반 이상이 법인용이다. 한편 100개가 넘는 전기차 브랜드가 경쟁하는 중국처럼 과밀한 시장에선 고객 충성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NPS(Net Promoter Score)가 소폭만 떨어져도 점유율이 빠르게 감소할 수 있다.
버튼의 귀환은 기술 발전의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패턴이기도 하다. 산업계는 종종 미니멀한 인터페이스가 진보라고 착각해 왔다. 2000년대 초반 휴대폰 제조사들은 물리 키버튼을 없애려 했다가, 결국 볼륨·잠금·긴급용 버튼은 다시 도입했다. 아이폰의 무음 전환 스위치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도, 운전자에게 비상등 버튼이 필요한 이유도 같다. 눈으로 안 보고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 산업에서도 초기에는 터치 인터페이스가 혁신으로 여겨졌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는 난기류나 비상 상황에서 물리 스위치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연구들이 쏟아졌다. 공장 설비, 의료기기, 군용 장비 역시 여전히 전용 물리적 제어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 전반에 주는 교훈은 이렇다. 위급한 순간, 인간의 뇌는 근육 기억(muscle memory)에 먼저 반응한다는 것. 자동차 설계는 사람이 실제로 운전하는 방식에 기반해야 한다. 진보란, 가끔은 뒤로 돌아가는 것이다.

© The Financial Times Limited 2025. All Rights Reserved. Not to be redistributed, copied or modified in any way. Okhotsk is solely responsible for providing this translation and the Financial Times Limited does not accept any liability for the accuracy or quality of the translation. 파이낸셜타임스와 라이센스 계약 하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번역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오호츠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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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끔해 보이는 터치스크린이 실제 운전에서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가를 수 있다. 중국과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터치스크린 대신 물리 버튼을 다시 도입하고 있다.
9 July 2025
June Yoon
당신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터널을 지나려는 순간 갑작스럽게 차량이 급정거한다. 비상등을 켜기 위해 손을 뻗지만, 버튼이 예상하던 자리에 없다. 버튼 대신, 비상등은 자동차 터치스크린 속 메뉴 깊숙한 곳에 숨어 있다. 터치스크린을 누르지만 멈춰버린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2010년대 중반 이후, 많은 자동차 제조사들은 스마트폰과 테슬라의 미니멀한 디자인에 영감을 받아 버튼이 없는 미래를 꿈꿔왔다. 비상등, 와이퍼, 성에 제거기 같은 안전 기능조차 전부 디지털 터치스크린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매끈하고 미래적인 조종석이라는 비전은 점차 인간의 한계와 충돌하고 있다. 특히 순간 판단이 중요한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터치스크린만 남기고 조작버튼들을 다 없앤 테슬라 차량
그렇다면 제조사들은 왜 물리버튼과 스위치들을 없애고 터치스크린에 모든 걸 때려박으려 했을까? 미니멀한 디자인의 미학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재무적인 이유가 컸다. 버튼을 없애면 필요한 부품의 수와 제조공정의 복잡도가 줄어든다.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도 가능해지니 내비게이션, 음성 명령, 열선 시트 같은 기능을 딜러 방문 없이도 구독 형태로 유료화할 수 있다. 스마트폰 업계처럼, “하드웨어를 팔고, 소프트웨어로 수익을 낸다”는 모델을 도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로 회귀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한때 퇴출을 선언했던 물리 버튼들을 다시 도입하고 있다. 이 변화는 특히 아시아 시장에서 두드러진다. 터치스크린 중심 인테리어 도입을 주도했던 아시아가 이제 가장 먼저 방향을 틀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 업체 샤오미, BYD, 덴자 등이 이 흐름의 선두에 서 있다.
샤오미 SU7의 터치스크린에 결합되는 물리 버튼들
90년대 차량을 연상시키는 2026형 스바루 아웃백의 조작 패널
대시보드 디자인의 회귀를 가속화하는 가장 강력한 움직임은 유럽에서 보이고 있다. 유럽 자동차안전기구(Euro NCAP)는 2026년부터 방향지시등과 비상등 같은 필수 기능은 물리 버튼으로 조작 가능해야만 최고 안전 등급을 부여하겠다고 발표했다.
스웨덴 도로 전문 매체 Vi Bilägare의 실험에 따르면, 전통적인 버튼이 달린 2005년형 볼보 차량은 기본적인 조작을 10초 안에 마칠 수 있었다. 반면 최신 터치스크린 장착 차량에선 같은 작업에 최대 44.6초가 걸렸다. 영국 교통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자동차 터치스크린 조작은 운전자의 반응 시간을 음주 상태나 대마초 흡입보다 더 크게 늦춘다고 한다.
물론 비용 측면에서는 물리적 제어 장치의 부활이 기술의 퇴보처럼 보일 수도 있다. 물리 버튼 설치를 위해 부품, 배선, 조립 비용이 차량 한 대 당 약 100달러 추가된다고 가정하면, 연간 1천만 대를 생산하는 글로벌 제조사는 10억 달러의 추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평균 중형차 가격의 1%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터치스크린에만 의존할 때 생길 수 있는 잠재적 재무 리스크에 비하면 훨씬 낮은 수치다. 예를 들어 Euro NCAP 등급이 떨어지면 소비자 신뢰가 낮아지고, 보험료가 오르며, 법인차량 판매가 감소할 수 있다. 특히 유럽에서는 신규 등록 차량의 절반 이상이 법인용이다. 한편 100개가 넘는 전기차 브랜드가 경쟁하는 중국처럼 과밀한 시장에선 고객 충성도를 나타내는 지표인 NPS(Net Promoter Score)가 소폭만 떨어져도 점유율이 빠르게 감소할 수 있다.
버튼의 귀환은 기술 발전의 역사에서 반복되어 온 패턴이기도 하다. 산업계는 종종 미니멀한 인터페이스가 진보라고 착각해 왔다. 2000년대 초반 휴대폰 제조사들은 물리 키버튼을 없애려 했다가, 결국 볼륨·잠금·긴급용 버튼은 다시 도입했다. 아이폰의 무음 전환 스위치가 여전히 존재하는 이유도, 운전자에게 비상등 버튼이 필요한 이유도 같다. 눈으로 안 보고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 산업에서도 초기에는 터치 인터페이스가 혁신으로 여겨졌지만, 2010년대 후반부터는 난기류나 비상 상황에서 물리 스위치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는 연구들이 쏟아졌다. 공장 설비, 의료기기, 군용 장비 역시 여전히 전용 물리적 제어 장치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 전반에 주는 교훈은 이렇다. 위급한 순간, 인간의 뇌는 근육 기억(muscle memory)에 먼저 반응한다는 것. 자동차 설계는 사람이 실제로 운전하는 방식에 기반해야 한다. 진보란, 가끔은 뒤로 돌아가는 것이다.
© The Financial Times Limited 2025. All Rights Reserved. Not to be redistributed, copied or modified in any way. Okhotsk is solely responsible for providing this translation and the Financial Times Limited does not accept any liability for the accuracy or quality of the translation. 파이낸셜타임스와 라이센스 계약 하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번역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오호츠크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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