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부터 안전한 직업은 무엇일까?

2025-07-07

AI는 지루한 일을 더 지루하게 만들고, 흥미로운 일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03 July 2025

Tim Harford


인공지능의 능력이 갈수록 커지는 지금, 과연 안전한 직업이라는 게 존재할까?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 경제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최근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직업은 아마도 정원사일 것”이라 확신하게 됐다고 얘기했다. 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세상엔 컴퓨터가 결코 따라 하지 못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FT는 ‘AI가 가꾼 정원들(The gardens that AI grew)’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지능형 자동 물주기 시스템, 해충 감지기, 레이저 허수아비, 태양광 제초로봇이 소개됐다. 맥이 탁 풀리는 순간이다.


Temu에서 판매 중인 레이저 허수아비


레이저 허수아비나 로봇 제초기가 실제로 얼마나 인간 정원사의 자리를 위협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만 이 사례는 ‘직업(job)’과 ‘업무(task)’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갖고 있는 대부분의 직업은 서로 얽혀 있는 여러 업무들의 집합이다. 정원사를 예로 들자. 정원사는 잔디를 깎고 잡초를 뽑는 일부터 해충 감지, 외부 공간 설계, 그리고 무엇보다 까다로운 고객과의 소통까지 두루 맡아야 한다. 다양한 AI 시스템이 이 중 다수의 업무를 수행할 수는 있지만, 정원사라는 직업이 사라진다기보다는 그 업무들의 형태가 바뀔 가능성이 더 크다.

즉, 문제는 이렇다. 새로운 AI 기술은 우리가 하는 일의 형태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그리고 변화된 내 직업의 모습은 내가 좋아할 만할까? 생성형 AI는 비교적 새로운 기술이지만, 그것이 던지는 질문 자체는 오래된 것이다. 이 문제의 뿌리는 19세기 초 러다이트(Luddite) 운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 섬유산업의 숙련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하던 일 중 가장 힘든 부분을 기계가 처리하게 되는 걸 목격했다. 이들은 결국 저임금 비전문 노동자로 대체됐다.

그렇다면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그것은 기술과 직업, 두 가지 모두에 달려 있다. 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대조적인 선례가 있다. 바로 디지털 스프레드시트(엑셀)와 물류창고용 안내 이어피스 ‘제니퍼 유닛’이다. 



먼저 디지털 스프레드시트를 보자. 1979년 출시된 디지털 스프레드시트는 회계사들이 수행하던 업무를 빠르게, 또 정확하게 대체했다. 그러자 회계사 업계는 보다 전략적이고 창의적인 영역으로 업무를 옮겨갔다. 인간 회계사는 다양한 시나리오와 위험을 모델링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이다. 창의적인 회계사라니, 매력적이지 않은가?



제니퍼(Jennifer) 유닛은 물류창고 직원이 물건을 집어 나르도록 돕는 이어피스다. 이 기계는 작업자의 귀에 대고 명령을 속삭이며 동선을 추적하고 다음 번 이동해야 할 곳, 다음 번 취해야 할 행동을 안내해준다. 이는 이미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하고 있던 작업자들에게서 마지막 두뇌활동마저 없애주는 기술이다. 즉 스프레드시트는 다양한 기술과 숙련도를 요구하던 회계 업무에서 단조로운 작업만 도려냈지만, 제니퍼 유닛은 정 반대 방향으로 기술이 적용된 것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이렇다. AI는 지루한 직업을 더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고, 흥미로운 직업을 더 흥미롭게 만들 수도 있다.



AI에 뺏기고 남는 직무가 무엇인가


MIT 연구자 데이비드 오터와 닐 톰슨은 이 질문에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한다. 두 사람은 최근 발표한 논문 「전문성(Expertise)」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회계사무원(accounting clerk)과 창고 관리원(inventory clerk)은 업무 자동화로 인해 비슷한 영향을 받을까?”

이 질문을 분석하는 데 널리 쓰이는 여러 접근 방식이 있다. 그리고 그 접근법 대부분은 ‘그렇다’는 결론을 낸다. 과거 두 직종 모두 루틴한 두뇌 활동 업무에 많은 시간을 썼기 때문이다. 오류를 찾고, 재고 목록이나 데이터를 정리하며, 대규모의 산술적 계산을 하는 일들이다. 이런 과업들은 모두 컴퓨터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이었고, 실제로 컴퓨터가 충분히 저렴해지자 컴퓨터가 맡게 됐다. 똑같은 업무가 똑같이 자동화의 영향을 받았기에, 두 직종의 모습도 비슷하게 바뀌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자동화 도입 이후 회계사무원의 임금은 상승했고, 창고 관리원의 임금은 하락했다.


이 차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대부분의 직업은 무작위로 모인 업무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이 수행할 때 가장 효율적인 업무들의 ‘묶음’으로 구성돼 있다. 이 묶음에서 몇 가지 업무를 제거하면, 나머지 직무 전체가 달라지게 된다.

예컨대, 창고 관리원이라는 직업은 여러 직무 중에서도 가장 교육과 훈련이 많이 필요했던 부분(산술 계산)을 컴퓨터에게 뺏기고 단순히 상품을 진열하는 노동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었다. 반면 회계사무원 역시 계산과 관련된 업무는 컴퓨터로 인해 자동화됐지만 판단력, 분석력,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을 요구하는 업무가 인간의 몫으로 남았다.

같은 종류의 과업이 자동화됐음에도, 그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 가게나 창고 관리 일은 더 적은 훈련과 더 적은 전문성만으로도 수행 가능한 일이 되었고, 회계 업무는 오히려 더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림: 문서 관리자(file clerk)이라는 직업에 포함된 업무들이 1977년부터 2018년 사이에 어떻게 변했는지를 2차원으로 표현한 그림. 1977년에 수행했었던 여러 업무들이 컴퓨터 도입과 함께 사라졌고 2018년에는 여러 새로운 업무들이 추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EXPERTISE, David Autor, Neil Thompson, 2025)



당연히 드는 의문은 이렇다. 향후 5년 안에, 나의 직업은 AI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을까? 확실한 예측은 어렵지만, 논문의 저자인 오터와 톰슨은 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질문을 하나 던진다. 'AI는 당신의 직업 중에서 가장 고도의 숙련을 요하는 부분을 대체할 것인가, 아니면 아직 버리지 못한 단순 반복작업을 대신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분의 일이 더 흥미로워질지 아니면 더 짜증나는 일이 될지, 그리고 연봉이 상승할지 아니면 러다이트처럼 전문성이 평가절하되게 될지를 가늠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는 브레인스토밍에 매우 뛰어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연결을 만들고 다채로운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내가 좋아하는 롤플레잉 보드게임을 진행할 때는 정말 유용하다. 준비 시간을 단축시켜주고, 친구들과 마법사를 플레이하며 테이블에 둘러앉는 ‘진짜 재미’로 곧장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지루하고 반복적인 행정 업무의 늪 속에서 아주 가끔씩 창의적 브레인스토밍이라는 오아시스를 만나던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 있어 브레인스토밍 업무를 대신 해주는 ‘산업형 브레인스토밍 엔진’의 등장은 오히려 우울한 일이 될 수 있다.

정원사를 다시 생각해보자. 아마도 정원사들에게 가장 고역인 일은 고객에게 보낼 이메일을 작성하는 일일 것이다. 정원사를 고용하는 고객들은 책상 앞에서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고 그래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에 능숙하겠지만, 정원사는 대부분의 시간을 야외에서 보내기 때문이다. 레이저 허수아비든 로봇 제초기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정원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AI 비서이자 이메일을 대신 써줄 대필자이자 편집자다. 그리고 그런 기술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 The Financial Times Limited 2025. All Rights Reserved. Not to be redistributed, copied or modified in any way. Okhotsk is solely responsible for providing this translation and the Financial Times Limited does not accept any liability for the accuracy or quality of the translation. 파이낸셜타임스와 라이센스 계약 하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번역에 대한 권리와 책임은 오호츠크에게 있습니다.





** 참고로, 칼럼에서 언급한 MIT 논문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AI가 직업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자동화에 얼마나 노출되었는지가 아니라 해당 직업에서 '어떤 종류의 업무가 자동화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핵심은 자동화가 제거하는 과업이 고숙련(expert) 과업인지, 저숙련(inexpert) 과업인지에 따라 결과가 반대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 새로운 이론: ‘전문성(Expertise)’ 프레임워크

  • 대부분의 직업은 **숙련도 수준이 다른 과업들의 묶음(task bundle)**으로 구성된다.

  • 자동화가 저숙련 과업을 제거하면, 남은 과업은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높아지고 임금은 상승하지만 고용은 감소한다.

  • 반대로, 고숙련 과업을 자동화하면, 진입 장벽이 낮아져 임금은 하락하고 고용은 증가한다.

📊 주요 실증 결과

  1. 1977~2018년 미국 직업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자동화로 인해 회계사무원(회계 업무의 저숙련 과업이 제거됨)은 임금 상승+고용 감소, 가게나 창고 점원(고숙련 과업이 제거됨)은 임금 하락+고용 증가라는 정반대의 경로를 보였다.

  2. 즉 '자동화=일자리 감소'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기술 도입 후 해당 직업 내 남은 업무의 전문성이 오히려 임금을 올리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3. 새롭게 추가된 업무의 성격 역시 중요했다. 전문적 업무가 추가되면 임금 상승, 비전문적 업무가 추가되면 임금 하락이 나타났다.

📌 결론 및 시사점

  • 자동화의 영향은 단순히 신기술에 노출됐느냐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업무가 자동화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 AI와 같은 신기술이 직업을 ‘파괴’할 수도 있지만, 직업의 재구성과 고도화를 유도할 수도 있다.

  • 앞으로 중요한 질문은 “AI가 나를 대체할까?”가 아니라, “AI가 내 일에서 어떤 업무를 가져갈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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