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콜중독 예술가들이 만든 명작 게임, '디스코 엘리시움'의 저주

2025-08-13


구 소련 에스토니아의 좌파 소설가, 화가, 철학자들이 벤처캐피탈을 만나 거대한 게임을 만들었다. 작품은 성공했고, 예술가들은 만신창이가 됐다.


Duncan Fyfe

Aug 2 2025



'디스코 엘리시움' 연표

  • 1990년대: 에스토니아 소년 로버트 쿠르비츠가 '엘리시움' 보드게임 제작.

  • 2009년: 쿠르비츠와 친구들이 블로그 기반의 철학/문학/예술 동아리 ZA/UM 결성 

  • 2016년: 소설가 카우르 켄데르의 합류. 엘리시움 세계관으로 '디스코 엘리시움' 게임 개발 시작.

  • 2019년: 게임 출시. 대성공.

  • 2021년: VC의 회사 매각. 주요 멤버들 이탈하기 시작.

  • 2025년: 쿠르비츠, 켄데르 등 5개 이상의 파벌이 디스코 엘리시움의 '후계자'라 주장하는 중.




2019년, ‘디스코 엘리시움’이 발매됐다.


디스코 엘리시움(Disco Elysium)은 롤플레잉 비디오 게임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롤플레잉 장르의 게임들처럼 신화 속 이야기나 초능력을 가진 영웅들을 다루지는 않는다. 판타지 세계도 아니고, 거대한 스케일의 SF 배경도 아니다.

그 대신 이 게임은 정신적, 육체적, 영적으로 피폐해진 한 형사의 머릿속으로 플레이어를 초대한다. 형사는 살인사건을 수사하며 플레이어가 사회주의의 역사적 패배, 노동자와 자본가의 투쟁, 알코올 중독, 미확인생물학, 파시즘, 인종주의 과학 등의 세계를 탐험하게 한다.

이 게임은 에스토니아에 기반을 둔 한 좌파 예술 집단이 만들었다고 알려졌다. 재미있고 유머러스하며 무한한 가능성으로 가득하다. 비디오 게임판 ‘장미의 이름’이자 ‘소프라노스’라 불러도 될 정도로,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춘 작품이다.

생기 넘치는 보라색 머리의 크로아티아인, 도나 클린지치는 2019년 출시된 디스코 엘리시움을 처음 접하고 '이런 게임을 만들지 않고는 살 수가 없겠다'라고 느꼈다. 그래서 2021년, 이 게임을 만든 회사 ZA/UM에 입사해 후속작 개발에 투입됐다. 그러나 직접 들어가본 그 회사는 밖에서 듣던 것과 같은 예술가 공동체가 아니었다. 그곳은 ‘마인크래프트’나 ‘어몽 어스’처럼 대중적 히트작을 만들고자 하는, 그저 평범한 기업이었다. 자본주의나 유물론 같은 대화를 나누는 곳이 아니었다. 그녀는 완전히 속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ZA/UM 사는 디스코 엘리시움 프로젝트의 정신적 리더이자 수석 작가, 그리고 수석 아티스트였던 인물들을 해고했다. 주주들은 서로를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클린지치가 참여했던 프로젝트도 취소됐다. 결국 그녀는 2024년에 회사를 떠났다.

한편 이 게임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전 세계 수백만 명의 플레이어들은 제작사가 무너져가는 모습을 혼란스럽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후 몇 년에 걸쳐 여기저기 생겨난 여러 게임 스튜디오들 중 어디가 진정한 디스코 엘리시움의 후속작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클린지치는 올해 초 필자와 줌으로 대화했을 때 '저주에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디스코 엘리시움이라는 중력장에 들어온 모든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피해를 입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강력한 물체가 있으면, 그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확률은 더 이상 무작위가 아니에요.”




예술 동아리에서 게임 회사로


디스코 엘리시움 제작의 주역인 로버트 쿠르비츠(Robert Kurvitz)는 2000년대 초,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그는 보드게임과 컴퓨터 롤플레잉 게임의 팬이었다. 그는 스스로 오크와 엘프 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보드게임을 구상했고 그 세계관을 여러 해 동안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는 이런 접근을 포기했다. “톨킨보다 더 나은 판타지를 만들 수는 없다”고 느낀 것이다. 쿠르비츠는 대신 현실을 반영하되 조금 굴절시킨 세계관에서 더 큰 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가 만든 ‘엘리시움’의 세계관에는 미국이란 나라가 존재하지 않았다. 프랑스어가 국제 공용어였다. 유럽 국가들은 ‘페일’이라는 엔트로피적 방사능 장벽으로 갈라져 있었다. 또 엘리시움의 세계에서 최근의 수 세기는 우리 현실의 역사처럼 피로 물든 혁명의 실패와 자본의 성공적인 정복으로 점철돼 있었다. 엘리시움은 자동차, 라디오, 컴퓨터 테이프 드라이브로 구동되는 20세기의 복잡하고 기계적인 시뮬라크라(복제 세계)였다.

쿠르비츠는 이런 엘리시움 세계관을 보드게임으로 만들고 친구들을 불러모아 위해 장시간 플레이하게 했다. 그 친구들 중에는 마르틴 루이가와 아르고 투울리크가 있었다. 루이가와 투울리크는 이 게임을 하며 종종 쿠르비츠의 상상력을 넘어섰고, 그에게 게임을 더 확장하라고 재촉했다. 친구들의 피드백은 쿠르비츠를 더 나은 게임 디자이너로 만들었다.

그러나 당시의 그는 게임 제작을 직업으로 삼게 될 거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당시 에스토니아에서 그런 발상은 완전히 꿈 같은 얘기였다고 투울리크는 말한다. 투울리크 본인도 당시 직업은 BMW 정비사였다.



쿠르비츠와 친구들은 2009년에 ZA/UM을 만들었다. 그들은 작가, 시인, 예술가, 철학가였다. 쿠르비츠는 자신의 그룹을 '블로그를 쓰는 좌파 예술 갱단'이라고 불렀다. 루이가는 그들의 목표가 “시민 행동주의로서의 문화였습니다”라고 했다.

ZA/UM 블로그의 기고자 중에는 마르틴 루이가의 어머니 마데 루이가도 있었다. 그녀는 ‘무들룸’이라는 필명으로 2020년 유럽연합 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네 번째 책 ‘폴리시 보이즈’는 ZA/UM을 주제로 한 쿤스트러로만(예술가 성장 소설)이었다. 그 안에서 ZA/UM은 긴 여름날의 흐릿한 꿈으로 다시 그려졌다. 모두 젊었고, 담배를 많이 피웠으며, 이상을 놓고 토론했다.

에스토니아의 유럽사 교수 아로 벨메트는 ZA/UM 블로그 댓글란에서 몰래 활동했던 나날들을 회상했다. 그는 “급진 예술과 급진 정치,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공동 창작에 열정적인, 젊은 에너지가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쿠르비츠는 나중에 “우리는 가이 포크스 가면을 너무 꽉 써서 뇌가 코로 짜내질 지경이었습니다”라고 썼다.

ZA/UM 블로그는 결국 쿠르비츠보다 한 세대 위의 유명 에스토니아 소설가 카우르 켄데르(Kaur Kender)의 관심을 끌었다. 켄데르의 첫 소설 ‘인디펜던스 데이’(1998)는 구 소련 붕괴 속에서 재산을 쌓아가는 무법한 두 사업가의 폭력적이고 성적인 일탈을 그린 풍자였다. 이 책은 히트를 쳤다. 켄데르는 도발적인 작가로 에스토니아 문단에 자리 잡았다. 그는 영향을 받은 인물로 그리스 철학자 고르기아스, 브렛 이스턴 엘리스, 투팍 샤커를 꼽았다.

켄데르는 6년 동안 8권의 책을 냈다. 새로 내는 책마다 반향은 점점 작아졌다. 그는 인터넷으로 눈을 돌렸다. 에스토니아에서 손꼽히는 부호 마르구스 린나매의 펀딩을 받아 문화 관련 블로그를 만들었다. 린나매는 제약과 부동산, 미디어로 부를 쌓은 인물이었다.

켄데르는 작가가 되기 전 마케팅 분야에서 일한 적이 있다. 자본과 권력에 익숙했다. 그는 사업가이자 예술가였다. 마데 루이가는 이렇게 말했다. “카우르 켄데르의 삶과 작품에는 열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저는 말할 수 없습니다.” 투울리크는 켄데르가 캔버스 천으로 된 트러커 모자를 쓰고 다녔다고 기억했다. 각 모자에는 다양한 동물 그림이 있었다. 모자에 그려진 동물은 그날 켄데르의 기분이 예술가 켄데르인지, 사업가 켄데르인지를 표시했다. (런던의 그의 사무실 근처에서 내가 켄데르와 커피를 마셨을 때, 그는 그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고릴라 그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11년에 쿠르비츠는 ZA/UM 블로그에 켄데르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올렸다고 켄데르는 회상했다. 그는 켄데르에게 관심을 “러시아 창녀들은 제쳐 두고 예술에 집중하십시오”로 돌리라고 적었다고 한다. (그 블로그는 지금은 운영되지 않는다. 주소는 ZA/UM 회사 웹사이트로 연결된다.)
켄데르는 “그게 날 웃게 만들었습니다.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ZA/UM의 급진적 인물들에게 흥미를 느꼈다. 쿠르비츠는 동료들에게 켄데르의 글을 출판하자고 권했다. 두 사람은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었다. 켄데르는 체격이 다부졌다. 문신이 있었다. 장난기가 있었다. 쿠르비츠는 키가 컸다. 마른 체형이었다. 장발이었다. 마치 소련 붕괴가 뮤지션 벡을 단단하게 만든 듯한 인상이었다.

쿠르비츠는 보드게임 엘리시움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느라 수 년 동안 작업 중이었다. 이런 모습은 켄데르에게 터무니없었다. 그는 소설을 쓰는 데 28일을 넘긴 적이 없었다. 항상 초고를 그대로 출판했다. 나이 많은 켄데르의 철학은 이랬다. “자신이 없으면, 출판합니다.” 켄데르는 쿠르비츠가 책을 고치도록 도왔다. 2013년 출간 때는 마케팅도 도왔다.

이렇게 나온 소설 ‘성스러우면서도 끔찍한 공기’는 네 자매의 실종 사건을 다룬다. 수십 년 뒤 세 남자가 이 사건으로 고통을 받는다. 소설의 구조는 난해했다. 때때로 관능적이고 공포스러운 시적 문장이 보였다. 판매 부수는 약 1000부였다. 켄데르와 쿠르비츠는 실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에스토니아어로만 출간된 낯설고 난해한 데뷔작이 1000부를 판 것은, 벨메트 교수에 따르면, 미치도록 훌륭한 성과였다. 하지만 쿠르비츠가 원한 방식의 성과는 아니었다. 켄데르는 굵은 억양으로 내게 말했다. “쿠르비츠의 소설은 독자에게 완전히 불친절합니다. 이런 헛소리를 읽는데 시간을 낼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는 또 있었다. ‘성스러우면서도 끔찍한 공기’의 출간은 에스토니아 문화지 ‘시르프’ 인수 실패와 겹쳤다. 시르프는 1940년부터 발행된 잡지다. (시르프는 ‘낫’이라는 뜻이다. ‘낫과 망치’의 그 낫이다.) 2013년에 일이 벌어졌다. 에스토니아의 우파 성향 문화부 장관이 이 잡지 직원들을 해고했다. 그리고 켄데르를 책임자로 앉혔다. 켄데르는 판을 흔들겠다는 당찬 구상을 내놨다. 그는 쿠르비츠를 편집자로 함께 데려왔다. 에스토니아 문화계가 거의 모두 반발했다. 일주일 만에 사퇴가 이어졌다. 켄데르와 쿠르비츠. 문화부 장관까지 물러났다. 쿠르비츠는 나중에 이 사건을 이렇게 썼다. “우리의 국가적 커리어가 이룬 비감한 절정이었습니다.” 그들의 “용서받지 못할 죄”는 “어찌하여 좌파인 동시에 신자유주의자라는 점"이었다고 그는 적었다.

켄데르의 평판은 2016년까지 회복되지 않았다. 그해 그는 한 단편소설을 집필·발표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검찰은 소설 속 성폭력 묘사가 아동 성착취물 제작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켄데르는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벨메트는 이렇게 설명했다. “오히려 그 재판이 그를 복권시켰습니다. 에스토니아 문학계의 가장 빼어난 이들이 법정에서 공개적으로 그를 변호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 인물로 여겨지게 됐습니다.”

켄데르는 그 재판 이후 문학작품을 쓰지 않았다. 그는 더 수익성 높은 일을 찾았다고 했다. 그의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아빠, 요즘 아무도 책을 안 읽어. 그러니까 게임을 만들어." 켄데르는 늘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어했었다. 그의 아버지는 살인 전담 형사였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ZA/UM의 작가와 아티스트들을 데려다 비디오 게임을 만들면 어떨까? 작품의 무대는 쿠르비츠의 엘리시움으로 하면 어떨까?'



주요 인물


초기 예술집단 ZA/UM 멤버

로버트 쿠르비츠 (Robert Kurvitz) — ‘엘리시움’ 세계관 창안, 디스코 엘리시움 집필

마르틴 루이가 (Martin Luiga) — 디스코 엘리시움 집필

아르고 투울리크 (Argo Tuulik) —디스코 엘리시움 집필


게임 제작사 ZA/UM 합류 멤버

카우르 켄데르 (Kaur Kender) — 소설가. 집필, 제작, 투자. 

저스틴 키넌 (Justin Keenan) — 집필

헬렌 힌드페레 (Helen Hindpere) — 집필

쥐리 프란치스쿠 로트만 (Jüri-Franciscus Lotman)  — 집필

 알렉산데르 로스토프 (Aleksander Rostov) — 아트 디렉터


투자자

마르구스 린나매 (Margus Linnamäe) — 에스토니아 재벌. ZA/UM 초기 투자자

일마르 콤푸스 (Ilmar Kompus) — 벤처투자자. ZA/UM 지배권 인수

리아즈 물라 (Riaz Moola) - 남아공 테크 사업가. Dark Math Games 투자 및 Longdue 설립




게임


라틴어로 ‘Disco Elysium’은 “나는 엘리시움을 배웁니다”라는 뜻이다. 게임의 무대는 쿠르비츠가 만든 거대한 세계관의 아주 작은 부분으로, 살인 사건이 일어난 부두 노동자들의 마을이다. 지역은 좁다. 그러나  상호작용의 깊이는 매우 크다. 플레이어는 형사를 조종한다. 발자국, 탄흔, 통속 소설, 길가의 쓰레기까지 모두 조사하도록 형사에게 지시한다.

그런데 이 형사는 기억상실증에 걸려있다는 설정이다. 게임의 서사에서 흔한 장치다. 플레이어가 인물의 과거를 몰라도 그 인물에 쉽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와 캐릭터는 함께 배운다. 그들은 함께 '디스코'한다. 많은 게임에서 기억상실증이란 설정은 여러 이유로 쓰인다. 예를 들어, 게임 초반에 왜 싸우는 법을 모르는지 설명해주는 편리한 변명이 된다. 이미 존재하는 인물의 성격을 왜 플레이어가 결정할 수 있는지 정당화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형사는 여러 성향이 될 수 있다. 공산주의자. 신자유주의자. 파시스트. 아나키스트. 벌레 덕후. 편집증 환자. 예술가. 과민한 감수성 환자...... 게임의 관심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라는 의미뿐 아니라, 왜 그것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어야 하는지, 왜 살아있어야 하는지도 다룬다. 쿠르비츠는 2017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게임은 위키피디아를 모두 다 읽고도 더 원하시는 분들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 세계만큼 믿을 만하고 두려운 또 다른 세계를 통해 우리 세계를 분석하는 도구입니다.”

‘디스코’는 게임계의 관습을 넘어섰다.  게임의 방법론을 통해 자아를 심문하는 것이다. 쿠르비츠가 보기에, 이는 인간 심리의 시뮬레이션에 해당한다. 그 점이 전통적 게임 소비층 바깥의 사람들에게도 매력으로 작용한 이유의 일부였다. 총싸움하는 게임은 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겐 호소력이 없다. 그러나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세상을 설득하려는 무례한 주정뱅이를 조종하는 게임은 다를 수 있다. 누구에게나 호소력이 있다.

이 게임의 특이한 점 또 하나는 '글'이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영어 산문체로 쓰였다. 텍스트 분량이 100만 단어 이상이다. 집필에 참여한 이는 쿠르비츠, 루이가, 투울리크, 켄데르 등이었다. 이 게임의 플레이어는 대부분의 플레이 시간을 글을 읽거나 대화하는 데 쓴다. 쿠르비츠는 2020년 게임스팟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요즘 사람들이) 모두가 텍스트를 읽고 싶지 않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거의 모든 시간을 무언가 읽는데 씁니다. 메신저와 소셜미디어가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텍스트를 뚫어지게 보는 데 시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게임 화면에서 텍스트의 위치와 스크롤 방향은 스마트폰에서 트위터를 읽는 경험을 베껴서 만들었다. 켄데르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빠, 이건 게임이 아니라, 내가 뭔가를 읽게 만들라고 만든 덫 아니야?" 

소설형 텍스트는 제작비용이 적게 드는 자원이다. 그래서 디스코 엘리시움은 게임 세계를 시뮬레이션하는데 있어서 더욱 대담해질 수 있었다. 이는 롤플레잉 보드게임의 경험을 컴퓨터 스크린으로 옮기려는 지난 50여년의 전통을 잇는다. ‘던전 앤 드래곤’이나 쿠르비츠의 원작 ‘엘리시움’ 같은 보드게임들은 사회적 환경에서 플레이하게 되어있다. 세계관을 머릿속에 담은 게임 마스터가 한 명 있어서 플레이어들에게 설명을 해주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보드게임 한 판이 여러 해 동안 이어지기도 한다. 가능성의 공간은 무한하다. 창작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보통의 컴퓨터 게임은 출시 후에는 그 내용이 의미 있게 바뀌지 못한다. 그래서 개발 단계에서 게임 디자이너는 앞으로 수 년 동안 플레이어들이 규칙을 어떻게 시험하고, 악용하고, 오해할지를 미리 예측해야 한다. 그런 우발 상황을 감안해 게임을 설계해야 한다. 그런데 디스코 엘리시움에서는 시뮬레이션의 경계 안에서 플레이어가 해 보고 싶어 할 만한 흥미롭고 영리하고 우스운 행동이 예상되어 있다. 심지어 장려되기도 한다. 플레이어가 실패해도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 대신 적응한다. 쿠르비츠는 2020년에 말했다. “우리는 소수의 플레이어만 보게 될 작은 분량의 콘텐츠들을 미친듯이 많이 써야 했습니다. 이건 그 어떤 자본주의적 사업에서도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입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1990년대 후반의 롤플레잉 게임들, 예컨대 ‘폴아웃’과 ‘발더스 게이트’를 계승하고 변주한다. 이런 컴퓨터 게임들은 보드게임과는 다르다. 플레이어는 던전을 탐험하고, 몬스터를 처치하고, 보물을 찾는다. 그리고 더 높은 난이도에서 그 과정을 반복한다. 대부분의 롤플레잉 게임의 핵심은 전투다. 그러나 전투와 폭력이 서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다보면, 이야기의 스펙트럼은 제한된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전투를 완전히 걷어냈다. 플레이어는 누구도 죽일 필요가 없다. 보물을 얻는 대신 생각과 아이디어, 직감과 충동을 얻는다. 편집증, 정치적 확신, 술 마시고픈 욕구 같은 것들이다. 이런 생각들은 플레이어의 머릿속에서 플레이어에게 “말”한다. 때로는 플레이어에게 찬성하고, 때로는 시비를 건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의 '생각' 중 하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공산주의를 40년 전 벌을 받은 미친 생각이라고 여깁니다. 한때 세상을 흔들었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열병이었습니다. 그 생각이 맞았습니다. 오늘 내가 깨어나기 전까지는요. 영혼이 죽은 시체처럼요.”

플레이어가 한동안 ‘내가 직접 공산주의를 부활시키겠다’고 생각만 하고, 실질적 행동은 하지 않았을 때 결론은 이렇게 난다. “공산주의는 0.0001%만 건설됐습니다. 아동을 죽인 악랄한 억만장자들이 여전히 똥 씹은 웃음을 지으며 세상을 지배합니다. 내가 해낸 일은 나 자신을 슬프게 만든 것뿐입니다. 공산주의를 세우는 대신, 이제 나는 이 기괴하고 이중적인 세계의 정밀한 모형을 세웁니다.”



루이가는 쿠르비츠가 예술 작품이 어떻게 대중적 성공을 거두는지에 매혹됐다고 기억했다. 그는 해리 포터 세계관에서 팝 음악까지 분석하고 해부했다. 상업 문학에서 배운 교훈들은 소설 ‘성스러우면서도 끔찍한 공기’에는 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롤플레잉 게임을 더 깊이 이해했다. ‘엘리시움’에 대한 입문작이자 읽기 경험으로서 디스코 엘리시움 게임은 소설보다 분명한 진전이었다. 저스틴 키넌은 작가로서 2018년에 ZA/UM에 합류했다. 그는 쿠르비츠와 같은 게임을 하며 자랐다. 처음엔 진지한 문학을 쓰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청소년기 대부분을 게임과 함께 보낸 일이 자신의 사고방식 자체를 바꿨다고 본다. 글쓰기와 읽기를 대하는 사고가 재구성됐다. 그 결과 소설 쓰기에는 부적합해졌지만, 게임을 쓰기에는 “적절한 종류의 뇌 손상”을 얻었다고 그는 본다.

한편으로는, 디스코 엘리시움은 ZA/UM에서 활동하던 불만 많고 야심적인 정치적 작가·예술가들만이 만들 수 있는 게임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은 그것을 전혀 만들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다. 게임 개발사 ZA/UM은 블로그 ZA/UM과 이름을 공유했지만 실제로는 전통적 형태의 기업이었다. 이 회사는 마르구스 린나매와 켄데르가 자금을 댔다. (켄데르는 2017년에 자신의 지분을 에스토니아 벤처투자자 일마르 콤푸스에게 넘겼다.) ‘디스코 엘리시움’을 개발하는 3년 동안 ZA/UM은 직원 수가 100명 이상으로 늘었다. 영국 런던과 브라이턴에도 사무소를 열었다. 쿠르비츠와 켄데르는 2017년에 영국으로 이주했다.

이 투자는 성과를 냈다. ZA/UM은 판매 실적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출시 이후 6개월 동안 ZA/UM은 670만 유로의 이익을 냈다. 그 전 해에는 50만 유로가 넘는 적자를 냈는데도 말이다. 판매 추정치는 350만~700만 장이다. 평단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렇게 평가했다. “마우스를 클릭할 수 있는 사람 모두에게 권합니다.” 게임 매거진 ‘엣지’와 ‘PC 게이머’는 각각 이렇게 평했다. “화석으로 굳어 버린 장르를 웅장하게 다시 빚어낸 작품.” “가장 뛰어난 컴퓨터용 롤플레잉 게임 가운데 하나.” 다른 흥행작의 개발자들, 이를테면 샘 레이크(‘컨트롤’)와 그렉 카사빈(‘하데스’)도 디스코 엘리시움을 그해 최고의 게임 중 하나로 꼽았다. 결국 그 해 게임업계 주요 상들을 휩쓸었다.

디스코 엘리시움에 제작·투자한 켄데르는 에스토니아 문학계를 떠나 더 뜨거운 게임 분야에서 이름을 얻게 된 것에 대해 기뻐했다. 한편 쿠르비츠에게 있어서 이 성공은 소설보다 비디오 게임이 낫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게임은 소설이 결코 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전 세계에 들불처럼 퍼집니다. 게임은 몇 달 만에 국경과 언어, 이데올로기, 세대를 가로지릅니다. 게임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꿉니다. 생각을 만듭니다.책 쓰는 것을 접고 게임 쓰기를 고려해 보십시오. 그럴 가치가 있습니다.”




해체


2021년, 린나매는 ZA/UM의 지분 다수를 팔았다. 다른 주주들은 자신의 지분을 균등하게 나눠 살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시 다른 주주에는 쿠르비츠와 디스코 엘리시움의 아트 디렉터인 알렉산데르 로스토프(Aleksander Rostov)가 있었다. 그러나 지분 전량은 벤처투자자인 콤푸스가 샀다. 이후 쿠르비츠는 이렇게 주장했다. 콤푸스가 켄데르의 “지원”을 받아 인수를 자금조달했다는 것이다. 방법은 ZA/UM 자회사 대출과 신작 게임의 권리를 ZA/UM에서 1파운드에 사서 다시 ZA/UM에 480만유로에 되파는 방식이었다. 그는 자신과 로스토프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몰랐다고 했다. 이에 대해 콤푸스는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고, 켄데르는 이렇게만 말했다. "쿠르비츠는 아무런 근거 없는 소송을 시작하는 데 천재적입니다"라고.

영상팀 ‘피플 메이크 게임즈’의 2023년 유튜브 다큐멘터리에서 콤푸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번 거래와 관련된 모든 것이 승인된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쿠르비츠는, 자신과 로스토프는 2021년 말 콤푸스의 인수 경위를 따지고 관련 재무 자료를 요구했다가 강등됐고, 이어 해고됐다고 말했다. 2024년에 탈린 순회법원은 쿠르비츠의 일부 신청을 받아들여 ZA/UM에 재무 자료 제출 의무를 부과했다. 다만 재무적 사기 행위가 있었다고 볼 만한 증거는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회사는 다큐에서 쿠르비츠가 제기했던 주장에 대한 논평을 거절했다. 대신 홍보팀 명의의발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까지 법원은 원고의 실체적 청구에 일관되게 불리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장에 대해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일들은 벤처캐피탈의 세계에서 특이한 일도 아니었다. 열정적인 좌파 젊은이들이 전통적 기업 환경 안에서 디스코 엘리시움을 온전히 만들었다는 사실이야말로 특이한 일이었다. 콤푸스가 인수한 ZA/UM은  이미 좌파 예술 갱단이 아니었다. 에스토니아의 최고 부자들이 자금을 댄 소프트웨어 회사였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린나매나 켄데르 같은 후원자 없이는 예술이 멀리 가기 어려운 문화권에서 나왔다. 2021년 이 게임을 공동 집필한 헬렌 힌드페레는 무대에서 상을 받으며 마르크스와 엥겔스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러나 투울리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공산주의자를 롤플레잉처럼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는 2024년 파트너 클린치치와 함께 회사를 떠났다. “우리는 모두 이 회사가 매우 전통적인 모습의 회사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외부에는 마치 이것이 일종의 협동조합인 것처럼 보이게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켄데르는 이렇게 말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공산주의 게임이 아닙니다. 포춘 500 게임입니다.”

올해 ZA/UM은 디스코 엘리시움의 모바일 버전을 발표했다. 회사의 목표는 이랬다. “틱톡 사용자를 사로잡는다. 강렬한 스토리, 아트, 오디오를 짧게 제공한다. 완전히 새로운, 깊게 몰입되는 엔터테인먼트를 만든다.” 팬들은 충격을 받았다. 'PC 게이머' 지는 이렇게 썼다. “이 프로젝트는 근본적으로 무례하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디스코 엘리시움 답지 않다.” 그러나 이 계획은 과거 쿠르비츠가 했던 말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사람들의 소셜미디어 이용 방식에 맞춰 디스코 엘리시움을 설계한다고 말한 부분이다. 그 목적은 더 큰 대중을 포획하는 것이었다. 쿠르비츠는 2020년 게임스팟에 이렇게 말했다. “믿거나 말거나, 우리는 엘리트주의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늘 원한 것은 대중 오락을 위한 대중적 제품입니다. 물론 우리의 방식으로요.”

한 비평가와의 인터뷰에서 쿠르비츠는 예술을 모닥불에 비유했다. “모닥불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 불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러면 무언가가 일어납니다.” 쿠르비츠의 저주는, 가치 있는 비디오 게임을 천성적으로 너무 잘 만든다는 점이었다. 그는 수백만 명이 둘러앉고 싶어 하는 모닥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불의 소유권은 지키지 못했다. 마르틴 루이가는 2022년에 이렇게 썼다. 쿠르비츠가 “돈을 가진 사람들”을 너무 순진하게 믿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가난에 대한 일반적 공포”였다. 켄데르는 뒤늦게 그게 약점이었다고 말했다. 쿠르비츠가 만든 ‘엘리시움’의 지식재산권은 이제 ZA/UM이 소유하고 있다.



 


게임 개발은 사람 지치게 만드는 프로세스다.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좋은 것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베타테스트에 들어가면 테스터들은 전반적으로 나쁜 평가를 준다. 이해하기도 어렵다 하고, 최악의 경우 재미가 없다고 본다. 그러면 개발자들은 수정에 들어간다. 쿠르비츠는 이렇게 추산했다. “이 게임의 약 70%는 다시 쓴 것입니다. 약 50%는 다시 쓴 것을 다시 쓴 것입니다.” 이 과정은 자금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뭔가를 내놓을 수밖에 없을 때까지 반복된다. 그때쯤이 되면 개발자들도 자신들이 만든 것이 여러 면에서 매우 나쁘다는 생각에 설득됐을 수 있다.

투울리크는 쿠르비츠가 이 과정을 거치며 팀원들의 감정을 해치지 않으며 이끄는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개발자가 무언가를 만들어 쿠르비츠에게 보여주러 오면, 그는 ‘이건 더 보고 싶지가 않네요. 이걸 보니 내가 일을 못할 정도로 의욕이 꺾이네요’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꽤 자주 그랬습니다. 누군가 사나흘치 작업한 것을 한 번 보고  ‘쓰레기네요'라며 바로 삭제해버리는 일도 자주 있었습니다.” 쿠르비츠는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초기 멤버 루이가는 디스코 엘리시움 게임 개발 3년 중 첫 해 동안만 ZA/UM에서 일했다. 자신에게 있어 사실상 강등이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ZA/UM가 블로그 모임이었을 당시엔 리더였다. 그러나 게임 제작에서는 그저 많은 작가 중 한 명이 됐기 때문이다. 보수에도 불만이 있었다. 당시 쿠르비츠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가 쿠르비츠의 심리적 짐을 함께 짊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저는 완전히 미쳐갔습니다. 압박에 못 이겨 두 번 무너졌습니다.”

한편 또다른 초기 멤버인 투울리크는 쿠르비츠와의 관계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손상됐다고 말했다. “그들이 떠난 뒤 나만 스튜디오에 남기로 한 선택이 용납받지 못했습니다. 쿠르비츠는 나를 적으로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과 이야기하고 싶다면 무릎으로 기어와서 사과하라고 했습니다.”

현재 켄데르는 쿠르비츠가 디스코 엘리시움의 얼굴이라고 보지 않는다. 그 세계관은 쿠르비츠가 만든 게 맞다. 그러나 켄데르는 게임 콘셉트는 자신에게 더 공이 있다고 본다. 지금 켄데르의 말로는, 자신이 재판까지 받았던 외설 단편소설이야말로 쿠르비츠가 썼다고 말한다. 쿠르비츠는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작가가 책 대신 게임을 써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훨씬 클 수 있다. 그러나 고통도 그에 비례한다. 마데 루이가는 말했다. “아니요, 게임은 이런 식의 고통을 감수할 만큼 가치가 없습니다. 그것이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밀접히 관여한 다른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제 생각에 절대적으로 끔찍합니다. 그리고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습니다.” 디스코 엘리시움 작업을 떠난 이후 마르틴 루이가는 쿠르비츠에게 한 에스토니아 사업가에게 게임 제작을 제안하겠다고 말했다. 쿠르비츠는 이렇게 답했다. “넌 그거 못 해. 너무 힘들어."




 


진짜 후계자는? 


디스코 엘리시움의 성공과 회사의 매각 이후 멤버들은 여러 스튜디오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은 각자 디스코 엘리시움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속작을 만들고 있다 말한다.


(1) ZA/UM: 투울리크, 키넌

저스틴 키넌은 현재 ZA/UM이 만들고 있는 차기 오리지널 게임의 수석 작가다. 이는 디스코 엘리시움의 진화된 버전이지, 속편이 아니다. 키넌은 이렇게 말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새로운 유형의 비디오 게임에 대한 훌륭한 초안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 번째 초안을 하고 있습니다.” 새 작품은 기묘한 심리 요소를 지닌 롤플레잉 게임이다. 탐정물이었던 전작에서 존 르 카레 풍의 첩보물로 이동한다. 키넌은 토머스 핀천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디스코 엘리시움에 있었던 편집증적 테마를 더 끌어낸다.

ZA/UM은 쿠르비츠 등 원년 멤버들을 떠나보낸 대가로 게임팬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게임 업계의 유명 성우 사만사 베아트는 2월 엑스에 이렇게 올렸다. “디스코 엘리시움 후속작을 만든다면서 쿠르비츠가 거기에 없다면, 서로 시간을 아낍시다. 그런 제작사는 저에게 같이 일하자고 연락하지 마세요."


(2) Dark Math Games: 켄데르, 로트만, 린나매

한편 켄데르는 런던에서 다크 매스 게임즈라는 스튜디오를 세웠다. 그는 더 노골적이고 성적 색채가 강한 주제의 디스코 엘리시움식 후속작을 만든다. 공동 작가 주리-프란치스쿠스 로트만은 이렇게 말했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벌써 조금 고전처럼 느껴집니다. 미국 시트콤 ‘메리드 위드 칠드런’ 같다고나 할까요.” 로트만은 ZA/UM 초창기에 참여했다. 그는 켄데르의 게임에 합류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인간 문화의 최첨단에 설 기회였습니다. 그런 기회를 얻으면 참여하는 건 의무지요.” 신규 스튜디오 설립 전, 켄데르는 다시 에스토니아 재벌 린나매로부터 자금을 확보했다. 또다른 투자자는 남아공 출신 기술 창업가 리아즈 물라였다. 그는 ZA/UM에서 크리에이티브 팀이 대거 빠져나간 뒤 켄데르에게 접근했다. 켄데르는 리아즈 물라에게 받았던 링크드인 메시지가 최고였다고 기억한다. "안녕. 나는 리아즈야. 디스코 엘리시움 사랑해. 나 돈 많어. 얘기 좀 하자."


(3) Longdue: 물라, 루이가

리아즈 물라는 켄데르의 스튜디오에 투자하고 나서 '롱듀'라는 자신의 스튜디오도 따로 만들었다. 이곳도 디스코 엘리시움의 계보를 잇는 게임을 만든다. 물라는 이메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속편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속편을 너무나 하고 싶었습니다. 기업가에게 가장 큰 동기는 종종 자신이 개인적으로 느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옵니다.”


(4) Summer Eternal: 투울리크, 클린지치

투울리크와 도라 클린지치는 켄데르와 함께 나왔지만 이후 그와 틀어졌다. 그 다음엔 리아즈 물라와 함께 일했다. 그러나 거기도 나와서 독립 스튜디오를 차렸다. 이들도 디스코 엘리시움 같은 게임을 만든다고 한다. 다만 물라의 회사가 낸 금지 명령 때문에 작업 진척은 더뎠다. 투울리크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디스코 엘리시움이 얼마나 멀리 진화할 수 있는지 시도조차 못한다면, 그것은 인류 문화에 엄청난 손실이라고 느낍니다. 개인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방법들로 가능한 것의 맨 윗부분만 간신히 긁어냈을 뿐입니다.”


(5) Red Info: 쿠르비츠, 로스토프, 힌드페레

한편, 쿠르비츠는 새로운 스튜디오 '레드 인포'에서 다음 작품을 만든다. 동료는 알렉산데르 로스토프, 헬렌 힌드페레, 크리스 아벨론이다. 아벨론은 1999년 게임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의 수석 작가였다. 그 작품은 디스코 엘리시움에 큰 영향을 줬다. 아벨론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쿠르비츠는 디스코 엘리시움을 자신의 머릿속 프로젝트로 느꼈습니다. 프랜차이즈에서 끊기자, 자신에게 다른 아이디어가 없을지 걱정했습니다. 나는 그게 헛소리라고 느꼈습니다. 쿠르비츠는 창작을 멈추거나, 머릿속의 단 하나 세계에 의존할 사람이라기엔 너무 창의적입니다.”


마르틴 루이가는 한동안 쿠르비츠의 레드 인포에서 집필했다. 이후 물라의 롱듀 스튜디오에 합류했다. 그는 시각 예술로 일하는 편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일로 자신을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다. 그 점에선 투울리크도 마찬가지다. 이제 켄데르도 그렇다. 이들의 대표작은 디스코 엘리시움이다.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는 것도 그 점뿐이다.





지난 2년 동안 비디오 게임 업계에는 대규모 해고와 수익성 둔화가 일상적이었다. 그래서 출시 전에는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던 디스코 엘리시움이 이 시점에선 안전한 투자로 보일 수도 있다. 쿠르비츠의 제작사 레드 인포는 중국 대형 테크기업 넷이즈(NetEase)에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아무리 괜찮은 투자라 해도, 디스코 엘리시움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에는 창작의 리스크와 평판의 리스크가 따른다. 그런데도 왜 다들 뛰어드는 걸까? 루이가처럼 이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혹은, 반복적 과정을 통해 디스코 엘리시움이 성공했으니 바퀴가 한 번 더 돌고 난 뒤에는 더 큰 무언가가 나온다고 상상할 수도 있다. 이 분파 스튜디오들이 공통으로 가진 믿음은 한 가지다. 디스코 엘리시움은 어떤 것의 시작이지, 10년의 예술과 꿈으로 이룬 승리의 종착점은 아니라는 믿음이다.

한 가지 측면에서 성공은 ZA/UM 출신들에게 변화를 주지 못했다. 원고 초고를 두고 싸우다가 우정을 끊는 것은 젊은 예술가들의 열정이 도달하는 정점이다. 쿠르비츠는 예술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모닥불 주변의 사람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2024년에 이렇게 말했다. “세계관을 만들 때는 사람을 먼저 두십시오. 우정을 먼저 두십시오. 인생에서 세계관을 만들든 무엇을 성취하든 최고의 자산은 당신이 가진 그 눈부신 친구입니다. 그들도 문제를 갖고 옵니다. 모두가 그렇습니다. 이 세계에서 당신은 고립되거나 용서하는 사람이 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용서를 권합니다.”


디스코 엘리시움의 모닥불은 이제 곳곳의 작은 불씨로 흩어졌다. 서로를 좋아하지 않거나, 서로를 깊이 경계하는 옛 친구들이 그 불씨들을 둘러쌌다. 지금 이 순간에는, 불이 번지는 것과 곧 불이 꺼지는 것이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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