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코인을 매입해 주가를 올리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단기적으론 확실한 처방이다.
Nikou Asgari
8 Aug 2025
3개월 전만 해도 반도체 기업 세콴스 커뮤니케이션의 CEO인 조르주 카람은 비트코인 매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그의 회사는 인수합병 건의 실패로 투자자들이 동요하고 있었고, 주가를 끌어올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카람은 한 헬스케어 기업이 비트코인을 매입한 뒤 주가가 급등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비트코인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흥미를 느꼈다.
카람은 이사회와 일부 투자자들과 상의한 끝에 비트코인 매입 전략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세콴스 커뮤니케이션은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에서 3억8400만달러를 조달해 비트코인을 사들였다. 이 소식에 주가는 160% 급등했다. 카람은 말한다. “작년에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믿게 됐습니다. 지금은 비트코인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100% 확신합니다.”
비트코인 초보자인 그가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 데에는 비트코인 전도사 마이클 세일러의 영향이 컸다. 미국의 암호화폐 거물인 세일러는 2020년부터 매주 비트코인을 매입하며, 다른 회사들도 같은 전략을 채택하라고 장려하는 컨퍼런스를 열어 왔다. 세일러의 회사는 원래 소프트웨어 제작사였지만 이제 비트코인 보유 기업인 '스트래터지'로 변모했으며, 현재 기업 가치는 보유한 비트코인 가치의 거의 두 배인 약 1150억달러에 달한다. 지난주에는 창사 이래 세 번째로 큰 규모인 25억 달러어치의 비트코인 매입을 실행했다. 주가는 지난 5년간 3000% 넘게 급등했다.
이러한 성공 사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인 산업 지지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이른바 '크립토 저장 회사'들이 출현하고 있다.
바이오테크 기업, 금광업체, 호텔업체, 전기차 회사, 전자담배 제조업체 등 다양한 기업들이 코인 매입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코인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코인 시장에 간접 투자하려는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는다. 코인 컨설팅사 아키텍트 파트너스에 따르면, 올해 8월 5일까지 총 154개 상장기업이 코인 매입을 위해 자금을 조달했거나 조달을 약속했다. 총액은 984억달러에 이른다. 일부 기업들은 스트래터지를 모방해 자사 웹사이트 색상을 비트코인의 상징색인 주황색으로 바꾸고, 보유 코인 수와 가격을 담은 대시보드를 제공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본인도 이 흐름에 뛰어들었다. 그의 가족이 소유한 미디어 회사는 7월 비트코인과 관련 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20억달러를 조달했다.
하지만 이런 트렌드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빠른 성장 속도에 일부 투자자들은 이미 시장 과열을 우려하고 있다. 크립토 저장 회사들에 투자하고 있는 오프더체인캐피털의 최고경영자 브라이언 에스테스는 “1998년의 인터넷 거품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많은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앞다투어 ‘웹'이라는 말을 아무데나 갖다붙이며 리브랜딩했던 시절이다.
또 이 분야에 새롭게 등장하는 기업 수가 많아지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수십억달러의 부채를 지고 코인을 매입한 기업들은 그럴 경우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나틱시스 CIB의 기술 및 데이터 전문가 에릭 브누아는 “비트코인이 폭락하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라고 말한다. 이 경우 주가도 함께 하락하고, 기업이 채권자에게 돈을 갚지 못하면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게 된다. 이는 비트코인 생태계 전체에 시스템 리스크가 될 수 있다. 그는 “시장에 작은 공포가 생길 때마다 전체가 무너진다”고 말한다.
코인 시장조성업체 키록의 최고경영자 케빈 드 파툴은 투자자들이 이 현상을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자산 가격 상승 외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시스템에 막대한 리스크를 주입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코인만 해라
본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겐 코인을 매입하는 것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주가를 올릴 수 있는 확실한 방법처럼 보인다.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그렇다.
런던증시에 상장된 '블루버드 마이닝 벤처스' 창업자 에이단 비숍은 “우리가 이 전략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며 “그전에는 자금을 모으려면 이 문 저 문 두드리며 구걸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6월 비트코인을 사기 위해 200만파운드를 조달했다.
이 분야에 새로 진입한 대부분의 기업은 코인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일반적인 사업체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보유한 코인의 가치는 회사가 실제로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훨씬 크다. 예를 들어,
- 미국의 열에너지 기업 KULR 테크놀로지는 올해 첫 세 달 동안 940만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음에도 시가총액은 약 2억1100만달러에 달한다. 이 회사는 약 1억1800만달러어치의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
- 영국의 웹사이트 개발 업체 '더 스마터 웹 컴퍼니'는 올해 4월까지 6개월 동안 순이익이 고작 9만3000파운드였지만, 비트코인 2억3800만파운드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시가총액이 약 5억6000만파운드에 달한다.
기업명 / 주요 활동 / 보유 암호화폐 가치 / 시가총액 / 비고
| The Smarter Web Company | 웹사이트 디자인 (영국) | £2억3800만 | £5억6000만 | 약 42% | 비트코인 보유로 고평가 |
| KULR Technology | 열에너지 기술 (미국) | $1억1800만 | $2억1100만 | 약 56% | 운영손실 상태 |
| Sequans Communications | 반도체 (미국) | 비공개 (매입 자금 $3억8400만) | 급등 후 하락 | 불명 (초기 급등) | 전략 변화 |
| Bluebird Mining Ventures | 광산 탐사 (영국) | £200만으로 매입 시작 | 비공개 | 불명 | "회생 전략"으로 채택 |
| Metaplanet | 비트코인 금융화 시도 (일본) | 세계 5위 보유량 | 비공개 | 매우 높음 | 대출 기반 서비스 계획 |
| Strategy (Michael Saylor) | 소프트웨어→비트코인 보유 회사 | $600억+ 상당 보유 | 약 $1150억 |
코인 매입을 위해 지속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선다는 점을 입증한 기업들은 투자자들로부터 더 큰 보상을 받는다. 이런 기업의 주가는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 가치보다도 더 높게 평가된다. 실제로 이런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부채나 주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코인베이스 같은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사는 데 투입한다.
속도가 핵심이다. 에스테스는 “결국 관건은 속도”라며 “1주 당 비트코인 보유수(btc per share)를 얼마나 빨리 늘리느냐가 기업이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는 열쇠”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에게 ‘btc per share’는 성공을 판단하는 주요 지표다. 기업이 비트코인을 빠르게 매입할수록 투자자는 자신이 가진 주식 한 주당 더 많은 암호화폐를 간접적으로 보유하게 된다. 앞으로 더 많은 비트코인 보유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주가는 더 올라간다.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존 사업을 병행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코인 매입에 올인하는 페이퍼컴퍼니 중심의 새로운 거래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형태로 운영되며, 자금을 조달해 기존 기업을 인수하거나 합병한다.
벤처캐피털 '드래곤플라이 캐피털'의 파트너 롭 해딕은 “다른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가 비트코인을 매입할 경우 오히려 운영 리스크가 더 클 수 있다”며 “기존 경영진의 목표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고, 본업과의 우선순위 충돌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젠 잡코인도 매입한다
이제 기업들은 비트코인을 넘어 다른 코인들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예를 들어:
- ‘리저브원’은 코인 거래소 크라켄과 블록체인닷컴 등을 포함한 투자자들로부터 10억달러를 조달한 프로젝트다. 이들은 비트코인뿐 아니라 이더, 솔라나 등 다양한 암호화폐를 매입할 계획이다.
- ‘이더 머신’은 15억달러를 조달해 전액 이더리움에 투자할 예정이다.
- 바클레이즈 전 최고경영자 밥 다이아몬드는 한 바이오테크 기업과 함께 SPAC을 통해 8억8800만달러를 조달해 ‘하이프’ 토큰을 매입한다.
- 암호화폐 억만장자 창펑 자오는 한 캐나다 전자담배 제조업체가 바이낸스 거래소의 토큰인 BNB를 매입할 수 있도록 5억달러 규모의 딜을 주도했다.
해딕은 “지금은 분명히 약간의 골드러시가 벌어지고 있지만, 이게 전부 합리적인 흐름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며 “이렇게 많은 토큰마다 각자 별도의 비히클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규제가 코인 저장 회사들을 돕는다
코인 저장 회사들은 개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 모두에게 있어 토큰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도 코인에 투자할 수 있는 대안적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블랙록, 피델리티, 인베스코 같은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출시한 미국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이런 방식의 투자를 한다. 이 상품들은 기존 금융 규제의 바운더리 안에 있으며 현재까지 1000억달러 이상의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영국과 일본 같은 국가에서는 규제 당국이 디지털 자산의 높은 변동성으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코인 ETF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나라들에서는 코인 저장 회사가 일종의 대체 투자 수단 역할을 한다. 즉, 투자자들이 법적으로 거래 가능한 수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코인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투자사 UTXO 매니지먼트의 공동 창업자 타일러 에반스는 “ETF에 전혀 투자할 수 없거나, 암호화폐를 직접 보유할 수 없는 기관 투자자들이 많다”며 “비트코인 저장 회사들이 그런 틈새를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회사는 4억3000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자하는데 95%가 비트코인 저장 회사에 투자돼 있다.
투자자들은 일부 국가에서 코인과 주식 보유에 따른 세율 차이를 이용한 조세 차익(arbitrage)도 활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코인 투자 수익에 최고 55%의 세금이 부과되지만, 주식은 20%만 과세된다. 브라질에서는 코인 수익이 17.5% 세율로 과세되지만, 주식 거래에 대한 세율은 15%에 불과하다. 따라서 암호화폐에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코인을 많이 보유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세금 측면에서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적극적인 투자자들은 이와 유사한 세제 구조를 가진 국가들을 찾아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에스테스는 “미국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지금은 미국 외 지역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코인 기반 금융서비스로의 확장
코인 매입 전략의 핵심은 채권이나 주식 발행을 통해 코인 매입 자금을 빠르게 조달하는 것이다. 코인 매입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않은 기업들은 벌써부터 주가 하락을 겪고 있다. 예를 들어 세콴스 커뮤니케이션은 비트코인 매입을 시작한 후 주가가 160% 급등했지만, 현재는 당시보다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이 회사의 코인 매입 속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압박은 많은 회사들이 단순히 코인 저장소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을 계획하게 만들고 있다.
- 밥 다이아몬드가 만든 하이프(HYPE) 토큰 중심의 투자 비히클은 다른 코인 저장 회사들을 인수할 예정이다. 그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회사들을 우리가 인수해서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 비트코인 보유량 세계 5위인 일본의 메타플래닛은 자사가 보유한 코인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코인 금융 서비스 회사로 변신할 계획이다.
- 미국의 열에너지 기업 KULR도 비트코인을 담보로 하는 대출 등 금융 서비스를 검토 중이다.
- 광산업체 팬서 메탈스는 자사가 보유한 비트코인을 향후 광물 탐사 프로젝트에 활용할 계획이다.
나틱시스 CIB의 브누아는 “비트코인이라는 막대한 담보물이 있기에 금융서비스로의 진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코인 담보 대출은 매우 위험한 사업이다. 2022년, 코인 가격 하락이 연쇄 채무불이행 사태를 불러오며 대출 시장이 붕괴했고, 이는 결국 거래소 FTX의 파산으로 이어졌다.
브누아는 “이 전략의 가장 큰 문제는,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라며 “기업은 끊임없이 코인을 추가 매입하고, 다시 시장에 나가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반복적인 루프에 빠져 있다. 이 사이클을 계속 이어가야만 주가 프리미엄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리스크는 코인 가격이 폭락할 경우 피해가 얼마나 클 것이냐는 점이다. 코인 가격이 하락하면 이에 주가가 연동된 기업들의 주가 역시 함께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채를 조달한 기업들의 리스크는 더 크다. 이들은 투자자에게 이자를 지급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추가 자금을 조달하거나 보유 중인 암호화폐를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
한 코인 헤지펀드 대표는 “기존 부채를 새로운 부채로 갚는 구조는 매우 건전하지 않다. 이런 구조는 매우 불안하게 만든다”며 “이처럼 취약한 구조들이 너무 많아지면, 전면적이든 부분적이든 결국 청산될 수밖에 없고, 이는 시장에 압력을 가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기업이 시장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런 재무 구조를 쌓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규제 당국의 관리를 받는 게 낫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이런 리스크를 인식하고 있지만, 호황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돈을 더 벌고 싶어 한다. 여러 코인 저장 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UTXO 매니지먼트의 에반스는, 자신이 조언하는 최고경영자들에게 “경기 하락 시에도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본업의 수익 구조를 갖추고, 비트코인 자체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의론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 업계에 이해관계를 가진 인사들조차 의구심을 드러낸다. 에스테스는 “이건 나쁜 결말로 끝날 것이다. 결국 버블로 끝날 것”이라며 “올랐던 속도만큼, 내려가는 속도도 빠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 The Financial Times Limited 2025. All Rights Reserved. Not to be redistributed, copied or modified in any way. Okhotsk Publishing is solely responsible for providing this translation and the Financial Times Limited does not accept any liability for the accuracy or quality of the translation.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이 코인을 매입해 주가를 올리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단기적으론 확실한 처방이다.
Nikou Asgari
8 Aug 2025
3개월 전만 해도 반도체 기업 세콴스 커뮤니케이션의 CEO인 조르주 카람은 비트코인 매입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그의 회사는 인수합병 건의 실패로 투자자들이 동요하고 있었고, 주가를 끌어올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카람은 한 헬스케어 기업이 비트코인을 매입한 뒤 주가가 급등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프랑스 출신인 그는 비트코인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고, 흥미를 느꼈다.
카람은 이사회와 일부 투자자들과 상의한 끝에 비트코인 매입 전략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세콴스 커뮤니케이션은 채권시장과 주식시장에서 3억8400만달러를 조달해 비트코인을 사들였다. 이 소식에 주가는 160% 급등했다. 카람은 말한다. “작년에는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믿게 됐습니다. 지금은 비트코인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100% 확신합니다.”
비트코인 초보자인 그가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 데에는 비트코인 전도사 마이클 세일러의 영향이 컸다. 미국의 암호화폐 거물인 세일러는 2020년부터 매주 비트코인을 매입하며, 다른 회사들도 같은 전략을 채택하라고 장려하는 컨퍼런스를 열어 왔다. 세일러의 회사는 원래 소프트웨어 제작사였지만 이제 비트코인 보유 기업인 '스트래터지'로 변모했으며, 현재 기업 가치는 보유한 비트코인 가치의 거의 두 배인 약 1150억달러에 달한다. 지난주에는 창사 이래 세 번째로 큰 규모인 25억 달러어치의 비트코인 매입을 실행했다. 주가는 지난 5년간 3000% 넘게 급등했다.
이러한 성공 사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코인 산업 지지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이른바 '크립토 저장 회사'들이 출현하고 있다.
바이오테크 기업, 금광업체, 호텔업체, 전기차 회사, 전자담배 제조업체 등 다양한 기업들이 코인 매입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코인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코인 시장에 간접 투자하려는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는다. 코인 컨설팅사 아키텍트 파트너스에 따르면, 올해 8월 5일까지 총 154개 상장기업이 코인 매입을 위해 자금을 조달했거나 조달을 약속했다. 총액은 984억달러에 이른다. 일부 기업들은 스트래터지를 모방해 자사 웹사이트 색상을 비트코인의 상징색인 주황색으로 바꾸고, 보유 코인 수와 가격을 담은 대시보드를 제공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본인도 이 흐름에 뛰어들었다. 그의 가족이 소유한 미디어 회사는 7월 비트코인과 관련 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20억달러를 조달했다.
하지만 이런 트렌드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많다. 빠른 성장 속도에 일부 투자자들은 이미 시장 과열을 우려하고 있다. 크립토 저장 회사들에 투자하고 있는 오프더체인캐피털의 최고경영자 브라이언 에스테스는 “1998년의 인터넷 거품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많은 기업들이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앞다투어 ‘웹'이라는 말을 아무데나 갖다붙이며 리브랜딩했던 시절이다.
또 이 분야에 새롭게 등장하는 기업 수가 많아지면서,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수십억달러의 부채를 지고 코인을 매입한 기업들은 그럴 경우 채무 상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나틱시스 CIB의 기술 및 데이터 전문가 에릭 브누아는 “비트코인이 폭락하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라고 말한다. 이 경우 주가도 함께 하락하고, 기업이 채권자에게 돈을 갚지 못하면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게 된다. 이는 비트코인 생태계 전체에 시스템 리스크가 될 수 있다. 그는 “시장에 작은 공포가 생길 때마다 전체가 무너진다”고 말한다.
코인 시장조성업체 키록의 최고경영자 케빈 드 파툴은 투자자들이 이 현상을 현실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자산 가격 상승 외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시스템에 막대한 리스크를 주입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코인만 해라
본 사업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겐 코인을 매입하는 것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주가를 올릴 수 있는 확실한 방법처럼 보인다.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그렇다.
런던증시에 상장된 '블루버드 마이닝 벤처스' 창업자 에이단 비숍은 “우리가 이 전략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앞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며 “그전에는 자금을 모으려면 이 문 저 문 두드리며 구걸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6월 비트코인을 사기 위해 200만파운드를 조달했다.
이 분야에 새로 진입한 대부분의 기업은 코인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일반적인 사업체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보유한 코인의 가치는 회사가 실제로 벌어들이는 수익보다 훨씬 크다. 예를 들어,
기업명 / 주요 활동 / 보유 암호화폐 가치 / 시가총액 / 비고
코인 매입을 위해 지속적으로 자금 조달에 나선다는 점을 입증한 기업들은 투자자들로부터 더 큰 보상을 받는다. 이런 기업의 주가는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 가치보다도 더 높게 평가된다. 실제로 이런 회사들은 일반적으로 부채나 주식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코인베이스 같은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사는 데 투입한다.
속도가 핵심이다. 에스테스는 “결국 관건은 속도”라며 “1주 당 비트코인 보유수(btc per share)를 얼마나 빨리 늘리느냐가 기업이 프리미엄을 받을 수 있는 열쇠”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에게 ‘btc per share’는 성공을 판단하는 주요 지표다. 기업이 비트코인을 빠르게 매입할수록 투자자는 자신이 가진 주식 한 주당 더 많은 암호화폐를 간접적으로 보유하게 된다. 앞으로 더 많은 비트코인 보유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주가는 더 올라간다.
비트코인을 매입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기존 사업을 병행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코인 매입에 올인하는 페이퍼컴퍼니 중심의 새로운 거래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형태로 운영되며, 자금을 조달해 기존 기업을 인수하거나 합병한다.
벤처캐피털 '드래곤플라이 캐피털'의 파트너 롭 해딕은 “다른 사업을 영위하는 회사가 비트코인을 매입할 경우 오히려 운영 리스크가 더 클 수 있다”며 “기존 경영진의 목표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고, 본업과의 우선순위 충돌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젠 잡코인도 매입한다
이제 기업들은 비트코인을 넘어 다른 코인들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예를 들어:
해딕은 “지금은 분명히 약간의 골드러시가 벌어지고 있지만, 이게 전부 합리적인 흐름이라고는 보기 어렵다”며 “이렇게 많은 토큰마다 각자 별도의 비히클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진 않는다”고 말했다.
규제가 코인 저장 회사들을 돕는다
코인 저장 회사들은 개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 모두에게 있어 토큰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도 코인에 투자할 수 있는 대안적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블랙록, 피델리티, 인베스코 같은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출시한 미국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이런 방식의 투자를 한다. 이 상품들은 기존 금융 규제의 바운더리 안에 있으며 현재까지 1000억달러 이상의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하지만 이런 선택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영국과 일본 같은 국가에서는 규제 당국이 디지털 자산의 높은 변동성으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코인 ETF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나라들에서는 코인 저장 회사가 일종의 대체 투자 수단 역할을 한다. 즉, 투자자들이 법적으로 거래 가능한 수단을 통해 간접적으로 코인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투자사 UTXO 매니지먼트의 공동 창업자 타일러 에반스는 “ETF에 전혀 투자할 수 없거나, 암호화폐를 직접 보유할 수 없는 기관 투자자들이 많다”며 “비트코인 저장 회사들이 그런 틈새를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회사는 4억3000만달러 규모의 자금을 투자하는데 95%가 비트코인 저장 회사에 투자돼 있다.
투자자들은 일부 국가에서 코인과 주식 보유에 따른 세율 차이를 이용한 조세 차익(arbitrage)도 활용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코인 투자 수익에 최고 55%의 세금이 부과되지만, 주식은 20%만 과세된다. 브라질에서는 코인 수익이 17.5% 세율로 과세되지만, 주식 거래에 대한 세율은 15%에 불과하다. 따라서 암호화폐에 직접 투자하는 것보다, 코인을 많이 보유한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세금 측면에서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적극적인 투자자들은 이와 유사한 세제 구조를 가진 국가들을 찾아 전 세계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에스테스는 “미국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지금은 미국 외 지역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코인 기반 금융서비스로의 확장
코인 매입 전략의 핵심은 채권이나 주식 발행을 통해 코인 매입 자금을 빠르게 조달하는 것이다. 코인 매입 속도가 충분히 빠르지 않은 기업들은 벌써부터 주가 하락을 겪고 있다. 예를 들어 세콴스 커뮤니케이션은 비트코인 매입을 시작한 후 주가가 160% 급등했지만, 현재는 당시보다 낮은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이 회사의 코인 매입 속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압박은 많은 회사들이 단순히 코인 저장소가 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을 계획하게 만들고 있다.
나틱시스 CIB의 브누아는 “비트코인이라는 막대한 담보물이 있기에 금융서비스로의 진화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코인 담보 대출은 매우 위험한 사업이다. 2022년, 코인 가격 하락이 연쇄 채무불이행 사태를 불러오며 대출 시장이 붕괴했고, 이는 결국 거래소 FTX의 파산으로 이어졌다.
브누아는 “이 전략의 가장 큰 문제는, 그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라며 “기업은 끊임없이 코인을 추가 매입하고, 다시 시장에 나가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반복적인 루프에 빠져 있다. 이 사이클을 계속 이어가야만 주가 프리미엄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큰 리스크는 코인 가격이 폭락할 경우 피해가 얼마나 클 것이냐는 점이다. 코인 가격이 하락하면 이에 주가가 연동된 기업들의 주가 역시 함께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부채를 조달한 기업들의 리스크는 더 크다. 이들은 투자자에게 이자를 지급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 추가 자금을 조달하거나 보유 중인 암호화폐를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
한 코인 헤지펀드 대표는 “기존 부채를 새로운 부채로 갚는 구조는 매우 건전하지 않다. 이런 구조는 매우 불안하게 만든다”며 “이처럼 취약한 구조들이 너무 많아지면, 전면적이든 부분적이든 결국 청산될 수밖에 없고, 이는 시장에 압력을 가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모든 기업이 시장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가정하에 이런 재무 구조를 쌓아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규제 당국의 관리를 받는 게 낫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이런 리스크를 인식하고 있지만, 호황이 지속되는 동안에는 돈을 더 벌고 싶어 한다. 여러 코인 저장 회사의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는 UTXO 매니지먼트의 에반스는, 자신이 조언하는 최고경영자들에게 “경기 하락 시에도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본업의 수익 구조를 갖추고, 비트코인 자체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회의론도 점차 커지고 있다. 이 업계에 이해관계를 가진 인사들조차 의구심을 드러낸다. 에스테스는 “이건 나쁜 결말로 끝날 것이다. 결국 버블로 끝날 것”이라며 “올랐던 속도만큼, 내려가는 속도도 빠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 The Financial Times Limited 2025. All Rights Reserved. Not to be redistributed, copied or modified in any way. Okhotsk Publishing is solely responsible for providing this translation and the Financial Times Limited does not accept any liability for the accuracy or quality of the trans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