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협상의 기술'로 되짚어본 한미 관세 협상

2025-08-01


"좋은 협상가는 승리하지만, 뛰어난 협상가는 상대방이 승리했다고 믿게 만든다."




오호츠크 독자님들 안녕하시지요? 이번 주 한국은 한미 관세 협상 이야기로 떠들썩했습니다.


이번 협상은 8월 1일로 예고된 미국의 25%의 일방 관세 부과를 이틀 앞둔 7월 30일, 15%로 타결됐습니다. 

한국 정부 협상단은 이번 협상에 대해 성공적이라 평가했습니다. 

구윤철 경제 부총리는 "우리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한 축인 수출이 다소 숨통이 트이게 되었으며, 우리 기업들이 주요국 대비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게 된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강조했습니다. 일본, EU 등 경쟁국과 비교해서도 비슷한 조건을 받아냈고, 협상 과정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의 체면도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협상 결과를 곱씹어보면 이게 과연 잘 된 협상인가 의문이 듭니다.

결과를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한국 정부 정책브리핑 내용)


  • 한국의 미국 수출에 대한 관세는 현행 0%에서 15%로 오릅니다. 이 돈은 미국 정부가 거둬갑니다.
  • 미국의 한국 수출에 대한 관세는 현행 0%로 유지됩니다.
  • 한국은 1500억 달러 규모의 조선협력 펀드를 조성해 미국 내 조선산업 발전에 투자하기로 했습니다.
  • 한국은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투자 펀드를 조성해 미국 내 반도체, 원자력, 배터리, 바이오, 핵심광물 등의 분야에 투자를 하거나 대출을 해주거나 대출보증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 한국은 1000억 달러 어치의 에너지를 미국으로부터 향후 4년간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 한국은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 적용됐던 비관세 장벽(안전 관련 규제 등)을 일부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 한국산 철강에 대해서는 다른 나라 산 철강과 마찬가지로 50%의 관세가 부가됩니다.
  • 한국은 미국산 농산물(쌀, 쇠고기 등)을 추가 수입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죄다 한국이 미국에 퍼주겠다는 내용들입니다.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새로 받아오는 것은 없습니다.

농산물은 지켰다고 하지만 현행보다 좋아진 점은 없습니다. (사실 농산물 수입을 막는 게 우리나라의 미래에 이익인지도 회의적이지만,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보겠습니다)


결국 기존 체제와 비교했을 때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것은 미국 내 조선소 투자를 통해 한미 군사 협력을 강화한다는 정도입니다. 이것도 사실 외국에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니 한국 경제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입니다.


이렇게 협상 내용을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미국 편향적입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마치 이번 협상이 잘 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을까요? 


협상 결과는 우리가 퍼주기만 했는데도 우리가 성공했다고 자축하고 있다면,  결국 이것은 트럼프가 짠 프레임에 빠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요?



'협상의 법칙' (협상의 기술,  You Can Negotiate Anything)』 이라는 스테디셀러가 있습니다. 미국의 허브 코헨이라는 분이 1980년대에 쓴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많아서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은 읽어보거나 들어봤을 것입니다. 트럼프마저도 허브 코헨을 '딜 메이킹의 예술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고 극찬한 바 있습니다.


"There's an art to deal-making and negotiating, and it's an art that few people possess. Herb Cohen is one of those few people." -Donald J. Trump


그럼 이제 이 책의 내용을 가지고 이번 한미 관세 협상을 비판적으로 리뷰해보겠습니다. 물론 잘 한 점도 있겠으나 이번에는 배울 점을 찾아보자는 의미에서, 일부러 한국 정부 협상단에 좀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보겠습니다.




법칙 1. 협상은 인간관계다 (Negotiation is people, not just process)


  • 협상은 숫자나 조건보다 사람 사이의 심리와 관계에 달려 있습니다.

  • 상대방의 감정, 욕구, 가치관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 한국 협상단도 이걸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협상단은 트럼프의 인정욕구를 살려주자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트럼프도 마찬가지로 이재명 정부의 인정욕구를 살려준다는 전략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협상 현장에서 뜻밖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트럼프가 예고 없이 직접 협상장에 등판한 것입니다.



그는 인사만 하고 간 것이 아니라, 자리에 40분이나 남아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통상 이런 국제 무대에서는 '급'이 맞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부총리와 장관급들이 협상단으로 나갔으니 미국도 장관급이나 수석급이 나가는 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뜬금 없이 미국의 대통령이 직접 협상장에 나와서 한국 대표단에게 인사를 건내고 이야기를 들어준 것입니다. 

현장에 있던 한국의 장관들과 청와대 수석들은 어떻게 느꼈을까요? 

'트럼프가 우리 한국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해주는구나'라고 고마워했을 것이고, 과장 좀 보태자면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이런 감정까지 들었을 것입니다. 집에 가서 마누라와 애들에게 '트럼프 만났다'고 자랑해야지, 친구들에게 자랑해야지, 이런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트럼프는 협상이 인간관계와 감정의 영역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스타 파워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협상의 대가입니다.



법칙 2. 힘은 인식이다 (Power is perception)


  • 협상에서의 힘은 실제보다 상대가 느끼는 '당신의 힘'이 더 중요합니다.

  • 자신감 있게 말하고, 대안을 가지고 있으며, 절박해 보이지 않는 태도가 협상력을 키웁니다.


-> 한국은 그 절박한 태도가 너무 눈에 비췄습니다. 언론에서도 항상 큰일난다고 호들갑이었고, 야당도 호들갑이었고, 그래서 트럼프와 보좌진이 스코틀랜드에 출장을 갔는데 한국 대표단이 거기까지 따라갔습니다. 

이를 두고 우리는 '우리의 정성이 통했다'고 한국적 情의 정서로 포장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의 출장지인 스코틀랜드까지 졸졸 따라갔다는 건 이 협상에서 더 아쉬운 쪽, 더 절박한 쪽이 한국이라는 걸 드러낸 아마추어리즘이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한국 국민들과 언론에게 보여주기 위한 국내용 제스처였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법칙 3. 관심을 줄여라 (Caring but not too much)


  • 절실하다고 느끼면 협상에서 약해집니다.

  • “관심은 갖되, 집착하지 마라(Don’t be so invested)”는 것이 핵심 전략입니다.


-> 트럼프 정부는 일본, 중국, EU등과 협상을 하면서 한국에는 거의 관심을 주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는 어느 나라와 협상할 때도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우린 너희가 전혀 아쉽지 않다. 싫으면 말든가.' 이런 태도로 나옵니다. 이번에 한국과 협상을 하면서도 7월 말이 되도록 트럼프는 한국에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척 해서 한국이 먼저 굽히고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법칙 4. 상대의 입장에서 보라 (See the world through their eyes)


  • 상대방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제약 조건, 동기 등을 공감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 이를 통해 상대의 결정 구조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 이 점은 한국 대표단도 꽤나 노력했습니다. 트럼프와 측근들의 의사결정 구조,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파악해 MAGA를 모방한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이라는 표어를 내세웠습니다. 



법칙 5. 시간을 무기로 써라 (Use time as a weapon)


  • 협상은 시간 싸움입니다. 급할수록 손해를 봅니다.

  • 침착하게 시간을 끌거나 상대를 지치게 만들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합니다.


-> 이 점도 아쉽습니다. 트럼프가 자기 멋대로 정한 8월 1일이라는 시한에 우리가 너무 얽매인 게 아닐까요. 한국 정부와 언론은 우리가 협상 데드라인에 맞췄다며 성공이라 평가하지만, 협상에 있어 데드라인 같은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보름이나 한 달 정도 늦춰졌다 해서 무슨 큰 문제가 생겼을까요? 저쪽이 자의적으로 발표한 데드라인 같은 건 지키지 않는다 해도 아무런 페널티가 없는데, 마치 수능시험이라도 보는 것처럼 착각해서 시간 내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스스로 압박감을 느낀 것입니다. 

능숙한 협상가는 데드라인을 지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부러 데드라인을 무시해 상대방을 혼란에 빠뜨립니다. 트럼프가 바로 그런 전술을 즐겨 사용합니다. 한국 정부는 너무 순진했습니다. 한국인들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저도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제 개인적인 이슈에서 협상을 할 때는 이런 한국인 특유의 순진함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법칙 6. 정보는 힘이다 (Information is power)


  • 사전조사와 정보 수집이 협상에서의 통제력을 결정합니다.

  • 누가, 왜, 어떻게,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협상을 주도할 수 있습니다.


-> 이 점은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미국이 원하는 대로, 미국이 짠 프레임에 따라 협상이 시작부터 끝까지 흘러가는 것을 전혀 막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왜 관세가 15%가 되어야 하는지, 관세 0%로 합의했던 한미 FTA 협정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파기해도 되는지부터 정확한 근거를 들어가며 따졌어야 하는데, 한국은 프레임 싸움에서부터 지고 들어갔습니다.

물론 이번 협상은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대외 적자를 축소하기 위해 시작한 것이니 한국의 운신 폭이 넓지 않았던 건 사실입니다. 그래도 프레임을 바꿔보려는 시도는 했어야 합니다. 적어도 '양보한 쪽은 너희가 아니라 우리다'라는 인식은 남겨줬어야 합니다.



법칙 7. 유머와 긴장 완화의 힘 (The power of humor and rapport)


  • 긴장을 풀고 신뢰를 형성하는 유머와 인간적인 접근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고 협상력을 높이는 도구입니다.


-> 현장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협상단측이 나름 분위기를 풀어보려 노력하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에서 트럼프라는 최종 보스가 협상장에 등판한 상황인지라 트럼프가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을 막는데는 역부족이었을 것입니다.






“I care, but not that much.”
관심은 있지만, 매달리진 않는다.


이 철학이 허브 코헨과 트럼프의 협상 전략을 가장 잘 요약합니다. 한국 정부도, 또 우리 개개인도 일상생활에서 꼭 알아두고 적용해야 할 교훈입니다. 물론 저도 말만 이렇게 하지 실생활에서는 번번이 실패합니다.


- 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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