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리치들의 최신 유행은 대가족이다 (FT)

2025-09-30

2025년 최고의 '플렉스'는 아이를 여러 명 낳는 것이다. 그러면서 싱글이었을 때의 라이프스타일, 취미, 체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요즘 부의 상징이다.

 





부자임을 과시하는 최고의 방법은 무엇일까. 한때는 희귀한 핸드백이나 스포츠카, 번쩍이는 시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 선진국에서 부를 가장 진지하게 과시하는 방법은 아이를 갖는 것이다. 하나가 아니라, 아주 많이 갖는 것이다.


Elizabeth Paton


영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과거 사람들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서, 혹은 종교적 전통 때문에, 혹은 가문을 이어가기 위해 아이를 많이 낳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오늘날엔 아이를 키워도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돈이 숭숭 빠져나간다.

“대부분의 맞벌이 부모들, 특히 도시에 사는 부모들에게는 아이 한 명을 여유 있게 키우는 일에 상당한 재정적 안정성이 필요합니다”라고 『Inheritocracy: It’s Time to Talk About the Bank of Mum and Dad』의 저자 엘리자 필비는 말한다. “요즘 세상에는 중산층 부모가 자녀를 18살까지만 키우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만 있다면 보통 30살까지는 부양하죠. ”

비싼 보육비, 가족 지원 체계의 부족, 출산 연령의 상승이라는 이유로 맞벌이 가정에서는 아이 한 명이 표준이 되고 있다. “둘은 좀 힘들고, 셋 이상을 키우려면 수퍼리치가 돼야 한다”는 게 필비의 말이다. 실제로 전 세계 많은 국가에서 출산율은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영국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1.44명이고, 미국은 1.6명이다. 일본과 한국은 각각 1.2명, 0.75명이다.

그런데 이렇게 현대 중산층의 양육 문화가 '1자녀'로 여겨지는 동시에, 반대편 극단을 추구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즉, 수퍼리치들이 다자녀를 키우는 걸 부러워하는 문화가 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통적 아내(trad wife)'라는 유행이 밀레니얼 세대 직장 여성들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집안 살림을 하고, 소의 젖을 짜고, 남편과 자녀 돌보기를 미화하는 소셜미디어 트렌드다.

그중 가장 핫한 스타는 '발레리나 농장'의 한나 닐러먼이라는 사람이다. 그녀는 제트블루 창업자이자 항공 재벌인 데이비드 닐러먼의 아들 다니엘 닐러먼과 결혼해 여덟 명의 아이를 낳았다. 이 아이들은 단정하면서도 살짝 흐트러진 금발을 하고 소셜미디어에 등장한다. 닐러먼은 자녀들 덕분에 인스타 팔로어 1000만 명을 모았다.

셀러브리티 세계에서는 배우 알렉 볼드윈과 힐라리아 볼드윈 부부가 올해 초 TLC 리얼리티 TV 시리즈 '더 볼드윈즈'로 인터넷을 뒤흔들었다. 이 시리즈는 이 부부가 맨해튼의 아파트와 이스트햄프턴의 저택을 오가며 일곱 자녀(그리고 여덟 마리 반려동물)와 사는 생활을 담았다.


발레리나 농장(Ballerina Farm)의 한나와 다니엘 닐러먼 부부.


알렉 볼드윈의 '더 볼드윈 쇼'


대가족 구성은 재산 상위 1% 사이에서 점점 더 눈에 띄고 있다. 특히 뉴욕처럼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또 경쟁적인 지역에서 그렇다. '파크 애비뉴의 원시인들'이라는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 웬즈데이 마틴에 따르면, 맨하탄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는 대가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지역은 미국에서 가장 비싼 부동산, 가장 비싼 학교, 가장 비싼 보모, 가장 비싼 취미 활동이 모인 곳이다.

“넷은 새로운 셋이에요(4 is the new 3). 예전에는 아이가 넷이라고 하면 다들 놀랐지만 이제는 전혀 특별하지 않아요”라고 그녀는 썼다. “다섯을 낳는 것도 더 이상 미친 짓이 아니고 꼭 종교적인 이유에서만도 아니에요. 단지 부자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애 여섯은 자신들이 타운하우스나 걸프스트림 프라이빗 제트기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상징하죠.”


포브스가 미국의 억만장자 700명 이상을 조사한 결과, 그 중 최소 22명이 7명 이상의 자녀를 두고 있었다. 이들은 종종 여러 번의 결혼이나 입양으로 자녀를 얻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마도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일 것이다. 세계 최고 부자로 꾸준히 이름이 오르는 머스크는 억만장자 출산과 출산 장려론의 대표적 인물이 됐다. (그는 우리가 아는 것만 14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는 다출산이 인류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언제나 초부유층의 삶을 동경해왔다. 수많은 고급 패션 브랜드와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들이 거의 무한한 자원을 가진 양육 개념을 제품과 마케팅 전략에 녹여왔다. 아르티포페는 벨벳과 캐시미어로 만든 800달러짜리 아기띠를 선보였다. 이는 “육아계의 버킨백”으로 불리며, 아기를 업는 행위를 궁극의 사치로 포장하고 있다.

또 미니미(Mini-me) 디자이너 컬렉션과 600달러짜리 하이톱 운동화는 수많은 아이들이 부모와 똑같이, 또 서로 비슷하게 옷을 입을 수 있게 한다. 파텍 필립과 돌체앤가바나 같은 브랜드는 예전부터 가족을 미화한 이미지를 광고 캠페인의 핵심에 두어왔다. 또 보테가 베네타와 버버리는 좀 더 현대적인 방식을 택한다. 육아라는 행위를 세련된 문화적 퍼포먼스로 포장하는 것이다. 브랜드 전략가 유진 힐리의 말에 따르면 이는 '취향과 선호의 성숙'을 의미한다.


아르티포페의 '자이가이스트' 아기띠


보테가베네타 광고에 나온 A$AP Rocky와 그의 아들 Riot Rose Mayers.


힐리는 이러한 가족 중심 캠페인들이 사치 산업이 문화적 존재감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시기에 등장했다고 본다. 사회적 지위를 상징하는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열망이 식고 글로벌 매출이 감소하는 상화에서, '가족'에 집중하는 것은 물질적 영역에서 벗어나 행동과 가치의 영역으로 이동하려는 시도라고 할 수 있다.

“가족을 갖는다는 것은 누굴 속일 수 있는 게 아닙니다”라고 힐리는 말했다. “그것은 아주 장기적인 약속입니다. 삶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선택 중 하나죠.”

그러나 브랜드들이 새로운 부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많이 갖는 것만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지, 그리고 출산 전의 생활 방식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많은 셀러브리티에게 이는 수많은 보육 인력을 두는 걸 뜻한다. 킴 카다시안은 네 명의 아이를 위해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는 보모 10명을 두고 있다고 알려졌다. 볼드윈 가문도 두 명을 고용했다. 이런 성격의 미국 보육 시장에서는 보모가 연봉 20만 달러 이상도 받을 수 있으며, 일반적인 임금은 8만5000달러정도다. 그러나 이런 유급 보육 서비스는 일반 가정에게는 꿈에서나 가능한 사치다.

“이런 형태의 육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험하지 못하죠. 아이 여럿을 키우면서도 계속 친구들을 만나고, 임신 전 몸매로 돌아가며, 클럽이나 늦은 밤 행사에 나타나도 피곤하지 않고, 교외로 이사를 가고, 젖 묻은 옷을 입지 않아도 는 버전의 육아에요.”

패션은 언제나 우리를 실제보다 조금 더 나아 보이게 해주는 역할을 해왔다. 마찬가지로, 큰 가족을 갖는 것도 미래가 점점 더 불확실해지는 시기에는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신호다. 다른 누구보다 더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집단은 누구일까? 돈이 많은 사람들이다.


백악관을 찾은 머스크의 아들


일론 머스크는 출산 장려라는 비전을 극단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이다. 그는 매우 비정통적인 개인적 가족 가치관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머스크의 생각은 요즘 미국 소셜미디어에서 영향력이 커지는 전통적 보수 세력의 생각과 차이가 있다. 여기서 불편한 질문 하나가 생겨난다. 필비는 이렇게 말한다.

“다산을 좋아하는 수퍼 리치들은 다산을 통해 더 나은 인류를 만들고 싶다고들 말하죠. 그러나 그것이 '다자녀 페티시'가 되면 여성을 일종의 출산 기계로 격하할 수 있어요. 그리고 선택이든 아니든간에 아이를 갖지 않거나 조금만 낳기로 한 여성들을 악마화할 수도 있고요."




이런 우려들이 있긴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 다자녀를 가진 부자들이나 셀럽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꼭 전통적 가족관으로의 회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다른 많은 유행과 마찬가지로, 이런 트렌드는 '준사회적 코스프레'의 성격이 있다. 즉, 우리의 실제 삶과 동떨어져 있거나 결코 따라할 수 없는 라이프스타일을 '탐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그런 삶을 실제로 원하지도 않는다.

“인터넷의 많은 부분은 마치 일종의 투기적 판타지 소설처럼 소비되죠. 예를 들어 발레리나 농장 가족은 경제적 안정과 명확히 정의된 남녀 성 역할, 그리고 일정한 목적 의식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일종의 오락이나 탈출구로 소비하는 거에요. 동시에 많은 사람들은 '야, 나는 절대 저렇게는 못 산다'라고 생각할 거에요." 작가 힐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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