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균·쇠'로 인류 문명 발전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에너지·화폐·민주주의'는 국제 관계 이해의 실마리가 된다.

오호츠크 리포트는 최근 서울 서교동에 있는 출판사 윌북으로부터 신간 소개에 대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1) 에너지
(2) 화폐
(3) 민주주의.
이렇게 3가지 프레임으로 국제 정치를 해석하는 책, '질서 없음' 입니다.
필자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정치경제학과 헬렌 톰슨 교수입니다. 이 책은 옥스퍼드대출판부에서 2022년 출간했고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소개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었는데, 한국어판은 이번에 나왔습니다.
먼저 3년 늦게 한국판을 출간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궁금해 출판사 담당자분께 여쭈었더니, 백지혜 마케터 님께서 이렇게 답을 주셨습니다.
"원서는 3년 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출간되었지만, 그 내용은 여전히 오늘날의 무질서에 중요한 분석으로 남아 있습니다.
<질서 없음>은 단순히 최근의 사건을 다루는 것을 넘어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근현대사의 결정적 순간들을 치밀하게 추적하는 방대한 역사서로 볼 수 있습니다. 에너지 위기를 둘러싼 지정학적 분쟁은 물론, 이 책이 분석한 역사적 패턴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며 또 다른 위기를 예고합니다.
바로 이 무질서의 기원을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예측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생존 전략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는데, 결국은 무질서의 기원을 추적하는 역사서이기 때문에 3년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설득이 되어서, 토요일에 도착한 책을 주말 내내 읽었습니다. 400페이지 넘어가다보니 중간에 커피숍에서 졸기도 했지만... 오호츠크 독자 여러분께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책 '총·균·쇠'가 인류 문명 발전 원리를 세 단어로 요약했던 것처럼, 이 책 역시 '에너지·화폐·민주주의'라는 딱 세 단어로 국제관계의 원리를 요약한다는 게 장점입니다. 또 책 마지막 부분에 저자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 따로 추가한 섹션이 있어서 현재 글로벌 정세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럼 아래 간단히 소개합니다.

석유·화폐·민주주의로 보는 세계 정세
저자 헬렌 톰슨은 31년째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계십니다. X 계정도 활발하게 쓰시고 'These Times'라는 팟캐스트도 직접 운영하실 정도로 대중 소통에도 열정이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 에너지를 아우르며 현대사를 해석하는 분입니다.
톰슨 교수가 보기에,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인류는 태평성대를 누릴 수 없습니다. 이유는 에너지(석유), 화폐, 민주주의 선거제도의 내재적 불안정성 때문입니다.
(1) 에너지
에너지는 이 세상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기본입니다. 요즘은 농사도 다 석유화학 비료로 짓고 옷도 다 석유화학 섬유로 만듭니다. 석유가 없으면 어느 나라든 원시시대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에너지는 전 세계에 고루 분포되어있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팔고 누군가는 사야 합니다. 여기서 갈등이 발생합니다.
과거 산업혁명은 곧 석탄 혁명이었습니다. 19세기까지 유럽이 전 세계에서 가장 힘 세고 발달한 문명이었던 이유는 유럽에 석탄이 풍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석유라는 신물질이 석탄을 대체하게 됩니다. 석유는 석탄보다 칼로리 밀도가 높고 운반과 사용이 편리했습니다. 석유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탄생을 가져왔습니다.
문제는 유럽에는 석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산유국 1위는 미국, 2위는 러시아 제국(남쪽 카프카스 지역)이었습니다. 석유 때문에 세계 지배권이 유럽에서 미·소로 넘어갔습니다. 석유 없는 유럽국가들끼리 투닥투닥 싸우고 있다가 산유국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자 승패는 대번에 결정됩니다. 영미 연합군은 대서양으로 석유를 운반해 보급할 수 있었지만, 거의 내륙에 위치한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석유를 구할 곳이 없었습니다.
2차대전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됩니다. 연합국은 미국과 소련에서 석유를 풍부하게 뽑아 썼지만 독일과 일본은 석유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참다못한 독일은 카프카스 유전을 노리고 소련을 침공했는데 유전으로 가는 길목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막혔습니다. 그걸로서 2차대전의 승패는 결정됐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사우디, 이라크 등 중동 지역에서 석유가 풍부히 발견됐습니다. 전쟁에서 국력이 소진된 유럽국가들은 이 지역에서 철수했고, 그 자리에서 아랍 민족주의가 부흥했습니다. 해상권은 미국이 잡았습니다. 미국은 자국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나중을 위해 아껴두는 대신, 중동에서 나오는 석유를 유럽/아시아의 우방국들이 사용하도록 배려(?) 했습니다. 여기엔 한국도 포함됩니다. 우리나라가 아직도 중동산 석유를 많이 수입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1956년 이스라엘과 주변국간에 전쟁이 벌어지며 중동과 유럽을 잇는 수에즈 운하가 막혔습니다. 유럽국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체적인 석유 수입선 다변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우선 유럽 영내인 북해에서 유전이 터졌습니다. 또 적대국인 소련로부터 석유와 가스를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북해 유전의 혜택을 보지 못한 내륙국 독일은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게 됩니다.
2025년 현재도 국제정세는 석유가 핵심입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과거 유럽국가들이 했던 것처럼 안정적인 석유수입망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말라카(믈라카) 해협만 막으면 중국은 중동산 원유를 들여올 수 없는데, 이걸 '믈라카 딜레마'라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헤게모니를 잡으려 노력합니다. 희토류 생산에 사활을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신재생에너지나 원자력발전을 발전시킨다 해도 아직은 화석연료 없는 미래란 '공상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중국도 그걸 알기에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육상으로 에너지 수입을 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중-미 대결은 '석유 없는 나라 vs. 석유 있는 나라'의 대결입니다. 석유시대가 이어지는 한, 후자가 명확하게 유리합니다. 트럼프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또 어떤가요? 러시아가 유럽 안보를 위협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러시아산 에너지를 구매하며 러시아에 돈을 퍼주고 있습니다. 직접 구매는 줄었으나 인도, 터키 등을 통한 우회 구매는 여전히 많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지 않습니다. 미국은 EU의 이런 이중성을 비난하며 러시아산 대신 미국 혹은 중동산 에너지를 더 많이 구매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의 이해관계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심지어 EU 내에서도 분열이 커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X에서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유럽에게 자꾸 미국산 에너지 구입을 강요하다보면, (1차대전 직후와 마찬가지로) 유럽 경제의 미국 종속을 가져와 미국 본인들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일종의 딜레마인데 책에 상세히 언급됩니다.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다시피, 1차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서유럽에 큰 배상금을 물어주게 되었습니다. 이 배상금이 너무 크다보니 독일 국민들 사이에 분노가 일었고, 이 분노를 이용해 나치당과 히틀러가 등장하게 됐습니다. 서유럽이 일찍 독일의 배상금을 줄여주지 못한 이유는 서유럽 스스로가 미국에 큰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의회가 서유럽에게 전쟁 부채를 갚으라고 압박했고, 그래서 서유럽도 독일에게 배상금을 내라고 압박했습니다.
즉, 세계 경제의 미국 의존도가 커진다고 해서 꼭 미국에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국제관계는 흑과 백으로 결론 내릴 수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2) 화폐제도
두 번째 이슈는 화폐제도입니다. 이 장은 이 책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우며, 우리가 큰 관심이 없는 EU와 유로에 대해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잠깐 졸았기 때문에 간략하게만 이야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 수출을 돕고 미국산 무기를 제공해 그 나라 독재정권들의 권력 안정을 도왔습니다. 대신 석유를 팔 때 미국 달러로 가격을 표시하고 거래하도록 해서 달러가 자연스럽게 국제 통화로 올라서게 됐습니다. 원래 달러는 미국 내 은행에서 금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밖에서 유통되는 달러(역외 달러)가 늘어나며 더 이상 미국 내 금태환 정책이 의미 없어집니다. 결국 1970년대 미국은 금태환 중단을 선언하고 달러를 찍어내어 전 세계에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은 이에 대항해 유로라는 자체 통화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중국 등 신흥산업국들이 미국 시장에 제품을 내다 팔고 달러를 벌어서 그 달러로 다시 미국 채권을 사는 루틴이 정착됐습니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위기를 거치며 이런 루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국 연준을 시작으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QE)를 시작, 돈을 무한대로 풀기 시작했습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합니다. 중국이 불만을 품고 미국 채권을 줄이려 하자 미국은 관세 전쟁으로 대응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었더라도 전체적인 기조는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합니다)
중국은 여전히 달러 비중을 줄이려 하고 있지만 아직 대안을 찾지 못했기에 큰 소득은 없습니다. 역시나 석유 수입국의 한계입니다. 현재로서는 미국에 협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화폐가치는 QE의 변종 정책들로 인해 계속 떨어지고 있으며 이는 물가 상승과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집니다.
(3)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사실 아직도 지구의 절반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또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어져왔지만, 고대에 겪었던 문제들이 21세기에도 반복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금권 귀족정'와 '서민 계급'의 대결이 그렇습니다.
저자 톰슨 교수는 영국인이다보니, 특히 녹색 에너지와 관련해 귀족과 서민의 대립을 예로 듭니다. 독일 정부는 러시아산 가스를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합니다. 당장 난방비가 오르면 서민들이 분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노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녹색에너지로의 전환은 일부 기업과 경영자들, 주주들, 컨설팅 업체들, 국회의원들 등 '귀족들'에게 즉각적인 이익을 가져오는 반면 서민들에겐 비용 부담으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갈등 속에서 부상한 인물입니다. 계층적으로 보면 트럼프 본인도 '귀족' 계층에 속하긴 하지만 "내가 귀족 해봐서 아는데..."라면서 '귀족에 반대하는 귀족'이라는 포지셔닝을 한 것입니다. 이는 고대 로마 원로원에서도 존재했던 전략입니다. 카이사르가 대표적입니다.
여기에 인종과 민족주의/국민주의(nationalism)의 문제가 더해집니다. 민주주의가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시스템이라면, 여기서 '국민'은 과연 누구일까요? 프랑스에 사는 리비아 이민자는 프랑스 국민인가요, 아닌가요? 그 사람에게 과연 얼마나 많은 정치적 권력이 주어져야 할까요? 미국만 봐도 남부와 북부,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갭은 아주 커졌습니다. 한 때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나라의 분열을 치유할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그분 역시 '북부 귀족'의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미국의 귀족정치와 양극화는 더 심화되었고 그 결과 트럼프 현상이 출현하게 됐습니다.
한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
이 책에 한국이란 나라는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읽다보면 한국 상황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한국은 석유·달러·민주주의의 미래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요?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은 미국의 우산 속에 사는 나라이고, 너무나 그 우산에 폭 쌓여있어서 그 혜택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는 여기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1) 석유
우리나라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믈라카 딜레마'에 잡혀있습니다. 중동산 석유가 수입되지 않는다면 1년 안에 한국은 신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간 미국의 보호 아래 너무나 평온하게 중동산 석유를 수입해 써왔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과 정치인들 사이에 위기감 자체가 없습니다. 그냥 주유소 가면 기름이 콸콸 나오니까요. 과거엔 러시아산 원유도 수입했었고 지금도 석유제품과 가스는 수입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 역시 미국의 묵인 하에 가능한 일입니다.
즉 한국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에너지/군사 강국이 잡아준 질서 속에서 산업사회를 발전시켜왔습니다. 2차대전의 프레임입니다. 평화가 계속되다 보니 무감각합니다. 또 우리에게 있어 중국이란 나라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봤을 때 생존에 직결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중국 없이도 우리가 어찌저찌 살 수는 있겠지만, 미국이 보장해주는 석유 수입 없이는 당장 이번 겨울에 화목난로부터 장만해야 합니다.
서유럽은 그래도 북해 유전도 있고 북아프리카와 동지중해 유전도 가깝습니다만, 한국은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반경 수천 킬로 안에 기름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석유 수입의 경쟁자들입니다. 우리의 처지를 냉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립' '자주국방' 이런 말들이 가끔은 허깨비처럼 들리는 이유입니다. 기름 없이 굴러가는 태양광 탱크라도 발명하지 않는다면, 동맹 없는 자주국방은 우리에게 허상입니다.
(2) 화폐제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미국 달러 시스템에 포획되어 살고 있습니다. 한국은 서구에 비해서도 유독 달러 의존도가 높습니다. 이건 장점이기도 합니다. 안정된 화폐 시스템 속에서 큰 고민하지 않고 생산활동과 수출에만 전념하면 됐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 달러 시스템이 점차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책에서도 언급하듯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위기를 거치며 미국 연준은 달러 살포기로 변신했습니다. 더 이상 화폐가치 보호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트럼프 정권은 아예 금과 가상화폐로 가지치기를 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향후 20~30년 내에 달러 중심의 국제 무역 체계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뭘 해야 하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국제 통화 제도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경제 생산 시스템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해야할 것입니다.
(3) 민주주의
민감한 문제입니다. 사실 2024년의 계엄령과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에선 민주주의라는 말이 핑키의 요술봉처럼 여기저기에서 만능 해결책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선 무엇이 민주주의냐에 대한 정의부터가 논란을 불러오곤 합니다. 그래서 이쪽 진영도 자신들을 민주주의의 옹호자라고 표현하고, 저쪽 진영도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말합니다.
흔히 국회를 민주주의의 전당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 의회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입니다. 직접 민주주의와는 다른 제도입니다. 대의민주주의의 의회는 곧잘 엘리트주의, 귀족정으로 변질되곤 합니다. 국회의원과 같은 엘리트들은 일반 국민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고차원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일반 시민들의 삶에서 괴리되어 양극화를 심화시키거나 소외계층에게 좌절감을 불러오는 결정들을 내리곤 합니다. 이른바 '대리인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저자 헬렌 톰슨의 말을 빌어오겠습니다. "정치인(귀족)들은 귀족적 과잉을 강화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이 감수해야 할 희생을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 있어서, 국가의 미래와 젊은 세대를 위해서는 양질의 부동산 공급을 늘려야 하고, 부동산 공급을 늘리면 기성 세대와 기존의 보유자들에게는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설득하는 것이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에서의 정치 엘리트들의 역할이라고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실 세상에 완벽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 게 첫걸음입니다.

질서 없음 - 격동의 세계를 이해하는 세 가지 프레임
저자 헬렌 톰슨, 번역 김승진
출판 윌북
발행 2025.10.20.
이상으로 책 '질서 없음'을 리뷰해봤습니다.
이 기사는 윌북으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기획했고 내용은 전적으로 오호츠크 리포트가 작성했습니다. 기사를 재미있게 보신 독자분들께서 책도 구매해주시면 이렇게 두껍고 좋은 책을 수입해주시는 출판사와 번역하시는 번역자에게 힘이 되어, 다음에 또 좋은 외국 책들이 한국어로 번역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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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균·쇠'로 인류 문명 발전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에너지·화폐·민주주의'는 국제 관계 이해의 실마리가 된다.
오호츠크 리포트는 최근 서울 서교동에 있는 출판사 윌북으로부터 신간 소개에 대한 제안을 받았습니다.
(1) 에너지
(2) 화폐
(3) 민주주의.
이렇게 3가지 프레임으로 국제 정치를 해석하는 책, '질서 없음' 입니다.
필자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정치경제학과 헬렌 톰슨 교수입니다. 이 책은 옥스퍼드대출판부에서 2022년 출간했고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소개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었는데, 한국어판은 이번에 나왔습니다.
먼저 3년 늦게 한국판을 출간하기로 결정한 이유가 궁금해 출판사 담당자분께 여쭈었더니, 백지혜 마케터 님께서 이렇게 답을 주셨습니다.
설득이 되어서, 토요일에 도착한 책을 주말 내내 읽었습니다. 400페이지 넘어가다보니 중간에 커피숍에서 졸기도 했지만... 오호츠크 독자 여러분께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유명한 책 '총·균·쇠'가 인류 문명 발전 원리를 세 단어로 요약했던 것처럼, 이 책 역시 '에너지·화폐·민주주의'라는 딱 세 단어로 국제관계의 원리를 요약한다는 게 장점입니다. 또 책 마지막 부분에 저자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 따로 추가한 섹션이 있어서 현재 글로벌 정세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럼 아래 간단히 소개합니다.
석유·화폐·민주주의로 보는 세계 정세
저자 헬렌 톰슨은 31년째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 계십니다. X 계정도 활발하게 쓰시고 'These Times'라는 팟캐스트도 직접 운영하실 정도로 대중 소통에도 열정이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 에너지를 아우르며 현대사를 해석하는 분입니다.
톰슨 교수가 보기에,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인류는 태평성대를 누릴 수 없습니다. 이유는 에너지(석유), 화폐, 민주주의 선거제도의 내재적 불안정성 때문입니다.
(1) 에너지
에너지는 이 세상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기본입니다. 요즘은 농사도 다 석유화학 비료로 짓고 옷도 다 석유화학 섬유로 만듭니다. 석유가 없으면 어느 나라든 원시시대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에너지는 전 세계에 고루 분포되어있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팔고 누군가는 사야 합니다. 여기서 갈등이 발생합니다.
과거 산업혁명은 곧 석탄 혁명이었습니다. 19세기까지 유럽이 전 세계에서 가장 힘 세고 발달한 문명이었던 이유는 유럽에 석탄이 풍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석유라는 신물질이 석탄을 대체하게 됩니다. 석유는 석탄보다 칼로리 밀도가 높고 운반과 사용이 편리했습니다. 석유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탄생을 가져왔습니다.
문제는 유럽에는 석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 산유국 1위는 미국, 2위는 러시아 제국(남쪽 카프카스 지역)이었습니다. 석유 때문에 세계 지배권이 유럽에서 미·소로 넘어갔습니다. 석유 없는 유럽국가들끼리 투닥투닥 싸우고 있다가 산유국 미국이 전쟁에 참여하자 승패는 대번에 결정됩니다. 영미 연합군은 대서양으로 석유를 운반해 보급할 수 있었지만, 거의 내륙에 위치한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석유를 구할 곳이 없었습니다.
2차대전에서도 같은 상황이 반복됩니다. 연합국은 미국과 소련에서 석유를 풍부하게 뽑아 썼지만 독일과 일본은 석유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참다못한 독일은 카프카스 유전을 노리고 소련을 침공했는데 유전으로 가는 길목의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막혔습니다. 그걸로서 2차대전의 승패는 결정됐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사우디, 이라크 등 중동 지역에서 석유가 풍부히 발견됐습니다. 전쟁에서 국력이 소진된 유럽국가들은 이 지역에서 철수했고, 그 자리에서 아랍 민족주의가 부흥했습니다. 해상권은 미국이 잡았습니다. 미국은 자국에서 생산되는 석유는 나중을 위해 아껴두는 대신, 중동에서 나오는 석유를 유럽/아시아의 우방국들이 사용하도록 배려(?) 했습니다. 여기엔 한국도 포함됩니다. 우리나라가 아직도 중동산 석유를 많이 수입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1956년 이스라엘과 주변국간에 전쟁이 벌어지며 중동과 유럽을 잇는 수에즈 운하가 막혔습니다. 유럽국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체적인 석유 수입선 다변화를 추구하게 됩니다. 우선 유럽 영내인 북해에서 유전이 터졌습니다. 또 적대국인 소련로부터 석유와 가스를 수입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북해 유전의 혜택을 보지 못한 내륙국 독일은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게 됩니다.
2025년 현재도 국제정세는 석유가 핵심입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입니다. 따라서 중국은 과거 유럽국가들이 했던 것처럼 안정적인 석유수입망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나라들과 마찰을 빚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이 말라카(믈라카) 해협만 막으면 중국은 중동산 원유를 들여올 수 없는데, 이걸 '믈라카 딜레마'라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헤게모니를 잡으려 노력합니다. 희토류 생산에 사활을 겁니다. 그러나 아무리 신재생에너지나 원자력발전을 발전시킨다 해도 아직은 화석연료 없는 미래란 '공상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중국도 그걸 알기에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육상으로 에너지 수입을 늘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중-미 대결은 '석유 없는 나라 vs. 석유 있는 나라'의 대결입니다. 석유시대가 이어지는 한, 후자가 명확하게 유리합니다. 트럼프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이유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또 어떤가요? 러시아가 유럽 안보를 위협하지만 유럽 국가들은 여전히 러시아산 에너지를 구매하며 러시아에 돈을 퍼주고 있습니다. 직접 구매는 줄었으나 인도, 터키 등을 통한 우회 구매는 여전히 많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끝나지 않습니다. 미국은 EU의 이런 이중성을 비난하며 러시아산 대신 미국 혹은 중동산 에너지를 더 많이 구매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과 미국의 이해관계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심지어 EU 내에서도 분열이 커지고 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X에서 이런 말도 덧붙였습니다.
'유럽에게 자꾸 미국산 에너지 구입을 강요하다보면, (1차대전 직후와 마찬가지로) 유럽 경제의 미국 종속을 가져와 미국 본인들에게도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일종의 딜레마인데 책에 상세히 언급됩니다.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배웠다시피, 1차대전이 끝나고 독일은 서유럽에 큰 배상금을 물어주게 되었습니다. 이 배상금이 너무 크다보니 독일 국민들 사이에 분노가 일었고, 이 분노를 이용해 나치당과 히틀러가 등장하게 됐습니다. 서유럽이 일찍 독일의 배상금을 줄여주지 못한 이유는 서유럽 스스로가 미국에 큰 빚을 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의회가 서유럽에게 전쟁 부채를 갚으라고 압박했고, 그래서 서유럽도 독일에게 배상금을 내라고 압박했습니다.
즉, 세계 경제의 미국 의존도가 커진다고 해서 꼭 미국에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국제관계는 흑과 백으로 결론 내릴 수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2) 화폐제도
두 번째 이슈는 화폐제도입니다. 이 장은 이 책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우며, 우리가 큰 관심이 없는 EU와 유로에 대해 길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도 읽으면서 잠깐 졸았기 때문에 간략하게만 이야기하고 넘어가겠습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은 사우디 등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 수출을 돕고 미국산 무기를 제공해 그 나라 독재정권들의 권력 안정을 도왔습니다. 대신 석유를 팔 때 미국 달러로 가격을 표시하고 거래하도록 해서 달러가 자연스럽게 국제 통화로 올라서게 됐습니다. 원래 달러는 미국 내 은행에서 금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 밖에서 유통되는 달러(역외 달러)가 늘어나며 더 이상 미국 내 금태환 정책이 의미 없어집니다. 결국 1970년대 미국은 금태환 중단을 선언하고 달러를 찍어내어 전 세계에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유럽은 이에 대항해 유로라는 자체 통화를 만들었습니다.
이후 중국 등 신흥산업국들이 미국 시장에 제품을 내다 팔고 달러를 벌어서 그 달러로 다시 미국 채권을 사는 루틴이 정착됐습니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위기를 거치며 이런 루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국 연준을 시작으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양적완화(QE)를 시작, 돈을 무한대로 풀기 시작했습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합니다. 중국이 불만을 품고 미국 채권을 줄이려 하자 미국은 관세 전쟁으로 대응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었더라도 전체적인 기조는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합니다)
중국은 여전히 달러 비중을 줄이려 하고 있지만 아직 대안을 찾지 못했기에 큰 소득은 없습니다. 역시나 석유 수입국의 한계입니다. 현재로서는 미국에 협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는 동안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화폐가치는 QE의 변종 정책들로 인해 계속 떨어지고 있으며 이는 물가 상승과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집니다.
(3)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사실 아직도 지구의 절반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또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닙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어져왔지만, 고대에 겪었던 문제들이 21세기에도 반복됩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금권 귀족정'와 '서민 계급'의 대결이 그렇습니다.
저자 톰슨 교수는 영국인이다보니, 특히 녹색 에너지와 관련해 귀족과 서민의 대립을 예로 듭니다. 독일 정부는 러시아산 가스를 끊고 싶어도 끊지 못합니다. 당장 난방비가 오르면 서민들이 분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노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녹색에너지로의 전환은 일부 기업과 경영자들, 주주들, 컨설팅 업체들, 국회의원들 등 '귀족들'에게 즉각적인 이익을 가져오는 반면 서민들에겐 비용 부담으로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갈등 속에서 부상한 인물입니다. 계층적으로 보면 트럼프 본인도 '귀족' 계층에 속하긴 하지만 "내가 귀족 해봐서 아는데..."라면서 '귀족에 반대하는 귀족'이라는 포지셔닝을 한 것입니다. 이는 고대 로마 원로원에서도 존재했던 전략입니다. 카이사르가 대표적입니다.
여기에 인종과 민족주의/국민주의(nationalism)의 문제가 더해집니다. 민주주의가 국민에게 주권이 있는 시스템이라면, 여기서 '국민'은 과연 누구일까요? 프랑스에 사는 리비아 이민자는 프랑스 국민인가요, 아닌가요? 그 사람에게 과연 얼마나 많은 정치적 권력이 주어져야 할까요? 미국만 봐도 남부와 북부,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의 갭은 아주 커졌습니다. 한 때 흑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나라의 분열을 치유할 상징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그분 역시 '북부 귀족'의 한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임기 동안 미국의 귀족정치와 양극화는 더 심화되었고 그 결과 트럼프 현상이 출현하게 됐습니다.
한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
이 책에 한국이란 나라는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읽다보면 한국 상황이 떠오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한국은 석유·달러·민주주의의 미래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요? 간단히 말하자면 한국은 미국의 우산 속에 사는 나라이고, 너무나 그 우산에 폭 쌓여있어서 그 혜택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으며, 가까운 미래에는 여기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1) 석유
우리나라는 중국과 마찬가지로 '믈라카 딜레마'에 잡혀있습니다. 중동산 석유가 수입되지 않는다면 1년 안에 한국은 신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간 미국의 보호 아래 너무나 평온하게 중동산 석유를 수입해 써왔기 때문에 일반 국민들과 정치인들 사이에 위기감 자체가 없습니다. 그냥 주유소 가면 기름이 콸콸 나오니까요. 과거엔 러시아산 원유도 수입했었고 지금도 석유제품과 가스는 수입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 역시 미국의 묵인 하에 가능한 일입니다.
즉 한국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에너지/군사 강국이 잡아준 질서 속에서 산업사회를 발전시켜왔습니다. 2차대전의 프레임입니다. 평화가 계속되다 보니 무감각합니다. 또 우리에게 있어 중국이란 나라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봤을 때 생존에 직결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중국 없이도 우리가 어찌저찌 살 수는 있겠지만, 미국이 보장해주는 석유 수입 없이는 당장 이번 겨울에 화목난로부터 장만해야 합니다.
서유럽은 그래도 북해 유전도 있고 북아프리카와 동지중해 유전도 가깝습니다만, 한국은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반경 수천 킬로 안에 기름냄새도 나지 않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석유 수입의 경쟁자들입니다. 우리의 처지를 냉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립' '자주국방' 이런 말들이 가끔은 허깨비처럼 들리는 이유입니다. 기름 없이 굴러가는 태양광 탱크라도 발명하지 않는다면, 동맹 없는 자주국방은 우리에게 허상입니다.
(2) 화폐제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미국 달러 시스템에 포획되어 살고 있습니다. 한국은 서구에 비해서도 유독 달러 의존도가 높습니다. 이건 장점이기도 합니다. 안정된 화폐 시스템 속에서 큰 고민하지 않고 생산활동과 수출에만 전념하면 됐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 달러 시스템이 점차 취약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책에서도 언급하듯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 위기를 거치며 미국 연준은 달러 살포기로 변신했습니다. 더 이상 화폐가치 보호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트럼프 정권은 아예 금과 가상화폐로 가지치기를 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향후 20~30년 내에 달러 중심의 국제 무역 체계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뭘 해야 하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국제 통화 제도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경제 생산 시스템에 주는 영향을 최소화해야할 것입니다.
(3) 민주주의
민감한 문제입니다. 사실 2024년의 계엄령과 대통령 탄핵 이후, 한국에선 민주주의라는 말이 핑키의 요술봉처럼 여기저기에서 만능 해결책으로 쓰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선 무엇이 민주주의냐에 대한 정의부터가 논란을 불러오곤 합니다. 그래서 이쪽 진영도 자신들을 민주주의의 옹호자라고 표현하고, 저쪽 진영도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수호한다고 말합니다.
흔히 국회를 민주주의의 전당이라고 말하지만, 엄밀히 말해 의회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representative democracy)입니다. 직접 민주주의와는 다른 제도입니다. 대의민주주의의 의회는 곧잘 엘리트주의, 귀족정으로 변질되곤 합니다. 국회의원과 같은 엘리트들은 일반 국민들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고차원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일반 시민들의 삶에서 괴리되어 양극화를 심화시키거나 소외계층에게 좌절감을 불러오는 결정들을 내리곤 합니다. 이른바 '대리인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해결책은? 저자 헬렌 톰슨의 말을 빌어오겠습니다. "정치인(귀족)들은 귀족적 과잉을 강화하지 않으면서 시민들이 감수해야 할 희생을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 있어서, 국가의 미래와 젊은 세대를 위해서는 양질의 부동산 공급을 늘려야 하고, 부동산 공급을 늘리면 기성 세대와 기존의 보유자들에게는 손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설득하는 것이 대의 민주주의 시스템에서의 정치 엘리트들의 역할이라고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현실 세상에 완벽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는 게 첫걸음입니다.
질서 없음 - 격동의 세계를 이해하는 세 가지 프레임
저자 헬렌 톰슨, 번역 김승진
출판 윌북
발행 2025.10.20.
이상으로 책 '질서 없음'을 리뷰해봤습니다.
이 기사는 윌북으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기획했고 내용은 전적으로 오호츠크 리포트가 작성했습니다. 기사를 재미있게 보신 독자분들께서 책도 구매해주시면 이렇게 두껍고 좋은 책을 수입해주시는 출판사와 번역하시는 번역자에게 힘이 되어, 다음에 또 좋은 외국 책들이 한국어로 번역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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