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레놀이 자폐아 만든다' 논란, 검증이 어려운 이유

2025-09-26

현대인의 필수약 타이레놀이 태아의 자폐증과 ADHD를 유발한다는 주장이 있다. 관련 논문을 들여다봤다. 

(오디오 팟캐스트 버전)


지난 월요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로버트 케네디 보건부 장관이 쇼킹한 발표를 했습니다. 우리가 아주 흔하게 먹는 해열제/두통약 타이레놀(Tylenol)을 임신부가 먹으면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태아의 뇌 발달에 영향을 미쳐 자폐증이나 ADHD 위험을 높인다는 얘기였습니다. 트럼프는 간단히 이렇게 말했습니다. "Not good!"

발표 직후부터 타이레놀 제조사인 Kenvue의 주가는 우수수 떨어지고 있습니다. (존슨앤존슨에서 분사된 회사입니다.)

 


타이레놀은? 아세트아미노펜이라는 약물로 만든 약입니다. 이름이 어렵죠. 트럼프도 어떻게 발음할지 몰라 고생했습니다.

이 약물은 예전에 많이 먹었던 아스피린 해열제보다 부작용이 덜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임신부들에게 자주 처방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임신부 두 명 중 한 명 이상(62%)은 타이레놀을 복용한 적이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성분은 같고 타이레놀보다 저렴한 타 브랜드의 약들도 시중에 많이 나와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편의상 타이레놀이라고 통칭하겠습니다.)


그런데 지난 몇십 년 동안 미국에서 자폐증이나 ADHD를 가진 아이의 비율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로버트 케네디 장관은 그것이 타이레놀 같은 조제약이나 필수 백신 접종의 사용이 늘어났기 때문 아닌가 하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냥 뇌피셜로 말한 건 아닙니다. 트럼프와 케네디는 의약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전문성과 권위를 인정 받는 미 식품의약청(FDA)의 발표를 인용했습니다. FDA의 발표는 아래와 같습니다.




즉시 배포용
2025년 9월 22일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오늘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 및 유사 제품)의 라벨 변경 절차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는 임신부가 아세트아미노펜을 사용할 경우, 자녀에게 자폐증이나 ADHD와 같은 신경학적 질환의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증거를 반영하기 위한 조치다. FDA는 이와 관련하여 전국 의사들에게 경고 서한도 발송했다.

“FDA는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관련된 잠재적 위험에 대한 상당한 증거를 부모와 의사들이 인지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마티 마카리(Marty Makary) FDA 국장(의학박사, 공중보건학 석사)은 말했다. “이러한 증거가 존재하더라도 선택은 여전히 부모에게 달려 있다. 대부분의 미열은 치료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예방 원칙에 따라 많은 이들이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을 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특정 상황에서는 임신부가 아세트아미노펜을 사용하는 것도 여전히 합리적이다.”

최근 몇 년간의 연구 결과는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이후 자폐증이나 ADHD 진단 간의 상관관계를 시사해왔다. ‘간호사 건강 연구 II(Nurses’ Health Study II)’와 ‘보스턴 출생 코호트(Boston Birth Cohort)’를 포함한 여러 대규모 코호트 연구에서 이러한 연관성이 발견되었다. 일부 연구에서는 임신 기간 내내 만성적으로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할 경우 위험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다만, 많은 연구에서 아세트아미노펜과 신경학적 질환 사이의 연관성이 보고되었지만, 인과관계는 아직 확립되지 않았으며 반대되는 결과를 제시하는 연구도 학계에 존재한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아세트아미노펜은 임신 중 발열 치료에 사용이 허가된 유일한 일반의약품이며, 임신부의 고열은 태아에게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아스피린과 이부프로펜은 태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잘 입증되어 있다.




이 발표는 두 건의 논문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각각 예일대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의 연구입니다. 



반발


그런데 이 발표가 나자마자 반발이 터져나왔습니다.

일단 트럼프의 앙숙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진실에 대한 폭력'이라며 트럼프를 공격했습니다. 또 세계보건기구(WHO)도 이런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발표했습니다. EU, 영국, 캐나다의 의약품 관련 기관들도 타이레놀과 자폐 사이에 인과관계가 발견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한국 식약처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했습니다. 많이 먹지는 말라면서, 타이레놀 관련 업체에 미국 정부 발표에 대한 의견과 자료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의약 전문가들끼리도,  FDA와 WHO 같은 세계 최고 권위의 전문 기관들마저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는 것입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로이터 통신은 2013년(트럼프 이전)에는 타이레놀이 태아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보도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입장을 싹 바꿨습니다.



로이터는 평소 반 트럼프 성향을 보여온 통신사입니다. 정치적 성향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닐까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기사를 곧이 곧대로 믿으면 12년 만에 바보가 되는 세상입니다.

어쨌든 WHO와 세계 여러 나라 기관들이 미국 FDA의 발표를 반박할 수 있는 이유는, 타이레놀과 태아의 자폐에 대해 상충되는 주장을 하는 연구가 많기 때문입니다. FDA의 발표문도 마지막 문단에서 그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논문 한두 개를 절대적으로 믿으면 안된다는 얘기입니다.

타이레놀과 태아 자폐증에 대해 미국에서만 이미 200여건의 소송이 걸려있다고 합니다. 제약업계와 의료계는 가까운 관계라서, 논문 저자들(의사들)이 원고 혹은 피고 측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스웨덴 연구의 해석과 한계


타이레놀을 옹호하는 측에서 가장 강력한 증거로 언급하는 것은 2024년 스웨덴의 연구입니다.





스톡홀름 카롤린스카 연구소의 연구자들이 1995~2019년 사이 스웨덴에서 태어난 약 250만 명의 아동을 대상으로 임신 중 타이레놀 성분 처방의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이 실험은 통계 표본의 크기도 크고, 데이터 일관성도 높습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연구이기도 합니다.


조사 결과는 아래와 같습니다.

  • 스웨덴 어린이 250만명 중 엄마가 임신 중 타이레놀을 복용했다고 하는 경우는 7.5%.
  • 타이레놀에 노출 안 된 어린이 중 1.33%가 10살 이전에 자폐 진단.
  • 타이레놀에 노출된 어린이 중  1.53%가 10살 이전에 자폐 진단.
  • 타이레놀에 노출된 어린이는 ADHD와 지적장애 발병율도 높았음.


1.33% vs. 1.53%의 차이입니다.

이를 두고 많은 한국 언론들은 뭘 어디서 잘못 베껴왔는지 "사실상 차이가 없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명백히 잘못된 보도입니다. 한국 기자들의 수리 이해력이 얼마나 떨어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논문에서도 그렇게 얘기하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심지어 숫자를 잘못 쓴 언론사들도 있습니다.

 

발병률 1.33%와 1.53%는 작은 차이가 아닙니다. 십만 명 당 200명의 자폐 어린이가 추가로 발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입니다. 특히 세부 데이터를 보면 하루 430mg 이상의 타이레놀을 섭취한 'high-dose' 그룹은 전혀 섭취하지 않은 그룹과 발병률이 거의 두 배(87% 차이)였습니다. '사실상 차이가 없었다'고 쓴 언론사 기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건 자폐증만 따진 수치입니다. ADHD와 지적장애 발병율도 비슷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다 합치면 임신 중 타이레놀 섭취와 어린이의 정신건강 사이에는 분명한 상관관계가 존재합니다.


다만, 이런 상관관계가 꼭 '인과(원인과 결과) 관계'를 증명하는 건 아닙니다.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담배를 피면 폐암 발생률이 높아지고, 담배를 피는 사람은 라이터를 가지고 다닐 확률이 높다. 이걸 '라이터를 가지고 다니면 폐암 발생률이 높아진다'고 해석하면 안된다" - FT 칼럼니스트 Anjana Ahuja

그래서 이 연구에서는 추가 분석을 했습니다. 같은 부모 아래서 태어난 형제자매간에 한 명은 타이레놀에 노출되고 한 명은 노출되지 않은 경우, 혹은 한 명은 자폐이고 한 명은 자폐가 아닌 경우들을 분석한 겁니다. 이 분석에서는 타이레놀 복용 여부와 자폐 발병율에 큰 차이가 보이지 않았다고 연구자들은 적었습니다. (Hazard Risk=0.98)


이에 따라 연구진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타이레놀에 노출된 태아의 자폐증 발병률이 높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타이레놀 때문이라기보다는 산모가 타이레놀을 먹어야 할만큼 안 좋은 상황에 놓여있었다는 게 근본 원인으로 보인다.' 즉 산모의 건강 상태와 주변 환경이 근본 원인이란 얘기입니다.

구체적으로, 임신 중 타이레놀은 먹었던 여성들은 저소득 계층에 속하거나 과체중, 흡연, 마약중독, 정신질환에 해당하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즉 산모의 상태가 나쁜 경우 아이의 자폐증 발병 확률도 올라간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카롤란스카 연구진은 타이레놀에 자폐증의 책임을 돌릴 게 아니라 산모들에게 신경을 쓰자고 결론을 지었습니다.


조금 덧붙이자면, 이 스웨덴 연구도 100% 옳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연구에 헛점은 많습니다. 예를 들어,

  • 스웨덴 엄마들이 얼마나 솔직히 응답했는지 모릅니다. 특히 자기 아이가 자폐가 있는 경우 엄마가 자기 잘못으로 여겨질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응답하기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약국이나 드럭스토어에서 타이레놀을 구입하거나(OTC 구매) 그냥 집에 보관해둔 것을 먹어서 병원 처방 기록이 없는 경우, 굳이 말하지 않거나 아예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그래서 임신 중 타이레놀 복용률이 7.5%로 굉장히 낮게 나타난 게 아닌가 의심됩니다. 
  • 이 연구의 핵심 결론, 즉 '형제간 자폐 발병율에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HR=0.98, 2% 차이)는 주장에 대해 논문은 자세한 계산 과정이나 raw data를 제시하지 않았습니다. '개인 의료 정보라서 못 밝히니, 필요한 사람은 스웨덴 관계당국에 문의하라'고만 주석2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가 검증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 타이레놀을 적게 먹은 그룹과 많이 먹은 그룹간의 자폐 발병율이 크게 차이나는 이유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이런 조사는 다른 모든 변수를 동일하게 통제하고, 타이레놀 복용량이라는 단 하나의 변수만 달리해가면서 대조 실험(A/B 테스트)을 해야지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생쥐 같은 동물 실험에서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그렇게 통제된 실험을 할 수가 없습니다. 트럼프와 오바마, FDA와 WHO 간에 의견 차이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애초에 100% 정확한 인체실험을 못 하기 때문입니다.


결론


이제 여러분은 이 말을 하고 싶으실 겁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결론이 뭐야? 


스웨덴 조사에서 보여주듯, 일단은 임신부든 아니든 애초에 타이레놀을 덜 먹도록 몸과 마음의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최선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스웨덴 산모들의 타이레놀 복용율(7.5%)은 미국보다 훨씬 낮습니다. 그리고 자폐증 발병율도 미국보다 훨씬 낮습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몰라도요.

모든 약은 장단점이 있고 부작용이 있습니다. 특히 미국은 타이레놀 같은 약을 대형마트에서 마치 과자처럼 진열해놓고 판매하다보니 별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사먹는 사람이 많습니다. 맨 위에 소개한 뉴스 영상에 보면, 어떤 미국 여성이 "의사의 처방을 받아서 임신 기간 내내 타이레놀을 먹었다. 내가 다른 스트레스도 많이 받는데 이런 (약 먹지 말라는) 스트레스까지 받아야 하냐?"고 자랑하듯 말합니다. 트럼프는 이런 걸 지적하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음식을 과잉 섭취해 비만인 사람도 많고, 반대로 운동 중독인 사람도 많고, 극단적으로 총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극단적인 성생활을 하는 사람도 많고 극단적으로 약에 의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오피오이드라는 약물성 의약품을 과잉 처방해주는 의사들도 있습니다. 비타민도 엄청 먹죠.

이번 성명은 그런 극단적 소비 성향에 대한 경고라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약만 믿고 대충 살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임신 중에 약을 많이 먹는 건 좋지 않으니 상식적으로 판단하라는 얘기죠. 트럼프의 말을 들을 때는 손가락이 아니라 손가락이 가르키는 곳을 봐야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본인 등판' 자료가 발견되었으니, 아래와 같습니다.



TYLENOL® (@tylenol)

저희는 사실 저희 제품 어느 것도 임신 중에는 사용을 권하지 않습니다.
오늘 이렇게 시간을 내어 우려를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7년 3월 8일 오전 4:31


공식 X 계정에서 타이레놀이 임신 중엔 타이레놀을 권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물론 선택은 개인의 몫입니다.


- OR



1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