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장 갔다가 ESTA 뒤집혀 쫓겨난 사연 (체험기)

2025-09-22

회사원이 미국 출장 갔다가 공항에서 치즈버거 하나 얻어먹고 6시간만에 쫓겨난 사연입니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엔솔 배터리 공장에서 한국 근로자 300여명이 구속되었다가 사실상 추방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자잘자잘하게 미국에서 추방되거나 입국이 거절되는 출장객들의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지난 달 오호츠크 편집자의 아주 가까운 지인도 샌프란시스코 출장길에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아래 그를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 눈물 젖은 치즈버거를 먹어보았나요


편집자: 미국에는 어떤 일로 가셨습니까?

인터뷰이: 지난 달 저희 회사에서 미국 출장건으로 직원 6명이 함께 ESTA(여행허가서)를 신청했습니다. 명문대 캠퍼스에서 열리는 학회 겸 산업 컨퍼런스에 저희 회사가 전시 부스를 내게 됐거든요.

저희는 IT 관련 회사 입니다. 그 부스 운영을 하기 위해 가는 출장이었습니다. 2명이 며칠 먼저 갔고, 저를 포함한 4명은 후발대였어요.

ESTA는 별 문제 없이 승인을 받았습니다. 한 명만 빼고요.

 ESTA 신청 페이지


출발할 때는 기분이 좋으셨다고요?

아 그럼요. 미국의 광활한 대자연도 보고, 세계 최고 대학에서 컨퍼런스도 하고. 상상만 해도 설레죠. 비행기 타기 전 라운지에서 저녁 먹으면서 맥주 두 잔에 "건배~" 하고, 여행의 시작을 축하했습니다. 

그런데 함께 가는 후발대 4명 중 한 명의 ESTA가 거절당했다는 불길한 소식이 이미 주초에 들려왔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불행의 시그널이었죠. 그래도 이미 두 명은 무사히 입국했기에 별 일 있을까 싶었습니다.

거절당한 사람만 빼고 나머지 셋이 함께 비행기를 탔어요.


미국 도착 후엔 어땠습니까?

샌프란 공항에 입국심사 줄이 장난 아니게 길었습니다.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문자가 하나 오더라고요.

'ESTA authorization canceled.’

순간 머리가 하얘졌죠. 출국 한참 전에 이미 승인을 받았는데 비행 중에 그게 취소되었다는 거에요. 세 명 다요.

한미 정상회담 직전이라서 그런가? 잠시 그런 생각까지 했습니다. “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거기서 그냥 돌아갈 수도 없고, 일단은 줄을 섰으니까 심사를 받아보자고 얘기했습니다. 

흑인 경찰관(사실은 이민국 심사관)이 "Hi, how are you?" 라면서 친절하게 맞이해주더라고요. 지문도 찍고, 사진도 찍고… 순조로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Hey, you don’t have a visa!"라면서 표정이 확 바뀌는 겁니다. 저는 'ESTA를 발급받아서 왔고, 비행기 출발할 때까지만 해도 approved 상태였다'고 말했죠. 그리고 미리 캡쳐해둔 ESTA 승인 화면과 학회 초청장까지 보여줬습니다. 그랬더니 심사관이 “좋아, 그럼 저쪽 가서 더 얘기해보자”며 슬쩍 웃더군요.

이때까지도 전 정말 별일 아닌 줄 알았습니다. 임시 ESTA라도 발급해주고 그냥 통과시켜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별일이었군요?

네. ‘홈랜드 시큐리티’라는 간판이 붙은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미국 드라마에서 보던 차가운 흰색 대기실인데, 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노려보고 있는 커다란 액자가 붙어있었어요. 


AI image


그 방에서 여러 명이 대기하다가 이름을 부르면 개인별 조사실로 들어가는 방식이었어요. 옆에 앉아있던 사람 몇 명은 20분 정도 기다리고 짧은 인터뷰만 하고 금방 풀려나더군요. 그래서 ‘나도 곧 나가겠지’ 라 생각하고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직원이 와서 핸드폰을 압수해갔어요. 그때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죠.

대기실은 에어콘을 빵빵하게 틀어서 너무 추웠어요. 군용 모포보다 더 뻑뻑한, 무슨 카페트처럼 두꺼운 담요 같은 걸 덮으라고 주는데, 먼지가 엄청 많아서 그냥 안 썼어요. 자랑스런 한국인의 자존심이 있지.


조사 과정은 어땠습니까?

한참 기다리다 1인 조사실로 끌려갔어요. 이름부터 직업, 가족관계를 물어보고 부모님 이름과 직업도 물어보더라고요. 자세한 내용은 말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결론적으로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넌 비자 문제가 있어서 절대 들어갈 수 없어. ESTA에 문제가 있어서 취소되었어. 대사관을 통해서 제대로 심사 받고 와야 해"라고요. 

그러면서도 또 "너의 잘못은 아니야. 우리는 절대 너를 강압적으로 수사하지 않을 거야. 배가 고프거나 물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라고 하더라고요. 딱 미국 드라마에서 경찰들이 수사할 때 하는 그 친절한 듯 하면서 냉정한 말투였어요.

중간에 제가 한국어로 얘기하고 싶다 하니까 조사관이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어요.

"그러려면 한국어 통역해줄 사람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시간 엄청 오래 걸릴텐데? 넌 영어 잘하는 것 같으니까 그냥 쉽게쉽게 가자."


시간은 얼마나 걸렸어요?

조사 자체는 1시간 정도 받았는데, 앞뒤로 기다린 시간까지 하면 6시간 정도 됐습니다. 조사가 끝나니 이젠 우리끼리 말도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기다리기도 오래 기다렸고, 시차적응을 위해 비행기에서 많이 먹지 않았었기 때문에 배가 고팠습니다. 마침 거기 직원분이 "배고프지? 음식 먹을 권리도 보장되니까 당연히 뭐 먹어도 돼"라고 하면서 메뉴를 보여주더라고요.


메뉴에 뭐가 있던가요?

메뉴는 이랬어요.

  • 치즈버거
  • 햄버거
  • 치킨샌드위치
  • 샐러드
  • 감자튀김 or 소다 or 커피

여기서 황당한 건 감자튀김 or 소다(음료)'라고, 둘 중에 하나만 시킬 수 있게 하더라고요.

아니, 상식적으로, 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으면 목도 마르지 않겠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치즈버거와 소다를 먹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먹은 버거는 인생 버거였습니다. 공항 어디서 가져왔는지 몰라도 진짜 맛있게 잘 구웠더라고요. 빵도 맛있게 구워졌고 안에는 패티, 치즈, 양상치, 계란, 케찹, 소스 이렇게 들어있었어요. 진짜 갓 구운 버거 맛이었어요.


버거 먹고 나서는 뭘 했나요?

버거 먹고 계속 기다렸어요.  "돌아가는 비행기는 언제 타냐"고 물어도 시큰둥하게 넘어가더라고요. 답답했습니다.

어느새 밤이 됐습니다. 공항은 서서히 불을 끄기 시작했죠. 영화에서 보던 전형적인 장면 있잖아요. 환하게 빛나던 네온사인이 하나둘 꺼지고, 가게 셔터가 내려가고, 청소차가 웅웅 소리 내며 지나가는 그 풍경. 심사관들도 "퇴근이다!"라는 듯 대충 정리하고 자기들끼리 회의하러 들어갔습니다. 매니저도 집에 간 듯했고요. 말 그대로 공항의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어요.

그때가 되니까 우리 일행도 이상하게 긴장이 풀렸습니다. ‘어차피 추방 확정인데, 뭐 어쩌겠나’ 싶은 마음이었죠. 

11시쯤 되어서야 귀국편 비행기를 알려주더라고요. 11시 30분 비행기였습니다.


돌아올 땐 별다른 문제가 없었나요? 

아이러니하게도 탑승을 제일 먼저 시켜줍니다. 마치 ‘불청객은 먼저 조용히 태워 보내자’는 듯이요. 우리나라 항공기를 탔는데 이코노미 칸 중에서 앞쪽에 있는 좋은 좌석에 셋이 나란히 앉았어요. 여권과 핸드폰은 여전히 압수 상태고요.

그때 아주 잠깐 와이파이가 잡혀서, 노트북을 후다닥 꺼내 회사와 지인에게 급하게 메시지를 날렸습니다. "나 지금 쫓겨나고 있음…" 그리고 그냥 일행들끼리 비행기에서 술이나 많이 마시자고 했어요.


그래서 술 마셨어요?

솔직히 그날의 모든 굴욕보다 더 억울했던 게 이거예요. ‘우린 이제 술이나 많이 마시고 잠이나 자버리자’고 다짐했는데, 승무원이 정색을 하면서 그러더군요. “규정상 이렇게 쫓겨나는 승객에게는 주류 제공이 불가합니다. 저희도 드리고 싶지만 정말 죄송합니다.” 눈에 눈물이 맺힌 상태로 "한잔만요, 제발…" 했는데도 거절당했어요. 

나중에 한국에 와서 아는 변호사와 얘기했더니, “그때 규정을 보여달라고 강하게 요구했어야 한다"라고 하더라고요. 왜냐하면 아무리 미국 입국이 거절되어서 돌아가는 거라 하더라도 저희가 무슨 죄를 지은 건 아니잖아요. 저희 돈을 내고 정당하게 티켓을 산 것이고요. 또 비행 중인 국적사 비행기 안은 우리나라 법이 적용된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전 그냥…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항공사에 민원이라도 넣었으면 와인 두 병은 보상받을 거라고 하는데, 그냥 말았어요."

아, 술을 못 주는 게 미안했는지 비행 내내 승무원분들이 계속 들락날락 하며 물을 갖다주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것도 지금 생각하니 그분들이 우리를 감시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핸드폰은 언제 찾았어요?

비행기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 내리고 게이트를 닫은 이후에야 움직이게 하더라고요. 인천공항에 있는 법무부 입국센터까지 다시 끌려가서 입국 승인을 따로 받은 후에야 핸드폰과 여권을 돌려받았습니다. 이 과정도 사실 좀 억울했어요. 그래도 공무원분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참...

이렇게 새벽에 집에 돌아오자마자 캘리포니아 못 간 기념으로 켈리 한 잔 마셨습니다. 


그런데 입국 거절의 이유가 뭐였나요? ESTA라도 학회나 컨퍼런스 참석은 가능할텐데?

그걸 저도 모르겠어요. ESTA 거부 사유는 원래 알려주지 않는대요. 처음에는 허가해줬다가 비행기 타고 날아가는 중에 거부된 이유도 전혀 모르겠어요.

한국에서 와서 항공사 직원에게 물어보니 하루 1팀 정도 이렇게 ESTA 거절이 되어서 돌아온다고 하더라고요.

다니는 회사가 얼마나 유명한가도 중요한 것 같아요. 같은 아시안이라 하더라도 구글이나 애플 다니는 애들은 세컨더리 조사실로 들어와도 주머니에 손 꽂고 당당하게 말한대요. "나 구글/애플 다니니까 우리 회사에 연락해봐라"라고요. 저희 회사는 아직 별로 유명한 회사가 아니라 걸렸나 싶기도 하고... 

사실 저와 같이 갔던 다른 두 분은 삼성 출신이었어요. 그분들은 조사실에서 이런 질문도 들었대요. "삼성은 좋은 회사 아닌가? 왜 삼성에서 이런 회사로 옮겼니?" 이런 말에 현타가 오죠.

또 6시간 동안 대기실에 진짜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는데, 누가 봐도 수상하게 생긴 사람들이나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사람들도 결국 다 오케이 받고 나가더라고요. 그걸 보고 또 현타가 왔습니다.


앞으로도 ESTA 입국이 거절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평생(whole life) 거절된다고 강조해서 말하기는 하던데... 과연 어떻게될까요? 


선생님의 이름을 밝혀도 될까요?

미국에서 진짜 추적할까봐 이름은 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아시아나 항공에 대한 불만이요. 왕복 표를 비싼 걸로 끊었는데 돌아오는 비행편에 대해 마일리지 적립을 제대로 안 해줬어요. 5634 마일 줘야하는데 3945 마일만 줬네요. 미국 경찰(이민 심사관)이 표를 바꿔준건데, 그게 할인티켓 기준으로 적용된 것 같아요.



- 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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