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난민들이 묵는 고풍스런 호텔들, 소유자도 난민

2025-09-18

반이민 시위대는 '국민 세금으로 럭셔리 호텔에 난민들을 수용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항의하지만,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더 싸기 때문이다.


Jennifer Williams


* p,s. 주의: 이 기사는 길고 덜컹거리는 번역투이며 결론도 없습니다.  



영국 해안 소도시 블랙풀에 있는 메트로폴 호텔. 낡은 금빛 글씨의 안내판에는 '영광스러운 해변으로의 시간여행을 약속합니다'라는 말이 적혀있다. 카바레, 볼룸, 엔터테인먼트도 있다고 한다. 이 건물은 18세기에 지어졌는데 라운지에서는 매일 스콘과 크림, 잼이 곁들여진 애프터눈 티를 마실 수 있다고도 되어있다. 나비넥타이를 매고 스팽글을 뿌린 가수들의 빛 바랜 사진도 있다.

하지만 이건 다 신기루다. 블랙풀 해변의 유일한 호텔인 메트로폴은 현재 관광객에게도, 지역 주민에게도 문을 열지 않는다. 무너져가는 내부에는 저런 화려한 엔터테인먼트 같은 게 없다. 웅장한 라운지에서는 빗물이 떨어져 양동이가 받쳐져있다. 애프터눈 티도 물론 없다.

대신 메트로폴 호텔은 2021년 9월 이후 영국 정부가 난민 신청자를 수용하는 데 사용돼 왔다. 현재 약 500명의 난민이 이 호텔의 낡은 객실들에 수용돼 있다. 그들 중 다수는 작은 보트를 타고 넘어온 밀입국자다. 난민들이 임시 숙소에 배치되고 나면, 그들은 무기한 기다려야 한다. 과부하 걸린 관료제가 난민 심사를 완료할 때까지. 이 과정은 몇 년 걸릴 수도 있다.


난민을 수용하기 전의 메트로폴 호텔 모습 (출처: 호텔 웹사이트)


현재의 모습 (출처: The Blackpool Lead)


난민 반대 운동가들은 호텔 앞에서 버스로 도착하는 난민들을 촬영하거나, 출입문을 지키는 내무부 계약업체 직원들을 괴롭힌다. 지역 주민들은 페이스북 그룹에서 분노를 쏟아낸다. 이민자들이 영국 납세자의 돈으로 호텔 휴가를 즐긴다고 서로 정보를 공유한다. 지난해 여름, 남쪽 해안 사우스포트 시에서 어린이 3명이 살해된 사건의 범인이 난민 신청자라는 거짓 소문이 퍼지자 메트로폴 앞에서도 폭동이 벌어졌다.

그로부터 1년 동안 블랙풀 시의 긴장은 고조됐다. 지역 국회의원은 치안 우려와 공공서비스의 부담을 거론하며 메트로폴을 폐쇄하라고 거듭 요구했다. 시의회는 공중보건을 이유로 폐쇄를 검토했다. 더 많은 시위가 벌어졌다. 지난달에는 한 남성이 경비를 피하고 호텔 안으로 들어가 투숙객들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리기도 했다.




브리타니아 호텔스 체인


메트로폴은 현재 3만2000명 이상의 난민 신청자를 수용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계약한 200여개 호텔 중 하나다. 이런 호텔 수는 지난 보수당 정부 시절 정점을 찍었고 지금은 그보다 절반 이상 줄었다. 그래도 올 여름, ‘난민 호텔(asylum hotel)’이라는 담론이 영국 정치를 지배하게 되었고 이민 제도의 모든 문제를 상징하게 되었다.

메트로폴을 포함한 난민 호텔 여러 곳이 한 회사의 소유다. 브리타니아 호텔스라는 호텔 체인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영국 최대의 민간 호텔 체인이라고 부른다. 수십 년 동안 이 체인은 영국 여러 지역의 중심지에 있는 역사적 빌딩들을 사들였고, 객실을 초저가에 제공해 왔다. 불완전한 영국의 난민 호텔 제도에서 ‘승자’라고 할 만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브리타니아일지도 모른다.

1980년대 이후 브리타니아 제국은 60개가 넘는 호텔을 포함해 약 200개의 부동산, 휴양지와 다른 토지를 거느리며 불어났다. 여러 회사를 거느린 이 구조는 최소 2억5000만 파운드의 순자산을 쌓아올렸다. 이제 그 자산의 일부는 새로운 고객, 즉 영국 정부를 위해 전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궁극적인 수혜자는 브리타니아를 만든 인물이다. 은둔 생활을 하는 87세의 부자로, 그를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공개적으로 그에 대해 말해주는 사람은 더 적다. 그의 이름은 알렉스 랭삼(Alex Langsam)이다.

회사의 회계 자료는 몇 가지 단서를 준다. 브리타니아 호텔스 유한회사의 연간 매출은 지난 10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었다. 난민 위기가 심화된 탓이다. 2024년 매출은 1억6250만 파운드에 달했다. 소비자 잡지 Which?가 여전히 이 회사를 영국 최악의 호텔 체인으로 꼽고 있던 해였다. 가장 수익성이 높았던 해는 2023년이었다. 같은 해  난민 입국자가 급증했고, 당시 보수당 정부는 호텔을 “비상 주거지"로 다시 활용하게 됐다.

영국 정부는 브리타니아 사와 애증의 관계를 형성하게 됐다. 지방 의회들은 쇠퇴한 도심을 재생하기 위해 호텔들을 몰아내려 하고, 지방 공무원들은 그 호텔들이 지역 사회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고 있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가능한 한 빠르고 저렴하게 나라의 이민 문제를 수습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점점 커지는 난민 위기에 대한 대응을 외주화했다. 납세자들의 돈은 브리타니아 같은 호텔업체들을 더 부유하게 만들었다. 이는 대중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그러나 난민만이 유일한 문제는 아니다. 특히 블랙풀 시 같은 영국 북부의 한때 웅장했던 해변 휴양지 도시들에서는수십 년에 걸친 지역사회의 경제적 쇠락과 국가의 무관심이 이어져왔고 호텔은 그 상징일뿐이다. 


랭삼은 누구인가


브리타니아 호텔 체인의 주인, 알렉산더 랭삼은 1938년 6월 비엔나에서 유대인 부모에게 태어났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나치 독일에 합병한 지 석 달 뒤였다. 제조업자였던 아버지 네케미아스와 어머니 레베카는 아기 알렉스와 그의 형 브루노를 데리고 1939년 8월 비엔나를 떠나 영국에 도착한 것으로 이민 서류에 기록돼 있다. 그 시점에는 이미 수천 명의 오스트리아 유대인들이 붙잡혀 다하우 강제수용소로 보내지고 있었다.

“제 가족은 비엔나에서 떠나는 마지막 기차를 탔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영국에 오지 않았다면 가스실에 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랭삼은 2011년 『유대인 크로니클』에 가족 이야기를 이렇게 말했다. 가족은 처음에 서식스에 머문 뒤 맨체스터 인근 샐퍼드의 캐번디시 로드에 있는 1920년대 지어진 연립주택에 정착했다.

랭삼은 캐번디시 로드 모퉁이에 있던 작은 부동산 사무실(지금도 운영 중이다)에서 자신의 부동산 제국을 세웠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 신문에는 인근 마을의 아파트와 연립주택 광고가 그의 이름으로 가득했다. 1969년자 광고 하나는 이렇게 적혀 있다. “다시는 없는 기회.” 화이트필드에 있는 중앙난방이 설치된 침실 세 개짜리 연립주택과 차고의 가격은 3450파운드였다.

랭삼은 어릴 적 살았던 옛집을 계속 소유하고 있다. 나는 몇 달 동안 랑삼의 과거에 대해 이야기해줄 사람을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고, 7월의 어느 맑은 오후에 그 집 정원 담장 뒤 앞마당에 버려진 쇼핑 카트를 들여다보고 서 있었다. 거리의 다른 집들은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저는 그를 만난 적이 없어요.” 이웃집에 사는 수라는 이름의 은퇴한 무용 교사가 말했다. 그녀는 남편 에릭과 함께 40년 동안 옆집에 살았다. 그녀는 랑삼의 형 브루노를 따뜻하게 기억했다. 그는 여전히 오스트리아 억양으로 말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내가 문을 두드렸을 때 수와 에릭은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반평생 모은 책과 장식품들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었다. 

피아노 조율사로 일하는 에릭은 랑삼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웃이었거나 유대인 동포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어느 날 그는 맨체스터 브리타니아 호텔로 불려가 그랜드 피아노를 고쳐야 했다. “현이 끊어지며 방 안을 가로질러 날아다녔습니다.” 그가 회상했다. “그러다가 손님을 칠까 봐 너무 걱정한 나머지 그는 피아노를 없애 버렸습니다.”

나는 메모에서 눈을 들어 바라봤다. 에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 가닥의 끊어진 피아노 현 때문에 피아노를 들어냈다고 강조했다. 랭삼은 어떤 사람이었냐고 내가 물었다. “냉담했죠.” 옆집 랑삼의 집은 현재 비어 있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 피아노가 아직 그 집에 보관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우리는 랭삼이 오랫동안 보여온 부동산 매입 습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부동산을 사들이기만 하고 팔지 않았다. 수십 년 전 이 지역에서 사들인 조각 토지들은 여전히 그의 소유였다. 지역 주민들이 주택이나 공동체 사용 용도로 사려는 시도가 간헐적으로 있었지만 무위로 끝났다. “그는 돈보다 자산을 갖고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에릭은 이렇게 생각을 말했다. “독일에서 도망나온 사람들 중에는 빵 한 조각을 쥐고 절대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사람들이 그렇게 되면…” 그는 말을 흐렸다. “모두 추측일 뿐입니다.”라고 그는 인정했다.

에릭만 그런 연관을 지은 것은 아니었다. 랭삼의 전 사업 동료들은 그 사람이나 그의 동기에 대해 기록으로 말하기를 거부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익명으로 말할 의향이 있었다. “그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아들입니다.” 그들 중 한 명이 말했다. “그는 자신이 세운 모든 것이 빼앗길 수 있다는 불안에 항상 시달립니다. 그게 그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지요.”

그는 랭삼이 개인적으로는 매우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호텔에 관해서는, 단순히 사업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호텔들이 끔찍하다는 상을 받는다는 얘기들이 많지만, 제가 말씀드리건대 그곳은 항상 만실입니다. 만약 포시즌스를 기대하고 간다면, 포시즌스를 얻지 못할 겁니다.”

맨체스터 포틀랜드 스트리트 호텔 시절부터 랭삼은 자신의 부동산에 큰 투자를 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현대식 호텔과 경쟁하려면 수억 파운드를 쏟아부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수익성을 얻는 방법이 아니라고 깨달은 거지요.” 그는 랭삼을 “조용하게 사는 사람”, “원칙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맥을 좁고 충성스럽게 유지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심이 없습니다. 전혀 개의치 않지요.”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랭삼의 부동산 제국 확장과 경영 방식은 일관되게 이어졌다. 1970년대 후반, 그의 첫 주요 사업은 맨체스터 포틀랜드가의 빈 섬유 창고를 관광호텔로 바꾸는 것이었다. 당시 제조업이 쇠퇴하던 도시에서는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1983년, 리버풀 에코 지는 브리타니아 호텔 맨체스터가 “리츠 호텔과 나란히 평가돼야 한다”고 썼다. 팝스타 모리세이는 오직 그 화려한 호텔에서만 인터뷰에 응했다고 전해졌다. FT는 당시 이 호텔을 “놀라운 장식과 금박으로 장식된 화려하고 우아한, 날아다니는 계단”으로 묘사했었다.

1982년, 랭삼은 국영 철도로부터 리버풀에 있는 역사적인 아델피 호텔을 매입했다. 1990년대 불황기에는 런던 도클랜드에서 브리타니아 인터내셔널을 개장했다. 부실 개발업자로부터 매입한 부지였는데, 그 개발업자는 600만 파운드의 손해를 보고 땅을 팔았다.

랭삼의 가장 야심찬 사업 확장은 2011년 영국 휴양의 상징인 폰틴스(Pontins) 휴양지 체인을 인수한 것이었다. 폰틴스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노동 계급을 위한 저렴하고 즐거운 해변 휴양시설 체인으로 설립됐다. 그러나 여행의 트렌드가 바뀌었고, 랭삼이 이 체인을 파산 관재인으로부터 사들일 즈음에는 이미 영광의 시절을 한참 지난 상태였다. 당시 그는 폰틴스를 2000만 파운드에 매입했다. 이는 불과 4년 전 오션 파크스가 같은 회사를 사기 위해 지불한 금액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당시 부동산 중개업체 크리스티+코는 랭삼을 “매우 약삭빠른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는 “그 가격에 엄청난 부동산을 산 셈”이라며, “마치 도시 다섯 개를 산 것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싸움꾼이었다. 1999년 랭삼은 오스트리아에서 비거주자(non-dom) 등록을 했다. 3년 뒤 그는 회계법인 해커 영을 상대로 더 일찍 조언하지 않은 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정 밖 합의로 100만 파운드를 받은 뒤, 랭삼은 다시 그를 조언했던 변호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합의금이 300만 파운드가 될 수도 있었다는 이유였다. 그는 패소했고, 항소법원에 사건을 가져갔다. 롱모어 항소법원 판사는 이 청구를 기각하며 “매우 이례적… 전례 없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영광의 시절에는 그도 언론에 자주 등장하곤 했다. 1987년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꾸준히 사들이던 유산 건물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런 오래된 건물들이 우리 소유라고는 정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일정 기간 동안 관리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이 시점에 랭삼은 선데이 타임스의 부자 순위에 오르고 있었고, 맨체스터 시내 중심에 있던 옛 C&A 의류 매장을 막 매입한 차였다. 그는 그 건물을 “박제된 야생동물들로 가득한 동물원”과 베르사유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거울의 연회장으로 채웠다.

“나는 기회주의자입니다.”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더 많은 건물을 살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모든 것은 꽤 자기중심적입니다. 나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해야 합니다. 그것은 연극입니다.”

그 시절 랭삼은 런던의 기득권층에 전쟁을 선포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오늘날 북부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수사에서 익숙한 태도였다. 그는 런던에서 운영하는 대형 호텔 기업들이 정부 보조금을 챙긴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종이쪽지나 다룹니다.” 그가 『맨체스터 이브닝 뉴스』에 말했다. “나는 사람과 부동산을 다룹니다.”

금융 시스템도 그의 분노 대상이었다. “은행에 가면 그들은 보고서를 요구합니다.” 그가 1997년 『리버풀 데일리 포스트』에 불평했다. “간단한 사실은 그게 허튼소리라는 겁니다. 회계사의 보고서로는 사업을 운영할 수 없습니다. 처음 은행가에게 대출을 받으러 갔을 때 그들은 목표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우리 사업이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었죠. 나는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라고 답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경박하다고 생각했지요.”

이 질문은 수년 동안 랭삼에게 반복해서 제기됐다. 그는 자신의 거대한 부동산 제국을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나는 계속 말합니다. 그의 돈은 어디로 갈까요?” 수는 이렇게 곱씹었다. 에릭은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그가 말했다.


랑삼식 짠돌이 경영법


폰틴스 리조트에서 일했던 직원 한 명은 2011년 랭삼의 인수 후 벌어진 일을 내게 전해주었다. 랭삼이 가장 먼저 한 일 가운데 하나는 현장의 직원 대부분을 해고하는 것이었다. 제복 색깔 때문에 블루 코트(Blue Coats)라 불리던 직원들이었다. 그의 새로운 사업 모델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침대에 채우는 것”이었지, 오락시설이나 바에서 일어나는 매출이 아니었다고 그 전 직원은 회상했다.

랭삼 식 경영의 결과는 그의 호텔 대부분에서 드러나고 있다. 영국 전역의 브리타니아 호텔들은 식품 위생에서 석면 위반에 이르기까지 여러 공공 안전 위반 건으로 벌금을 부과받았다.

맨체스터 포틀랜드가의 호텔은 여전히 샹들리에와 곡선 계단을 자랑하지만, 호텔의 서비스는 악명이 높다. 객실 요금은 하룻밤에 30파운드(6만원)까지도 내려갈 수 있다. 거기에 묵었던 내 지인은 매트리스 밑을 절대 들여다보지 말라고 충고했다. 맨체스터 시의회가 공개한 정보공개 응답에 따르면 2023년 이곳에서 레지오넬라균이 발생했고, 한 투숙객이 방에서 쥐를 봤다고 신고한 이후 “지속적인 해충 활동”이 목격됐다.


브리타니아 맨체스터 포틀랜드 (위), 브리타니아 런던 도클랜즈 (아래). 출처: 브리타니아


2022년 위치(Which?) 지는 런던에 있는 브리타니아 도클랜즈 호텔의 “끔찍한” 화재 안전 위반 건을 보도했다. 두 달 뒤 이 잡지의 조사원들이 다시 방문했을 때 일부 상황은 더 나빠져 있었다. 이곳도 지금은 난민 수용시설로 사용되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올여름 반이민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 호텔을 “4성급 럭셔리 호텔”이라고 묘사했었다.

바닷가에 있는 브리타니아 호텔들의 운명은 더 드라마틱하다. 종종 도시 자체의 쇠퇴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메트로폴은 한때 영국 북부의 신혼여행 호텔로 알려졌었다. 호텔의 역사는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의사들은 건강을 위해 해수욕의 장점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지역 농부 로렌스 베일리는 부유한 방문객들을 위한 고급 숙소 기회를 포착했다. 그의 비전은 호화로웠다. 깃털 침대와 마호가니 테이블, 연주자를 위한 갤러리, 값비싼 클라레 와인으로 가득한 지하 저장고를 갖춘 장소였다. 1785년 메트로폴이 문을 열자 산업화되고 있던 영국 북부 전역에서 부유한 고객들이 몰려들었다.

그 후 메트로폴은 여러 변화를 거쳤다. 1939년 정부는 2차대전 군 병력을 위한 숙소로 잠시 호텔을 징발했다. 이후 메트로폴은 휴양지 대기업 버틀린스 소유 아래 전성기를 누렸다. 버틀린스는 한때 폰틴스 체인과 경쟁 관계였다. 그러나 2004년 브리타니아가 메트로폴을 인수했을 시점에는 블랙풀 해변의 매력은 값싼 유럽 패키지여행 상품에 의해 빛이 바랜 상황이었다. 관광객들은 단돈 99펜스로 라이언에어 항공편을 타고 스페인 말라가 같은 곳으로 떠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랭삼의 소유가 된 메트로폴은 곧 고객들의 불만을 낳기 시작했다. 2018년까지, 정보공개법에 따라 블랙풀 시의회가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당국은 매주 최소 한 건씩 메트로폴이나 브리타니아의 다른 세 호텔 상태에 대한 민원을 접수했다. 습기와 곰팡이, 오물, 하수 냄새에 관한 것들이었다.

랭삼은 메트로폴을 산 같은 해에 스카버러의 그랜드 호텔도 매입했다. 이 호텔은 영국 반대편 해안 절벽에 자리한 훨씬 더 눈길을 끄는 호텔이었다.

2021년이 되자, 그랜드 호텔에 대한 불만 신고가 너무 많아져 잉글랜드 관광청이 승인한 호텔 목록에서 제외됐다. “벽에 피가 묻어 있다”는 신문기사 제목도 나왔다. 같은 해 여름, 이 호텔은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숙소로 사용되기 시작됐다.


1867년 완공 당시 유럽 최대 호텔이자 최대 벽돌 건축물이었던 브리타니아 스카버러 호텔


영국 내무부는 용역업체 세르코(Serco)에 비용을 지급해 난민 숙소를 확보하고 운영하도록 한다. 2021년 9월, 블랙풀 시의회가 메트로폴 호텔 시설의 오물 관련 10여 건이 넘는 문제를 지적하며 위생 규정 위반 통지서를 발부하자, 세르코는 이 호텔을 난민 수용 시설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블랙풀 시의회와 지역 의원은 주민 건강 위험에 대해 장관들에게 다급한 경고를 보낼 만큼 우려했다. 올여름, 전직 호텔 직원들은 임시 보수된 배수구에서 하수가 역류하고, 그랜드 라운지 벽을 따라 빗물이 스며드는 상황을 알려왔다. 이는 복도에 놓인 양동이 사진과 영상으로 확인되었고, FT에 제보되었다. 이에 대해 세르코 사는 모든 누수는 신속히 처리되어 재발하지 않았으며, 보안 조치 검토도 완료되었다고 말했다.

샘 아든은 올해 6월 메트로폴에서 세르코의 주택 관리자로 일하다가 사직했다. 그녀는 사직서에서 “비가 올 때마다 외벽을 따라 물이 흘러내려, 실내 폭포라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아든은 메트로폴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 건물이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버틀린스 체인의 오너 빌리 버틀린 본인도 이 호텔 98호실에 살았었다. 아든에 따르면, 현재 그 방은 일곱 명의 난민 가족이 사용하고 있다.

세르코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무부를 대신해 세르코가 운영하는 메트로폴 호텔은 완전히 규정을 준수하며 모든 계약 의무를 충족합니다. 호텔은 내무부와 지방 의회, 공중보건 등 외부 이해관계자들의 정기 점검을 받고 있으며, 어떤 우려도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호텔의 오너 랭삼은 자신의 호텔 상태를 둘러싼 지역 갈등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는다. 그의 회사는 손님, 정치인, 시의회, 규제 기관의 분노에 대해 접촉을 받아도 대체로 침묵했다.




리버풀 아델피 호텔 (출처: X)


리버풀 도심 라넬라 플레이스에 있는 아델피 호텔은 이 도시에서 가장 뛰어난 건축물 중 하나였다. 1826년 지어진 이곳은 RMS 타이타닉을 포함한 대서양 여객선 승객들이 출발하는 지점이었다. 1914년에는 건축가 프랭크 앳킨슨이 호텔을 개조했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여객선 몇 척을 설계한 인물이기도 했다. 

1980년대가 되자 아델피 호텔은 몰락하는 리버풀 시 전체의 모습을 반영하기 시작했다. 랭삼은 영국 국유 철도 회사의 부동산 부문, 브리티시 트랜스포트 호텔로부터 이 호텔을 인수했다. 그는 또 100만 파운드의 공적 지원금을 확보했다. 지원금이 없으면 필요한 개보수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보수당 장관 마이클 헤설틴은 이런 공공-민간 파트너십에 큰 열의를 보였다. 1984년 랭삼의 개보수 이후 아델피가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리버풀 에코』는 “맥주, 한 파인트 50펜스”라고 적힌 현수막에 주목했다. “한때 세계 6대 호텔 중 하나로 여겨졌던 명성을 보여주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평론가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알렉스 랭삼의 말에 따르면, 이는 아델피를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찾도록 만드는 계획의 일부이다.”

오늘날 아델피 호텔의 객실 요금은 하룻밤 약 50파운드(10만원)부터 시작한다. 호텔은 과거의 위엄을 조금 간직한 채, 랭삼의 다른 건물들과 마찬가지로 지저분한 면모를 보인다. 로비는 오래된 담배 냄새와 바닥 청소약 냄새가 진동한다. 황금색 글자로 옛날 유명 투숙객들의 이름을 알리면서, 동시에 1.50파운드짜리 술 광고가 붙어 있다. 거대한 샹들리에가 라운지를 장악하고, 세 그루의 가짜 야자수가 그 아래에 서 있다. 위쪽 유리 천장은 먼지와 담배꽁초로 덮여 있다. 한 객실에는 지역 프리메이슨 로지의 상징물과 장비들이 커튼 뒤에 보관돼 있다.

아델피 호텔에는 어두운 그림자도 드리운다. 2006년, 25세 학생 마다브 체루쿠리가 호텔 수영장에서 사망했다. 그곳에는 안전요원이 배치되지 않았다. 브리타니아 호텔의 자회사 브리타니아 아델피 호텔 유한회사는 2010년 왕립법원에서 유죄를 인정했고, 결국 보건·안전 규정 위반으로 벌금 6만5000파운드와 소송 비용 7만 파운드를 부과받았다.

2022년, 북웨일스 출신의 21세 휴양지 직원 클로이 헤인스가 객실 안에서 옷장에 깔려 숨졌다. 한 대변인에 따르면, 리버풀 시의회의 환경보건부는 그녀의 사망과 관련해 “호텔 소유주를 기소할지 여부에 대한 평가를 거의 마무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랭삼이 소유한 폰틴스 체인 역시 당국과 마찰을 빚어왔다. 블랙풀과 스카버러의 쇠퇴한 휴양지들과 마찬가지로, 이 회사는 영국 관광객들의 심리에 일정한 자리를 차지한다. 북웨일스의 프레스타틴 같은 해변 도시에서 이 휴양지는 모래사장 바로 옆에 대규모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값싸고 즐거운 바닷바람을 찾는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람들의 세대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이다.

2011년 이 체인을 인수하면서 랭삼은 2500만 파운드를 투자해 전성기의 마법을 되살리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몇 년 안에 당시 프레스타틴의 보수당 카운티 의원이던 제임스 데이비스는 불만 문제로 회사를 몰아붙였다. “그들과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말했다. 폰틴스는 지역 경제에 큰 타격을 안겼다. 2023년 말과 2024년 초, 이 휴양지와 다른 두 곳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문을 닫았다. 직원들은 페이스북을 통해 소식을 접했다.

브리타니아는 처음에 데이비스에게 맨체스터에서의 대면 회의를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촉박하게 취소됐다.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한다. “브리타니아는 여러 호텔을 운영하는 대기업입니다. 또한 영국 관광·접객 산업에 큰 의미가 있던 과거의 명성 높은 시설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호텔의 경영 방식은 그 산업에, 심지어 국가적 명성에도 부정적입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처럼 규모가 크면서도 질의에 응답하지 않는 회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2024년 초 랭삼은 마침내 데이비스에게 답신을 보냈다. 카운티 의회로부터 호텔 경영을 자유롭게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또한,” 랭삼은 썼다. “만약 지원금이 가능하다면 그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난민 호텔이 사라질까



랭삼에게는 후계자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죽은 뒤 그의 부동산 제국은 어떻게 될 것인가?' 랭삼은 곧 88세가 된다.

나는 수개월 동안 랭삼의 가족, 친구, 동료들과 이야기하려 애쓰며 그의 과거에 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아카이브를 뒤졌다. 그 과정에서 몇 가지 단서를 발견했지만 결국 아무 성과도 없었다. 한 신문기사에서는 랭삼이 이미 고인이 된 바이덴펠트 경의 사촌임이 드러났다. 그는 20세기 유명했던 자선가이자 출판계 거물로, 랭삼의 부모보다 1년 먼저 비엔나를 떠나 영국으로 피신했다. 나는 바이덴펠트의 전기 작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데이터베이스에서 랭삼에 대한 언급을 확인했지만, 2016년 바이덴펠트의 추도식에 랭삼이 참석했다는 메모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브리타니아 호텔 체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영국 정부는 이번 의회 임기 안에 난민 호텔의 사용을 중지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계약을 맺은 외주업체들은 그걸 2026년으로 예상하고 대비하고 있다.

실제로 에섹스 주에서는 반이민 시위가 잦아져서 법원이 몇 주 내 난민 호텔을 비우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항소심에서 뒤집히긴 했지만 어쨌든 브리타니아 호텔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셈이다. 난민들 없이도 브리타니아 호텔 체인이 버틸 수 있을까?

"장기적으로는 어려울 거에요." 번스타인SG의 투자 분석가 리처드 클라크는 이렇게 말한다. 번스타인SG는 투자 리서치 목적으로 전 세계 호텔 체인들(10개 지점 이상을 갖고 있는 체인)을 대상으로 구글 평점을 집계해봤다. 브리타니아는 글로벌 438개 브랜드 중 431위였다.

“랭삼의 사업 모델은 ‘많이 사두고, 싸게 유지하라’였습니다.” 클라크는 말했다. 그러나 호텔 시장은 1990년대 이후 변했다. “영국에서는 호텔들의 평균적인 서비스 수준이 꽤 낮았기 때문에, 아마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을 겁니다. 우리 영국 사람들은 호텔에 대한 기대치가 낮았거든요." 하지만 이제는 대안들이 있다. 예를 들어 '프리미어 인 허브'라는 호텔체인은 하룻밤 100파운드(20만원) 이하로 깨끗하고 현대적인 객실을 제공한다.

그러나 지난 50년간의 사업 경험이 보여주듯이, 랭삼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장관들이 난민 문제를 호텔업자들에게 계속 외주로 맡기는 한, 브리타니아 같은 체인들은 이익을 낼 것이다. 지난주, 새 내무장관 샤바나 마흐무드가 임명되었다. 마흐무드의 임무는 단순하지 않다. 끊임없이 영국으로 들어오는 난민들은 어딘가에 수용되어야 한다. 하지만 호텔을 대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옵션, 즉 주택은 만성적으로 부족하다.


랭삼의 전직 사업 한 명은 그를 “신사”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가 일군 사업에 대해 “매우, 매우 자랑스러워한다”고 말했다. 내가 랑삼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하자, 그는 제안을 했다. “그의 집에 직접 쓴 편지를 전달하면 훨씬 더 성의 있어 보일 겁니다.” 나는 그의 조언을 따랐다.

올 봄, 나는 그곳을 찾았다. 랑삼이 1990년대부터 살아온 체셔라는 동네의 긴 도로에는 꽃망울을 터뜨린 목련과 벚나무, 그리고 대저택 담장을 넘는 잘 자란 단풍나무들이 줄지어 있었다.

맨체스터 시가지에서 남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이곳은 프리미어리그 축구 선수들과 개인 외과 의사들의 세계다. CCTV와 사설 보안업체 표지판이 많다. 그러나 세심히 살펴보면 랑삼의 19세기 저택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여기는 랑삼 호텔의 기운이 약간 풍겼다. 낡았지만 우아했고, 울타리 일부는 주황색 플라스틱으로 받쳐져 있었다. 대문에서는 페인트가 벗겨지고 일부는 썩어가고 있었다. 인터폰 하나는 고장 났고, 다른 하나는 거미줄로 덮여 있었다. 나는 다가가 편지를 전달했다.

답은 받지 못했다.


제니퍼 윌리엄스는 FT 북부 잉글랜드 특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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