룬르: 일본으로 이민가는 중국의 중산층과 지식인들. 그 이유는?

2025-09-09

MAGA 이후, 미국보다 도쿄나 오사카를 택하는 중국 중산층 이민자들이 늘었다. 이들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생각은 어떨까. 이들은 일본 사회에 녹아들 수 있을까.


Leo Lewis






라커로 칠해진 테이블 위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한 세련된 도쿄의 여인이 창가로 몸을 돌렸다. 카페 창문 너머로 7월의 도쿄가 펼쳐진다. 가로수 은행잎은 짙푸른 여름빛으로 흔들리고, 오후의 햇살은 우에노 공원 위로 쏟아진다. 창밖의 사람들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국립박물관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저는 이 도시를 정말, 정말 사랑해요. 하지만 최근 몇 달 사이, 동네를 걸을 때 일부러 다른 길을 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고백했다. “중국인들이 잘 다니지 않는 작은 골목으로요. 요즘은 중국인이 너무 많아요. 어디서나 중국어가 들려오거든요. 제가 떠나온 이유가 이건 아니었는데.”


18개월 전만 해도 상황은 덜 나빴다. 전직 기업 임원이었던 그녀, ‘카오’라고만 불러달라고 요청한 이 여성은 두 아이를 데리고 중국을 떠나 도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가 이주를 계획했을 때만 해도, 중국의 중산층이 이민 목적지로서 일본을 주목하기 전이었다. 소셜미디어 ‘레드노트’ 사용자들과 각종 부동산 인플루언서들이 도쿄 분쿄구 아파트 투자 기회를 열렬히 떠들어대기 전이기도 했다.

카오의 기억으로는, 2024년 초 그녀가 일본에 왔을 때 자신의 아파트 빌딩에 사는 중국인은 본인 포함 세 가구 뿐이었다. 지금은 열 한 가구로 늘었다. 이삿짐 차량과 엘리베이터 안 대화에서 감지되는 언어를 보면 더 늘어날 기세다. 새로운 중국인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었고, 그것은 그녀가 고향을 떠나며 피하고 싶었던 질투와 강박적 분위기 그대로였다. 그래서 카오는 다시 중국인이 적은 동네로 이사갈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녀 역시 이 새로운 흐름의 일부임을 부정할 수 없다. ‘룬르(润日·룬리)’. 불가능해진 삶의 방식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온 중국 중산층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중 일부는 일본에서 영주권을 얻고, 중국을 오가며 사업을 하길 원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애초에 고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카오는 일본 사회에 동화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룬르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는 짐작하기 어렵다고 했다.


일본도, 중국도 예상치 못했던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기사를 위해 파이낸셜타임스는 도쿄에 사는 중국인 20여 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에 따르면, 상하이나 기타 중국의 대도시에서 저녁 모임을 하면 사람들이 '어떻게 도쿄나 오사카로 가서 정착하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게 일상이라고 한다.

룬르 중 한 명이자 도쿄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언론인 장지에핑은 이런 모임들에는 은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누군가 “얼마나 머물 계획이야?”라고 묻는 순간, 대화는 곧장 해외 이민 이야기로 전환된다.

“그건 곧 비자 이야기를 하자는 신호예요.” 장은 설명한다. “세 시간 짜리 저녁 모임이면 두 시간은 비자 조건, 다른 나라 제도, 탈출 방법, 현지인과 결혼하는 법, 아파트 임대와 부모 초청, 자금 반출 같은 주제로 채워집니다. 점심도, 저녁도 늘 똑같아요. 그리고 모든 대화 끝은 일본이죠.”

이 대화 속에는 일본에 대한 묵시적 인정이 담겨 있다. 경제적으로 '잃어버린 30년'을 겪고도, 일본은 세계 평화 지수, 경제 자유, 재산권 분야에서 여전히 상위권이다. 정치적으로는 다른 나라들이 격정에 휩쓸릴 때도 균형을 지켰고, 뻣뻣해진 주변과 달리 유연함을 유지했다. 의료와 안전한 거리, 언론의 자유, 높은 서비스 수준과 아주 맛있는 음식까지 ‘제대로 갖춘 나라’라는 평판이 따라온다.

장지에핑은 여기에 실용을 넘어선, 거의 이데올로기적 요소가 있다고 강조한다. “중국인의 지난 30년 사고방식은 늘 ‘떠나는 게 낫다’였어요. 시골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대도시로, 대도시에서 미국으로. 이제는 도쿄로 떠나는 겁니다.”

룬르들의 이주는 일본을 인구·사회·정치적으로 바꾸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일본이 ‘이민 슈퍼파워’ 국가로 도약하는 초기 단계를 목격하고 있다고 말한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활력을 잃어가는 일본에 새로운 기업가적 에너지가 주입될 것이라는 기대다.

그러나 불안의 그림자도 드리운다. 중국인 매수자들의 유입으로 도쿄 부동산 가격이 일본인들의 손이 닿지 않는 수준까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중국인들이 주로 활용하는 ‘비즈니스 매니저 비자’의 요건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더 나아가 일부는 노골적인 민족주의적 반발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제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유세장에서는 외국인 혐오를 부추기는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도쿄가 끌어들이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라 자금이기도 하다. 새로운 삶을 찾는 이들뿐 아니라, 단순히 투자 목적으로 발을 걸친 채 중국과의 연결을 유지하려는 이들도 존재한다.

룬르는 도쿄를 과거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바꾸고 있다. 진보초의 카페에 앉아서 안전하게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중국 지식인, 자녀 교육을 위해 학교 근처에 집을 구하는 중국 중산층, 도쿄만의 고급 수변 아파트를 차지하는 중국 부유층, 아자부·아오야마·아카사카의 ‘3A’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중국 최상류층까지. 도쿄는 이제 ‘중국인들의 도피처’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덧입고 있다.



‘룬르(润日)’라는 단어는 기업가, 화이트칼라, 학자, 은퇴자, 지식인 등 더 나은 삶을 찾아 일본으로 이주한 중산층을 아우른다. ‘룬(润)’은 본래 '윤택할 윤'이라는 글자이지만 영어 ‘run’과 발음이 비슷해 ‘도피’의 뉘앙스도 함께 품는다. ‘르(日)’는 일본을 뜻한다. 이 용어는 몇 년 전부터 쓰였지만, 2022년 상하이 봉쇄가 정점에 달하며 본격적으로 대중어휘로 자리 잡았다. 그때를 많은 중국인들은 “삶의 전환점”이라고 부른다.

숫자는 놀라울 정도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이민자에 대한 문호 개방을 선언한 적이 없지만, 조용히 인구 감소와 노동력 부족을 이민으로 메워왔다. 현재 일본 내 외국인 거주자는 약 350만 명, 전체 인구의 3%에 달한다. 2024년에는 하루 평균 1000명이 새로 일본에 들어왔는데, 그중 약 10%가 중국인이었다. 전망에 따르면 내년이면 일본 내 중국인 수는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룬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일정한 재산, 교육에 대한 집착, 도쿄 부동산을 ‘재산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곳’으로 믿는 심리, 그리고 7인승 토요타 알파드 자동차를 소유하려는 열망이다.

“맞아요, 저도 룬르입니다. 기사에 나온 특징이 제게도 딱 맞습니다.” 2022년 셴젠에서 일본으로 건너온 41세 IT 엔지니어는 도요스역 근처 학원에 아들을 데려다 주던 중 FT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 학원은 중국인 학생 비율이 10%를 넘는 도쿄의 여러 사교육 현장 중 하나였다. 최근에는 국제학교 입학 문의도 폭증해, 일부 학교에서는 전체 문의의 60%가 중국인 학부모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그가 사는 아파트는 도쿄만을 내려다보는 고급 주상복합 ‘브란즈 타워’였다. 현지 부동산업자에 따르면 이 건물의 약 20%는 중국인 성씨를 가진 이들에게 팔렸다. 롯폰기의 한 중국인 부동산 중개소 창가에 걸린 3LDK 매물은 3억5000만 엔(240만 달러)을 호가했다. 2020년 도쿄올림픽 선수촌을 개조한 대규모 단지 등, 인근의 신축 아파트 단지들에서도 중국인 매수 비율은 비슷한 수준이다.

“저와 아내는 도시적인 삶을 원했고 셴젠에서 그걸 누리고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팬데믹을 겪으면서, 어쩌면 그 전부터였을지도 모르지만, 중국의 무서운 단면을 보게 됐습니다.” 엔지니어는 말했다. “국가는 자신들이 원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고, 중산층을 보호하려는 의지도 더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건 어려웠지만, 여기서 새 삶을 시작하는 건 의외로 쉬웠습니다.”

많은 중국인들은 관광객으로서 일본과 일본인을 처음 접한다. 지난해에만 중국 본토에서 700만 명이 일본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 여행은 오랫동안 각인된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허물어내는 계기가 되곤 한다.

카오가 처음 도쿄를 찾은 건 2017년 무역회사 출장길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이 도시에 매혹됐다. “그 다음 해에는 이곳으로 이주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분위기가 훨씬 차분했거든요. 아무리 붐벼도 여기는 평온함이 유지되는 느낌이었죠.”


도쿄 내 중국인 인구 분포 (그림: Thread)


그가 정착지를 고른 곳은 분쿄구였다. 도쿄 교육의 중심지로 명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두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인 카오는 무리해서라도 이곳에 가정을 꾸렸다. 국공립학교와 사설 학원들은 모두 교육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재정이 어려운 주민을 위한 지자체 보조금도 있었고, 일본어가 서툰 외국인 아동에게는 별도의 일본어 수업이 제공됐다.

한편 일본의 학교는 빠르게 비어가고 있었다. 2016년 신생아 수가 사상 처음 100만 명 밑으로 떨어진 뒤, 2024년에는 68만6000명까지 감소했다. 지방에서는 학교 폐교가 이어졌지만, 도쿄 도심에서는 빈자리가 생겼다. 그 영향은 뚜렷했다.

그러나 카오는 곧 교육 경쟁에 휘말렸다. 휴대폰을 열어 보여준 학부모 단체 채팅방에는 과열된 분위기가 가득했다. “중산층이요? 경쟁이 삶의 전부인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그게 가장 크게 드러나요.” 그는 말했다. “사립이냐 공립이냐, 어떤 시험을 봐야 하느냐, 학교와 교사의 수준은 어떠냐, 점수는 얼마나 받았느냐… 끝없는 불안과 견제가 이어져요. 제가 원한 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분쿄의 중국인 공동체가 확대되면서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는 일본어를 쓰지 않고 서로 어울리기 시작했다. 교내에서도 이미 문제가 되고 있었다. “많은 중국인들은 그런 환경을 좋아하지만, 저는 원치 않습니다.” 카오는 이사갈 동네가 어디인지 구체적으로 밝히길 꺼렸다. 다른 룬르들이 따라올까 두렵기 때문이다.



해마다 수많은 중국인들이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 과거의 중국 이민자들은 대체로 자산이 거의 없었지만, 최근에는 ‘자산가 수출국’으로 변모했다. 2024년에만도 유동자산 100만 달러 이상을 가진 고액자산가 약 1만2500명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는 경제 불안정과 강화되는 권위주의가 또 다른 유형의 이주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중산층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상하이에서 비행기로 단 세 시간 거리에 있는 일본은 이들에게 ‘떠오르는 태양의 피난처’가 되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와 ‘마가(MAGA)’ 운동 때문이다. 오히려 수 년 전, 심지어 수십 년 전에 미국으로 건너갔던 중국인들 일부는 다시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이른바 ‘이룬(二润, 두 번째 달리기)’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도쿄는 국민 감정, 무역전쟁, 자연재해에 취약한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불확실성의 시대에 잘 어울리는 선택지로 떠오른다. 만성적인 엔저 현상은 외화 자산을 가진 이들에게 일본을 ‘저가’의 나라로 보이게 한다. 게다가 일본은 당분간 고급 인력이나 사업가들에게 비자 취득 문턱을 낮게 유지하고 있다. 변호사들에 따르면, 비즈니스 매니저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대략 3만5000달러의 자본금과 5000~1만 달러의 행정 비용이 필요하다. 다만 정부는 이 요건을 크게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이 2021년 말 중국 정부의 눈 밖에 났을 때, 굳이 수많은 도시 중 도쿄를 선택한 것이 우연일까? “물론 아니죠.” 도쿄에서 마윈과 자주 어울렸던 한 일본 지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제 마윈 재산의 극히 일부만 가진 이들조차 같은 계산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윈의 도쿄행은 다른 중국 비즈니스 엘리트들의 발걸음을 이끌었다. 노기자카나 긴자에서 편한 차림으로 산책하는 중국 테크 창업자들의 모습은 중국 SNS에서 화제가 됐다. 일본 보수 언론에서는 “이민자의 쓰나미가 좋은 결과를 낳을 리 없다”는 우려를 키웠다.

하지만 학자이자 언론인인 마스토모 다케히로는, 오히려 더 소규모의 중국 자본 유입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1월 『润日』라는 책을 출간했다(일본어판만 있다). 룬르를 사회·경제적 현상으로 본 첫 본격 연구서로, 일본 서점가에서 꾸준히 팔리고 있다. 그의 책은 중국인들이 스키 리조트, 산림, 사케 양조장, 호텔, 식당, 다양한 업종을 사들이는 현상을 기록했다. 그러나 설령 이 책이 없었더라도 누구나 현실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일본 내 중국인 인구는 1995년 20만 명 수준에서 2000년대 초반 꾸준히 늘었고, 2010~2021년에는 약 70만 명 선에서 안정됐다. 그러나 그 뒤로는 가파르게 증가했다.

이 중에서 마스토모가 룬르로 분류하는 인구는 약 10만 명으로 추정된다. 그는 중국 이민자들의 단계를 뚜렷이 구분한다. 


  • 1980년대 초부터 2010년대 초까지 일본에 온 중국인들은 주로 푸젠성과 중국 동북 출신으로, 도쿄·오사카의 외곽이나 지방에 정착했다. 대체로 연수생이나 유학생 신분이었고 자산은 적었으며 친 베이징 성향이었다. 이들은 일본어 구사력이 높았다.
  • 반면 최근 도착하는 룬르들은 베이징, 상하이 같은 중국 1선 도시 출신이 많고, 대도시 중심부에 살며, 금융자산도 넉넉하다. 시진핑 체제에 대한 애착도 거의 없다. 일본어 능력은 떨어진다.


상하이 출신으로 온라인 미디어 업계에서 일했던 ‘제임스’는 그런 변화를 대표한다. 그는 아내와 함께 룬르로 전환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내는 고급 인력 비자를 받아 곧 일본으로 이주할 예정이며, 제임스도 뒤따른다. 이제 몇 주 뒤면 그들도 룬르가 되는 셈이다.

제임스는 장기간의 조사 끝에 도쿄와 인접한 사이타마현 우라와 시를 선택했다. 도쿄 도심까지 70분 거리로, 집값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공교육 수준도 괜찮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이 결정의 바탕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는 모두가 미국을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 않아요. 트럼프 때문이죠.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공산당 당적을 갖고 있는데, 그건 사업을 하려면 필요했던 겁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경력 때문에 미국 비자가 거절될까 두려운 거예요.”

도쿄는 정치적으로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제임스는 말했다. “미국과 중국 중 누가 이길지는 모르지만, 일본은 그 중간에 있습니다. 제2의 삶을 꾸리기에 일본은 좋은 곳이에요. 일본은 안정적이고, 정치도 합리적입니다. 중국 민족주의자도 없고, 마가(MAGA)도 없죠. 여긴 그냥 정상적인 사회일 뿐입니다. 상하이에서도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모두가 트럼프 3기, 시진핑 4기를 예상하고 있는데, 그게 싫은 겁니다.”



룬르들이 중국을 떠나기로 결심하면, 현실적 장애물과 금전적 위험이 기다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과 일본의 기업가들이 만든 병행 서비스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도쿄 도심의 한 사립병원은 아예 층 전체를 리모델링해 부유한 외국인 환자를 받기 시작했는데, 대부분은 중국인을 예상한 것이다. 일본의 대형 투자은행들은 룬르 상류층을 겨냥해 국내 서비스 부문을 확장했다. 일본 최고의 스시와 철판구이 셰프 일부는 중국인 회원을 위한 프라이빗 클럽에 고용되어 일반 시장에서 사라졌다. 도쿄 증시에 상장된 부동산 중개업체 앰비션 DX는 아예 룬르 특화 서비스를 내세우며 광고하고 있다.

2019년 도쿄 황궁 인근에 사무실을 연 컴퍼스 캐피털의 창립자 알렉스 하야시는 일본 금융권도, 일본 정부도 이번 중국인 유입이 과거의 어느 이민 물결과도 다르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왜 이렇게 많은 중국 기업가들이 일본에 몰리냐고요?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싱가포르로 갔겠지만, 거긴 너무 좁고 투자 기회도 제한적이죠. 홍콩 사람들이 도쿄로 이주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 세대의 중국인처럼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대한 건 아니었습니다.”

도쿄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부동산 가격이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대중의 분노를 선동할 수 있었던 바로 그 지점이다. 2022년 이후, 도쿄 고급 아파트와 저층 주택 부지를 지을 수 있는 도심의 토지 가격은 가파르게 올랐다. 마스토모는 이 유입이 현지 일본인들에게 충격적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선진국이 되고 60년 넘는 시간 동안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세련된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제 그 이미지는 더 부유한 중국 이민자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또 엔화 약세라는 현실이 일본인들에게 더 큰 굴욕감을 안겨주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더 부유하고 세련된 아시아 이민자들과 직접 마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마스토모는 말한다.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에서 가난해졌다고 느끼게 만드는 거죠.”

스포츠웨어 차림의 30대 남성 구오(郭)는 나카노 뒷골목의 북적이는 카페에서 기자를 만났다. 그곳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과 술집이 모여 있는 활기찬 공간이었다. 그는 2022년 아내와 함께 베이징에서 도쿄로 이주했다. 약 4개월 만에 취업 비자를 얻었다고 한다. 그의 친구들 역시 대부분 ‘비즈니스 매니저 비자’로 도쿄에 와 있다. 회사를 직접 세우거나, 값싼 일본 영세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구오는 현재 중국인이 운영하는 부동산 중개업체에서 일한다. 그의 추산으로 약 50곳 정도가 임대·매매 시장에서 같은 중국인 고객을 상대한다. 많은 동료들은 텐센트, 바이두, 알리바바, 메이투안 같은 대형 중국 빅테크 기업에서 잘리거나 스스로 떠난 사람들이다. 일부는 라쿠텐 같은 일본 기업에 합류했고, 또 다른 이들은 여행업에 정착했다.

“매달 200건의 문의를 받습니다. 일주일에 한두 건 성사되는 편이죠. 중국 사람들이 조급해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중국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폭락했지만, 도쿄에서는 자산 가치를 지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구오는 말했다.

거래의 절반 정도는 실제로 일본에서 거주하려는 중국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들의 요구 조건은 뚜렷하다. 미래에 중국에서 노부모를 불러 함께 살 수 있을 만큼의 넓은 평수, 혹은 본국에서 오는 친지들을 맞아 쇼핑과 관광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알파드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죠.” 구오는 덧붙였다. 알파드는 토요타의 대형 승합차로 룬르들이 가장 선호하는 차량이다. 중국에서는 새 알파드 가격이 약 13만 달러에 달해 신분의 상징으로 통하지만, 일본에서는 같은 차를 4만 달러에 살 수 있다. “중국에서 유명인들이 알파드를 타고 다니는 걸 보았죠. 그들은 그 위신을 일본에서 훨씬 싼 값에 사들이려는 겁니다.”

구오와 아내가 도쿄에 도착했었을 때, 그들도 다들 겪는 난관에 부딪혔다. 초부유층은 싱가포르와 홍콩에 페이퍼컴퍼니나 계좌를 개설해 자금을 일본으로 송금하거나 현지 은행 계좌를 여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룬르들에게는 일본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거나 중국에서 저축금을 인출하는 일, 심지어 아파트 임차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중국의 자본 통제를 우회하는 광범위한 지하 은행망이 등장했다. 구오 등 기자가 만난 네 명은 도쿄 내 중국인 부동산 거래의 약 70%가 이 지하 은행 시스템을 거친다고 추산했다.

방식은 이렇다. 지하 은행들은 아프리카에서 달러를 벌어들이는 중국 무역업체의 네트워크를 통해 위안화를 엔화로 바꾼다. 고객은 그 돈을 일본 여러 도시의 여러 장소에서 수령한다. 현금은 대량으로 운반되는데, 한 중개인은 “요즘은 노스페이스 방수 배낭이 대세”라고 말했다. 지하 은행은 이런 거래마다 최대 1%를 수수료를 챙긴다.

구오는 현금을 세는 데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고 했다. 위안화 100만 달러어치를 엔화로 바꾸는 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하루. "아주 은밀하게 진행해야 합니다. 고객 중 상당수는 중국 정부 고위 관리들의 가족이거든요.” 구오는 말했다.



장지에핑은 일본에서 여러 곳에 중국 서점을 ‘우연히’ 창업하게 됐다. 그녀는 태호(太湖)를 끼고 있는 중국 장쑤성 우시 출신으로, 2024년에 도쿄로 이주했다. 인구 750만의 고향 우시는 이제 상하이 같은 대도시가 됐다.

장지에핑은 나와 함께 코엔지 역 인근 카페에서 출발해, 회색과 갈색 아파트와 사무실 건물 사이에 자리 잡은 오래된 상점들을 지나 길을 안내했다. 애완동물 가게, 이탈리안 레스토랑, 미용실 몇 곳이 이어졌다. 주택가 블록에 들어서자 1층 아파트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간판에는 한자로 「飛地」「離島」(페이디즈예, 토비치-리예)’와 로마자로 ‘Nowhere Party’가 함께 적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방들은 시진핑 치하의 중국에서는 절대 판매될 수 없는 비평과 논평 서적들로 빽빽하게 채워진 작은 서점으로 꾸며져있었다.

올해 문을 연 그녀의 서점은 도쿄라는 큰 피난처 속에 자리한 좁은 안전지대였다. 서가 사이에는 토론과 강연, 북클럽과 세미나를 열 수 있는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철저히 억눌려 있는 활동들이다. 장은 “이런 행사는 사실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더 큰 대화의 물리적 표현일 뿐”이라고 말했다. 도쿄가 그런 담론을 북돋는 도시라는 것이다.

Nowhere는 지난 3년 동안 도쿄에 문을 연 네 번째 중국 서점이다. 다른 지역에는 ‘다시앙제(单向街·One Way Street)’, ‘쥬와이런(局外人·The Stranger)’이라는 더 유명한 중국 서점들도 있다. 10년 넘게 언론인으로 활동했던 장은 코로나 팬데믹 첫 해를 대만에서 보냈고, 그 전에는 홍콩에서 있었다. 그러나 홍콩의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다시 돌아가기 어려워져 타이베이에 서점을 열었다.

타이베이의 서점은 처음에는 대만으로 이주한 홍콩인들에게 홍콩 서적을 판매하는 데 집중했다. “애초에는 그들을 위한 공간이었죠. 하지만 곧 모든 지식인 망명자들을 위한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장은 말했다. 이후 그녀는 태국 치앙마이와 네덜란드 헤이그에 지점을 열었고, 뉴질랜드에도 새 매장을 계획하고 있다. “서점 주인은 사람들의 수요를 따라갑니다. 사업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공동체를 관찰하는 역할도 하죠. 창문 같은 겁니다.”


Nowhere의 책들


그녀의 도쿄 서점은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서점 고객의 60%가 중국 본토 출신이고, 판매 도서 중 일부는 중국에서 판매 금지된 책들이다. 다른 일부는 유통되지 않는 책들이다. 그런데 태국 지점에서는 불티나게 팔리는 ‘진짜 자극적인 주제들’, 즉 시진핑 정권과 고위 간부들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이 담긴 책들은 도쿄에선 잘 팔리지 않고 있다. 룬르들은 더 넓은, 일반적인 지정학적 주제에 더 관심을 갖는다.

무엇보다 사고방식의 변화가 감지된다고 장은 말한다. 마스토모도 동의한다. 그는 2024년 중반 룬르 현상을 심층 조사하던 중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일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와 비난을 받은 중국 이민자들은 대체로 젊고 부유한 계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도쿄 외곽으로 이주하는 중장년층 중국인 집단도 존재했다. 그중에는 학술 행사에 얼굴을 드러내는 지식인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저는 도쿄로의 ‘지식인 도피’를 목격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현상이죠. 여기서 혁명을 시작하려는 건 아니겠지만, 흥미로운 건 사실입니다. 꾸준히 늘어나는 서점과 중국 지식인들의 집중은 유례없는 일입니다. 도쿄 말고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도시는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마스토모는 앞으로 10년간 중국 자본과 중국 지식인의 얼마나 잘 융합되는지가 중요하다고 전망했다. “이들이 의미 있게 결합한다면, 그것은 정치적 현상으로 발전할 수 있고, 중국 공산당의 더욱 예리한 감시 대상이 될 겁니다.”

바로 그런 40대 반체제 인사인 지아지아는 도쿄에서 비교적 자유를 느낀다. 그는 도쿄대 연구원 초청 프로그램을 통해 피난처를 얻었다. 주요 활동 무대는 유튜브 토론이다. 일본에 거주하는 다른 중국 지식인들과 함께 베이징을 향해 날카로운 비판을 이어간다. 아내와 함께 일본으로 탈출하기 전, 그는 시진핑 사임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중국 당국에 구금됐다. 풀려나긴 했지만, 당국의 감시는 여전했다.

“저는 도쿄에 온 다른 중국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자자는 말했다. “저는 공안에 쫓겼습니다. 반체제 운동가죠. 도쿄에 온 게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입니다. 밤에 편히 잘 수 있지요. 두려움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러나 그는 도쿄가 자신을 바꾸고 있다는 사실도 의식한다. 중국에 남아 싸우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는다. 도쿄라는 피난처는 그의 날을 무디게 만들었고, 심지어 조금은 일본인처럼 변모시키고 있다고 느낀다.

요즘 들어 지아지아는 공산당과 싸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삶의 의미가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집필 속도는 늦춰졌고, 도쿄의 평온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어떤 중국인들은 일본에서 중국을 찾고, 또 다른 이들은 일본에서 중국의 미래를 바꾸려 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 부류는 그저 도쿄에 도착한 순간부터 중국을 잊으려 하죠.” 그는 말한다.

이런 평가는 룬르들이 도쿄를 바라보는 방식을 잘 정리하고 있다. 그러나 역으로 도쿄가 룬르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아직 잘 정리되지 않았다. 이 새로운 이민자들의 존재는 도쿄가 대도시로서 스스로를 재창조하고, 재건설하고, 재구상해야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도쿄는 이미 전쟁과 자연재해들, 경제위기를 이겨내며 그런 힘이 있음을 증명해왔다. 이 도시는 이민 문제 또한 능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레오 루이스 — 파이낸셜타임스 도쿄 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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