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리 엡스타인의 뉴욕 저택은 어떤 곳이었나

2025-12-23



미 국무부가 엡스타인 파일을 추가로 공개했습니다. 이중엔 맨하탄 저택에서 찍은 사진도 여럿 있었습니다.


몇 년 전 감옥에서 자살한 미국의 아동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은 뉴욕의 저택에서 화려한 파티를 자주 열고 전 세계의 명사들을 초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영국의 앤드루 (전) 왕자부터 시작해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래리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등은 그와 절친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특히 왕실에서 축출당한 앤드루 씨는 미성년자 피해자에게 소송당해 합의금을 지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그의 자택에서 사진 찍힌 사람은 무수히 많습니다. 

  • 트럼프 미국 대통령
  •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 언어/사회학자 노엄 촘스키
  • 가수 마이클 잭슨
  • 과학자 스티븐 호킹
  •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
  • 배우 케빈 스페이시
  • 영화감독 우디 앨런
  •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다 빈 살만
  •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 MIT 미디어랩 소장 이토 조이치


기타 등등... 끝도 없습니다.


엡스타인은 유대계 미국인인데,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의 비밀 요원이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미국 주요 인사들의 약점을 잡기 위해 미인계를 펼쳤다는 주장입니다. 물론 입증된 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대체 왜 감옥 갈 위험까지 무릅쓰면서 명사들을 불러 이런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습니다. 엡스타인이 젊었을 적엔 금융계에서 일했지만 나이 든 이후에는 굳이 이렇게 열심히 글로벌 정상들과 네트워킹을 해야 할 필요성은 없었던 것 같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좌파 우파 정계 경제계 예술계 막론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엡스타인의 집을 방문했던 것은 그만큼 그가 뉴욕 사교계에서 유명인사였기 때문일 겁니다. 그의 집이 대체 어땠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했는지, 그 기록을 찾아봤습니다.



뉴욕의 신흥 부자들은 미드타운과 센트럴파크 남쪽의 신축 고층 건물에 많이 살지만, 올드 머니 부자들이 사는 전통적인 부촌은 센트럴파크의 동쪽 편입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뒷편, 이른바 '어퍼 이스트 사이드(Upper East Side)'라 불리는 구역입니다. 뉴욕 시장의 관저도 이쪽에 있습니다. 



어퍼 이스트 사이드는 센트럴파크와 접한 5번가(Fifth avenue)를 제외하면 관광객이 갈 일은 거의 없지만 산책하기에 좋은 동네입니다. 관광객이 없어서 더 뉴욕다운 동네입니다. 길거리엔 고급 샵들과 저렴한 슈퍼, 핫도그 가게 등이 어울리고 있습니다.

 

센트럴파크와 가까운 5번가 쪽에는 대저택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지금은 프릭미술관이 된 철강부자 프릭의 집이 대표적입니다. 그리고 센트럴파크에서 멀어질수록 오래된 벽돌 아파트들이 많아집니다. 미국 영화에 보면 이탈리아계 벨보이들이 문을 잡아주는 그런 곳들이지요. (지금은 그런 집들도 다 어마어마하게 비싸져서 평범한 싱글들이 살 수는 없을 겁니다)


어퍼이스트 사이드에서 센트럴파크에 아주 가까운, 프릭미술관 바로 옆 블록에는 '허버트 N 스트로스 하우스'라는 대저택이 있습니다. 여기가 바로 엡스타인의 거주지였습니다.




맨하탄의 주소는 교차하는 세로 거리와 가로 거리의 번호나 이름으로 부릅니다. 이 건물은 9번가(세로)와 71번가(가로)가 만나는 곳에 있습니다. (구글 맵) 일단 주소만 말해도 먹고 들어갈 겁니다. 뉴욕 식으로 'Ninth and 71st"라고 말하게 될텐데 뉴요커라면 이 주소가 의미하는 바를 바로 압니다. '기사님, 한남동 리움 옆집 가주세요' 하는 느낌입니다. 바로 옆 블럭에 뉴욕 최고의 부잣집, 프릭 미술관이 있습니다. 



엡스타인의 집은 지하 포함 총 9층이고 내부 면적은 총 4700미터입니다. 가로 100미터 세로 50미터니까 축구장 하나 면적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인근에 고급 저택들이 많지만 유난히 더 큰 건물이라 합니다. 뉴욕 전체에서 보유세가 4번째로 높은 주택이었다고 합니다.


1933년 이 집을 처음 지은 허버트 N. 스트로스라는 사람은 '메이시' 백화점 창업주의 후손이었습니다. 하지만 완공되기 전에 사망해서 거주하지는 못했습니다. 비어있던 이 건물은 1942년 병원이 되었다가 곧 예술학교가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 학교로 사용되다가, 1989년에는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의 모회사인 L브랜즈의 창업자, 레슬리 H. 웩스너라는 사람이 이 집을 샀습니다.


뉴욕타임스 2019년 기사에 따르면 웩스너가 산 가격은 1320만 달러였고 맨하탄 일반 주택으론 사상 최고가였습니다. 웩스너는 큰 돈을 들여 건물을 호화주택으로 개조했습니다. 피카소 그림을 걸고 아르데코 풍으로 인테리어를 바꿨으며 와인창고는 레드와인 용 하나, 화이트와인 용 하나 등 2개를 두었습니다.


그가 건물을 어찌나 공 들여 개조했는지 1995년 12월 건축잡지 Archiectural Digest 표지와 15페이지에 걸쳐 실렸습니다. 집 주소와 이름은 공개되지 않았는데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가들의 이름이 나와있어 모두가 알게 됐습니다. 집이 호화롭기만 한 게 아니라 보안도 철저해서, 이 집의 계단 난간은 총싸움에 대비해서 방탄 처리가 되어있었답니다. 무슨 영화 찍나요? 또 집 곳곳에 CCTV가 비밀스럽게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부 웩스너 역시 이 집에서 거의 거주하지 않았습니다. 처음 집을 샀을 땐 싱글이었지만 공사를 하는 동안 결혼을 했고, 그래서 아내의 뜻대로 애들을 키우기에 좋은 조용한 동네,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살기로 했답니다. (물론 거기는 여기보다 훨씬 더 큰 초대형 저택을 지었음). 빅토리아시크릿 본사 사무실 옆입니다. 


그럼 맨하탄의 집은? 당시 웩스너는 엡스타인의 멘토라 불릴 정도로 친한 사이였고 엡스타인은 웩스너의 투자 관리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웩스너는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96년 엡스타인에게 집을 넘겼습니다. 실제 명의 이전은 1998년이었다 합니다.


당시 엡스타인에게 이 집을 살만한 돈이 있었는지는 모릅니다. 소유권은 웩스너의 개인 회사에서 엡스타인의 개인 회사로 넘어갔지만, 그 어떤 기록에도 가격은 나와있지 않았기 때문에 금전 거래가 없었다는 추측도 가능합니다. 여러 모로 수상합니다.




뉴욕타임스는 2025년 최근 기사에서 다시 이 집을 조명했습니다. 이 집에 여러 번 초대 받았던 영화감독 우리 앨런이 엡스타인의 63번째 생일에 보낸 편지가 등장합니다. 그는 이 집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를 말해줍니다.


이웃으로 지내다 보니, 아내 순이와 나는 저녁 식사에 여러 차례 초대받았다. 늘 응했고, 늘 흥미로웠다. 거의 매번 흥미로운 사람들이 아주 다양하게 모였다. 정치인, 과학자, 교사, 마술사, 코미디언, 지식인, 언론인, 곤충학자, 콘서트 피아니스트까지 있었다. 아무튼 언제나 흥미로웠고 음식은 호화롭고 풍성했다. 요리는 많았고 선택지도 넉넉했으며 디저트도 여럿이었고, 서비스도 훌륭했다. 내가 훌륭했다고 말하는 것은, 종종 전문 가사도우미가 담당했고, 또 그에 못지않게 자주 몇몇 젊은 여성들이 담당했기 때문이다. 마치 루고시가 세 명의 젊은 여성 뱀파이어를 거느리고 있는 '드라큘라 성'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여기에 더해 제프리는 넓은 집에서 혼자 살고 있으니, 그가 축축한 땅속 관에서 잠들어 있는 모습을 상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음식 이야기로 돌아가자. 믿을만하게 좋은 저녁자리였지만 늘 훌륭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우리가 처음 초대받아 갔을 때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그때 우리는 언론계의 남녀, TV 유명인사들, 심지어 왕족까지 포함된, 이미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의 명단과 함께 초대받았다. 우리는 거실로 안내되었고, 모두는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음료는 제공되지 않았다. 요청하면 받을 수는 있었다. 그것이 첫 번째 단서였어야 했다. 식사가 아래층에서 차려졌을 때, 그것은 매우 빈약했다. 너무 빈약해서, 아내와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계속 중얼거렸다. 이게 전부인가. 우리가 받는 게 이게 다인가. 내가 여기서 나가면 식당에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다음에 왔을 때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나의 아내는 특유의 세심한 방식으로 이렇게 말했다. 음식이 더 나올 거죠. 그렇죠. 아내의 끈질긴 요청 아래 상황은 점차 나아졌고, 이후의 저녁 모임에서는 근처 중국 음식점에서 주문한 음식이 양동이째로 제공되었으며, 뷔페처럼 줄을 서서 각자 덜어 먹을 수 있도록 차려졌다. 많은 저명한 손님들을 자주 초대하는 상당한 인물치고는 이 모든 것이 어딘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 아내의 계속된 설득 끝에,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차려 내는 방식으로 준비가 이루어졌다. 아내는 음식이 나오는 순서를 설명해야 했다. 메인 요리 다음에 애피타이저가 아니라, 그 반대라는 점을 말해주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그에게 식탁 한가운데에 꽃 몇 송이를 놓도록 하게 만들었고, 그러자 식탁은 조금이나마 따뜻하고 사람을 끄는 모습이 되었다.

이 모든 과정에는 시간과 여러 차례의 수정이 필요했지만, 그의 식사는 어느 정도 정상적이고, 시민적이며, 저녁 식사다운 모습으로 다듬어졌다. 다만 오른손 옆에 놓인 커다란 전화기와 컴퓨터는 집에서 만든 음식이 주는 느긋한 분위기를 어느 정도 깨뜨리기는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드라큘라 성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디



생일 축하 메시지라고 보기엔 희한하게 솔직하고 시니컬한 우디 앨런의 편지입니다. 그가 평소 영화 대본을 쓸 때 사용하는 타이프라이터로 작성한 것 같습니다.


우디 앨런과 순이 프레빈 부부의 집은 5th Avenue & 74th street에 있는 아파트로, 엡스타인 저택에서 300미터, 걸어서 5분 거리입니다. 엡스타인과 앨런이 딱히 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 동네 유명인사로서 어울렸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트럼프의 자택인 트럼프타워까지는 1킬로미터 조금 넘고, 걸어서 15분 거리입니다. 역시나 동네 이웃이지요. 하지만 그쪽은 어퍼이스트사이드가 아니라 미드타운에 속합니다. 트럼프는 어퍼이스트사이드의 '올드 머니' 부자가 아니라 화려한 미드타운의 사업가 이미지입니다. 트럼프가 1킬로미터 이상 되는 거리를 걸어다닐 리도 없습니다. 특히나 자수성가형 장사꾼으로서 항상 본인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트럼프는 엡스타인의 호화로운 파티에서 그다지 편안하게 느끼지 못했을 겁니다.)


윗쪽이 우디 앨런의 아파트, 아래쪽이 엡스타인 저택.


아무튼 우디 앨런의 편지 내용을 보면 엡스타인이 처음부터 사교계의 제왕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뉴욕 한복판에 호화로운 집을 샀고 흥미로운 사람들을 잔뜩 초대해 파티를 열었지만, 상류층 사람들을 대접하는 법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에피타이저와 메인메뉴도 구분을 못했거나 아니면 신경쓰지 않았다고 하니까요.


엡스타인은 뉴욕 브루클린의 코니아일랜드라는 동네가 고향입니다. 바닷가이고, 지금은 뉴욕 전체가 부촌이 됐지만 그 시절엔 유대인과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서민 동네였습니다. 그는 평범한 유대계 미국인 중산층 출신으로 대학 중퇴 후 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금융사 베어스턴스 회장 아들의 과외 선생을 한 인연으로 베어스턴스에 입사하며 금융계에 들어갔습니다. 대학 졸업자라고 거짓말했다가 적발됐지만 빽이 있으니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런 그를 뉴욕과 글로벌 상류층에게 소개해준 건 여자친구 기슬레인 맥스웰이었습니다. 맥스웰은 영국의 미디어 재벌 로버트 맥스웰의 딸이며 옥스퍼드대에서 역사와 언어학을 전공한 부유층 엘리트였습니다. 젊어서부터 유럽 사교계에서 이름을 날렸고 아버지가 뉴욕 데일리 뉴스 신문을 인수한 후에는 뉴욕에서 활동하며 유명인과 어울리고 사교계 명사가 됐습니다. 맥스웰은 처음엔 엡스타인의 연인이었지만, 차차 그의 사업 파트너이자 비서실장 역할로 변화했습니다. 그녀는 영국 앤드루 왕자를 비롯한 저명인사들을 엡스타인에게 소개했습니다. 


결국 나중에 기슬레인은 엡스타인의 파티를 위해 미성년자를 유인, 매춘시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현재 텍사스의 널널한 감옥에서 20년 복역중이며 미 법무부와 협상해서 수사를 도와주는 대가로 일찍 풀려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이렇게 검사와 범죄자가 협상하는 plea bargain이란 제도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렇게 하면 검사도 감옥에 갑니다.) 




다시 엡스타인의 집 얘기로 돌아가겠습니다. 며칠전 미 국무부가 공개한 사진들을 보면 그의 집 테이블 위에 여러 명사들과 찍은 사진들이 과시하듯 배치되어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한 게스트들 외에 더 놀랄만한 얼굴들이 보입니다. 교황 요한바오로 2세, 피델 카스트로, 일론 머스크가 있습니다. 가톨릭 교황과 공산당 두목과 우주 최고 부자까지 알고 지냈네요. 네트워킹의 고수 답습니다. 이들은 너무 거물이라서 엡스타인 자택에 방문한 것 같지는 않고 사적 친분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지만 어쨌든 엡스타인은 이들과 한 프레임 안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서명이 담긴 1달러 지폐도 있습니다. "I was wrong!"이라고 썼습니다. 클린턴이 엡스타인과 뭔가 내기를 했다가 진 모양입니다.


 

이 저택의 침실 중 하나의 사진도 공개됐습니다. 푸른 도자기빛으로 꾸며진 방은 화사하고 깔끔하며 특히 카펫이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천장 구석에 달려있는 CCTV가 보입니다.




2019년 엡스타인이 감옥에서 의문사하고 2년이 지난 후인 2021년, 이 집은 전 골드만 삭스 임원인 마이클 대피라는 사람에게 5100만 달러에 팔렸습니다. 약 750억원입니다. 대피는 3000만 달러의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고 하니 정말 강심장이네요. 집의 판매금액은 엡스타인의 피해자들을 보상해주기 위한 펀드로 들어갔습니다.


지금까지 뉴욕 부잣집 구경을 같이 해봤습니다. 맨하탄 한복판, TV에서나 보던 유명인사들이 가득하고 호화롭게 꾸며진 엡스타인의 저택에 들어오면 평범한 사람들은 기가 눌렸을 것입니다. 특히 모델이나 연예인을 꿈꾸는 젊은 사람들은 분위기에 압도당해 엡스타인 일당에게 쉽게 조종당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와중에 '이 집은 밥이 왜 이래'라고 적은 우디 앨런도 참 특이한 사람입니다.


- 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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