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스타인 파일] 빌게이츠 또 당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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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미 법무부가 제프리 엡스타인 관련 문서와 사진, 영상 수백만 건을 추가로 공개했습니다. 전체 분량의 절반 정도 되는 양인데 이게 최종 공개라고 합니다. 나머지 분량은 피해자 인적사항이 드러나있거나, 중복된 내용이거나 해서 공개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엡스타인의 범죄(미성년자 유인 성범죄)에 관련되어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많았고,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원하게 파일을 공개하지 못하는 거 아니냐고 비판받았습니다. 원래 한 달쯤 전까지 모두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있었는데 그 데드라인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에 절반이나마 공개하게 된 것입니다.


늦어지게 된 이유로 미 법무부에서는 '법무부 소속 변호사 수백 명이 두 달 동안 달라붙어서 검토를 해야 했다'고 말합니다. 건수가 워낙 많으니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이날 발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멜라니아'의 개봉과 동시에 이뤄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트럼프 가족의 잔칫날에 재를 뿌린 셈인데요, 그만큼 정치적 배려를 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뭐 이것까지도 트럼프의 큰 그림일 수는 있겠죠).


전체 파일은 미 법무부 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키워드 검색도 가능합니다.


이번에 새로 공개된 내용 중 흥미있는 몇 개를 추려봤습니다.


1. 신세계 정유경 회장님과 미팅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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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신세계 정유경 회장님(Ms Chung)과 부하직원들이 뉴욕을 방문해 The Core Club이라는 회원제 VIP 클럽의 운영에 대해 창업자 제니 선더스(Jennie Saunders)에게 묻고 싶다는 이야기입니다. 정 여사(Ms Chung)이라고만 되어있지만 신세계 회장(이명희)의 딸이라고 되어있으니 정유경 회장님(당시 부회장)이 틀림 없어 보입니다. 신세계가 서울의 요지(아마도 청담동? 압구정동?)에 스파와 갤러리 등이 합쳐진 백화점 VIP용 멤버십 클럽을 만들겠다는 얘기입니다.


불행히도 오호츠크 편집자는 백화점 VIP들의 세계를 잘 몰라서, 신세계가 2010년 이후 실제로 이런 클럽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메일의 발신자는 Lizzy Sayner라는 사람인데, 아마도 이 분 같습니다. 2010년 당시 록웰그룹이라는 곳에서 호스피털리티 관련 일을 하셨던 것 같고, 엡스타인과의 관계는 밝혀진 바 없습니다.


엡스타인이 이 미팅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이게 왜 엡스타인 파일에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이메일 체인에는 '2008년 포브스 가장 힘있는 여성 랭킹 100위' 순위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명희/정유경 회장이 어떤 사람인지 참고하라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엡스타인은 이 신세계 관련 이메일 체인에서 딱 한 마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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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캐러비안 해(Caribbean)의 오타일 것 같긴 합니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캐러비안 해에 있는 엡스타인 소유의 개인 별장을 지칭할 수도 있겠습니다. 거기에 한 번 모시고 오라는 얘기일까요? 엡스타인은 다른 메일에서도 자신의 캐러비안해 별장을 caribean이라고 여러 번 지칭했습니다.




2. 영국 앤드류 (전) 왕자


앤드류 왕좌는 이미 작년에 영국 왕실에서 쫓겨나 평민이 됐습니다. 어쩌면 엡스타인 사건으로 가장 먼저 법적인 처벌을 받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언론 기사를 보시면 됩니다.


한편 이 건은 미국과 영국이 무역협상을 할 때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호적에서 파였다고 해도 한 번 왕자는 왕자 아니겠습니까? 영국의 왕자가 미국에서 성범죄로 형사처벌을 받는다 하면 영국의 국가 이미지에도 심대한 타격이 갑니다. 안 그래도 엘리자베스2세 여왕 타계 이후 영국 왕실의 인기는 내리막을 걷고 있습니다. 


앤드류 전 왕자는 헬리콥터 조종사로서 영국-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니 뭐니 하면서 언론의 극찬을 받기도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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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겐 존경할만한 점과 놀림받을만한 점이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 전체보다는 개별 행위에 대해 칭찬하고 비판해야 하겠습니다. 즉, '저 사람은 인성이 좋다/나쁘다'고 말할 게 아니라 '저 사람의 그 행동은 좋다/나쁘다'로 평가하는 게 좋겠습니다.


3.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이자 우리 시대의 컴퓨터 영웅인 빌 게이츠가 제프리 엡스타인과 오랫동안 친했고, 둘이 뭔가 은밀한 이슈가 있었고, 그로 인해서 부인인 멜린다 게이츠 여사에게 엄청난 위자료를 주고 이혼당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만 디테일은 알려진 바가 없었습니다. 게이츠가 워낙 외부 이미지가 좋은 인물이고 실제로 좋은 일도 많이 하고 해서 '설마...'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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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백악관 행사에 온 빌 게이츠 (안경 쓴 사람)


그런데 이번에는 좀 더 자극적인 내용의 파일이 나왔습니다. 2013년 빌 게이츠가 엡스타인에게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친한 척도 하지 말고 돈 달라고도 하지 말라'고 요구한 모양입니다. 그러자 엡스타인이 이렇게 장문의 이메일을 썼습니다. 다만 이메일 수신자가 엡스타인 본인인 걸로 봐서, 일단 흥분한 상태에서 마구 작성하고, 실제로 발신까지 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건 매우 좋은 습관이네요! 모두가 배워야 하겠습니다.)


'야 빌, 너 나한테 이러기야? 너한테 손 안 벌려도 나도 돈 엄청 많아! 그렇다고는 해도 내가 너한테 해준 걸 생각해서, 또 내가 너의 (자선재단) 미래 커리어를 도와줄테니 내 투자펀드를 3000만 달러에 사가라. 그 정도가 적당하지 않냐?'

'너 임마 나한테 STD(성병) 걸린 거랑, 멜린다에게 몰래 항생제 먹인 거랑, 네 생식기에 대해 말한 거랑 등등 이메일 다 지워달라고 했지? 니가 그런 부탁 안 해도 내가 당연히 그렇게 해주려고 해는데, 너 정말 나한테 이런 식으로 나올거야?'


내용 중 빌 게이츠의 전 부인 멜린다 여사 관련 언급이 치명타입니다. 남의 가정사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건 좀 엽기적이네요. '병주고 약준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걸까요. 


멜린다 게이츠 여사는 2021년 빌 게이츠와 이혼하며 위자료를 엄청 세게 받아서 지구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 됐습니다. 아마도 열 받은 엡스타인이 멜린다에게 귀뜸을 해주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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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메일의 내용만으로는 게이츠가 법을 여겼다고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기 자신이 병에 걸리는 건 죄가 아닌게 확실하고, 가족에게 항생제를 몰래 먹이는 건 불법일까요? 몸에 나쁠 것 같기는 한데, 법을 잘 몰라서 판단이 어렵습니다. 게이츠재단 측은 월스트리트저널 질의에 메일 내용을 부인했고, 부인 멜린다 여사의 재단은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추가 보도. 2026. 2. 4. 멜린다 게이츠 여사가 NPR 팟캐스트에 나와서 이번 공개 내용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기자가 빌 게이츠의 질병 그리고 멜린다에게 몰래 약을 먹였다는 얘기를 보고 기분이 어땠는지를 묻자 '슬프다. 그저 슬프다'라고 답했습니다. 사실인 모양입니다.)


이에 대해 빌 게이츠의 숙적인 일론 머스크가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습니다. 예전에 빌 게이츠가 테슬라의 주식을 두고 공매도를 해서 머스크가 공개적으로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게이츠를 엄청 싫어합니다. 기회는 이때라고 느꼈는지, 머스크는 어제부터 자신의 트위터에서 '파일을 공개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한 명이라도 관련된 범죄자를 감옥에 보내는 게 중요하다'라고 여러 번 반복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게이츠 감옥가라는 얘기를 하는 거죠.


실제로 아직까지 엡스타인 사건 관련해 감옥에 간 사람은 엡스타인과 그의 조력자 멕스웰 기슬레인 등 2명에 불과합니다. 엡스타인으로부터 불법 미성년자 접대를 받은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앞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면, 빌 게이츠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또한, 이메일 내용에서는 빌 게이츠가 커리어 패스를 포기하고 새로운 커리어인 자선재단을 택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지금까지 빌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직을 놓은 건 본인의 의사라고 알려졌었는데요(본인이 그렇게 발표), 메일 내용을 보면 'the career path you gave up'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뭔가 비자발적인 선택을 한 상황에서 쓰일만한 표현입니다. 즉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나고 자선재단을 만든 것이 뭔가 다른 이유에서였을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를 들어 본인의 스캔들이 확산될 경우 회사의 주가에 피해를 줄 가능성을 막고자 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이제는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에 관여하지 않아서, 게이츠의 스캔들이 터져도 주가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연인지 몰라도 법무부 파일 공개 하루 전에 마이크로소프트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지기는 했습니다)



4.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가 빌 게이츠를 공격하고 있지만, 지금 남말 할 때가 아니죠. 머스크 본인도 이번에 공개된 엡스타인 파일에 수 차례 등장합니다. 머스크는 엡스타인과 친하게 지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생각보다는 이메일을 여러 번 주고 받은 것 같습니다.

다만 메일 내용을 볼 때 그가 엡스타인의 불법 '파티'에 참석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메일 체인 하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엡스타인: 뉴욕 올 계획 없어? 정기 모임(general assembly)이 열려서 흥미로운 사람들이 집에 많이 올거야.


머스크: 저는 복잡한 회사 두 곳에서 제품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운영하고 이끌고 있습니다. 게다가, 스페이스X는 역사상 가장 발전한 로켓 발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UN의 외교관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걸 보기 위해 뉴욕으로 날아가는 건 시간을 현명하게 쓰는 것이 아닙니다.


엡스타인: 내가 멍청이인줄 알어, ? 농담이야, 25세 이상은 한 명도 없고, 모두가 귀여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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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뜬금 없는 대화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엡스타인은 매년 뉴욕 UN본부에서 열리는 UN 정기총회(General Assembly)에 빗대어서 자기 집에서 하우스 파티가 열린다고 말한 것인데, 공대남인 머스크는 그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고 '외교관들 나오는 UN 총회를 내가 왜 보러 가야하는데?'라고 답한 것입니다. 약간 짜증이 섞인 말투입니다.


그러자 엡스타인은 '워~워~ 그런 총회가 아니고, 25세 미만 귀욤이들만 나오는 모임이야~' 라고 짧게 답하며 계속 머스크를 유혹했습니다. 


이후 답장이 없으므로 머스크가 참석했는지 아닌지 여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뭐 참석했다 하더라도 25세 미만과 어울리는 것이 불법이라는 증거도 없고, 자유분방하게 사는 머스크 특성 상 놀랄 일도 아니긴 합니다. 또다른 이메일에서는 머스크가 '가장 신나는 파티는 언제 열려?'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또 자신과 파트너가 엡스타인의 섬으로 간다는 내용의 이메일도 있었습니다.


엡스타인이 명망가들을 어떻게 꼬셨는지 보여주는 메일입니다.





5. 멜라니아 트럼프


멜라니아 여사의 다큐멘터리 발푯날에 공개된 파일 중에는 멜라니아 여사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2002년 (트럼프와 결혼 전) 그가 엡스타인의 조력자인 지슬레인 맥스웰에게 보낸 내용입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뉴욕매거진에 엡스타인과 멕스웰의 기사/사진이 실렸고 이를 축하하는 내용입니다. 


"안녕 G! 잘 지내? 엡스타인 기사가 뉴욕매거진에 멋지게 실렸더라? 너도 사진 잘 나왔더라."

"요즘 전 세계 날아다니느라 바쁘지? 팜비치에서 또 보고 싶네. 뉴욕에 돌아오면 연락해! 사랑하는 멜라니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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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멜라니아 여사가 유명하지만 당시엔 그냥 동유럽에서 이민을 온 패션모델이자 사업가 트럼프의 여자친구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네트워킹을 한 것이겠죠. 괜히 영부인까지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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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것도 뒷얘기가 있습니다. 2002년 2월 같은 잡지에 멜라니아 여사가 이미 등장한 바가 있습니다. 2001년 9/11일 사태에서 고생한 뉴욕 소방관들을 기념하며 만든 에디션인데 소방관 한 명과 같이 찍은 사진입니다.


그러니까 위의 이메일은 

'어머 지슬레인~ (내가 먼저 나왔던) 뉴욕 매거진에 너도 나왔구나~ 사진 잘 나왔네?'라고 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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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오른쪽 위 흰 옷이 맥스웰.


이 기사의 첫머리를 보면 엡스타인이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와도 친분이 있다'고 적혀있는데 이는 트럼프가 엡스타인보다 급이 높은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멜라니아의 이메일은 여러 면에서 '킹받쥬??' 라고 놀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상으로 흥미로운 파일 몇 개를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질문 하나가 남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 파일들을 이전까지 공개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위의 이메일이나 사진들은 직접적으로 범죄와 연관이 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떻게 보면 개인의 사생활입니다. 빌게이츠가 뭘 했든 말든 그건 그와 그 가족의 일이지 공개적으로 마녀사냥 되어야 할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트럼프나 이전 바이든 정권에서도 미 법무부가 엡스타인 파일을 전부 공개하지 않은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이런 내용을 오호츠크 리포트가 소개하는 건 적절할까요? 논란의 여지는 있습니다만, 저분들은 세계 최고 부자로서 백악관도 들락날락하고 여러 나라의 정책에 직접 개입하는 등 공적인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어느 정도는 독자들도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빌 게이츠는 협박메일 몇 달 후인 2013년 3월, 100맨 달러의 상금을 걸고 '차세대 콘돔' 공모전을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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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뜬금 없다 생각되는 이벤트였는데, 이제는 그가 얼마나 진심이었을지 이해가 됩니다. 


- OR


참고: 이번 파일 공개에 대한 월스트리트저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