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권의 첫 시험대, 알렉스 프레티 사망 사건


지난 주말 미국 국내적으로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좌파 우파 양쪽 지지자들 모두 흥분시킨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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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불법입국자 추방 문제로 말이 많은 미네소타 주에서 불법입국자를 단속하는 ICE (US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 이민세관단속국) 직원들이 시위를 촬영하고 있던 시민 한 명을 총으로 쏴죽인 것입니다. 법 집행기관이 체포에 저항하는 사람을 총으로 제압하거나 사살하는 일은 미국에서 종종 일어나지만, 이번 사건은 파장이 특히 큽니다. 


파장이 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무장한 ICE요원 6인이 시민을 쏴죽이는 장면이 여러 각도에서 찍혔습니다. 그 영상들을 봤을 때 죽은 사람(알렉스 제프리 프레티, Alex Jeffey Pretti, 남, 37)이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어 보입니다.


  • 사망자 프레티는 평범하게 생긴 백인 남성이며, 직업도 연방 보훈병원의 응급실 간호원으로서 사회적 평판이 매우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취미도 하이킹 아웃도어 활동입니다. 흔히 미국 대도시의 '좌파 시위대' 하면 떠오르는, 얼굴에 피어싱하고 온몸에 문신하고 소리 꽥꽥 지르며 화를 내는 그런 부정적인 이미지가 아닙니다. 그는 그냥 차분하게 생긴 시골 백인 남자입니다. 이런 시골 백인 남자, 보훈병원 직원도 다짜고짜 ICE의 총에 맞을 정도라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무섭겠냐? 이런 생각이 들게 합니다.


  • 프레티가 보훈병원에서 근무할 때 병원에서 숨진 한 병사를 추모하는 영상도 올라왔습니다. 보훈병원은 전현직 군인들을 치료하는 기관으로 당연히 직장 분위기가 보수적입니다. 역시나 그는 일반적인 '좌파 시위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피격 상황>


미네소타의 주도 미네아폴리스는 사람들의 감정에 날이 선 상태였습니다. 지난 3주간 2건의 총격이 먼저 있었습니다. 1월 7일 한 여성 시위자가 ICE 요원의 정차 명령에 불응하고 차를 몰아 도망가다가 총을 맞고 사망했습니다. 그 다음 주에는 베네주엘라 국적의 한 남성이 다리에 총을 맞았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ICE와 미네아폴리스 주민들, 또 민주당 성향의 주 정부 간에 감정이 날카로운 상황이었습니다.


1월 24일 토요일 아침 9시. ICE 대원들은 일찍부터 한 불법입국자를 체포하기 위해 미네아폴리스의 26번가와 니콜렛 애비뉴가 교차하는 거리에 나왔습니다. 한 밀입국 혐의자가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식당측이 문을 걸어잠그고 요원들의 입장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요원들의 심기가 불편해진 상황인데, 주변에 몇몇 시민들이 이 상황을 휴대폰으로 찍었습니다. 최소 두 명이 호루라기를 시끄럽게 불며 항의했습니다. 요원들은 이들을 팔로 밀치고 최루 스프레이를 뿌렸습니다.


프레티도 그때 혼자 촬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한 여인과 요원 사이를 가로막았고, 여인을 일으켜주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그 ICE 요원은 프레티에게 스프레이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넘어뜨립니다. 곧바로 4~5명의 요원들이 더 달려와 프레티를 땅에 눕혀 고정시키고, 권총으로 머리를 수차례 가격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이 프레티가 허리에 차고 있던 총을 발견해 빼앗았습니다. 총을 빼앗은 직후, 누군가 'Gun'이라 외쳤습니다. 한 명의 요원이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뒤로 한 발짝 물러섰고, 다른 두 명의 요원이 프레티에게 총을 발사했습니다. 둘이 합쳐 10발은 쐈습니다.


당시 ICE 지휘관은 프레티가 총을 가지고 요원들에게 저항했기 때문에 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각도의 영상을 보면 프레티는 이미 자신의 총을 뺏긴 상황이었습니다. 땅바닥에 구부려 엎드려있었고, 딱히 저항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정황을 볼 때, 너무 많은 요원들이 우루루 몰린 상황에서 요원 중 하나가 프레티의 허리춤에서 총을 뺏아들자 다른 누군가가 그걸 보고 '총!'이라고 외쳤고, 또 다른 요원들이 서로에 가려서 시야 확보가 안 된 상황에서 '어? 총이라고? 위험한 상황인가?' 하고 아묻따 방아쇠를 당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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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프레티가 소지했던 총. 미 육군이 쓰는 SIG Sauer P320 모델이며 확장 탄창과 레이저 조준경 튜닝됨.



총기협회(NRA)의 반발


사건 직후, 미국 연방 검사 중 한 명이 프레티를 비난하고 사살을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법 집행관에게 총을 들고 접근하면 법적으로 정당하게 총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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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미국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런 경우 정부 요원들의 편을 들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정부를 비판합니다. 그런데 이번 상황은 좀 특이합니다. 프레티가 시골 백인 남성이고, 정당한 미네소타주 총기 라이센스 보유자였기 때문입니다.


평소 강력한 공화당 지지의 목소리를 내는 전미총기협회(NRA: National Rifle Association)와 미국총기소유자협회(GOA: Gun Owners of America)가 검사의 말에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이 건은 제대로 수사되어야 하며, 법을 지키는 시민들을 범죄자로 일반화하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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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A는 NRA보다 더 길게 반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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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검사의 코멘트를 비판한다. 연방 요원들은 총기 소유 라이센스를 가진 사람이 합법적으로 무기를 소지한 채 접근했다고 해서 총으로 쏴도 합법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수정헌법 2조는 미국인들이 무기를 소지하고 시위할 권리를 보호한다. 연방 정부는 이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즉 프레티는 미네소타 주 법이 허용하는 대로 정당하게 총을 소유하고 있었고, 정당하게 총을 몸에 지닌 채(concealed carry) 법 집행관에게 접근한 것이며 여기엔 그 어떤 불법적 요소도 없다는 것입니다. 총으로 정부요원을 위협했다면 모르겠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바로는 프레티가 그렇게 했다는 정황이 보이지 않습니다. 


또 켄터키 주의 공화당 하원의원인 토마스 매씨(Thomas Massie) 역시 검사를 비판했습니다.


"총기를 소지한 것이 사형 선고는 아니다. 그것은 신이 내렸고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법 집행기관이나 정부에서 일할 자격이 없다." 

Carrying a firearm is not a death sentence, it’s a Constitutionally protected God-given right, and if you don’t understand this you have no business in law enforcement or government.”



야당뿐 아니라 이렇게 친 트럼프 지지층인 NRA와 GOA, 그리고 공화당 의원마저 ICE에 비판적인 모습을 보임에 따라 트럼프 정부도 마냥 ICE를 옹호해주기 어렵게 됐습니다. 대규모 수사와 관련자 처벌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호루라기 소리에 정신이 없는 상황이긴 했습니다만, 훈련 받은 요원 6명이 민간인 1명을 땅에 엎드리게 해놓고, 완전히 제압하고 총기까지 뺏은 상황에서 겁이 나서 총까지 쏴야만 했다면, 그들의 판단력과 상황대처 능력에 문제가 있습니다. 동네 양아치나 맥도날드 알바생에게 일을 맡겨도 저것보다는 잘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총격이 불법인지 합법인지 여부는 나중에 미국 법정에서 가리더라도, 최소한 이들이 유능한 요원들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행위가 정당화된다면 앞으로 미국 시민들은 총을 소지하고 다니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반 트럼프 지지층에서도 이번 건에 대해 ICE 요원들을 무작정 옹호해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아직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 건의 심각성을 본능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사람 죽이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이란과 베네주엘라에서 봤듯이 군사작전을 할 때도 최대한 희생자를 내지 않도록 진행합니다), 나름대로 common sense가 있고 여론을 잘 감지하는 사람이라 이번 사건에서 ICE 요원들을 완전히 보호해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편,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 각계의 반응을 보면서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미국은 집에서 각자 총을 들고 나온 시민들이 공권력에 저항하는 폭동을 일으켜 건국된 나라입니다. 애초에 영국에서 이민 온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영국 정부에 대항해 만든 나라입니다. 외적에 맞서 싸운 게 아니고, 자기들의 정부에 대항해 싸워서 독립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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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은 평소 경찰이나 군대 같은 공권력을 크게 존중하고 존경하지만, 동시에 시민들이 그런 공권력에 저항하는 것 또한 헌법이 부여한 권리이자 미국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생각합니다. 왕이 곧 하늘이고 백성은 그 자식이라는 식의 유교적 문화에 젖어있는 한국에서는 '반란군(rebel)' '역도'라고 하면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지만, 미국에서는 역도야말로 쿨하고 멋지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영화 '스타워즈'의 제다이가 바로 그런 반란군입니다.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도 원래 영국군의 장교였던 사람입니다. 영국군으로서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맹활약해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랬던 그가 곧 반란군의 우두머리가 되어 영국 정부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미국인들은 이런 건국 역사를 잘 알고 있습니다. 시민의 총기 보유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2조는 이런 맥락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단순히 총을 구매할 자유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총을 들어 공권력의 폭정을 견제할 권리를 보장합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현대 사회에서 총기 소유 허용이 과연 시민들의 안전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애초에 프레티가 총을 소지하고 시위 현장에 나와 공권력 집행 과정에 개입한 것 자체가 위험한 행동 아니었는지 묻는 것입니다. 총기 소유가 허용되지 않는 나라였다면 이런 죽음도 없지 않았겠냐고 물어볼 수 있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미국 사회에서 총기 보유와 시민의 권리에 대한 논의가 한층 더 깊어질 것 같습니다. 이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시민권이란 무엇이냐, 시민의 기본권은 언제 얼마나 어떻게 제한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듭니다. (사실 먼 나라 얘기만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 광주 민주화 혁명이 그런 저항권의 케이스로 해석되어 오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사건은 평소 공화당 지지층과 민주당 지지층의 입장이 180도 뒤바뀌었다는 점에서 더더욱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줍니다. 평소 같으면 공권력에 저항하는 시위대를 비난했을 공화당 트럼프 지지자 상당수가 이번에는 프레티를 옹호하고 나섰고,  평소 같으면 총기 소유를 악마화했을 민주당 지지자 상당수가 프레티의 총기 소지 권리를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단순히 니편 내편 갈라서 싸우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원칙에 따라 사안별로 다르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시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제 법 집행기관의 사기도 살려주면서 지지층의 이탈도 막아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이 주목됩니다. 그는 이 사건을 어떻게 프레이밍할까요. 트럼프 2기 정권의 첫 번째 시험대입니다.




업데이트 1월 27일(화)

트럼프가 드디어 움직였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이번에는 비둘기파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그는 현지 시간 일요일 오후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전화 통화에서 "이 문제를 들여다보고있다"라고 말하며, 프레티를 사살한 ICE 요원을 변호해주지 않았습니다. 또 곧 소셜미디어 포스팅을 올려서 미네소타 주와 협의해 ICE 요원(연방정부 소속) 일부를 철수시키고 대신 불법이민자 추방 업무를 미네소타 주 경찰이 돕도록 했습니다. 미네소타 주지사이자 지난 대선에서 적으로 만났던 팀 왈츠와 전화통화를 하고, '우리는 같은 주파수 위에 있다(공감한다)'라고 말했다 합니다.

곧이어 트럼프는 강경한 입장을 보여온 ICE의 지휘관 그레고리 보비노를 미네소타 주에서 나가게 하고, 대신 국경 문제 전문가인 톰 호먼을 파견했습니다. 호먼은 보비노에 비해 온건하고 점진적인 불법이민자 추방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톰은 터프하지만 공정하다. 그는 나에게 직접 보고할 것이다"라고 트럼프는 소셜미디어에 올렸습니다.


불법입국자 추방 작전은 계속될 것이지만 강도는 낮아질 것 같습니다. 조지아에서 한국 근로자들이 수갑 채워져 감옥에 갇혔던 것 같은 상황도 이제 발생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알렉스 프레티에게 총을 발사한 요원들에 대한 수사는 미네아폴리스 시와 미네소타 주 차원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의 태도를 보건대 법의 처벌을 면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알렉스 프레티의 명복을 빕니다.

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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