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오토파일럿 모드에 들어가지 마세요 (FT 에누마 오코로)

2025-11-24


Enuma Okoro


날이 점점 회색빛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우리집 거실 창가에서 지켜보며, 북반구에 겨울이 어떻게 조용히 다가오는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아직 두꺼운 파카를 꺼낼 정도로 춥지는 않지만, 모자와 목도리 없이 밖에 오래 서 있기도 어려운 날씨입니다. 지금은 가을과 동지 사이의 한가운데쯤, 하나의 계절은 끝나 가고, 다른 계절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중간 단계입니다. 무엇을 입고 나가는 것이 좋을지 알 수 없을 때도 있고, 해가 점점 더 일찍 떨어지면서 에너지 수준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저는 지금 이 끼어있는 계절에 대해,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감정의 상태를 어떻게 반영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말 시즌이 시작되기 전 온갖 목표와 책임을 어떻게든 다 맞추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야 한다고 느껴지는 시기 아닌가요. 하지만 저는 11월이 꼭 밋밋하게 느껴질 필요는 없다고, 우리가 자신을 오토파일럿 모드에 둘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깊은 가을은 오히려 성찰하기 좋은 때일 수 있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기에도 좋은 시기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기대했던 것보다 더 깊은 만족과 충만함을 느끼게 해줄지도 모르니까요.



Jean-Francois Millet’s ‘The Angelus 만종’ (1857-59)


8월부터 지난달까지, 장 프랑수아 밀레의 1850년대 작품 “만종(The Angelus, 晩鐘)”(원래 제목은 “Prayer for the Potato Crop”)이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 'Millet: Life on the Land'에 출품되어 공개됐습니다. 저를 매료시키고 또 감동시키는 그림 가운데 하나입니다. 가로 55.5센티미터, 세로 66센티미터에 불과한 작은 작품이며, 머리를 숙이고 서 있는 남자와 여자가 들판에 서 있는 소박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바닥에는 감자가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고, 큰 갈퀴 하나가 흙 속에 꽂혀 있습니다. 저 멀리에는,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배경으로 종탑 하나가 보이는데, 그걸 보고 우리는 만종기도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프랑스 농민들의 삶을 사실적이고 존엄하게 그려 낸 작품들로 알려진 밀레는, 자신의 할머니를 생각하다가 이 그림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밭에서 일을 할 때 종소리가 들리면, “할머니는 우리에게 일을 멈추라 하고, 떠난 이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만종기도를 바치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흙과 인물들을 감싼 따뜻한 색채에 하늘의 부드러운 파스텔 색이 뒤섞인 이 그림에는 친밀한 분위기가 깔려 있습니다. 보는 이 역시 머리를 숙이고 함께 기도를 올리며 이 명상적인 순간에 참여하고 싶어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그림은 우리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감사하며, 가진 것이 없는 이들 혹은 이미 떠난 이들을 기억하라는 초대처럼 느껴집니다. 동시에 저는 이 그림을 보면 늦가을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감자는 늦은 계절까지도 수확할 수 있는 채소입니다. 연말에 온통 시선이 쏠려있는 이 끼어있는 계절에도, 땅은 여전히 그 깊은 곳에서 우리에게 영양분을 건네고 있음을 떠올리게 됩니다. 우리 삶의 어떤 영역에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영양분을 건넬 수 있다고 느끼는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밀레의 이 그림은, 지금이야말로 씨를 뿌려서 몇 달 뒤에 수확할 수 있게 하는 알맞은 계절이라는 생각도 하게 만듭니다.



‘November Evening in a Welsh Wood’ (1885-89) by James Thomas Watts


영국 화가 제임스 토머스 와츠가 1885년에서 1895년 사이에 그린 수채화 “November Evening in a Welsh Wood”도 있습니다. 와츠는 나무와 숲 풍경에 깊이 매료되어 거의 평생 동안 계절을 따라 나무를 반복해서 그렸습니다. 역사가들이 그의 작품 몇몇의 정확한 제작 연도를 특정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이 그림에서 땅은 떨어진 나뭇잎으로 온통 덮여있고, 바위와 나무 줄기 아랫부분에는 초록 이끼가 두툼하게 붙어 있습니다. 가지에는 잎이 전혀 없어, 숲 속을 훤히 내다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계절에는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녹슨 색, 갈색, 겨자빛으로 물든 잎들이 카펫처럼 깔려 있고, 앙상하게 드러난 나무 꼭대기, 그리고 푸른 회색 빛깔의 공기까지. 와츠는 늦가을 날의 잿빛을 거의 완벽하게 그려냈고, 그림을 보고 있으면 공기의 약간 서늘한 기운까지 느껴지는 듯합니다.

저는 와츠의 집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나무를 좋아하고, 특히 제 아파트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을 자주 지켜봅니다. 저는 그 나무들과 함께 한 해를 같이 여행하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올 가을에도 저는 매일 아침 한 그루 나무를 바라보며, 나뭇잎 색이 아주 조금씩 변해 가다가 지난 2주 동안 모두 떨어져 나가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어느 시점에는 나무의 가장 위쪽만 비어 있고, 아래쪽 가지에는 아직 노랗게 바래가는 잎이 얇게 덮여 있기도 했습니다.

나무를 오래 바라볼수록 더 감정이 북받쳤습니다. 더 이상 성장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나 자신의 일부를 기꺼이 떨구어 내고, 아직 새로운 부분이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따라오는 그 취약함을 감수하는 일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무는 이 끼어있는 계절을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나무가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용감해질 수 없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나무를 보며 영감을 얻고,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타고난 지혜를 지닌 존재처럼 느끼곤 합니다. 어쩌면 늦가을은 우리 역시 약간의 용기를 연습해 볼 수 있는 계절일지 모릅니다. 더 이상 우리를 지탱해 주지 못하는 것들을 기꺼이 털어 버리는 법을 연습해 볼 수 있는 계절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의 일부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우리의 행복에 더는 도움이 되지 않는데도 여전히 관계를 이어 가고 있는 사람들, 경험, 혹은 다른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Femme couchée dormant’ by the Swiss-French painter Félix Vallotton (1899)


저는 스위스계 프랑스 화가 펠릭스 발로통이 1899년에 그린 “Femme couchée dormant”이라는 그림을 무척 좋아합니다. 짙고 선명한 색채로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침대 위에는, 담요에 온몸을 칭칭 감은 채 깊은 잠에 빠진 한 여성이 누워 있습니다. 침대보는 주황, 빨강, 노랑이 섞인 불길 같은 무늬이고, 담요는 회색과 흰색, 검은색이 섞인 체크무늬입니다. 배경의 벽지는 연보라색 바탕에 파란색과 빨간색의 작은 꽃 모양 무늬가 섬세하게 찍혀 있습니다. 새하얀 베개 커버와 어두운 침대 프레임 덕분에 다른 모든 색채가 더욱 돋보입니다.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잠의 평온함과, 잠재의식 속에서 벌어질 수 있는 생생한 삶을 함께 포착하고 있지요.

저는 이 그림이, 이 계절이 우리에게 무엇을 건네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는 훌륭한 초대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이 쉬는 기쁨, 자기 돌봄에 기울이는 세심한 관심, 그리고 찬란한 꿈의 세계가 자신만의 선물을 가져다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 주는 장면입니다. 밤이 길어지는 만큼, 우리는 조금 더 오래 자는 시간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지 모릅니다. 자연의 리듬을 더 충실히 따라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1년 내내 봄이나 여름의 에너지로 살 수는 없습니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계절이 바뀌는 지난 몇 주 동안 우리가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어떻게 느껴 왔는지를 돌아보기에 아주 좋은 때일 수 있습니다. 자연 세계와 함께 우리는 어디로, 어떻게 여행하라는 초대를 받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디에서 속도를 늦춰야 할까요.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가을 한가운데의 삶처럼 느껴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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