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 암살범의 영웅화, 일본 전통의 부활인가

겉보기에 평화로운 일본인들 마음 속에는 '하이드 씨'의 전통이 숨어있다


15 November 2025

Leo Lewis

Source: F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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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범행 직후 체포되는 야마가미 데쓰야


픽션 속의 살인자들은 음산한 매력을 지닌다. 살인을 후회하는 암살자, 조직을 배신하는 암살자, 유머러스한 암살자, 말수가 적은 암살자, 살인면허를 받은 암살자 등등... 영화와 게임과 문학에 등장하는 살인자들은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은 암살이라는 행위가 어떤 매력적인, 감상적인 측면과 결합되지 않는다면 결코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현실 세계의 암살 사건에 대해서는 보다 냉정하게 반응한다. 암살의 동기에 어떤 연민의 요소가 있든, 혹은 국가가 승인한 실용적인 폭력이든 말이다. 정당성이 전혀 없는 암살은 끔찍하다고 여기지만 오사마 빈 라덴의 사례처럼 국가 차원의 불가피한 암살은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2025년 말 현재 일본 사회는 자신들이 느껴온 암살에 대한 혐오감이 진짜인지 시험 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할 시간이다. 2022년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암살한 살해범에 대한 재판이 마침내 시작된 것이다.

아베 신조는 인기가 있었고 재임 기간도 가장 길었던 총리다. 일본 시민들은 아베의 죽음을 애도했고, 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다려왔다. 그 정의라는 것은 사형이라는 형태가 될 수도 있다.

범인 야마가미 데쓰야(山上徹也, 45)는 조잡하게 만든 총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그는 자신의 죄를 분명히 인정했다. 그런데 지난 3년 여 동안 그에게 어떤 모습의 정의가 내려져야 하는지에 대한 일본 사회 논쟁의 모습이 조금씩 변해왔다.

보통이라면 이런 사건은 온전히 도덕적, 법적 기준으로만 판단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수천 명의 평범한 일본 시민이 나라현(県) 지방재판소에 탄원서를 내어가며 야마가미에게 선처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 중 일부는 사형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믿어서 탄원서를 쓴 사람들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베 살해가 분명 큰 범죄였을지라도 그 사건의 여파로 일본 정치판이 흔들리며 의미 있는 변화가 생겨났다고 느끼기 때문에 탄원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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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먀가미를 응하는 웹사이트들도 생겨났다. 야후 옥션에서는 욱일기를 배경으로 아베 암살 날짜를 기념하고 야마가미를 칭송하는 티셔츠가 판매되고 있다. 범행 현장에서 찍힌 그의 사진을 넣거나, 더욱 불길하게는 무기를 든 그의 모습을 만화풍으로 그린 그림이 들어간 굿즈도 있다.

현실의 범죄자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영웅적 암살자라는 판타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10월 말 열린 야마가미의 재판 첫날, 32석의 방청 티켓을 얻기 위해 700명 넘는 사람이 재판소 앞에 줄을 섰다. 줄을 선 사람들 중에는 야마가미에게 응원의 말을 외치고 법정모독죄로 잡혀가는 것도 감수하겠다고 일본 기자들에게 말한 사람도 있다.

이런 응원의 밑바탕에는 동정심이 있다. 아베 사망 직후에는 범인을 동정한다는 게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가며 더 많은 뒷얘기가 드러나면서 야마가미의 과거사와 비슷한 고통을 겪은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기 시작했다.


야마가미의 어머니는 남편이 자살한 뒤 통일교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통일교는 서구에서 흔히 '무니스(Moonies)'라 불리는, 광신도 비슷한 조직이며 현재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 조직은 야마가미의 어머니로부터 파괴적인 액수의 헌금을 받아내 가정을 파탄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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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통일교 행사에 영상 출연한 아베. 트럼프 (전) 대통령, 오세훈 서울시장, 전 필리핀 대통령, 전 인도 총리도 출연했다.


극심한 빈곤 때문에 야마가미의 형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야마가미는 복수를 결심했다. 그는 통일교 교주를 죽일 수 없었기에 대신 아베 전 총리를 표적으로 삼았다. 아베는 2013년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통일교 교주와 함께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또 그가 이끄는 자민당은 통일교 조직과 여러 연결고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일본 언론매체들은 통일교와 그 교인들의 헌금 행태, 그리고 정치권과의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취재 자원을 투입했다. 당시 일본 내각은 주요 인사들의 사퇴가 이어지며 붕괴했고, 과거에는 마이너한 이슈로만 여겨졌던 종교 문제가 일본 정치의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자민당은 지금도 그 후폭풍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야마가미의 범죄는 또한 일본 사회의 위험한 잠재의식을 드러냈다고도 할 수 있다. 2차대전 패전 이후 일본은 '지킬 박사'와 같은 도덕적 자아를 보여왔지만, 그들의 국가적 DNA 안에는 '하이드 씨'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상기시킨 것이다. 

일본에서 암살당한 전현직 총리는 아베를 포함해 7명이나 된다. 특히 1930년대의 도쿄는 세계적으로 정치 암살의 중심지였다. 오죽하면 당시 외국 외교관들이 일본 정치를 두고 “암살에 의한 통치(government by assassination)”라는 표현을 쓸 정도였다.


살해된 일본 역대 전·현직 총리


이토 히로부미1909년 사망전 총리하얼빈 저격 사건
하마구치 오사치1931(피습 1930)총리도쿄역 총격 → 후유증 사망
하라 다카시1921년총리도쿄역 흉기 암살
이누카이 쓰요시1932년총리5·15 사건
사이토 마코토1936년전 총리2·26 사건
다카하시 고레키요1936년전 총리2·26 사건
아베 신조2022년전 총리선거 유세 중 총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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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생방송 TV 연설회 도중 살해된 일본사회당 당수 아사누마 이네지로. 

범인은 우파 17세 소년이었고 감옥에서 자살했다.


2차대전 이후 일본인들이 가장 큰 성취라고 믿어온 것 가운데 하나는, 약 80년간의 안정을 통해 자신들의 나라가 가장 본연에 가까운 상태에 도달했다는 확신이었다. 즉, 평화적이고 근면하고 협동하며 사려 깊은 나라라는 이미지 말이다. 그러나 야마가미와 그에게 전해지는 예상 밖의 응원은 이런 평화적 이미지에 반대되는 또다른 일본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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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마가미 데쓰야에 대한 재판은 계속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