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 BIS가 우려하는 이유는?

2025-07-01

요즘 세계적으로 스테이블코인 stablecoin 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한국에서는 관련 주식들이 지난 한 달간 급등했습니다. 반면 우려의 목소리도 있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스테이블 코인이란?


스테이블코인은 '안정적인 코인'이라는 뜻입니다.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같은 기존의 가상화폐들이 안정적이지 않은데 비해 자기들은 가격이 안정적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은 아무런 담보나 기초자산 없이 컴퓨터 알고리즘만으로 만들어진 화폐입니다. 그래서 가격 움직임에 상한선이 없습니다. 널을 뜁니다.


  • 스테이블코인은 이에 비해 달러화, 원화, 금과 같은 기초자산을 기반으로 만듭니다. 쉽게 얘기해서 백화점 상품권 혹은 약속어음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러니 가격이 안정적입니다. 


  • 그럼 이런 상품권 같은 게 왜 필요한가? 우리가 돈을 해외 송금하려고 하면 은행에 수수료도 많이 내야 하고 절차도 복잡합니다. 은행이 도둑놈이라 그런 게 아닙니다. 은행도 은행 나름대로 고충이 있습니다. 상대측 은행과 통신을 해서 매일매일 돈이 얼마나 오갔는지 장부상으로 정산을 해야합니다. 이게 한두 명이 송금하는 게 아니니 다 비용이고 시간입니다. 과거에는 수기로 작업했고 지금은 컴퓨터로 작업하긴 하지만 비효율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을 이용해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거래하는 것이니까 아주 쉽게 송금이 가능합니다. 송금 수수료도 거의 없다시피 하죠. PC 전기값만 나갑니다.


물론 여기에 전제가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100억 원 어치를 발행해서 유통하려면 발행사가 달러나 원화와 같은 기초자산도 100억 원 어치를 보유하고 있어야 합니다. 당연하죠. 그런데 사기를 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 권도형 씨가 운영한 '루나'의 경우 기초자산을 확보하지도 않은 채 코인을 대량 발행해 팔아제끼고, '스테이블 코인'이라고 사기를 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범행이 발각된 그는 전 세계를 떠돌며 도망다니다가 몬테네그로에서 체포, 지금은 미국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 도입, 누가 찬성하고 누가 반대하나


1. 찬성 측


(1) 미국

미국은 트럼프 정권 들어서 국가적으로 스테이블코인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어차피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사용은 세계적인 대세가 될 테이니 미국이 먼저 앞서가겠다는 전략.
  • 트럼프 가족회사도 스테이블코인 사업에 투자하고 있음.
  • 스테이블코인이 활성화되면 코인 발행사들이 미국달러(국채)를 담보로 많이 사들여야하니 국가부채 부담이 줄어듦.

이런 이유들이 흔히 거론됩니다.


(2) 한국

한국은 이재명 정부, 즉 대통령실이 주축입니다.

오호츠크 뉴스레터에서 여러 번 알려드렸듯이 지난 달 취임한 김용범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은 스테이블코인에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분입니다. 이 사실이 부각되면서 주식시장에서 스테이블코인 관련주들(카카오페이 등등)이 6월 동안 급등했습니다. 김 정책실장은 이번 청와대 정책실장에 임명되기 전에 코인 업체의 리서치 자회사 대표를 맡아 일했고, 그 전에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으로서 한국의 가상화폐 정책의 큰 틀을 짰습니다. 또한 집권당의 성향도 친 IT, 친 신산업이라서 기대가 더욱 큽니다. 



2. 반대 측

(1) BIS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경계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큰 목소리는 '중앙은행들의 중앙은행'이라 불리는 국제결제은행(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에서 나왔습니다.

BIS는 1930년 스위스 바젤에 설립된 국제 금융 기구로, 중앙은행들의 협력을 증진하고 국제 금융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는 역할을 합니다. 한국은행을 비롯해 주요 60개국의 중앙은행이 회원입니다. 한마디로 중앙은행 세계연합  같은 곳입니다.


최근 BIS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비판적인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먼저 5월 발표한 'Stablecoins and safe asset prices' (스테이블코인과 안전 자산의 가격)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스테이블 코인이 지구상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미국 국채 시장을 흔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래는 그 요약입니다.


  • 2025년 3월 기준,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USDT, USDC 등)의 총 규모는 2000억 달러를 넘었습니다. 이들은 발행된 코인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실제 미국 국채(T-bills) 등을 담보로 보유합니다. 2024년 한 해 동안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은 미국 국채를 약 400억 달러어치 구매했습니다. 이는 일본, 중국보다 많은 수준입니다. 
  • 그래서 스테이블코인에 35억 달러 유입(통상적 변동의 2배 수준)이 발생하면, 3개월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약 0.02~0.025%p 하락합니다. 자금이 빠져나갈 때는 0.06~0.08%p 높입니다. 특히 USDT(테더)가 이런 국채 금리 변동 효과의 약 70%를 유발합니다.
  • 결국 스테이블코인 유통량이 커지면 커질수록 미국 연준의 단기 금리 조절 능력이 약화될 수 있습니다. 예전의 "그린스펀의 수수께끼"처럼, 금리를 올려도 시장 금리가 안 따라가는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급격한 자금 유출이 발생할 때 국채 투매 가능성도 생깁니다.


즉, 민간 스테이블코인 유통량이 커지면 미국 국채 시장이 혼란해지고 시장 금리에 대해서 정부/중앙은행의 조절이 불가능해지니 미리미리 규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BIS의 리서치를 총괄하는 신현송 조사국장(한국인, 프린스턴대 경제학 교수)도 최근 이런 견해를 밝혔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을 민간업체들이 운영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중앙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코인과 같은 블록체인 형태의 전산망 시스템(토큰화된 통합원장)을 개발해서 운영하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효율성도 올리고, 민간업체들에게 맡길 때보다 안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위의 영상에서 신현송 BIS 국장은 아래와 같은 의견을 밝혔습니다.


  • 중앙은행 화폐를 '토큰화와 통합원장(unified ledger)'을 통해서 운영할 수 있습니다. 쉽게 얘기해 화폐를 블록체인 시스템으로 관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통합원장은 화폐뿐 아니라 국채 등 다른 자산도 토큰화하여 포괄할 수 있습니다. 기존 금융 시스템의 안전성을 유지하면서 효율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 반면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통화 시스템의 주류가 되긴 어렵습니다. 다음 세 가지 기준에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 단일성(singleness): 민간 코인마다 돈의 단위가 다 다를 수 있으므로 혼란이 불가피합니다. 

    • 탄력성(elasticity): 정책적 필요에 따른 신용 창출이나 유연한 유동성 공급을 할 수 없습니다.

    • 건전성(integrity): 고객확인이나 자금세탁방지 등의 규정 준수 여부가 불확실합니다.



3. 눈치보는 측

찬성론과 반대론 사이에서 신중론을 펴는 기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대표적입니다.

한국은행(이창용 총재)은 원래부터 한국은행이 주도하는 CBDC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었고, 민간이 주도하는 스테이블코인에는 비판적인 입장이었습니다. BIS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들어 정권에 정면 대항하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으니만큼, '필요하다면 해야하지만 신중해야 한다'는 쪽으로 살짝 톤을 바꿨습니다.


7월 1일 유럽 중앙은행 모임에 게스트로 참석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이 총재는 “미국에서 지니어스법이 통과되면서 핀테크 등이 정부에 비은행도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한국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블록체인 기술로 고객확인과 이상거래 탐지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실제로 가능한지 확실하지 않다”며 “내로우 뱅킹(대출 없이 지급기능만 수행하는 제한된 은행)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문제는 한은의 권한을 넘어서는 문제이기 때문에 어떻게 할지 정부 당국과 대화할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이날 미국 CNBC 방송 인터뷰에선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지 않으면 달러 스테이블 코인 영향력 아래 놓여 통화 주권을 잃을 수 있다는 주장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원화 스테이블 코인 존재 자체가 달러 스테이블 코인으로의 전환을 더 쉽게 만들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달러 스테이블 코인 사용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비은행권도 원화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수 있게 해달라는 핀테크 등의 요구를 거론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고려할 때 우리 계획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은이 추진해온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의 재조정을 언급한 것이다.


행간을 읽으셨나요? 일단 민간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반대 하지만, 정치권과 핀테크 업계의 요구가 강하다면 한국은행은 따르겠다는 뜻입니다. 즉 '우린 분명히 반대했었다'고 밑밥을 깔아두며, 도입하든 안 하든 그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한국은행이 지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노선은 이 총제 체재 한국은행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결론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의는 궁극적으로 정부가 얼마나 화폐를 통제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이기도 합니다.


  1. 비트코인 / 이더리움 옹호자들처럼 화폐의 생산과 유통에 정부가 일체 관여하면 안 된다는 자유주의적 관점도 있고,
  2. 스테이블코인 진영처럼 정부가 화폐를 만들고 유통은 민간에 자유롭게 맡겨야 한다는 절충주의적 의견도 있고,
  3. BIS처럼 화폐 시스템은 오로지 중앙은행과 정부가 통제해야 한다고 보는 전통적 관점도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진영 중 어느 쪽이 옳은 걸까요? 장단점이 있겠습니다만, 현재 한국의에서는 2번 진영이 힘을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정권이 스테이블코인 산업에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는 업계 간 밥그릇 싸움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인 금융업은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주름잡고 있으며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감원 등의 공공기관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규제도 촘촘하고 기득권 업체들과 관련기관 공무원들이 쳐놓은 장벽도 탄탄합니다. 반면 스테이블코인 산업은 IT 업계가 주도합니다. 이쪽은 아직 판이 느슨하게 짜여있어서 노다지가 쏟아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관련되어 민간부분과 규제부문에 각각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번 한국 정부는 X세대 IT 업계 출신 인사들이 요직에 포진하고 있으며, 이재명 대통령 본인도 한국의 실리콘밸리라고 할 수 있는 성남(+분당+판교)시장과 경기도 지사를 지냈기 때문에 전통적 금융업보다는 IT 업계에 더 가깝습니다. 이런 상황을 볼 때, BIS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기업들은 앞으로도 상당한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 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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