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다 아키오: 토요타의 독보적인 리더

2025-06-24

 

  • 토요타 창업자 손자 토요다 아키오는 ‘모리조’라는 페르소나를 쓰고 레이서, 리더, 홍보대사 역할을 병행하며 회사를 전례 없는 성장으로 이끌었다.

  • 리콜 사태, 대지진, 글로벌 위기 속에서 조직을 지켜낸 그는 단기성과주의를 경계하며 장기 전략을 강조했다.

  • 그러나 그의 리더십은 내부 충성주의, 사적 인사, 특정 여성 직원의 영향력 논란 등으로 비판받기 시작했다.

  • 아키오는 사내 스타에서 가상의 소설 주인공으로도 소비되며, 일본 사회에서 드물게 공공 담론의 중심에 선 기업인으로 부상했다.

  • 미래 비전인 스마트시티와 Woven은 그의 아들 다이스케로 이어지고 있으며, 가문의 영향력은 여전히 토요타의 오늘과 내일에 드리워져 있다.



Kana Inagaki and David Keohane

Jun 5, 2025



후지산 기슭, 길이 4.5km의 도요타 레이싱 트랙 한복판. 알록달록한 GR 코롤라가 급히 멈춰 서고, 운전석 문이 열리자 검정과 노란색이 섞인 레이싱 슈트를 입은 사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헬멧에 얼굴이 가려져 있지만, 그 정체는 분명하다. 그가 바로 '모리조(Morizo)'—토요타자동차 창업자 손자이자 전 사장 아키오 토요다다.

수많은 인파가 그를 보기 위해 모였다. 토요타 임직원, 언론인, 경호원뿐 아니라 짧은 유니폼을 맞춰 입은 '레이스 퀸'들이 그 뒤를 따른다. 아키오는 걸음을 멈추고 "I love cars"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를 나눠준다. 받지 못한 팬들은 모리조 굿즈—뱃지, 포스터, 열쇠고리 등을 파는 부스를 찾는다.

사실 모리조는 그의 본명이 아니다. 토요타 창업자 키이치로 토요다의 손자인 아키오 토요다(69)는 2009년부터 토요타를 이끌어온 실세 중의 실세다. 경영에 발을 들이기 전부터 그는 ‘마스터 드라이버’ 나루세 히로무에게 레이싱을 배웠다.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달리 공학을 전공하지 않았던 그는 기술적 식견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던 중 2007년, 부사장 신분으로 독일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 레이스에 출전하게 된다.

이 무렵 탄생한 것이 ‘모리조’라는 페르소나다. 경영자가 직접 레이싱에 나서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내부 시선을 피하기 위한 반쯤은 마스코트, 반쯤은 가면이었다. “가면이긴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을 홍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토요타 내부 관계자의 말이다. 토요타의 한 엔지니어는 “모리조는 ‘이기는 드라이버’가 아니라 ‘차를 만드는 드라이버’다. 그는 차와 대화할 줄 안다”고 평했다.


2010년 뉘르부르크링에서 사망한 나루세 히로세의 명복을 비는 아키오 토요다


16년 전부터 회사를 이끌며 아키오는 토요타를 여러 번 구해냈다. 글로벌 금융위기, 대규모 리콜 사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공급망 위기까지 숱한 위기를 헤쳐왔다. 최근에는 전기차 전환 속도를 둘러싼 업계와의 시각 차가 오히려 주효했다. 토요타는 여전히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이며, 연매출은 일본 명목 GDP의 약 8%에 해당한다.

그러나 38만 명 이상의 일자리를 책임지는 이 대제국의 지배자 자리도 점점 균열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본 기사를 위해 필자는 아키오 토요다와 직·간접적으로 일한 20여 명의 현직·전직 임원과 직원, 지인들을 인터뷰했는데, 그 중 아키오를 누구보다 열렬히 지지해온 사람들조차 아키오의 추종자들이 토요타라는 거대한 회사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여기는 분위기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정작 토요다 일가가 보유한 지분은 2%도 되지 않음에도 말이다. 이들은 특히 한 젊은 여성 직원의 영향력을 문제 삼는다.

그간 침묵을 지켜온 토요타 주주들마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중국 전기차의 약진과 글로벌 무역전쟁 심화라는 거센 도전에 직면한 지금, 거버넌스 개선이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기묘한 건, 아키오의 리더십을 둘러싼 불안감이 이제는 대중문화에까지 침투했다는 점이다. 그의 삶과 놀라운 유사성을 보이는 소설 시리즈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는 일종의 ‘공개적 우려’로 해석되고 있다.

이 기사에 대해 토요타는 아키오 본인의 인터뷰를 허용하지 않았다. 다만 회사는 지난 5년간 그의 리더십 아래 토요타 주가가 거의 두 배가 되었고, 조직은 “민첩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회사”로 변모했으며, 자동차 산업이 겪는 “100년에 한 번 오는 대변혁”에 대응할 “강력한 경쟁력을 갖췄다”고 밝혔다. 회사는 덧붙였다. “아키오 토요다는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산업인 중 한 명으로, 토요타를 전례 없는 성장으로 이끈 인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날 후지산 레이싱 이벤트 현장에서 아키오는 자신이 몰던 차량의 대체연료를 직접 홍보했다. 모리조 특유의 이중 페르소나가 회사의 실제 전략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롤모델은 할아버지


아키오 토요다의 삶에는 어린 시절부터 일종의 고독이 드리워져 있었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의 후계자라는 배경은 그에게 특권을 안겨줬지만, 동시에 그를 자주 외롭게 만들었다.

아키오는 자신이 태어나기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 토요다 키이치로(豊田喜一郞, 1894-1952)에게 강한 애착을 품어왔다. 키이치로는 방직기 제작업체였던 가업을 진정한 자동차 회사로 변모시킨 인물이다. 살아서 보지는 못했지만, 그는 토요타가 1955년 일본 최초의 국산 승용차 ‘토요펫 크라운’을 출시하고 미국 수출까지 해낼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 아키오가 57세가 되던 해, 그는 할아버지 묘소를 찾아가 이렇게 다짐했다. “할아버지, 당신의 꿈을 실현하는 데 저를 써주세요.” 이 장면은 토요타 내부 웹사이트에 영상으로 게시돼 있다.

 

조부 토요다 키이치로와 토요타 크라운(1955)


아키오는 매사추세츠에 있는 밥슨칼리지에서 MBA를 마쳤다. 누군지 알아보는 이가 없었기에 처음으로 “평범한 사람처럼” 살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토요타가 공식적으로 승인한 반(半)자서전 형식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학위를 마친 그는 AG 베커 투자은행과 부즈 앨런 해밀턴 컨설팅사에서 경력을 쌓았다. 1984년 마침내 토요타에 입사했을 때, 그의 아버지이자 당시 사장이었던 토요다는 이렇게 말했다. “누구도 너를 부하로 두고 싶어 하지 않을 거다.” 실제로 많은 직원이 그와 일하는 것을 피했다.


“나는 평생을, 내가 토요타에 필요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묻는 싸움 속에 살아왔습니다.”


1937년 창립 당시, 토요타는 말 그대로 토요다 가문의 회사였다. 시간이 흐르며 일가의 지분은 줄었지만, 경영과 전략에 대한 영향력은 여전했다. 외부 전문가 출신의 사장들이 회사를 이끌던 시기조차, 실질적 방향성은 여전히 ‘살아있는 토요다’들이 쥐고 있었다. 회사 이름이 원래 가문의 이름에서 살짝 바뀐 것도, 일본어 표기상 더 길이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현재 아키오는 토요타 지분 0.18%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가치는 약 5억5000만 달러에 달한다. 그는 또 다른 계열사인 토요타산업(Toyota Industries)의 330억 달러 규모 인수 프로젝트에도 사재를 투자 중이다.

토요타 측은 회사가 “토요다 일가에 의해 과도한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일가 출신 인물이라 해도 회사에 들어오려면 타 직원과 동일한 채용 절차를 밟는다는 입장이다.

세월이 흐르며, 아키오는 점차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빠른 속도로 승진해 2000년 마흔네 살에 이사회에 합류했고, 9년 뒤 글로벌 금융위기로 회사가 44억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며 1950년 이후 처음으로 ‘붉은 잉크’를 찍던 그 해, 사장직을 맡았다.

그러다 리콜 사태가 터졌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전 세계에서 1000만 대 이상의 토요타 차량이 리콜됐다. 가속 페달이 끈적하게 달라붙거나, 바닥 매트에 페달이 끼이는 설계 결함 때문이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안전성 논란이 거세게 일었고, 규제 준수 여부에 대한 의문도 커졌다.

이 위기는 아키오를 더 이상 숨을 수 없게 만들었다. 미국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간 그는 전임 경영진들이 “조직과 사람의 성장 속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외형 성장만을 추구했다”고 시인했다. 메모에서 눈을 들어 바라보며 그가 덧붙인 말은 지금도 많은 토요타 직원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저는 창업자의 손자이며, 모든 토요타 차량에는 제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차가 상처를 입는다는 건, 곧 제 자신이 상처받는 것과 같습니다.”

겸손과 책임 사이에서 그는 점점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가문의 유산을 짊어진 존재로서, 회사의 얼굴로서 그 무게를 받아들였다. “제 삶은 항상, 내가 토요타에 필요한 사람인가를 스스로 묻는 싸움이었습니다.” 수년 후 공개된 내부 영상에서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하지만 그 순간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내가 이 회사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걸. 내가 존재해온 이유가 이거였을지도 모른다고. 만약 내 생명을 대가로 회사를 지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확장 일변도의 경영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3년간 신공장 건설을 전면 중단시켰고, 기술자들에게는 “내가 직접 탈 만큼 매력적인 차를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그와 함께 일한 사람들은 “제품 디테일에 대한 집착, 각 지역 시장에 대한 이해도는 놀라운 수준”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는 또 다른 정신적 멘토를 찾기도 했다. 멘토의 이름은 츠카코시 히로시(塚越寛, 88). 해초에서 추출한 젤리 성분 ‘한천’을 만들어내는 이나식품공업의 전 회장이자, 48년 연속 매출 성장을 이룬 일본 기업경영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2013 회계연도, 토요타는 사상 최대의 수익과 판매량을 기록하며 완벽하게 부활했다. 그때 아키오는 다시 한 번 단기성과주의를 비판하며 멘토 츠카코시의 철학을 꺼냈다. “기록적인 성과는 운이 아니라 꾸준한 성장의 결과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2015년 초 일본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쓰카코시는 오랜 세월 토요타 및 계열사 경영진의 멘토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FT에 이렇게 말했다. “아키오는 사람을 잘 돌볼 줄 아는 리더입니다. 직원들에 대한 애정이 있어요.” 



권위의 확장


하지만 회사가 회복세에 접어들고 몇 년이 흐르자, 함께 일하던 이들은 아키오의 주변에서 이상한 기류를 감지했다. 2016년 무렵부터 아키오와 가까워 보이는 인사들이 승진했고, 반대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이들은 물러났다. 그해, 예사롭지 않은 인사 조치가 있었다. 전임 체제에서 계열사로 밀려나 있던 76세의 고바야시 코지를 아키오가 다시 불러들인 것이다. 두 사람의 과거를 잘 아는 인사에 따르면, 고바야시는 과거 아키오가 아직 후계자 수업을 받을 때 그를 “평범한 직원처럼” 대했기 때문에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8년 초, 고바야시는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전격 발탁된다. 9개월 전 임명된 유능한 임원 나가타 오사무를 전격 교체한 것이었다. 나가타는 아키오가 사장직에 오른 뒤, 지역 조직과 본사 간 보고 체계의 지연을 개선하는 데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이 문제는 리콜 사태의 근본 원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왜 나가타가 밀려났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하지만 그 시기를 전후해 아키오의 리더십 스타일이 눈에 띄게 바뀌었다고, 한 전직 직원은 회고했다. (현재 고바야시는 CFO를 그만두고도 여전히 아키오의 고문 역할을 맡고 있다.)

토요타 측은 이에 대해 “임원들이 그룹 계열사로 이동하거나 다시 본사로 돌아오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며, 각 인사는 ‘적재적소’ 원칙에 따라 이뤄진다”고 밝혔다. 나가타의 경우에는 당시 토요타자동차큐슈의 제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적임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키오의 인사 스타일은 종종 예측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컨대 2020년에는 부사장 직함을 폐지했다가 2년 만에 다시 부활시켰고, 2023년에는 그 직함을 맡은 세 명을 전격 교체했다. 전직 임원들은 이처럼 잦은 인사 변동으로 인해, 아키오 주변에 그에게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2020년, 아키오는 주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문제 상황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남겼다. “내가 아무리 ‘편하게 말해도 된다’고 해도, 내가 나이가 많고 경력도 많고 지위도 높으니 사람들은 내 앞에서 말을 꺼내기 주저하게 된다.” (이 인터뷰를 진행한 주니치신문 기자도 훗날 토요타의 사외이사가 됐다.)

토요타는 이에 대해 “임원 인사는 비(非)상근 이사가 과반을 차지하는 심사 패널의 추천에 따라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이뤄진다”고 해명했다. 아키오는 이 논의에 직접 참여하지 않으며, 개인적으로 인사를 결정할 권한도 없다는 것이다. 특정 부서로의 인사 발령이 좌천은 아니며, “비판적인 의견을 낸 직원들이 인사에서 배제되거나 제거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회사는 밝혔다.

콘 켄타는 아키오의 비서실장을 거쳐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낸 인물이다. 본사 부사장에서 계열사 재무 책임자로 이동한 일을 “새로운 도전”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타인에겐 좌천으로 보였을 수도 있지만, “두 직책 모두 나에게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아키오에 대해 묻자, 콘은 “매일 아침 버스 기사와 경비원에게 인사를 잊지 않는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아키오는 공장 현장(겜바)에 진실이 있다고 믿는다. 토요타는 공익을 중시하는 기업이기 때문에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자주 말한다”고 덧붙였다. 단점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는 말을 아꼈다.

미야자키 요이치는 2023년 CFO로 콘의 뒤를 이은 사람이다. 그는 잦은 인사와 조직 개편이 “토요타와 일본 자동차 산업의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지금은 살아남는 게 중요합니다. 친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요직에 앉힌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주들 앞에서 설명이 안 되는 일이죠.”

토요타 내부에서는 “아키오에게 말을 건네는 것조차 예전보다 훨씬 어렵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럽에서 한 프로젝트를 함께했던 관계자는 “윗사람이 제왕처럼 행동하면, 조직은 자연스레 그에 맞춰 움직이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재무, 인사, 회계 등 주요 부문에서 고위급 인사들이 회사를 떠나는 일이 이어졌다. 종신고용이 아직 미덕으로 여겨지는 일본 기업에서 이는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2019년 초, 토요타는 ‘토요타 타임스’라는 사내 뉴스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외부 언론과의 접촉 없이 회사의 주요 발표를 이 플랫폼에서 하기 시작했다. 그 직후부터 오랫동안 홍보 업무를 맡아온 베테랑들이 하나둘 회사를 떠났다. 한 전직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토요타는 평범한 일본 회사가 아닙니다. 일종의 공공기관이에요. 겸손해야 합니다.” 회사 측은 “토요타 타임스는 전적으로 정상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며, 인력 이탈은 팬데믹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여비서와 두 권의 소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사내에서 가장 많은 우려를 낳은 인사는 따로 있다. 30대 초반 여성 직원인 여기서는 가명 ‘아유미’로 지칭하겠다. 그녀는 처음에는 스즈카 서킷과 나고야 일대에서 열리는 모터쇼 행사 스태프로 일했다. 약 10년 전, 토요타 경영진과 영업 책임자, 고객들이 자주 찾는 고급 레스토랑의 파티 자리에서 아키오와 처음 만났다.

불과 몇 년 뒤, 아유미는 토요타의 정식 직원이 되었고, 아키오의 “매니저”라는 직책에 올랐다. 다소 이례적인 호칭으로, 실질적으로는 비서와 같은 역할이었다. FT가 인터뷰한 다섯 명의 관계자는 “두 사람이 자주 함께 움직였으며, 2018~2019년 사이 미국 내 딜러 미팅 등 출장에도 동행했다”고 밝혔다. 당시 아유미는 토요타 전용기를 타고 미국까지 함께 갔다. 2021년에는 아키오의 아들이 결혼식을 올렸는데, 그녀가 비서 자격으로 참석해 일부 하객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사내에서는 아유미가 점차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본 내 최고 명문대 출신 인재들이 몰리는 토요타 같은 기업에서, 경력직 입사자가 그것도 핵심 임원을 보좌하는 자리에 오르는 일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아유미의 고용에 대해 “전혀 이례적인 점이 없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그녀는 회장실 소속으로, 일정 및 업무 조율을 담당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해외 출장을 회장과 함께 가는 것도 팀원으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토요타는 또 “그녀는 임원이 아니며, 회사 내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직원들이 있고, 우리는 이를 조직의 강점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아키오 아들의 결혼식에 아유미가 참석한 것에 대해서도 “총 1000명가량이 초대되었고, 아키오의 지원팀 일원들도 포함돼 있었기에 전혀 특별한 일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회사 측에 따르면, 아유미는 이후 “통상적인 인사 절차에 따라” 다른 부서로 이동됐다.

2016년 일본에서 출간된 소설 『도요토미의 야망』 3부작은 이 논란에 또 다른 빛을 던졌다. 이 시리즈는 토요타 가문과 닮은 가상의 재벌 가문 이야기를 다룬다. 일본의 양대 출판사가 공동 출간한 이 소설은 출간 즉시 비즈니스 분야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누적 28만 부가 팔렸다.

시리즈 중 한 에피소드는 2018년 봄에 설정돼 있다. 일본 최대 자동차 회사를 이끄는 도요토미 토이치는 부친 신타로와 함께 시즈오카현 호숫가 별장으로 드문드문 떠나는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도요토미자동차는 1990년대 말 출시된 하이브리드 차량 ‘프로메테우스’의 성공으로 이름을 알렸지만, 이후 전기차 전환 경쟁에서는 주도권을 잃고 있었다.


 

아들 토이치의 리더십이 갈수록 도전을 받자, 부자 관계에도 긴장이 생긴다. 둘은 본사 인근 같은 부지에서 살고 있지만, 대화는 점점 줄어든다. 신타로는 말한다. “이제 그만두고 싶냐?” 그의 말투에는 불안이 묻어난다. “사람들은 원래 오너가문 회사를 곱게 보지 않아. 네가 성과를 내면 추앙하겠지만, 실패하면 그 책임은 창업가문의 무능으로 돌릴 거야.” 아버지의 의심에 모욕감을 느낀 토이치는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며 단호히 답한다.

물론 위 장면은 소설 속 허구다. 하지만 많은 일본 독자들은 이 허구 속에서 아키오와 2023년에 별세한 그의 아버지 도요타 쇼이치 간의 현실적인 그림자를 읽어냈다. 부자는 오랫동안 같은 부지 내에서 살며 함께 아침을 먹었고, 아키오는 경영 전략과 회사 운영에 대해 아버지에게 자주 조언을 구했다. 소설 속 하이브리드차 ‘프로메테우스’는 토요타의 ‘프리우스’를 떠올리게 했으며, 회사 행사에서 일하던 여성과 가까워져 개인 비서가 되고, 이후 아들 결혼식에도 참석하는 설정은 아유미를 연상케 한다.

필명 사부로 카지야마를 사용하는 이 소설의 작가는, 이 가상의 자동차 회사를 지배하는 창업 일가의 과도한 권력에 대해 가차 없이 비판을 퍼붓는다. 작가의 실체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으며, 토요타 이사회 내에서도 입에 오르내리는 가십거리다. 출판 과정을 아는 인사들은 FT에 “이 소설은 일본 자동차 업계를 오래 취재했던 베테랑 기자들에 의해 쓰인 것”이라고 밝혔다.

토요타를 오래 지켜본 관찰자들은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아키오라는 인물이 공공 담론의 대상이 되는 일은 일본에서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본에서 토요타의 영향력은 너무 커서, 비판적인 기사는 즉각 언론 광고 취소나 취재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오야마가쿠인대학의 하타 신지 명예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토요타는 일본 경제를 이끌어온 기업입니다. 누구도 그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쉽게 꺼낼 수 없는 구조예요. 이번 소설은 예외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아키오 회장은 늘 최측근들의 보호 아래 있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벌거벗은 황제’일지도 모릅니다.”

이에 대해 토요타는 “모든 이의 행복을 창조한다는 사명 아래, 건설적 비판을 소중히 여긴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소설 『도요토미의 야망』이 어디까지나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2023년 말 3부작의 마지막 권이 출간되자 토요타 측은 결국 대응에 나섰다. 아키오가 회장으로 올라선 뒤 대표직을 맡은 사토 코지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내부 서한에서 “소설은 명예를 훼손했다”며 비판했다. “토요다 아키오는 창업가문 출신이라는 사실을 내세우는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닙니다. 진짜 토요타는, 바로 이곳에서 함께 일하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토요타는 해당 내부 메모에 대해 “임직원들 사이에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그러나 2024년 6월, 주주총회를 불과 며칠 앞둔 시점에 또 하나의 소설이 세상에 나왔다. 이번에는 공상과학 소설이었다. 제목은 『토요타의 아이』. 추리소설가로 알려진 요시카와 에리가 쓴 이 작품은 부분적으로 아키오 본인의 인터뷰를 토대로 구성되었으며, 젊은 아키오 토요다가 증조부의 추도식에 참석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는 그 자리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직기 회사였던 가업을 자동차 회사로 바꾸려 분투하던 할아버지 키이치로와 마주하게 된다.



이후 소설 속 아키오는 실제 회사의 분기점들을 되짚는다. 2009년 사장 취임, 리콜 사태, 내부의 의심과 외부의 냉소 등. 그는 처음엔 주변 인물들에게 응석받이로, 자격 없는 후계자로 보이지만, 위기를 돌파하며 결국 스스로 자리를 증명해낸다.

이 소설 『토요타의 아이』는 현재 토요타 사내 인트라넷에도 소개돼 있다. 내용 중에는 준(準)자전적 아키오가 속마음을 털어놓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토요타라는 회사를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으로 가고 싶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변화를 만들어낸 인물로 그려진다. 그 변화의 크기는, 바로 창업주인 할아버지에 비견될 만큼이다. 아키오 본인도 이 소설에 감동한 듯했다. SNS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소설을 통해 마침내 할아버지를 만나는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븐시티 프로젝트와 아들 다이스케


아키오가 회사를 변모시키려는 야심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프로젝트는 단연 ‘Woven by Toyota’다. 이 조직은 본래 연구부서였지만, 글로벌 비전을 품은 자회사로 성장하며 2023년 ‘우븐(Woven)’이라는 이름으로 재출범했다. 토요타차의 차세대 운영체제, 자율주행 및 안전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8억 달러 규모의 투자펀드까지 운영한다. 2021년 공시에서 밝혀졌듯, 아키오는 여기에 자신의 사재 50억 엔(약 450억 원)을 투입했다. 이례적인 이 결정은, 그가 이 부서를 얼마나 미래 전략의 핵심으로 보는지를 보여준다.


우븐 팀이 맡고 있는 핵심 임무 중 하나는 ‘기업 도시’ 건설이다. 후지산 기슭에 들어설 이 도시는 아키오가 2020년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서 직접 공개한 프로젝트다. 그는 이곳이 자율주행차, 스마트홈, 로봇 기술을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는 환경 속에서 실험할 공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감도 속 도시에는 유리와 콘크리트로 된 미래형 고층 건물과, 이를 가로지르는 녹지 산책로가 어우러져 있다. “행복이 가득한 도시”라는 수사 너머로, 이 프로젝트는 토요타를 단순한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인프라와 이동 서비스 기업’으로 바꾸겠다는 아키오의 구상을 담고 있다. 그는 “이익률이 점점 줄어드는 자동차 산업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이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 우븐시티 프로젝트에서도 가문의 색깔은 또렷하게 드러난다. 2018년, 아키오의 아들 토요다 다이스케(豊田大輔)가 핵심 직책인 수석부사장에 취임했다. 스마트시티 프로젝트도 그의 손에 맡겨졌다. 다이스케는 올해로 37세에 불과하지만, 내부에서는 그가 언젠가 토요타 최고경영자 자리에 오를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다.



다이스케의 이력은 아버지를 그대로 따라갔다. 같은 일본 대학(게이오)을 졸업하고, MBA는 역시 밥슨칼리지에서 마쳤다. 그리고 아버지처럼 레이싱을 즐긴다. 단, 그는 ‘모리조’ 같은 가면 없이 본명으로 직접 운전한다. 함께 일한 사람들은 다이스케를 “소탈하고 좋은 사람”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 전문가 나카니시 타카키는 이렇게 말한다. “다이스케가 토요타를 이끌려면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가문의 지배력은 정당성을 잃게 될 겁니다.”

이에 대해 토요타 측은 “다이스케의 현재 보직이 CEO 승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일축했다. 차기 리더십 선임은 ‘적재적소’ 원칙에 따라 인사위원회가 논의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우븐의 CFO로 있는 콘 켄타도 “다이스케는 훌륭한 리더지만, 그를 차기 CEO로 보는 시각은 사내에서도 드물다”고 말했다.



우븐의 현재까지의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2023년 토요타는 사실상 이 부서를 ‘리셋’했다. 실리콘밸리식 경영을 도입하고자 영입했던 전 구글 임원 제임스 쿠프너 대신, 부품 공급업체 덴소 출신 임원을 새 수장으로 앉힌 것이다. (당시 다이스케는 쿠프너에게 보고했다.) 쿠프너는 FT에 이렇게 말했다. “미국식 실리콘밸리 문화와 일본식 조직문화 간에는 극복하기 어려운 스타일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키오는 내내 저를 지지해줬고, 저는 그 점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븐 프로젝트가 꿈꾸던 큰 야망들은, ‘리셋’ 이후 상당 부분 현실로 내려앉았다. ‘더 행복한 행성’을 만들겠다는 거창한 구상은 사라졌고, 그 대신 실용적인 차량용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하게 됐다. 자동차 애널리스트 나카니시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최첨단이라 하기엔 부족하지만, 실제로 도움이 되는 기술”이라고 평가한다. 예컨대 이 소프트웨어는 차량이 팔린 이후에도 품질을 개선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한편 스마트시티 내에서 다이스케가 실제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24년 3월 회계연도 기준, 해당 부서는 최근 4년 중 3년 동안 적자를 기록했고, 부채가 자산을 258억 엔(약 1억8000만 달러) 초과했다. 물론, 이는 연매출 3300억 달러, 영업이익 330억 달러에 달하는 토요타 전체 규모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올해 말,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약 100명의 주민들이 실제로 거주하며 토요타의 자율주행차, 드론, 로봇 등을 시험하는 스마트시티가 공개될 예정이다. 우븐이 개발한 차량용 소프트웨어 플랫폼 ‘Arene’도 최근 공개되어 신형 RAV4 SUV에 탑재될 계획이다. 이 기술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우븐이 회사 전략을 바꿀 핵심 사업이 될지, 아니면 회장의 ‘취미 프로젝트’로 남을지가 결정될 수도 있다. “최첨단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플랫폼 자체는 아주 훌륭합니다. 토요타가 개발을 목표로 하는 SUV에 한 발 더 가까워지고 있어요.” 콘 켄타의 말이다.


회장직에 오른 이후에도 아키오는 여전히 제품 리뷰 세션 등 핵심 의사결정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이 회사를 가장 잘 이끌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한 고위 임원은 이렇게 말했다. “수년간 그만큼 많은 걸 맞춰온 사람이라면, 이제는 ‘나는 틀리지 않는다’고 믿게 되는 것도 자연스럽지요.”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아키오의 핵심 가치였던 ‘더 좋은 차 만들기’는 여러 자회사들의 품질 및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로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미국에서는 토요타의 트럭 자회사 히노자동차가 2010~2022년 사이 배출가스 데이터를 조작한 혐의로 16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토요타 이사회 10명 중 3명은 여전히 회사와 이해관계를 공유한 이사들로, 의결권 자문사 ISS는 이들을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다”고 분류한다. 아키오의 주주 지지율은 2년 전 96%에서 지난해 72%로 떨어졌다. 토요타 주주의 다수가 국내 금융기관과 계열사임을 고려하면, 이 수치는 과거엔 상상하기 힘든 결과였다.

2025년 2월, 토요타는 이사회 독립성을 높이겠다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이 안에는 사외이사 비중을 절반 이상으로 늘리고 사외이사 중심의 감사 및 감독위원회를 신설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없다”고 회사는 주장했지만, 사외이사들은 모두 증권거래소가 요구하는 ‘독립성 기준’을 충족한다고 덧붙였다. 이 안건은 이번 달 주총에서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아키오 회장에 대한 승인율도 함께 조사될 것이다. 회사는 올해는 지지율이 다시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주총 승인만 남겨둔 신임 이사 크리스토퍼 레이놀즈는 “토요타의 강력한 재무 성과야말로 회사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럽·미국식 기준과 일본 기업을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오만한 발상”이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카이젠(改善)’의 회사입니다. 끝없는 개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지금, 경영진은 진화를 선택했습니다.”

재무책임자 미야자키 역시 “새 체계는 감사를 포함한 모든 이사들이 하나의 팀으로 토요타의 미래를 논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고 말했다. 그는 강조했다. “자동차 산업에는 단 한 명의 영웅이란 없습니다. 모두가 리더입니다. 지금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모두가 땀 흘려야 합니다.”

하지만 아키오 토요다가 결국 진심으로 평가받고 싶은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는지도 모른다. 2023년 3월, CEO로서의 마지막 날. 그는 《토요타 타임스》 기자를 데리고 나고야에 있는 자신의 어린 시절 집으로 향했다. 한쪽 벽에 초상화 하나가 걸려 있었다.
“이 분에게 칭찬을 받고 싶습니다.” 아키오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같은 손자를 두어 기뻤다고… 그 말을 듣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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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토요타타임스, 우븐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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