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종전 50주년 - 미국/베트남/한국은 어떻게 기억할까

2025-05-02



지난 4월 30일 수요일은 베트남전 종전 50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대대적인 축하 행사가 벌어졌습니다.



우리 한국사람들은 베트남전 참전을 부끄러운 역사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베트남이 이겼고 한국이 졌으니까요! 게다가 베트남은 한국 교민 무려 17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대표적인 우방국이기도 합니다. 교민 수로 미국, 중국, 일본, 캐나다 다음입니다. 또한 삼성, LG와 수많은 협력업체들이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어서 경제적으로는 더욱 더 중요한 동반자입니다.


월남전의 간략한 역사를 소개합니다.


  • 발단: 1954년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독립한 베트남이 남베트남(형태상으로 자유민주주의)과 북베트남(공산주의)로 분단.


  • 전쟁: 
    1. 1964년 미군이 남베트남과 함께 북베트남을 공격하며 전쟁 시작. 한국도 함께 참전. 
    2. 한국은 과거 625 전쟁 때 UN군의 도움을 받았던 걸 갚아주자는 명분이 있었고, 미국이 경제적으로 여러 지원을 해주기로 함. 특히 월남전을 계기로 컨테이너선을 이용한 국제무역이 시작됐고, 부산에 컨테이너를 처리할 수 있는 항만 시설이 만들어지면서 한국의 수출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하게 됨. (미국에서 전쟁물자를 싣고 베트남에 내려놓은 상선이 미국으로 돌아갈 때 일본, 한국 상품을 가득 채워가게 됨)
    3. 그러나 전선에서는 열세. 북베트남이 호치민(호지명)의 지도 아래 똘똘 뭉쳐 싸우는데 비해 남베트남은 지도층의 부패가 심하고 워낙 나라가 엉망이라 미군과 한국군이 아무리 도와줘도 진격을 못함.
    4. 결국 1973년 미군과 한국군은 전쟁에서 손 떼고 빠짐. 1975년 4월 30일 북베트남군이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호치민)을 점령하면서 전쟁 끝.
    5. 이 때 남베트남 사람들 수백만 명이 난민이 되어 외국으로 망명. 미국에만도 200만 명 이상. 바다에 빠져죽거나 해적에게 잡힌 사람들도 부지기수 ("보트피플")
    6. 한국군은 10년간 32만명 참전해 5000명 전사.


  • 이후의 외교: 
    • 어제의 적은 오늘의 친구. 월남전 후 베트남이 중국의 경쟁자로 부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서구 국가들과의 관계가 좋아짐.
    • 1992년 한국-베트남 수교. 1995년 미국-베트남 수교.
    • 지금은 세 나라 완전 친해짐.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
    • 2019년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날 때도 베트남의 하노이를 택했음.


그렇다면 미국, 베트남, 한국 등 관련 3개국은 월남전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대체로 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 한국 좌파적 견해: 박정희 정권이 미 제국주의자들을 도와 베트남 민중을 학살한 부끄러운 역사. 계속 사과하자.


  • 베트남의 입장: 대미 전쟁은 프랑스를 상대로 했던 독립전쟁에 이어 세계 최강대국들을 연달아 무릎 꿇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통일을 이룬 자랑스러운 업적! (전쟁 중 베트남 여성들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


이렇게 외부에서 보는 시각과 베트남 사람들 스스로 보는 시각이 크게 다르다고 합니다. 베트남 정부 입장에서 보면 월남전은 자랑스러운 통일전쟁이며 역사에 빛나는 승리입니다. 동시에, 자국민들끼리 많이 죽이고 죽었다는 불편한 사실은 가리고 싶어합니다. 특히 민주주의가 아닌 공산주의 1당 체제이니 더욱 그렇습니다.


한국사람들이 월남전 중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에 대해 사과하려거나 하면 오히려 베트남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막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 베트남 정부가 한국 정부의 사과 의향을 비공식적으로 거절했다고 합니다. 승전국 입장에서 그 정도는 대인배답게 용서해준다는 심정도 있고 (매일경제 기사), 한국은 돈이 필요해서 용병으로 참여했던 주제에 무슨 사과냐는 마음도 있고, 또 자신들끼리도 민간인 학살 사건이 무수히 있었는데 그런 걸 다 따지자면 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반대로, 한국정부가 베트남에 대해 계속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속마음은 '불쌍한 베트남 사람들...'이라며 뭔가 우월감을 느껴보고 싶은 심리도 있는 게 아닌가 반성하게 됩니다. 동정심과 우월감은 동전의 양면이니까요.


전쟁의 역사는 나라마다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됩니다. 각자의 경험과 입장이 다르니 그 차이를 좁히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서로 계속 소통하고 차이를 알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라도요.



베트남 통일 50주년을 축하하며 그 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분들의 마음에 평화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아버지 중에도 참전용사가 계실 겁니다. 정글의 남과 북 어느 쪽에서 싸웠든간에 다들 열심히 사셨고 그분들의 피와 땀으로 오늘날의 끈끈한 한-베트남 동맹 관계가 가능한 것 같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