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 금융계와 비즈니스계의 주요 인사들은 이제서야 깨닫고 있다. 트럼프에게 자신들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음을.
지난 2월 중순이었다. 록 콘서트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십대 청소년들처럼, 수천억 달러의 개인 자산과 수조 달러의 운용 자산을 손에 쥔 월스트리트의 막강한 투자자들과 사업가들이 마이애미 비치의 한 작은 강당 앞에 주르륵 줄을 섰다. 이 행사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후원했고 무대의 주인공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미국 재계의 거물들과 CEO들은 행사장에 들어가려고 최대 세 시간까지 줄을 섰다. 트럼프의 연설을 듣기 위해서였다.
트럼프는 한 시간 늦게 무대에 올랐다. 청중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 중엔 투자사 비스타에쿼티의 로버트 스미스, 브리지워터의 CEO 니르 바르 데아, 아폴로의 공동 창립자 조시 해리스도 있었다.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고 싶다면, 한계를 넘고 돌파구를 열며 산업을 혁신하고 부를 이루고 싶다면, 현재에도 미래에도 여기 이 나라보다 더 좋은 곳은 지구상에 없습니다. 도널드 J. 트럼프라는 이름의 대통령이 있으니까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금융시장은 상승세를 탔다. 바이든 정권에서 4년간 정부의 감시와 간섭을 받아왔다고 느꼈던 미국 금융 엘리트들의 '동물적 본능'이 마침내 해방될 기세였다.
당시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 트럼프 연설에서 나온 일부 거친 발언들, 예컨대 '미국을 불공정하게 대우하는 국가에 대해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등의 위협적인 발언에 대해 걱정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당시 트럼프와 연줄이 있던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다. “경기 침체(recession)나 공황(depression) 같은 말을 꺼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사업가들과 투자자들이 너무 낙관적이며 현실감이 부족하다는 얘기라고 봐야 해요.”
불과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트럼프의 마이애미 비치 연설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손해를 줄이기 위한 위기관리 모드에 돌입했다. 4월 2일 그가 단행한 무역 전쟁은 금융시장을 뒤흔들었고, 인플레이션과 불황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사실 미국의 금융 업계는 그 전부터 이미 충격을 받고 있었다. 기업 인수합병 건수는 약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고, 유명 로펌들이 백악관의 감시 대상이 되었으며, 대형 컨설팅 회사들은 정부가 발주하는 계약들을 잃었다. 델타항공부터 월마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업들이 연간 혹은 분기 수익 전망을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관세 부과 정책이 미국 경제의 엔진을 급격히 둔화시킬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 금융계 임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린 트럼프의 말을 심각하게 듣지 않았었어요. 행정부 내에서 경제쪽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누군가가 '대통령님, 글로벌 관세 부과는 나쁜 생각입니다'라고 트럼프를 말려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롤러코스터를 타게 생겼습니다.”
산업계에서 트럼프의 가장 열렬히 지지자였던 사람들조차, 트럼프가 미국의 경제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수십 년간 지속된 세계화의 흐름을 되돌리고 싶어한다는 의지를 과소평가했었다. 사실 트럼프와 최측근들은 선거유세 기간 내내 수도 없이 그렇게 말해왔었다. '미국의 최상류층 부자들을 기쁘게 해줄 정책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트럼프가 지명한 부통령 후보 JD 밴스는 작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분명히 밝혔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전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강력합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이제 우리는 월스트리트를 만족시키는 일을 그만둘 것입니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헌신할 것입니다.” 심지어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 역시 그와 같은 입장을 반복해서 밝혀왔다. 그는 3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 “MAGA는 ‘M&A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뜻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요지부동하던 월스트리트는 4월 트럼프의 관세 발표 후에야 충격을 받았다. 불과 이틀 동안 S&P 500 지수에서 시가총액 5조 달러 이상이 사라졌다. 트럼프는 2018~2022년 첫 임기 때는 주식시장에 집착했었지만, 이번에는 기자들이 시장에 대해 묻자 무심하게 '확인해보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월스트리트가 빨간 불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블랙록, 아폴로, JP모건 등 유력 금융기관들의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백악관의 메시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침 월스트리트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믿으십시오.”
미국에서 연봉이 가장 높은 직종인 금융계 종사자들, 변호사들, 기업 경영자들에게 점차 깨달음이 찾아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정책 때문에 금융시장에 균열이 가더라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히 있었다. 공개적인 발언을 하는 대신, 관세율이 너무 높고 그 계산 방식이 불투명하고 변덕스럽다는 점에 대해서 그저 은밀히만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빌 애크먼, 댄 로엡, 클리프 애즈니스 같은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X(구 트위터)를 통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트럼프의 전 상무장관 윌버 로스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관세를 산정하는 방식으로는 꽤나 비정통적인 접근입니다.”
좀 더 노골적인 발언도 나왔다. 스카이브리지 캐피탈의 창립자이자 트럼프 1기 행정부 초기에 백악관 공보국장을 잠깐 맡았던 앤서니 스카라무치는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글로벌 무역 체제를 끝장내고 미국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어요. 그는 미국을 세계로부터 브렉시트시키고 싶어 하는 거죠. 이건 미국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경제정책입니다.”
임기 초반에 기업계의 엘리트들은 반독점 규제 완화나 대규모 감세 같은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관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트럼프가 무역 전쟁을 확대하며 월스트리트를 흔들려는 태세를 보이자 그들의 신뢰는 크게 흔들렸다. 이제는 기존의 비즈니스와 금융 예측 모델들이 쓸모없어졌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 상태에 있는지 아시나요? 지금 투자를 한다는 건 슈퍼볼 경기의 승부에 돈을 거는 것과 같아요. 어느 팀이 뛰는지도, 선수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죠.” 오크트리 캐피탈의 공동 창립자인 하워드 마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투자는 대개 ‘미래는 과거와 비슷할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하는데, 지금은 그 전제가 평소보다 훨씬 더 불확실하게 느껴집니다.”
헷지펀드 퍼싱스퀘어캐피털 대표 빌 애크먼의 발언 변화
2024년 10월 11일
"트럼프 행정부가 이 나라와 전 세계를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고 강하게 믿습니다"
2025년 4월 6일
"대통령은 전 세계 비즈니스 리더들의 신뢰를 잃고 있어요. 우리는 이걸 위해 투표한 게 아닙니다"
트럼프 1기 상무장관 윌버 로스의 발언 변화
2024년 2월 1일
"그의 용기와 결단이야말로 우리 미국을 살리기 위해 당장 필요한 것입니다"
2025년 4월 6일
"불확실성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무지의 공포'가 가장 두려운 것인데, 우리는 지금 극단적인 무지의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JP모건 체이스 CEO 제이미 다이먼의 발언 변화
2025년 1월 22일
"관세가 약간의 물가상승을 가져온다고 해도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된다면 그게 뭐 어떤가요. 그냥 받아들입시다."
2025년 4월 6일
"관세는 아마 물가를 높일 것이고, 또 경기 침체 가능성을 높인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트럼프가 금융권을 믿지 않는 이유
트럼프는 뉴욕 부동산 개발업자의 아들이자 명문 와튼비즈니스스쿨 출신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월스트리트와의 개인적 관계를 다져왔다. 하지만 그 관계는 불안정했다.
그를 잘 아는 이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월스트리트의 최고위층으로부터 따돌림 당한다고 자주 느껴왔다. 대통령 측근 한 명은 실명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이렇게 전했다. “1980년대에 트럼프의 부동산 프로젝트에 자금이 필요했을 때 금융계 엘리트들은 그를 외면했었죠. 트럼프를 한낱 셀럽 정도로 가볍게 보며 조롱하곤 했습니다. 트럼프는 월스트리트의 대통령이 될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첫 임기 때의 트럼프는 금융계 인사들을 행정부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골드만삭스 출신의 스티븐 므누신과 게리 콘을 각각 재무장관과 수석 경제 고문으로 임명했다. 또한 트럼프는 ‘전략 및 정책 포럼(Strategic and Policy Forum)’이라는 그룹을 조직했는데, 여기에는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블랙록의 래리 핑크,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같은 월스트리트의 거물들이 포함됐다. 트럼프는 이들과 자주 회동했으며 그 장면은 종종 TV 카메라의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임기가 흘러가며 그들과의 관계도 점차 틀어졌다. 2021년 1월 6일 발생한 워싱턴DC 국회의사당 폭동은 두 세력 간의 완전한 결별을 상징하는 사건이 됐다. 트럼프의 비즈니스 포럼을 이끌었던 슈워츠먼은 그 사건을 “끔찍하다(appalling)”고 평가했다. 다른 금융인들도 그와 비슷한 비판을 내놓았고, 업계는 트럼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2022년, 슈워츠먼은 “공화당이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들에게로 방향을 틀 때가 됐다”고 말하며,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트럼프 측 인사들은 금융계 인사들의 이 같은 태도 변화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트럼프와 가까운 한 베테랑 금융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들은 트럼프를 한 번도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어요. 지난 4년간 트럼프가 판사들한테 공격받았을 때 월스트리트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선거운동 기간 동안 월스트리트는 누구를 선택했나요? 카멀라 해리스였지, 트럼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트럼프가 지금 월스트리트를 신경 써야 하죠?”
그러다가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서 승산을 잡자 금융계의 태도는 빠르게 바뀌었다. 슈워츠먼은 그해 5월 다시 지지를 표명하며 “트럼프에게 투표하는 건 변화에 투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들도 그 뒤를 따랐다.
트럼프 취임과 관세 발표 전후 S&P 지수의 움직임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뒤, 골드만삭스 CEO 데이비드 솔로몬은 트럼프의 친성장적 정책 기조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제이미 다이먼은 새로운 관세 조치를 국가 안보 차원의 대응이라고 옹호하며, CNBC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그냥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트럼프의 경쟁자들을 지원했던 사모펀드 회사들도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트럼프의 취임식 기금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러나 이 중에서 현재 트럼프에게 직접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투자사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트럼프는 자기 말만 되풀이해주는 사람들로 자신을 둘러쌌습니다. 베센트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인물도, 반대 의견도 없습니다. 게리 콘이 균형을 잡아주던 시절과는 정말 큰 차이예요.”
트럼프는 자신에게 충분한 충성을 보이지 않은 인물들을 노골적으로 겨냥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런 보복 본능은 유력 로펌들과의 갈등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파이낸셜타임스 추산에 따르면, 폴 와이스, 스캐든 압스 등 유명 로펌들은 행정부가 선호하는 사안에 대해 거의 10억 달러에 이르는 법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라고 강요받고 있으며, 백악관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자신들의 비즈니스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CEO들은 말을 조심하고 있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백악관의 질책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트럼프를 두려워합니다. 자기 은행이나 자기 가족이 법적 조치의 대상이 되는 걸 원치 않죠. 그리고 이사회로부터 ‘입 다물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입니다.” 스카라무치는 이렇게 말한다. “게다가 지금은 여러분을 변호해줄 로펌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요 로펌들이 모두 다 대통령에게 혼쭐이 났거든요.”
JP모건의 시장 및 투자 전략 부문 의장 마이클 젬발레스트도 이와 같은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이달 고객 대상 프레젠테이션에서 넌지시 언급했다. 그는 발표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이번이 처음입니다. 시장과 경제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설명할 때 단지 내용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이 우리 회사, 그리고 동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생각해야 했던 건 말이죠. 요즘은 사람들의 의견이나 발언이 부당한 방식으로 해석되어 책임을 추궁당하는 시대니까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지난주 뉴욕 이코노믹클럽 행사에서, 트럼프가 스캐든 압스 같은 로펌(블랙록이 자주 이용하는 법률 자문사)을 행정명령으로 압박한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죠.” 이러한 '위축 효과'는, 트럼프라는 인물이 갖는 예측 불가능성과 거래 중심의 리더십이 갖는 특성상, 외부 영향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를 잘 아는 사람들은, 금융권 사람들이 이번 행정부의 정책 동기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는 여전히 법인세 인하, 규제 완화, M&A 촉진 같은 걸 하고 싶어 해요. 하지만 그가 그런 정책을 펴고자 하는 이유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사람들, 즉 뉴욕 사람들은 지도에서 본 적도 없는 지역(쇠락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트럼프의 또 다른 측근은 이렇게 요약했다. “그는 대중을 위한 포퓰리스트입니다.”
그런 트럼프도 금융권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지난 주 트럼프가 관세 부과 조치를 일부 철회하기로 결정한 것은 월스트리트의 거물들이 요구해서가 아니었다.
4월 9일 아침, 글로벌 금융 시장은 자유 낙하를 시작했고 트럼프는 그 상황을 주목했다. 그는 나중에 “채권 시장이 조금 예민해지고, 조금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말하며, 자신이 이런 혼란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유명한 금융계 인사 한 명이 그에게 메시지를 전하긴 했다. JP모건의 CEO 제이미 다이먼이다. 그는 9일 아침 대통령에게 무역 전쟁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부드럽지만 설득력 있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다이먼도 마라라고 저택이나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니었다. 그는 폭스TV 비즈니스 뉴스에 출연해 그런 말을 했다.
시장의 상황은 위협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전 미국 재무장관이자 하버드대 전 총장인 로렌스 서머스는 이렇게 말한다. “채권 시장이 위험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월스트리트의 모든 이들을 놀라게 만든 패턴 변화였습니다. 미국 국채가 갑자기 신흥시장의 채권처럼 거래되는 패턴을 보였고, 그와 동시에 달러는 약세를 보였습니다."
채권 시장의 붕괴는 일본과 미국의 헤지펀드들이 미국 국채에 대해 ‘베이시스 트레이드’를 청산하면서 일어났다. 이 전략은 오랫동안 위험하다는 경고를 받았던, 아주 복잡하고 고도로 레버리지된 전략이었다. 한편, 트럼프의 공격적인 태도에 놀란 해외 투자자들도 미국에서 자금을 빼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서도 균열이 드러났다. 낮은 신용등급을 가진 기업들과 프라이빗에쿼티 펀드들이 주로 사용하는 대출 시장은 얼어붙었고, 심지어 블루칩 대기업들도 채권 시장에서 배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일주일 간의 혼란 후, 대통령은 상호 보복관세에 대해 부분적인 중단을 선언했다. 트럼프와 가까운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월스트리트가 타격을 입는 것은 괜찮다고 보지만, 전체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트럼프가 시장에 의해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운명이 여전히 금융 엘리트들의 운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비록 그들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밀려나 있더라도 말이다.
트럼프는 글로벌 무역을 재편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금융 시스템 관련해서 또다른 지뢰밭을 마주하고 있다. 미국의 자본(투자) 산업은 그 규모가 13조 달러에 이르며 10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을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산업은 부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수년 간 부채 레버리지가 상승하며 중소기업들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중소기업들은 금융 충격에 매우 위험하게 노출되어 있다.
성장이 둔화되고 인플레이션이 상승함에 따라, (중소기업들을 소유한) 프라이빗에쿼티 회사들은 비용 절감과 일자리 축소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미국의 경제적 고통을 더 깊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채무 불이행율은 상승하고 있으며, 여기서 더 급증해 대규모 파산의 물결을 촉발할 수 있다. 이러면 민간 시장에 많은 투자를 한 대형 연기금들도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경제적 고통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4월 5일 소셜 미디어에 이렇게 게시했다.
“이것은 경제 혁명이다. 우리는 이길 것이다”
(THIS IS AN ECONOMIC REVOLUTION AND WE WILL WIN).
또 백악관은 월요일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결정을 이끄는 유일한 관심사는 미국 국민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반발하고 있다. 채권 수익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달러는 급락했으며, 그의 재무적 기반은 점점 더 불안정해 보인다.
로렌스 서머스는 이렇게 말한다. “안정성의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명확합니다. 4월 10일과 11일에 달러가 급락했고, 채권 금리는 매우 높은 수준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악재가 있을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변동성은 커 보인다. NYU 스턴 경영대학원의 경제학 교수인 조셉 파우디는 이렇게 말한다. “‘해방의 날’은 월스트리트가 이 행정부가 무엇을 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신뢰도와 자신감에 근본적인 타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금융권 사람들은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미국 월스트리트 금융계와 비즈니스계의 주요 인사들은 이제서야 깨닫고 있다. 트럼프에게 자신들은 우선순위가 아니었음을.
지난 2월 중순이었다. 록 콘서트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십대 청소년들처럼, 수천억 달러의 개인 자산과 수조 달러의 운용 자산을 손에 쥔 월스트리트의 막강한 투자자들과 사업가들이 마이애미 비치의 한 작은 강당 앞에 주르륵 줄을 섰다. 이 행사는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후원했고 무대의 주인공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미국 재계의 거물들과 CEO들은 행사장에 들어가려고 최대 세 시간까지 줄을 섰다. 트럼프의 연설을 듣기 위해서였다.
트럼프는 한 시간 늦게 무대에 올랐다. 청중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 중엔 투자사 비스타에쿼티의 로버트 스미스, 브리지워터의 CEO 니르 바르 데아, 아폴로의 공동 창립자 조시 해리스도 있었다. 트럼프는 이렇게 말했다.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고 싶다면, 한계를 넘고 돌파구를 열며 산업을 혁신하고 부를 이루고 싶다면, 현재에도 미래에도 여기 이 나라보다 더 좋은 곳은 지구상에 없습니다. 도널드 J. 트럼프라는 이름의 대통령이 있으니까요.”
연설 전문 링크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듯 금융시장은 상승세를 탔다. 바이든 정권에서 4년간 정부의 감시와 간섭을 받아왔다고 느꼈던 미국 금융 엘리트들의 '동물적 본능'이 마침내 해방될 기세였다.
당시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 트럼프 연설에서 나온 일부 거친 발언들, 예컨대 '미국을 불공정하게 대우하는 국가에 대해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등의 위협적인 발언에 대해 걱정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당시 트럼프와 연줄이 있던 한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다. “경기 침체(recession)나 공황(depression) 같은 말을 꺼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사업가들과 투자자들이 너무 낙관적이며 현실감이 부족하다는 얘기라고 봐야 해요.”
불과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트럼프의 마이애미 비치 연설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손해를 줄이기 위한 위기관리 모드에 돌입했다. 4월 2일 그가 단행한 무역 전쟁은 금융시장을 뒤흔들었고, 인플레이션과 불황에 대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사실 미국의 금융 업계는 그 전부터 이미 충격을 받고 있었다. 기업 인수합병 건수는 약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했고, 유명 로펌들이 백악관의 감시 대상이 되었으며, 대형 컨설팅 회사들은 정부가 발주하는 계약들을 잃었다. 델타항공부터 월마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기업들이 연간 혹은 분기 수익 전망을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 관세 부과 정책이 미국 경제의 엔진을 급격히 둔화시킬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한 금융계 임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린 트럼프의 말을 심각하게 듣지 않았었어요. 행정부 내에서 경제쪽에 대한 전문성이 있는 누군가가 '대통령님, 글로벌 관세 부과는 나쁜 생각입니다'라고 트럼프를 말려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 우리는 롤러코스터를 타게 생겼습니다.”
산업계에서 트럼프의 가장 열렬히 지지자였던 사람들조차, 트럼프가 미국의 경제 정책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수십 년간 지속된 세계화의 흐름을 되돌리고 싶어한다는 의지를 과소평가했었다. 사실 트럼프와 최측근들은 선거유세 기간 내내 수도 없이 그렇게 말해왔었다. '미국의 최상류층 부자들을 기쁘게 해줄 정책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트럼프가 지명한 부통령 후보 JD 밴스는 작년 7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이렇게 분명히 밝혔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전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강력합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이제 우리는 월스트리트를 만족시키는 일을 그만둘 것입니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헌신할 것입니다.” 심지어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인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 역시 그와 같은 입장을 반복해서 밝혀왔다. 그는 3월 CNBC와의 인터뷰에서 “MAGA는 ‘M&A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라는 뜻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요지부동하던 월스트리트는 4월 트럼프의 관세 발표 후에야 충격을 받았다. 불과 이틀 동안 S&P 500 지수에서 시가총액 5조 달러 이상이 사라졌다. 트럼프는 2018~2022년 첫 임기 때는 주식시장에 집착했었지만, 이번에는 기자들이 시장에 대해 묻자 무심하게 '확인해보지도 않았다'고 답했다. 월스트리트가 빨간 불로 도배되기 시작했다.
블랙록, 아폴로, JP모건 등 유력 금융기관들의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백악관의 메시지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백악관 대변인 캐롤라인 레빗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아침 월스트리트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말씀드립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믿으십시오.”
미국에서 연봉이 가장 높은 직종인 금융계 종사자들, 변호사들, 기업 경영자들에게 점차 깨달음이 찾아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정책 때문에 금융시장에 균열이 가더라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히 있었다. 공개적인 발언을 하는 대신, 관세율이 너무 높고 그 계산 방식이 불투명하고 변덕스럽다는 점에 대해서 그저 은밀히만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빌 애크먼, 댄 로엡, 클리프 애즈니스 같은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들은 X(구 트위터)를 통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트럼프의 전 상무장관 윌버 로스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관세를 산정하는 방식으로는 꽤나 비정통적인 접근입니다.”
좀 더 노골적인 발언도 나왔다. 스카이브리지 캐피탈의 창립자이자 트럼프 1기 행정부 초기에 백악관 공보국장을 잠깐 맡았던 앤서니 스카라무치는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글로벌 무역 체제를 끝장내고 미국을 약화시키려 하고 있어요. 그는 미국을 세계로부터 브렉시트시키고 싶어 하는 거죠. 이건 미국 역사상 가장 어리석은 경제정책입니다.”
임기 초반에 기업계의 엘리트들은 반독점 규제 완화나 대규모 감세 같은 혜택을 얻기 위해서는 관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트럼프가 무역 전쟁을 확대하며 월스트리트를 흔들려는 태세를 보이자 그들의 신뢰는 크게 흔들렸다. 이제는 기존의 비즈니스와 금융 예측 모델들이 쓸모없어졌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 상태에 있는지 아시나요? 지금 투자를 한다는 건 슈퍼볼 경기의 승부에 돈을 거는 것과 같아요. 어느 팀이 뛰는지도, 선수들이 누군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죠.” 오크트리 캐피탈의 공동 창립자인 하워드 마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투자는 대개 ‘미래는 과거와 비슷할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하는데, 지금은 그 전제가 평소보다 훨씬 더 불확실하게 느껴집니다.”
트럼프가 금융권을 믿지 않는 이유
트럼프는 뉴욕 부동산 개발업자의 아들이자 명문 와튼비즈니스스쿨 출신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월스트리트와의 개인적 관계를 다져왔다. 하지만 그 관계는 불안정했다.
그를 잘 아는 이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월스트리트의 최고위층으로부터 따돌림 당한다고 자주 느껴왔다. 대통령 측근 한 명은 실명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이렇게 전했다. “1980년대에 트럼프의 부동산 프로젝트에 자금이 필요했을 때 금융계 엘리트들은 그를 외면했었죠. 트럼프를 한낱 셀럽 정도로 가볍게 보며 조롱하곤 했습니다. 트럼프는 월스트리트의 대통령이 될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첫 임기 때의 트럼프는 금융계 인사들을 행정부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그는 골드만삭스 출신의 스티븐 므누신과 게리 콘을 각각 재무장관과 수석 경제 고문으로 임명했다. 또한 트럼프는 ‘전략 및 정책 포럼(Strategic and Policy Forum)’이라는 그룹을 조직했는데, 여기에는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블랙록의 래리 핑크, 블랙스톤의 스티븐 슈워츠먼 같은 월스트리트의 거물들이 포함됐다. 트럼프는 이들과 자주 회동했으며 그 장면은 종종 TV 카메라의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임기가 흘러가며 그들과의 관계도 점차 틀어졌다. 2021년 1월 6일 발생한 워싱턴DC 국회의사당 폭동은 두 세력 간의 완전한 결별을 상징하는 사건이 됐다. 트럼프의 비즈니스 포럼을 이끌었던 슈워츠먼은 그 사건을 “끔찍하다(appalling)”고 평가했다. 다른 금융인들도 그와 비슷한 비판을 내놓았고, 업계는 트럼프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2022년, 슈워츠먼은 “공화당이 새로운 세대의 지도자들에게로 방향을 틀 때가 됐다”고 말하며,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트럼프 측 인사들은 금융계 인사들의 이 같은 태도 변화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트럼프와 가까운 한 베테랑 금융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들은 트럼프를 한 번도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어요. 지난 4년간 트럼프가 판사들한테 공격받았을 때 월스트리트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선거운동 기간 동안 월스트리트는 누구를 선택했나요? 카멀라 해리스였지, 트럼프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트럼프가 지금 월스트리트를 신경 써야 하죠?”
그러다가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서 승산을 잡자 금융계의 태도는 빠르게 바뀌었다. 슈워츠먼은 그해 5월 다시 지지를 표명하며 “트럼프에게 투표하는 건 변화에 투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이들도 그 뒤를 따랐다.
트럼프 취임과 관세 발표 전후 S&P 지수의 움직임
2024년 대선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뒤, 골드만삭스 CEO 데이비드 솔로몬은 트럼프의 친성장적 정책 기조에 대해 “상당히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제이미 다이먼은 새로운 관세 조치를 국가 안보 차원의 대응이라고 옹호하며, CNBC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그냥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트럼프의 경쟁자들을 지원했던 사모펀드 회사들도 정치적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트럼프의 취임식 기금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다.
그러나 이 중에서 현재 트럼프에게 직접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 투자사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트럼프는 자기 말만 되풀이해주는 사람들로 자신을 둘러쌌습니다. 베센트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인물도, 반대 의견도 없습니다. 게리 콘이 균형을 잡아주던 시절과는 정말 큰 차이예요.”
트럼프는 자신에게 충분한 충성을 보이지 않은 인물들을 노골적으로 겨냥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런 보복 본능은 유력 로펌들과의 갈등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파이낸셜타임스 추산에 따르면, 폴 와이스, 스캐든 압스 등 유명 로펌들은 행정부가 선호하는 사안에 대해 거의 10억 달러에 이르는 법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라고 강요받고 있으며, 백악관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자신들의 비즈니스가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특히 CEO들은 말을 조심하고 있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백악관의 질책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트럼프를 두려워합니다. 자기 은행이나 자기 가족이 법적 조치의 대상이 되는 걸 원치 않죠. 그리고 이사회로부터 ‘입 다물라’는 지시를 받은 상태입니다.” 스카라무치는 이렇게 말한다. “게다가 지금은 여러분을 변호해줄 로펌조차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요 로펌들이 모두 다 대통령에게 혼쭐이 났거든요.”
JP모건의 시장 및 투자 전략 부문 의장 마이클 젬발레스트도 이와 같은 ‘위축 효과(chilling effect)’를 이달 고객 대상 프레젠테이션에서 넌지시 언급했다. 그는 발표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이번이 처음입니다. 시장과 경제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설명할 때 단지 내용만 고려하는 게 아니라, 그 말이 우리 회사, 그리고 동료들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생각해야 했던 건 말이죠. 요즘은 사람들의 의견이나 발언이 부당한 방식으로 해석되어 책임을 추궁당하는 시대니까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는 지난주 뉴욕 이코노믹클럽 행사에서, 트럼프가 스캐든 압스 같은 로펌(블랙록이 자주 이용하는 법률 자문사)을 행정명령으로 압박한 것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죠.” 이러한 '위축 효과'는, 트럼프라는 인물이 갖는 예측 불가능성과 거래 중심의 리더십이 갖는 특성상, 외부 영향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트럼프를 잘 아는 사람들은, 금융권 사람들이 이번 행정부의 정책 동기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트럼프는 여전히 법인세 인하, 규제 완화, M&A 촉진 같은 걸 하고 싶어 해요. 하지만 그가 그런 정책을 펴고자 하는 이유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사람들, 즉 뉴욕 사람들은 지도에서 본 적도 없는 지역(쇠락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트럼프의 또 다른 측근은 이렇게 요약했다. “그는 대중을 위한 포퓰리스트입니다.”
그런 트럼프도 금융권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지난 주 트럼프가 관세 부과 조치를 일부 철회하기로 결정한 것은 월스트리트의 거물들이 요구해서가 아니었다.
4월 9일 아침, 글로벌 금융 시장은 자유 낙하를 시작했고 트럼프는 그 상황을 주목했다. 그는 나중에 “채권 시장이 조금 예민해지고, 조금 두려워하고 있었다”고 말하며, 자신이 이런 혼란 상황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유명한 금융계 인사 한 명이 그에게 메시지를 전하긴 했다. JP모건의 CEO 제이미 다이먼이다. 그는 9일 아침 대통령에게 무역 전쟁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부드럽지만 설득력 있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다이먼도 마라라고 저택이나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개인적인 대화를 나눈 것이 아니었다. 그는 폭스TV 비즈니스 뉴스에 출연해 그런 말을 했다.
시장의 상황은 위협적인 수준에 이르렀다. 전 미국 재무장관이자 하버드대 전 총장인 로렌스 서머스는 이렇게 말한다. “채권 시장이 위험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월스트리트의 모든 이들을 놀라게 만든 패턴 변화였습니다. 미국 국채가 갑자기 신흥시장의 채권처럼 거래되는 패턴을 보였고, 그와 동시에 달러는 약세를 보였습니다."
채권 시장의 붕괴는 일본과 미국의 헤지펀드들이 미국 국채에 대해 ‘베이시스 트레이드’를 청산하면서 일어났다. 이 전략은 오랫동안 위험하다는 경고를 받았던, 아주 복잡하고 고도로 레버리지된 전략이었다. 한편, 트럼프의 공격적인 태도에 놀란 해외 투자자들도 미국에서 자금을 빼기 시작했다.
다른 곳에서도 균열이 드러났다. 낮은 신용등급을 가진 기업들과 프라이빗에쿼티 펀드들이 주로 사용하는 대출 시장은 얼어붙었고, 심지어 블루칩 대기업들도 채권 시장에서 배제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매우 드문 일이다.
일주일 간의 혼란 후, 대통령은 상호 보복관세에 대해 부분적인 중단을 선언했다. 트럼프와 가까운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는 월스트리트가 타격을 입는 것은 괜찮다고 보지만, 전체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트럼프가 시장에 의해 마음을 돌리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운명이 여전히 금융 엘리트들의 운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비록 그들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밀려나 있더라도 말이다.
트럼프는 글로벌 무역을 재편하려고 하지만 동시에 금융 시스템 관련해서 또다른 지뢰밭을 마주하고 있다. 미국의 자본(투자) 산업은 그 규모가 13조 달러에 이르며 10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을 고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산업은 부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수년 간 부채 레버리지가 상승하며 중소기업들을 취약하게 만들었다. 중소기업들은 금융 충격에 매우 위험하게 노출되어 있다.
성장이 둔화되고 인플레이션이 상승함에 따라, (중소기업들을 소유한) 프라이빗에쿼티 회사들은 비용 절감과 일자리 축소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미국의 경제적 고통을 더 깊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채무 불이행율은 상승하고 있으며, 여기서 더 급증해 대규모 파산의 물결을 촉발할 수 있다. 이러면 민간 시장에 많은 투자를 한 대형 연기금들도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경제적 고통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4월 5일 소셜 미디어에 이렇게 게시했다.
“이것은 경제 혁명이다. 우리는 이길 것이다”
(THIS IS AN ECONOMIC REVOLUTION AND WE WILL WIN).
또 백악관은 월요일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사결정을 이끄는 유일한 관심사는 미국 국민의 최선의 이익”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은 이미 반발하고 있다. 채권 수익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달러는 급락했으며, 그의 재무적 기반은 점점 더 불안정해 보인다.
로렌스 서머스는 이렇게 말한다. “안정성의 확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명확합니다. 4월 10일과 11일에 달러가 급락했고, 채권 금리는 매우 높은 수준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많은 악재가 있을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변동성은 커 보인다. NYU 스턴 경영대학원의 경제학 교수인 조셉 파우디는 이렇게 말한다. “‘해방의 날’은 월스트리트가 이 행정부가 무엇을 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신뢰도와 자신감에 근본적인 타격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금융권 사람들은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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