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영화들이 전쟁을 키웠다'

2025-03-09





우크라이나인 알렉산더 로드니안스키는 러시아에서 여러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했다. 요즘 그는 자신의 작품들이 푸틴의 전쟁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다.


2025년 2월 15일

맥스 세든 FT 모스크바 지국장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 며칠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던 영화 제작자 알렉산더 로드니안스키(Alexander Rodnyansky)는 러시아 국방장관이 그를 "러시아 문화계에서 쫓아내라"고 요구했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로드니안스키는 푸틴의 전쟁을 강하게 비난한 바 있다. 이 얘기를 들은 바로 그날, 그는 가장 소중한 트로피 몇 개만을 가방에 챙겨 공항으로 떠났다.


이제 그는 러시아로 돌아갈 수 없다. 부재 중에 8년 반의 징역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정치적 증오"와 러시아군에 대한 "가짜 뉴스" 유포라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로드니안스키는 서구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제시카 차스테인이 주연하고 미셸 프랑코가 감독한 작품 '드림스'는 지난 달 베를린 영화제에서 초연됐다. 동시에 그는 러시아에서 만들었던 자신의 작품들을 돌아보고 또 푸틴 치하에서 러시아가 걸어온 어두운 길을 되돌아보고 있다.


"(전쟁에 대한) 책임의 상당 부분은 영화와 TV에게 있습니다." 로드니안스키가 말했다. "영화와 TV가 구축한 세계관 속에서, 러시아 사람들은 실제 인간들보다 가짜 영웅에게 더 공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로 63세인 로드니안스키는 최근 '러브리스'라는 책을 출간했다. 푸틴 통치 20년 동안 러시아에서 본인이 제작했던 9편의 영화를 재평가하는 내용이다. 이 책은 그의 영화들을 통해 러시아 사회의 냉소주의와 분노, 편집증, 무관심을 탐색한다. 그는 이런 요소들이 이번 전쟁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었음을 깨달았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그런 세계의 일부가 된다는 것이 권력자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했다는 점입니다," 로드니안스키가 말했다.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우리보다 더 똑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타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로드니안스키는 1961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태어나 영화 및 TV 제작자로 일해왔다. 그는 2002년에 러시아 모스크바로 이주해 CTC라는 엔터테인먼트 채널을 이끌었다. 당시는 푸틴이 통치하는 러시아가 국제 유가의 상승에 힘입어 새롭게 부활하고 있을 때였다. 


역설적으로 2000년대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보다 그에게 더 안전한 나라였다. 우크라이나에서 그가 공동 소유했던 채널 1+1의 뉴스 보도 때문에 당시 우크라이나의 권력을 잡고 있던 친러 정권으로부터 지속적인 정치적 압력을 받았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의 CTC TV 시청자들은 젊고 성공 지향적이었다. 이 시청자들은 1990년대 러시아 TV를 지배했던 과두 재벌들 간의 끊임없는 비방에 지쳐 있었다. 주로 서방의 투자를 받은 CTC 채널은 새롭게 번영하는 푸틴 정권 하에서 돈을 벌고 싶어했다.


 "당시 러시아 시청자들은 TV에서 정치 관련된 것은 보고 싶지 않아했고, 정치로부터 최대한 멀어지고자 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히트작들을 만들어줬죠."


<제 9중대> (2005)


그렇게 해서 탄생한 로드니안스키의 첫 러시아 블록버스터는 '제 9중대'(2005)다.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 스타일의 영화로,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에서 싸우는 소련군 부대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영화는 우크라이나 군에서 빌려온 탱크로 크림반도에서 촬영됐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한 나라에 살며 함께 싸웠던 과거를 향수 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이 영화의 촬영을 진행하던 중 로드니안스키는 표도르 본다르추크 감독에게 자신들이 국내용 히트작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탈 수 있는 영화를 만들 것인지 정하자고 했다. 그러나 후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병사들"이 아프간 민간인들을 죽이는 장면이 필요했다. 소련 침공 당시 약 150만 명의 아프간 민간인들이 사망했다. 로드니안스키는 본다르추크 감독이 러시아판 마이클 베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본다르추크는 이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제 9 중대'는 구 소련권 외부에는 거의 알려지지 못했지만 러시아의 아프간 전쟁 참전용사들에게 상영됐을 때는 40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또 푸틴도 크렘린 관저에서 이 영화를 시청하고 호평했다.


"당시에는 소련 시대의 끝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한 반전 영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보면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전우애를 묘사했거든요. '우리 병사들'에 관한 영화니까요." 로드니안스키가 말했다. "영화 속에서 국가는 나쁘게 그려지고, 장군들은 병사들을 전방에 보내고 잊어버리는 악당들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병사들은 서로를 위해 계속 싸웁니다. 이런 문화적 코드는 전쟁을 정당화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요."


영화 개봉 1년 전에는 우크라이나에서 민주주의 오렌지 혁명이 일어났다. 이 일은 로드니안스키와 러시아 당국의 관계를 어색하게 만들었다. 혁명 당시 키이우에서 친러 정권의 부정선거에 대한 시위가 벌어졌었는데 로드니안스키는 1+1 채널의 시청자들에게 정권의 검열 방침을 따랐던 것에 대해 방송에서 사과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그는 푸틴이 참석한 '제 9중대'의 상영회에서 노골적으로 제외됐다. 2008년에는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러 인사가 러시아의 메드베데프 대통령 대행에게 그에 대해 불평을 했고 결국 로드니안스키는 CTC에서 쫓겨나게 됐다.


그러나 러시아 대중은 로드니안스키에게 또다른 히트작을 원했다. 그래서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오락영화 '스탈린그라드'를 만들었다. 이 영화는 3D로 촬영했고 2013년 러시아 박스오피스 기록을 세웠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시사회에는 아이맥스 영화사 대표와 체첸 군벌 람잔 카디로프 같은 인물들이 참석했다.


<스탈린그라드> (2013)


당시 로드니안스키는 러시아가 여전히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우리 쪽에게 투표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많은 젊은 중산층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결국 러시아에서도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정상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가 제작한 다른 영화 '러브리스'(2017)는 그런 젊은 관객들에게 어필했다. 이 영화는 러시아의 만연한 부패와 도덕적 타락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제시했다. 실종된 소년을 찾는 자원봉사자들과 그 소년 부모의 공허함을 대비시키며, 수색이 포기된 지 몇 년 후에도 그들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국영 텔레비전의 선전을 무심하게 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 모스크바의 상업적인 화려함이 우크라이나에서 이미 전개되고 있던 공포에 눈을 멀게 하고 그들 내면에 무자비한 공허함을 키웠다는 비판을 담았다. 이 영화는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가 감독했고, 2017년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점점 더 불안한 타협이 필요했다. '러브리스'를 만든 즈비아긴체프 감독의 이전 작품 '리바이어던' 역시 2014년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었지만,  러시아 사회의 부패와 교회에 대한 비판적 묘사 때문에 러시아 당국의 비판을 받았다. 그 후 러시아 국영 텔레비전은 로드니얀스키에게 속죄할 것을 요구했다.


<리바이어던>


여기서 속죄라는 건, 러시아 문화부 장관 블라디미르 메딘스키가 직접 쓴 청소년 역사책을 기반으로 TV 시리즈물을 제작하는 것을 의미했다. 메딘스키 장관은 '리바이어던'의 가장 큰 비판자였다. '리바이어던'의 주연배우 알렉세이 세레브랴코프도 '속죄' 차원에서 이 시리즈의 주연 배우로 참여하기로 동의했다. 그 역시 언젠가 러시아의 국가 이념이 "힘, 뻔뻔함, 무례함"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어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를뻔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TV 시리즈는 너무 형편없었다. 얼마나 재미가 없었는지, 원작자 메딘스키 장관은 크레딧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려고 했다. "저는 이 게임의 규칙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프로그램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가능한 한 빨리 그 작품을 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로드니안스키의 말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엔 그런 식의 타협조차 불가능해졌다. 로드니안스키나 즈비아긴체프와 같이 전쟁을 비판하고 러시아를 떠난 사람들에겐 말이다. (즈비아긴체프 감독은 망명 상태에서 새 영화 '주피터'를 촬영 중이나, 로드니안스키가 제작자로 참여하진 않았다.) 그러나 그와 함께 일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은 푸틴과 화해할 방법을 찾았다고 로드니안스키는 말한다. '제 9중대'에 출연했던 소슬란 피다로프라는 배우는 심지어 군에 입대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직접 싸웠다. 


"어느 시점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순응을 멈추죠. 그런데 다른 어떤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잘못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습니다. 다시 일어나서, 스스로를 설득하고, 계속 그렇게 살아갑니다."


로드니안스키가 품었던 모든 환상은 전쟁 초기에 무너졌다. 러시아 군의 공습이 쏟아진다고 키이우에 살던 그의 아들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당시 그의 아들은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경제 고문으로 일하고 있었다. 같은 날, 젤렌스키의 참모 중 한 명은 로드니안스키에게 '푸틴을 설득해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러시아 엘리트를 알고 있냐'고 물었다. 로드니안스키는 이들에게 전 첼시 FC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를 소개시켜줬다. 실제로 아브라모비치는 그해 봄에 있었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 협상에서 중요한 중개자 역할을 수행했다. 한편 그 협상장에 나온 러시아 대표단은 메딘스키 문화부 장관이 이끌었다. 마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가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 때문이라고 강조하듯이 말이다.


러시아의 주장처럼,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가 과거의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이 전쟁을 벌인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은 곧 모든 러시아인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로드니안스키는 다르다. 그는 해외로 망명한 러시아 예술가들을 위한 지지를 모으고 있다. 또  본다르추크 감독처럼 전쟁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지도 않는다.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은 이 전쟁을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 사이의 전쟁으로 봅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것은 자유와 전체주의 사이의 전쟁입니다."


로드니안스키는 또한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인기 하락을 지적한다. 젤렌스키는 전쟁 초기 단계에서 당당한 리더십으로 서방을 사로잡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특히 미국으로부터의 지원을 모으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말들은 점점 가치를 잃어갑니다. 완벽하게 작동하던 것들이 이젠 전혀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그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우크라이나에서 평화를 위한 기회의 창을 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아마도 고통스러운 양보를 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크라이나는 트럼프를 찍어준 미국 유권자들에게 왜 그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해야 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그는 말한다.


"'우리가 당신들의 가치를 위해 고통받고 있으며 우리 모두가 함께 하고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고립주의자들에게 통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유럽이 모든 국제법과 규범과 안정보장 약속을 위반하는 침략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모두가 그런 삶에 익숙해졌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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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알렉산더 로드니안스키 텔레그램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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