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휴전 현장을 가다

2025-02-21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으로 휴전에 합의한 지 1달여 지났습니다. 오호츠크 뉴스레터에서도 이스라엘 상황을 전하는 외신 뉴스를 종합해 정리해드리고 있지요. 그럼 전쟁이 있었던 현장의 모습은 어떨까요? 정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vs. 폐허가 되어버린 가자 지구. 오호츠크가 근처까지 가봤습니다.



나무위키


배경설명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나라 안에 팔레스타인인들의 자치지역이 2개 들어있는 형태입니다.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가 바로 그 아랍인 지역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1947~1967년 독립전쟁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내 이 두 구역으로 나눠서 몰아넣었기 때문입니다. 집도 땅도 일자리도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유대인들에게 악감정을 품게 된 결정적 사건입니다.


두 팔레스타인인 자치구역 중 왼쪽 구석에 있는 가자 지구는 길이 40km 정도의 좁은 땅인데 무려 220만이나 되는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습니다. 이곳을 통치하는 테러조직 하마스는 2023년 10월 7일 오전 가자 지구 밖으로 진격해서 이스라엘 군과 민간인들을 급습했습니다. 수천 명의 희생자가 난 며칠 간의 전투 끝에 하마스 대원들은 다시 가자 지구 안으로 쫓겨들어갔지만 이스라엘 군인과 민간인 인질 250여명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하마스에 대해 무자비한 보복을 실시합니다. 1년 넘게 이어진 공중폭격과 지상군 진격에 의해 가자지구 건물 상당부분이 파괴됐습니다. 하마스 대원은 물론이고 가자 지구의 일반인들도 수만 명 죽었습니다.


현재 가자 지구는 구호단체를 제외하면 외부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습니다. 대신 이스라엘쪽 국경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볼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하마스 대원들이 습격해 민간인들이 죽고 전투가 벌어졌던 이스라엘쪽 국경 마을들도 들리게 되어있습니다. 


저희는 여러 업체 중 홈페이지 정보를 볼 때 상업적/애국주의적 색채가 가장 적은 곳을 골랐습니다. 2월 19일(수) 이뤄진 투어에는 가이드 겸 운전사와 오호츠크 일행 2명, 그리고 이스라엘 거주 중인 유대계 미국인 1명 등 총 4명이 참여했습니다. 




출발



이번 투어를 안내한 현지 가이드는 해박한 역사 지식과 현지 정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이지만 이스라엘에 너무 편향적이지는 않게 일행을 이끌었습니다.



수도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자동차는 남서쪽으로 40분 정도 달려 가자지구 접경지역에 도착했습니다. 가는 동안 보이는 고속도로 양쪽은 서안지구(West Bank)라 불리는 또다른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입니다.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인 거주지역에 둘러쌓여있는 셈입니다. 과거 냉전시대 독일 서베를린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가자지구 북쪽 국경지대입니다. 철조망 양쪽으로 300~400미터 정도는 주민들이 들어올 수 없는 킬 존(kill zone)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DMZ 되겠습니다. 당연히 건물도 못 짓습니다. 킬 존 너머로 가자지구의 건물들이 보이는데 상당수 파괴되어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휴전이 된 지 한 달도 넘었는데 아직도 검은 연기들이 피어오릅니다.


가이드에 따르면 이 날부터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의 폐허를 정리하기 위한 중장비의 반입을 처음으로 허용했다고 합니다. 또 사망한 인질들의 시체 교환도 다음 날 예정되어 있어서 몇 대의 차량들이 가자지구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군인들도 있었으나 촬영은 하지 않았습니다.



노바 뮤직 페스티벌 학살 현장



그 다음 찾은 곳은 하마스 대원들이 약 200명의 음악축제 참가자들을 학살한 현장입니다. 레임(Re'im)이라는 마을 근처에 있습니다.


이곳은 원래 이스라엘 사람들이 즐겨 찾는 피크닉 명소라고 합니다. 특히 2~3월에 이스라엘의 국화인 붉은 아네모네가 지천으로 피어서 소풍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023년 10월 7일 당시 이곳에서는 노바 뮤직 페스티벌(Nova Music Festival)이라는 노천 음악 축제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일찍 무장한 하마스 대원들이 국경을 넘어 들이닥쳤고 많은 축제 참가자를 사살했습니다. 가운데 사진에 보이는 분은 샤니 룩 이라는 이름의 독일-이스라엘 이중국적자이며 전쟁 초기 비극적인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아마도 이 전쟁의 사망자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분인 것 같습니다.



미처 도망가지 못한 음악 축제 참가자 15명은 이 쓰레기 컨테이너 안에 숨었습니다. 바깥에서 수백 명이 사살당하는 동안 3시간이나 발각되지 않고 숨어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이 도착하기 불과 1시간 전인 오전 11시, 단 한 명의 하마스 대원이 컨테이너 문을 열었습니다. 그가 총을 난사해 12명이 숨지고 3명이 크게 다쳤습니다.



희생자들은 쓰레기통 안에 숨어있으면서 핸드폰으로 자신들의 상황을 사진과 메시지로 계속 외부에 알렸습니다. 하지만 가자 접경 여기저기에서 전투가 벌어지느라 군대가 이곳까지 도움이 도착하는데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이었습니다.



음악축제 참가자 중에는 재빨리 주차장으로 도망쳐 자동차를 타고 북쪽으로 도망가려 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하마스 대원들은 주요 국도를 미리 점령해두고 다가오는 차들을 향해 사격했다고 합니다. 여기는 그 때 파괴된 자동차들을 모아둔 '자동차 묘지'입니다.


몇몇 자동차들은 QR코드가 담긴 안내판을 배치해 차주가 언제 어떻게 숨졌는지를 읽어볼 수 있게 해두었습니다. (예시)



이 자동차 무덤은 일종의 안보 교육장으로도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많은 현지인들 특히 청소년들이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와서 안내원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 청년들 대부분은 곧 군대에 가게될 것입니다. 일부는 가자지구나 서안지구, 레바논 전선 등에 투입될 것입니다. 항상 전쟁 중인 나라입니다.




스데롯





이곳은 스데롯(Sderot)이라는 국경 마을입니다. 하마스가 점령한 가장 큰 마을이자 가장 격렬한 전투가 일어났던 곳이기도 합니다. 하마스 대원 십수 명과 이스라엘측 군경 서른 명 이상, 민간인 5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파악됩니다.



스데롯은 평소에도 하마스의 로켓이 자주 떨어지던 곳이라 이렇게 학교 건물 위를 방공 구조물로 덮어둘 정도입니다. 길거리엔 거의 100미터 간격으로 미사일 대피소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하마스가 육로로 쳐들어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군은 국경에 CCTV를 촘촘히 박아두었고 여기 스데롯 근처에 있는 통신 기지에서 그 화면들을 24시간 모니터링했다고 합니다. 모니터링 임무는 주로 여성 군인들이 맡았습니다. 이들은 전쟁 1주일 전부터 국경지대에서 이상한 낌새를 채고 상부에 보고했으나 별다른 지시가 없었답니다. 결국 10월 7일 아침 전격적으로 들이닥친 하마스 부대가 이 CCTV 모니터링 시설을 빠르게 점거하고 근무 중이던 군인들을 사살하거나 포로로 잡았습니다. 최근 하마스-이스라엘 인질 교환에서 이스라엘 여군들이 여럿 풀려났는데, 그들이 바로 그 모니터링 업무를 하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내용은 이스라엘 군과 정부에게 너무나 치욕적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언론에는 잘 보도되지 않았다 합니다.



스데롯 시내 곳곳에는 이렇게 전투의 흔적과 희생자를 추모하는 꽃들이 놓여있습니다. 전쟁 발발 후 이스라엘 정부는 스데롯을 비롯한 국경마을에서 시민들을 철수시켰고 수 개월 동안 안전지대의 호텔에서 머물게 했습니다. 복귀가 가능해진 후에도 돌아오지 않은 시민들이 많아 마을엔 빈 집이 많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런 접경지역 인구를 늘리기 위해 월세 지원, 일자리 제공과 같은 각종 지원책을 씁니다.




이곳은 스데롯 경찰서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추모공원입니다. 하마스 대원들이 가장 먼저 들이닥친 곳입니다. 아직 상황파악을 못 하고 있던 경찰들과 시민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서 건물을 점거했습니다. 워낙 튼튼하게 지어진 건물이라 여기 들어간 하마스 대원들은 이스라엘 군의 반격을 며칠 동안이나 막아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군은 인질의 희생을 감수하고 경찰서 건물을 폭격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추모공원을 만들었습니다. 역시나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견학 겸 추모를 위해 이 곳을 찾은 모습입니다. 



추모공원 한켠에서는 벤치 위에 추모의 글을 새기는 예술가가 있었습니다.




가자지구


투어의 마지막 순서로, 가자지구를 더 가깝게 볼 수 있는 언덕 위를 찾았습니다. 이런 지역은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군에서 출입을 막을 수도 있다는데 이날은 운 좋게도 통제가 없었습니다.



하마스 침공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 대해 대대적인 폭격을 진행했습니다. 남북 길이 40km의 가자지구 상당부분은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고 합니다. 특히 국경과 가까운 곳일수록 그렇습니다. 마침 언덕 위에 망원경(유료)이 설치되어 있어서 들여다봤습니다.




망원경으로 본 가자지구의 모습은 너무나 충격적이라 숨이 멎을 정도였습니다. 일부분만 이런 게 아니라 시선이 닿는 모든 곳이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두 눈으로 봐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입니다. 저 안에는 아직 수습하지 못한 시신들도 수만 구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날부터서야 중장비로 철거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앞서서 이스라엘 측의 피해 지역을 둘러보며 참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가자지구의 모습을 보니 이건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물론 2023년 10월 7일 경계를 넘어와 민간인을 무차별 살해/납치한 것이 하마스였고 이스라엘은 보복을 한 것이니 누가 더 잘못했냐를 따지는 건 어려운 문제입니다. 


사진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폐허 사이사이로 새로 올라간 텐트촌들도 보였습니다. 또 무너진 건물 사이 옥상에 빨래를 널어둔 집들도 보았습니다. 이런 절망의 폐허 속에서도 사람들이 살 길을 찾아나간다는 게 놀랍습니다.


한편으로는 그런 인간의 생존 본능이 가자지구의 앞날을 더욱 어둡게도 만듭니다. 1947년 처음으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가자지구로 몰아넣었을 때 여기 인구는 30만~40만 명 정도였는데, 지금은 220만까지 불어났습니다. 땅도 좁고 산업기반 시설도 부족한데 어떻게 인구가 불어났을까요?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구호 지원으로 인해 먹을 것이나 연료가 부족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라 합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노는 사람이 많은데 국제 구호 덕분에 의식주만큼은 안정적으로 제공되니 인구가 빠르게 늘어난 것입니다. 또한 시민들의 경제력이 없고 권력은 구호품을 나눠주는 소수의 지배층에게 집중되니 하마스 같은 과격 단체가 세력을 키우기에 좋은 환경입니다.


즉 단기적인 도움의 손길이 장기적으로는 가자지구의 상황을 더욱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는 게 가이드의 의견이었습니다. 오호츠크도 동의합니다. 가자지구 팔레스타인들을 위해 구호물품 지원이 아닌 뭔가 새로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 끝


음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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