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북인도를 지배한 무굴제국의 4대 황제 자한기르는 사자 사냥과 과도한 음주를 즐겼다. 그는 또 식물을 사랑하고, 관세를 싫어했다.
2025년 4월 5일

자한기르 황제 (1610년 경 마노하르 작)
꽃과 식물, 정원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국가지도자가 과연 있을까?
지도자들의 결정은 자연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곤 하니, 어쩌면 실제로 자연을 다루어본 경험이 국정 운영에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삽을 든 마크롱, 마리골드 국화를 심는 모디를 상상해보자. 작년에 가봤던 아일랜드 둔베그에 있는 트럼프 호텔과 골프장은 식재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세심하게 정원을 가꾼 것이 도널드 트럼프 본인은 아니었으리라.
지금 런던에서 예외적인 지도자 한 명에 대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바로 자한기르다. 그는 1605년부터 1627년까지 인도를 통치한 인물이다. 외부 세계에서는 그가 속한 왕조를 ‘무굴(무갈, Mughal)’이라 부르지만 이들 스스로는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시작한 티무르 대왕의 후예라 해서 '티무리드' 왕조라고 불렀다. 자한기르라는 이름도 ‘세계를 거머쥐는 자’라는 뜻이다.
현대적인 야망이 느껴지지만, 사실 자한기르는 그 이름에 걸맞은 길을 걷진 않았다. 대신 그는 전혀 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다. 요즘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A)에서 열리고 있는 훌륭한 전시 <The Great Mughals 위대한 무굴>에 그의 취향이 잘 담겨 있다. 전시는 5월 5일까지 이어지는데, 자한기르 황제가 꽃과 가드닝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잘 볼 수 있다. 현대의 어떤 국가지도자들보다도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말이다.
자한기르의 자연 사랑은 그가 후원해 제작된 세밀화와 패브릭, 카펫 속에 피어난 꽃과 식물들에서 엿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붉은 양귀비꽃 무늬가 이중으로 들어간 으리으리한 카펫이 눈길을 끈다. 무굴 제국의 화가들은 꽃을 그릴 때 지극 정성을 들였기에, 전시된 작품 속의 꽃들은 지금 우리가 봄철의 정원에서 만나는 꽃들과도 꼭 닮았다. 정말 세세하고 정교하게 묘사돼 있다. 다만 전시회의 해설은 이를 그저 ‘꽃무늬’ 또는 ‘식물 장식’ 정도로만 언급할 뿐이며 꽃들 각각의 이름은 밝히지 않아 아쉽다. 가드닝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번 전시에서 많은 것을 보고 스스로 설명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자한기르 황제는 당대 최고의 화가들을 아낌없이 후원했다. 그는 특히 만수르라는 화가를 “시대의 천재”, 아불 하산이라는 화가를 “세기의 천재”라고 불렀다. 두 사람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명예라 하겠다. 이 화가들은 식물을 실물로 보고 그릴 때도 있었지만 유럽에서 가져온 패턴북도 가끔 참고하곤 했다. 이번 V&A 전시에서는 그 좋은 예로, 플랑드르(네덜란드) 출신의 콜라에르트 가문이 제작한 식물 도감의 일부가 함께 소개된다. 수국과 카네이션이 그려진 이 페이지들은 자한기르가 통치하던 시기의 무굴 화가들이 모사한 것이다. 시클라멘 꽃을 묘사한 그림은 그 생김새가 너무도 엉뚱해, 아마도 프린트 된 책의 삽화를 보고 그린 것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이 멋진 전시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자료는 따로 있다. 자한기르 본인이 직접 남긴 글이다. 선조들을 따라 자한기르도 페르시아어로 자서전을 썼다. 이것이 바로 '자한기르나마(Jahangirnama)'다. 이 기록은 하버드대학교의 휠러 색스턴 교수가 아름답게 영어로 번역했고 워싱턴 DC의 프리어 갤러리에서 1999년 정성껏 책으로 만들어 출간했다.

이 책에서 자한기르는 여행 얘기와 자신의 신념, 그리고 개인적인 약점들까지 담담히 기록했다. 그는 나무와 꽃, 새와 동물을 관찰하는 눈이 유난히 섬세했다. 카슈미르 지방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문장에서는 시인의 감수성이 물씬 묻어난다. 그가 사랑한 카슈미르의 식물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두었고, 수 없이 많은 식물들이 피어나는 초원을 묘사했다. 그러면 화가 만수르가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내 마음도 어느새 그 분쟁의 땅을 다시 찾아가고 싶어 애틋해진다.
스스로를 “세계를 거머쥐는 자”라 불렀던 자한기르이지만, 그는 오늘날 특히 시의적절하게 읽히는 명령을 하나 내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있는 샤라라 정원에 있을 때 '모든 종류의 관세를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또 만일 자신의 후계자가 관세를 부활시킨다면 신의 진노를 피하지 못하리라고도 말했다. 이런 종류의 부과금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고 그는 봤다. 그는 이 칙령을 큼직한 돌판에 새겨, 샤라라 정원 안에서 가장 아꼈던 플라타너스 나무 두 그루 사이에 세워두었다.
물론, 마라라고 골프장에는 그런 비석이 없다.

자한기르는 사냥도 했고, 술도 즐겼으며, 시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열두 살부터 쉰 살까지 자신이 사냥한 야생동물이 총 2만8532마리라고 세어두었다. 악어 10마리와 사자 80마리도 포함해서다. 매 주 이틀, 그리고 매년 한 달 남짓은 고기를 먹지 않는 날로 정했지만 사냥을 금지한 적은 없었다.
그는 열여덟 살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점차 독주로 옮겨가다가 중년이 되어서는 아편도 하루에 두 번씩 복용하게 됐다. 흥미롭게도 그의 통치 원칙 12가지 중에는 술과 모든 종류의 중독성 물질을 금지하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만약 티무리드 왕조에도 코로나 락다운 같은 제도가 있었다면, 카슈미르의 정원에서 열리는 자한기르 본인의 파티는 분명 예외였을 것이다.
2023년 옥스퍼드대 영문학과의 난디니 다스 교수가 'Courting India'라는 책을 펴냈다. 여기서 그는 영국의 외교관 토머스 로(Thomas Roe)가 자한기르의 궁정에 머물렀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런데 정작 자한기르 황제의 회고록에는 이 토마스 로라는 인물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게다가 난디니 다스 교수는 다른 여행자 한 명의 이야기를 놓친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토마스 로와 같은 시기에 자한기르의 궁정을 방문한 사마르칸드 출신의 여행자, 일흔 살 무르티비(Murtibi)의 회고록이다. 무르티비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다. 자한기르 황제가 중앙아시아, 즉 자기 조상의 뿌리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인이다. 또 무엇보다도 시가 자한기르의 환심을 사기 위한 수단으로 얼마나 중요했는지도 잘 보여준다.
무르티비는 자한기르를 만나자마자 우아한 시 한 수를 바쳤고, 자한기르도 즉석에서 시로 답했다고 한다. 포도주와 아편도 그의 시심(詩心)을 흐리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는 그의 궁정, 그리고 혈통에 깊이 새겨진 특징이기도 했다. 반면 영국에서 온 토마스 로는 페르시아어를 할 줄도 몰랐으니 그런 자리에서 시를 읊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한기르의 아들, 샤 자한. (1617년 압둘 하산 작품. 종이 위에 수채 물감과 금.)
자한기르는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영원한 정원”이라 불렀다. 그는 이곳에서 수확되는 사프란 크로커스 꽃에 대해서도 썼다. 샤프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지역의 주요 작물이며, 필자도 1978년에 그 수확 장면을 직접 목격한 바 있다. 꽃의 향기가 너무 짙어 자한기르와 수행원들의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는 카슈미르의 인상적인 나무들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그 나무들 중 하나를 ‘노란 꽃이 피는 유다나무(Judas tree)’라고 번역한 부분은 의문이다. 왜냐하면 cercis로 알려진 유다나무의 꽃은 보통 분홍빛이거나 흰색이기 때문이다. 자한기르는 들판에 야생으로 피는 장미, 제비꽃, 수선화에 대해서도 말하고, 그 다음 차례로는 파란 자스민이 핀다고 썼다. 자신의 선조들처럼 카쉬미르의 달(Dal) 호수 주변에 정원을 조성하기도 했는데, 이 호수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인 풍경 중 하나이다.
자한기르는 과일에도 강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카슈미르의 체리를 극찬했는데, 그것이 카불 인근에서 자라는 "붉은 나비처럼 매달린" 체리들보다도 더 훌륭하다고 판정했다. 그는 카슈미르 체리를 번식시켜서 다른 정원에서도 재배할 수 있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자한기르는 식물학자가 아니었고, 현대적 의미의 생태학자도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과 특이함이었다. 예를 들어 이색적인 색깔의 꽃이나 속이 빈 나무 같은 것들이다. 또 어떤 정원사의 딸에게 턱수염과 콧수염과 가슴털이 난 것을 보고는 “너무도 이상한 일이어서 기록해 둔다"고 적기도 했다.
1620년 3월, 자한기르는 카슈미르에서 또 하나의 기묘한 식물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그것을 “기묘한 형태의 이상한 꽃”이라 묘사했는데, 꽃은 주황색이고 머리가 아래로 처져 있었으며 둘레에는 “파인애플처럼 생긴 잎”이 둘러싸여 있었다고 적었다. 이는 확실히 '왕관 프리틸라리아(Crown Imperial)'였던 것 같다. 봄철 영국의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렌지색 또는 노란색 꽃이다. 그는 또한 “집들의 벽과 안마당, 대문, 지붕에 튤립이 피어 살아나는”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어떤 모스크의 지붕 위에 피어난 검은 튤립까지도. 이 대목도 나는 공감이 간다.

작년 10월, 나는 올해 봄을 위해 옥스퍼드에 튤립 수백 송이를 심었다. 몇몇은 회색 다람쥐에게 뽑히고 갉아먹혔다. 자한기르의 시대에는 어땠을까. 아불 하산이 그린 훌륭한 그림 속에는 귀여운 갈색 다람쥐들이 나무 위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집에서도 화분에다 튤립을 심었는데, 어느 날 밤 초대받지 않은 몽작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 그걸 전부 먹어치웠다. 마치 눈높이에 있는 배달 음식을 쓱싹 하듯이 말이다. 내 정원에 야생동물이 제멋대로 돌아다닌다니! 나는 자한기르 황제가 돌아왔으면 한다. 사슴뿐 아니라 사자도 사냥하던 그가 내 튤립을 지켜주기를.
- FT
필자 로빈 레인 폭스는 옥스퍼드대 역사학과 교수이며 옥스퍼드대 뉴칼리지와 엑스터칼리지의 가든 마스터를 맡고 있다. 그는 1970년부터 매 주 파이낸셜타임스에 가드닝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 The Financial Times Limited 2025. All Rights Reserved. Not to be redistributed, copied or modified in any way. Okhotsk is solely responsible for providing this translation and the Financial Times Limited does not accept any liability for the accuracy or quality of the translation.
사진과 그림: Victoria & Albert Museum.
17세기 북인도를 지배한 무굴제국의 4대 황제 자한기르는 사자 사냥과 과도한 음주를 즐겼다. 그는 또 식물을 사랑하고, 관세를 싫어했다.
2025년 4월 5일
Robin Lane Fox
자한기르 황제 (1610년 경 마노하르 작)
꽃과 식물, 정원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국가지도자가 과연 있을까?
지도자들의 결정은 자연에 되돌릴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곤 하니, 어쩌면 실제로 자연을 다루어본 경험이 국정 운영에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삽을 든 마크롱, 마리골드 국화를 심는 모디를 상상해보자. 작년에 가봤던 아일랜드 둔베그에 있는 트럼프 호텔과 골프장은 식재가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세심하게 정원을 가꾼 것이 도널드 트럼프 본인은 아니었으리라.
지금 런던에서 예외적인 지도자 한 명에 대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바로 자한기르다. 그는 1605년부터 1627년까지 인도를 통치한 인물이다. 외부 세계에서는 그가 속한 왕조를 ‘무굴(무갈, Mughal)’이라 부르지만 이들 스스로는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시작한 티무르 대왕의 후예라 해서 '티무리드' 왕조라고 불렀다. 자한기르라는 이름도 ‘세계를 거머쥐는 자’라는 뜻이다.
현대적인 야망이 느껴지지만, 사실 자한기르는 그 이름에 걸맞은 길을 걷진 않았다. 대신 그는 전혀 다른 재능을 갖고 있었다. 요즘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V&A)에서 열리고 있는 훌륭한 전시 <The Great Mughals 위대한 무굴>에 그의 취향이 잘 담겨 있다. 전시는 5월 5일까지 이어지는데, 자한기르 황제가 꽃과 가드닝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잘 볼 수 있다. 현대의 어떤 국가지도자들보다도 더 흥미로운 방식으로 말이다.
자한기르의 자연 사랑은 그가 후원해 제작된 세밀화와 패브릭, 카펫 속에 피어난 꽃과 식물들에서 엿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붉은 양귀비꽃 무늬가 이중으로 들어간 으리으리한 카펫이 눈길을 끈다. 무굴 제국의 화가들은 꽃을 그릴 때 지극 정성을 들였기에, 전시된 작품 속의 꽃들은 지금 우리가 봄철의 정원에서 만나는 꽃들과도 꼭 닮았다. 정말 세세하고 정교하게 묘사돼 있다. 다만 전시회의 해설은 이를 그저 ‘꽃무늬’ 또는 ‘식물 장식’ 정도로만 언급할 뿐이며 꽃들 각각의 이름은 밝히지 않아 아쉽다. 가드닝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번 전시에서 많은 것을 보고 스스로 설명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자한기르 황제는 당대 최고의 화가들을 아낌없이 후원했다. 그는 특히 만수르라는 화가를 “시대의 천재”, 아불 하산이라는 화가를 “세기의 천재”라고 불렀다. 두 사람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명예라 하겠다. 이 화가들은 식물을 실물로 보고 그릴 때도 있었지만 유럽에서 가져온 패턴북도 가끔 참고하곤 했다. 이번 V&A 전시에서는 그 좋은 예로, 플랑드르(네덜란드) 출신의 콜라에르트 가문이 제작한 식물 도감의 일부가 함께 소개된다. 수국과 카네이션이 그려진 이 페이지들은 자한기르가 통치하던 시기의 무굴 화가들이 모사한 것이다. 시클라멘 꽃을 묘사한 그림은 그 생김새가 너무도 엉뚱해, 아마도 프린트 된 책의 삽화를 보고 그린 것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이 멋진 전시를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자료는 따로 있다. 자한기르 본인이 직접 남긴 글이다. 선조들을 따라 자한기르도 페르시아어로 자서전을 썼다. 이것이 바로 '자한기르나마(Jahangirnama)'다. 이 기록은 하버드대학교의 휠러 색스턴 교수가 아름답게 영어로 번역했고 워싱턴 DC의 프리어 갤러리에서 1999년 정성껏 책으로 만들어 출간했다.
이 책에서 자한기르는 여행 얘기와 자신의 신념, 그리고 개인적인 약점들까지 담담히 기록했다. 그는 나무와 꽃, 새와 동물을 관찰하는 눈이 유난히 섬세했다. 카슈미르 지방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문장에서는 시인의 감수성이 물씬 묻어난다. 그가 사랑한 카슈미르의 식물들을 하나하나 기록해 두었고, 수 없이 많은 식물들이 피어나는 초원을 묘사했다. 그러면 화가 만수르가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내 마음도 어느새 그 분쟁의 땅을 다시 찾아가고 싶어 애틋해진다.
스스로를 “세계를 거머쥐는 자”라 불렀던 자한기르이지만, 그는 오늘날 특히 시의적절하게 읽히는 명령을 하나 내린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있는 샤라라 정원에 있을 때 '모든 종류의 관세를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또 만일 자신의 후계자가 관세를 부활시킨다면 신의 진노를 피하지 못하리라고도 말했다. 이런 종류의 부과금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고 그는 봤다. 그는 이 칙령을 큼직한 돌판에 새겨, 샤라라 정원 안에서 가장 아꼈던 플라타너스 나무 두 그루 사이에 세워두었다.
물론, 마라라고 골프장에는 그런 비석이 없다.
자한기르는 사냥도 했고, 술도 즐겼으며, 시도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는 열두 살부터 쉰 살까지 자신이 사냥한 야생동물이 총 2만8532마리라고 세어두었다. 악어 10마리와 사자 80마리도 포함해서다. 매 주 이틀, 그리고 매년 한 달 남짓은 고기를 먹지 않는 날로 정했지만 사냥을 금지한 적은 없었다.
그는 열여덟 살 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점차 독주로 옮겨가다가 중년이 되어서는 아편도 하루에 두 번씩 복용하게 됐다. 흥미롭게도 그의 통치 원칙 12가지 중에는 술과 모든 종류의 중독성 물질을 금지하는 조항도 포함돼 있다. 만약 티무리드 왕조에도 코로나 락다운 같은 제도가 있었다면, 카슈미르의 정원에서 열리는 자한기르 본인의 파티는 분명 예외였을 것이다.
2023년 옥스퍼드대 영문학과의 난디니 다스 교수가 'Courting India'라는 책을 펴냈다. 여기서 그는 영국의 외교관 토머스 로(Thomas Roe)가 자한기르의 궁정에 머물렀던 이야기를 다루었다. 그런데 정작 자한기르 황제의 회고록에는 이 토마스 로라는 인물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다. 게다가 난디니 다스 교수는 다른 여행자 한 명의 이야기를 놓친 것 같다. 그것은 바로 토마스 로와 같은 시기에 자한기르의 궁정을 방문한 사마르칸드 출신의 여행자, 일흔 살 무르티비(Murtibi)의 회고록이다. 무르티비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다. 자한기르 황제가 중앙아시아, 즉 자기 조상의 뿌리에 대해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인이다. 또 무엇보다도 시가 자한기르의 환심을 사기 위한 수단으로 얼마나 중요했는지도 잘 보여준다.
무르티비는 자한기르를 만나자마자 우아한 시 한 수를 바쳤고, 자한기르도 즉석에서 시로 답했다고 한다. 포도주와 아편도 그의 시심(詩心)을 흐리지는 못했던 것이다. 이는 그의 궁정, 그리고 혈통에 깊이 새겨진 특징이기도 했다. 반면 영국에서 온 토마스 로는 페르시아어를 할 줄도 몰랐으니 그런 자리에서 시를 읊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자한기르의 아들, 샤 자한. (1617년 압둘 하산 작품. 종이 위에 수채 물감과 금.)
자한기르는 카슈미르 지역을 두고 “영원한 정원”이라 불렀다. 그는 이곳에서 수확되는 사프란 크로커스 꽃에 대해서도 썼다. 샤프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 지역의 주요 작물이며, 필자도 1978년에 그 수확 장면을 직접 목격한 바 있다. 꽃의 향기가 너무 짙어 자한기르와 수행원들의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는 카슈미르의 인상적인 나무들을 기록하기도 했다. 다만 그 나무들 중 하나를 ‘노란 꽃이 피는 유다나무(Judas tree)’라고 번역한 부분은 의문이다. 왜냐하면 cercis로 알려진 유다나무의 꽃은 보통 분홍빛이거나 흰색이기 때문이다. 자한기르는 들판에 야생으로 피는 장미, 제비꽃, 수선화에 대해서도 말하고, 그 다음 차례로는 파란 자스민이 핀다고 썼다. 자신의 선조들처럼 카쉬미르의 달(Dal) 호수 주변에 정원을 조성하기도 했는데, 이 호수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매혹적인 풍경 중 하나이다.
자한기르는 과일에도 강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카슈미르의 체리를 극찬했는데, 그것이 카불 인근에서 자라는 "붉은 나비처럼 매달린" 체리들보다도 더 훌륭하다고 판정했다. 그는 카슈미르 체리를 번식시켜서 다른 정원에서도 재배할 수 있도록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자한기르는 식물학자가 아니었고, 현대적 의미의 생태학자도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과 특이함이었다. 예를 들어 이색적인 색깔의 꽃이나 속이 빈 나무 같은 것들이다. 또 어떤 정원사의 딸에게 턱수염과 콧수염과 가슴털이 난 것을 보고는 “너무도 이상한 일이어서 기록해 둔다"고 적기도 했다.
1620년 3월, 자한기르는 카슈미르에서 또 하나의 기묘한 식물과 마주하게 된다. 그는 그것을 “기묘한 형태의 이상한 꽃”이라 묘사했는데, 꽃은 주황색이고 머리가 아래로 처져 있었으며 둘레에는 “파인애플처럼 생긴 잎”이 둘러싸여 있었다고 적었다. 이는 확실히 '왕관 프리틸라리아(Crown Imperial)'였던 것 같다. 봄철 영국의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렌지색 또는 노란색 꽃이다. 그는 또한 “집들의 벽과 안마당, 대문, 지붕에 튤립이 피어 살아나는” 모습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어떤 모스크의 지붕 위에 피어난 검은 튤립까지도. 이 대목도 나는 공감이 간다.
작년 10월, 나는 올해 봄을 위해 옥스퍼드에 튤립 수백 송이를 심었다. 몇몇은 회색 다람쥐에게 뽑히고 갉아먹혔다. 자한기르의 시대에는 어땠을까. 아불 하산이 그린 훌륭한 그림 속에는 귀여운 갈색 다람쥐들이 나무 위에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집에서도 화분에다 튤립을 심었는데, 어느 날 밤 초대받지 않은 몽작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 그걸 전부 먹어치웠다. 마치 눈높이에 있는 배달 음식을 쓱싹 하듯이 말이다. 내 정원에 야생동물이 제멋대로 돌아다닌다니! 나는 자한기르 황제가 돌아왔으면 한다. 사슴뿐 아니라 사자도 사냥하던 그가 내 튤립을 지켜주기를.
- FT
필자 로빈 레인 폭스는 옥스퍼드대 역사학과 교수이며 옥스퍼드대 뉴칼리지와 엑스터칼리지의 가든 마스터를 맡고 있다. 그는 1970년부터 매 주 파이낸셜타임스에 가드닝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 The Financial Times Limited 2025. All Rights Reserved. Not to be redistributed, copied or modified in any way. Okhotsk is solely responsible for providing this translation and the Financial Times Limited does not accept any liability for the accuracy or quality of the translation.
사진과 그림: Victoria & Albert 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