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에 애견 미용실까지...' 전쟁으로 살아나는 러시아의 러스트벨트

2025-04-02



우크라이나 침공은 러시아 사회에 예상치 못한 영향을 가져왔다. 지방 경제에 활력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Daria Mosolova

2025년 3월 30일


러시아의 여러 소매기업들이 러시아판 '러스트 벨트'라 할 수 있는 쇠퇴한 공업지대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군인들에게 지급되는 보너스와 급증하는 군수 생산 덕분에 새로운 부가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해 병력을 모집하는 주요 지역인 러시아 최빈곤 지역에서 최근 여러 상점, 식당, 피트니스 센터가 속속 문을 열었다. 전쟁 경제는 공장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고 역사적으로 가난했던 도시와 마을들에는 전례 없는 규모의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전쟁은 일종의 '평준화 장치' 역할을 합니다."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SWP)의 러시아 경제 전문가 야니스 클루게는 이렇게 말했다. "평시에는 별다른 기회가 없는 사람들, 교육을 받지 못하고 빈곤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대량의 돈이 흘러들어갑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 차에 접어들면서, 군복과 무기를 공급해야 하는 국가적 수요가 러시아 빈곤 지역의 공장 노동자들에게 고임금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에서 온 징집병들은 군에 입대하며 거액의 보너스를 받고, 전쟁터에서 사망할 경우 유족이 상당한 보상을 받는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너무 가난해서 대형 마트에 갈 엄두도 못 내던 동네들이었는데 이젠 새롭게 쇼핑 수요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클루게의 말이다.



러시아 소매업계와 레저산업 기업체들은 이런 흐름을 포착했다. 서방의 제재와 급등한 국내 금리가 경제 활동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들은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슈퍼마켓 체인을 소유한 X5 그룹은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방의 제재를 우회할 새로운 교역로를 모색하는 러시아의 수입 파트너들 덕분에 해당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가 러시아 기업들의 채용 공고를 분석한 결과, 2025년 1월까지 1년 동안 하바롭스크주에서 소매·요식업 부문의 채용 공고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제품 판매 체인 'M. 비디오-엘도라도'의 매장 모습


러시아 저소득 지방에 여러 기업들이 낸 구인광고 수. (2024년 1~2월과 2025년 1~2월 비교)


러시아 슈퍼마켓 '피아테로치카', 패스트푸드 체인 '로스틱스', 전자제품 판매점 'M.비디오-엘도라도' 등은 신규 직원을 적극적으로 모집하고 있다. 특히 M.비디오-엘도라도는 지난해 100개의 신규 매장을 열었으며, 중앙 러시아의 공업지대에 위치한 인구 10만 명 이하의 소도시 카치카나르, 솔리캄스크, 볼스크 등 25개 신규 지역에 진출했다.


러시아의 실업률은 2021년 동기간 4.3%에서 2024년 겨울 2.4%로 떨어졌다. 정부는 군수산업뿐 아니라 군대에 보급할 식량과 연료, 의류를 생산하는 보조 산업에서도 대규모 채용을 추진했다. 노동자의 임금은 여러 산업군에서 상승했다. 군 입대나 해외 도피로 인력이 줄어든 탓에 노동시장이 극도로 타이트해졌기 때문이다. 다만 물가도 올라가서 임금 상승의 효과를 일부 상쇄했다.


러시아(15세 이상) 실업률 추세.


러시아 중부지역에 있는 마리엘 공화국은 신병들에게 300만 루블(약 5200만 원)의 입대 보너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 지역의 노동자 연평균 임금보다 3배 이상 높은 금액이다. 러시아 국가통계청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가난했던 마리엘 공화국의 명목소득은 2021년 12월부터 2024년 사이에 약 80% 증가했다. 같은 기간 모스크바의 상승률은 약 60%였다.


"군에서 주는 보너스가 엄청나기 때문에, 원래라면 고급 스마트폰은 꿈도 못 꾸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하나씩 삽니다." 러시아 시장 분석업체 '컨텐츠 리뷰'의 대표 세르게이 폴로브니코프는 이렇게 말했다.


중앙 러시아의 도시 체복사리에 사는 한 주민은 상황 변화를 피부로 느낀다고 했다.


"요즘 패스트푸드점에서 커피 한 잔 사려고 하면 30분은 줄을 서야 해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고급 레스토랑은 예약이 밀려서 일주일 전에는 미리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예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죠."


그러나 그는 이렇게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 정부의 대출 제한 정책과도 연관이 있다고 설명했다. 물가를 잡기 위해 러시아 중앙은행이 금리를 21%까지 인상하는 바람에 시민들이 대출을 받아 집이나 차를 구매하는 것이 여전히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저도 수입이 나쁘진 않지만, 집이나 차를 살 순 없어요. 그래서 그 대신에 식료품을 좀 더 좋은 걸로 사고, 외식도 자주 하는 거죠." 그는 덧붙였다.


인구 3만 명도 안 되는 마을 슈메를랴에 사는 한 여성을 만났다. 그는 최근 동네에 새로 문을 연 미용실이 많다고 말한다. "이제 거의 모든 여자들이 매니큐어를 받아요. 네일샵도 엄청 많아졌고요. 심지어 미용 시술이나 간단한 주사 시술을 하는 곳도 생겼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심지어 우리 마을에 반려견 미용실도 들어왔어요. 이건 진짜 변화의 지표죠."


좀 더 큰 지방도시들도 변화의 흐름을 타고 있다. 한때 모스크바에만 있던 기업들이 점차 지방으로 확장하는 중이다. 피트니스 체인 '스피릿 피트니스'는 월 회원권 가격이 최대 70달러(10만 원)인데, 지난해 우랄 지역의 도시 첼랴빈스크(인구 110만)에 지점을 열었다. 러시아 쇼핑센터협회의 미하일 리차고프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 돈을 쓸 여력이 생겼습니다. 건강 관리에 더 투자할 수 있는 것이죠. 피트니스 산업의 성장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러시아 중부 노보시비르스크에 있는 모병 포스터(2022년 X). 적혀있는 문구는 "이런 일(This work)"라는 뜻이다.


전사자 유가족에게 지급되는 거액의 보상금도 가계 소득 증가의 중요한 요인이다. 한 전쟁 미망인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남편의 사망 보상금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 집을 샀다고 밝혔다. 그녀는 이렇게 적었다.


"한 사람의 목숨값이 얼마일까요? 1200만 루블이네요." 약 2억1000만 원이다.


핀란드 중앙은행 산하 신흥경제연구소의 라우라 솔란코 연구원은 러시아의 전쟁이 끝나면 군인들이 가장 먼저 수입을 잃겠지만, 지역 경제 구조의 일부 변화는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국과의 무역 경로 변화로 이익을 본 지역은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그녀는 말했다. "특히 군수 산업이 발전한 지역은 더욱 그렇죠. 러시아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재무장을 해야 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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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사진: 각 업체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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